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54
153화. 극한 생일 파티 (2)
이혁의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래, 잘 가.”
강소는 이혁의 가게를 나섰고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던 거지?’
이혁의 가게 안쪽 구석의 작은 창고 같은 곳에 숨어 있던 유순태와 이신의 기운을 강소가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느낌상 모른 척했을 뿐.
“빨리 가서 롤 케이크나 먹어야겠군.”
저번,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 도난 사건을 계기로 먹을 건 아끼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은 강소였다.
.
.
.
“됐어. 나와도 돼. 강소 총각, 갔어.”
이혁의 말에 밀가루 창고의 문이 열리고, 유순태와 이신이 나왔다.
“후아, 들키는 줄 알았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다 서로를 본 둘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군데군데 밀가루가 묻은 모습.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묻은 밀가루를 털어 주며 대화를 나눴다.
“그나저나 형님께서 매월 두 번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를 사러 오신다고요?”
이신의 물음에 이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틴이나 다름없지.”
“형님을 위한 케이크 말입니다.”
이신의 눈이 빛났다.
“어떤 케이크를 만들어야 할지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들이 케이크에 대해 의논하고 있을 때.
툭-!
진열대의 빵을 정리하고 있던 도순이는 자신도 모르게 빵을 떨어트렸다.
– 아!
“왜? 무슨 일 있어?”
이혁의 물었지만 도순이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꽃의 여왕님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강소였다.
이미 유순태와 이신이 베이커리 안에 있음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신이 나서 케이크의 디자인을 구상하는 세 남자를 보며 도순이는 그냥 이 일은 마음에 묻어 두기로 했다.
* * *
요즘 들어 강소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소의 주변 사람들이 뭔가를 하다가 그만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후다닥 치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어젯밤, 위층에서 유순태와 임소영이 하는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눈치 못 챘겠지요?”
“응.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아.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라니! 강소가 깜짝 놀라겠지?”
“저 같으면 무척 감동할 것 같아요.”
그 대화에서 그 동안 주변 사람들이 보인 이상 행동이 자신의 생일 파티를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고, 그제야 강소는 10월 5일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 생일을 챙겨 주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써 주다니.’
강소는 그 사실이 못내 감사할 뿐이었다.
자신이 전부 다 알고 있는 것을 모른 채, 파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할까 했지만…….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파티를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
강소는 철가방을 들었다.
“배달 다녀올게.”
“어. 그래.”
유순태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알았다.”
딸랑.
유순태가 배달을 위해 양춘각을 나서자 김지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들킬 뻔했어요.”
김지은은 가방 안에 넣어 두었던 서류를 꺼냈다.
그 서류의 제목은 ‘VVIP를 위한 생일파티 계획서’였다. 즉, 김지은이 작성한 강소의 생일 파티에 대한 계획이 담긴 서류.
김지은은 유순태에게 강소의 생일파티에 대한 계획을 들었을 때 설레어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특급 호텔과 스테이크 등등의 거창한 계획을 세울 때 그녀를 진정시킨 건 진모영이었다.
“아가씨. 일을 의뢰한 건 유 사장님이시죠?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캐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구나. 나도 모르게 흥분했네.”
김지은은 곧바로 생일파티 계획서를 다시 작성했고, 그걸 본 유순태는 무척 만족했다.
이제 남은 건 진행이었는데 문제는 강소가 너무 신출귀몰하다는 것이었다.
방금 전에도 그걸 꺼내 놓고 유순태 부부와 상의를 하던 도중 배달을 마친 강소가 불쑥 들어온 것.
그래서 허겁지겁 가방에 집어넣고 시치미를 뚝 떼었고, 다행히 강소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선물을 고민해 볼까요?”
* * *
추석 명절이 끝나고, 유하영의 영화 촬영 역시 재개되었다.
보통 영화는 밤샘 촬영을 이어 가지만, 미성년자의 경우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의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미성년자가 주연급일 경우, 다른 영화들보다 넉넉하게 일정을 잡고 촬영에 들어갔다.
유하영이 출연하는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유하영이 생각보다 연기를 잘했기에 촬영은 예상보다 일찍 끝났고, 덕분에 일정에 여유가 생겨 촬영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오늘 가장 중요한 장면의 촬영을 마치고,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유하영은 간식을 먹고 있었고, 옆에서 하태복이 그녀를 케어하고 있었다.
“하영아.”
그때 누군가 유하영을 찾아왔다.
주인공 서철중을 연기하는 윤진이었다.
“간식 먹고 있었구나?”
“네.”
오늘 간식은 유하영이 가장 좋아하는 초코빵이었다.
“맛있는 간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간식은 윤진이 사비로 돌린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소보로빵과 우유였지만, 유하영은 특별히 초코빵과 우유를 준비해 주었다.
“잘 먹으니 좋네.”
유하영을 보니 윤진의 얼굴에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그런데 하영이 어머니는?”
그 말에 하태복이 대답했다.
“사모님께서는 촬영 일정 조정 때문에 잠시 조감독님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윤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이따가 찍을 장면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하려고 왔는데…….”
그는 미소 지었다.
“여기서 좀 기다리지 뭐.”
윤진은 초코빵을 욤욤 먹는 유하영을 보며 힐링되는 것을 느꼈다.
다른 아이를 볼 땐 느끼지 못했던 청량감에 윤진은 무의식적으로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다 먹었어요!”
유하영의 말에 윤진은 피식 웃었다.
입가에 초콜릿이 잔뜩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척 총명해서 다섯 살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것을 보면 다섯 살이 맞았다.
“아가씨, 얼굴에 초콜릿이 잔뜩 묻었네.”
“핫! 그래요?”
“이리 와 봐. 오빠가 닦아 줄게.”
윤진은 옆의 물티슈로 유하영의 얼굴과 손에 묻은 초콜릿을 닦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여기 대본을 볼까?”
윤진은 유하영에게 대본을 보여 주며 물었다.
“여기 보면 하영이가 나에게 매달려서 우는 장면 말이야. 이때 처음부터 우는 것보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우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때? 하영이 할 수 있겠어?”
유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로 준비해 왔어요.”
“어? 그래?”
“네. 오빠가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 연기 역시 그에 맞추어 여러 가지로 준비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윤진은 유하영이 말하는 오빠의 이름이 ‘강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하영의 연기 선생님이라는 것도.
어떤 사람인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유하영을 보면 상당히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섯 살 아이에게 이 정도로 완벽하게 연기를 알려 주는 건 아무나 못 하는 일이었으니까.
“음…….”
그때 갑자기 유하영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표정에 윤진이 물었다.
“하영아? 무슨 고민 있어?”
“네.”
유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생일인데요. 뭘 해야 오빠가 좋아할지 고민이에요.”
그 고민에 윤진은 잠시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유하영이 오빠라 부르는 사람은 유하영이 길가의 돌멩이를 주워서 선물이라고 줘도 기뻐하며 간직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진짜 돌멩이를 주워 주라고 할 수는 없으니,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로 했다.
“편지를 쓰거나 노래를 불러 주는 건 어떨까?”
“아!”
유하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편지를 써야겠어요!”
.
.
.
그날 밤.
유순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하영이 자신의 방 책상 아래에 고개를 들이밀고, 엉덩이만 쏙 내민 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영아, 거기서 뭐 하니?”
“하영이 편지 써요.”
“편지?”
“오빠 줄 거예요.”
“아, 그래? 그런데 왜 거기서 편지를 쓰는 거야?”
유순태의 물음에 유하영이 말했다.
“비밀이에요. 오빠만 봐야 해요.”
라고 했지만, 유순태와 임소영은 그 편지 내용을 모를 수가 없었다.
“……오빠랑 같이 살아서 좋아. 매일 유치원에 데리러 와서 고마워…….”
입으로 내용을 말하며 편지를 썼으니까.
그리고.
1층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던 강소 역시 유하영의 편지 내용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 * *
날이 밝으며 잠에서 깬 강소는 날짜를 확인했다.
10월 5일.
그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생일 때 뭘 했었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그에게 생일은 별 의미가 없었다. 함께 살던 소녀의 말에 정한 날이었으니까.
소녀와 함께 살기 전까지는 별 의미 없던 10월 5일은 그 후, 조금이나마 의미가 생겼다.
매년 10월 5일이 되면 소녀가 ‘생일 축하해요! 아저씨!’라고 말해 줬으니까.
‘녀석, 혹시 내 생일을 축하해 준다고 내가 살던 집에 왔다가 없다고 걱정하려나?’
하지만 워낙 당찬 아이였고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일이 잦은 강소였으니까 ‘외출 중이시구나’하고 별 걱정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강소는 운기조식을 하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양춘각의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청소를 시작했다.
* * *
오늘도 분주한 하루였다.
저녁 장사를 마치고 마무리할 때, 강소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 형님!
이신이었다.
“무슨 일이냐?”
– 저, 잠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지금 말이냐?”
– 네.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요. 그래서 미리내 공원에서 좀 뵙고 싶습니다.
그 말에 강소가 대답했다.
“알겠다.”
강소는 전화를 끊으며 유순태에게 말했다.
“이신 동생이 잠시 보자고 해서 말이다. 나갔다 올게.”
“그래, 그럼 어서 가 봐야지.”
“다녀오마.”
강소는 양춘각을 나섰고, 그 모습에 유순태는 부리나케 겉옷을 챙기며 임소영에게 말했다.
“갔어! 우리도 얼른 가자고!”
“네!”
“꼬롱이랑 뽀뽀도 가야 해요!”
유하영은 꼬롱이랑 뽀뽀를 안아 들었고, 그들은 얼른 미리내 공원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강소의 생일파티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 * *
강소는 미리내 공원으로 향하며 피식 웃었다.
이신이 왜 자신을 그곳으로 불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강소는 놀라는 척해 줄 생각이었다.
모두의 즐거움을 실망으로 바뀌게 할 수는 없으니까.
저벅, 저벅.
강소는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미리내 공원으로 들어섰고, 순간 발을 멈추었다.
“아…….”
이미 알고 있기에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리내 공원 전체가 파티장으로 변해 있었다.
색색의 전등과, 풍선.
테이블의 음식과 음료수.
그 가운데 있는 초대형 특제 생크림 롤 케이크에는 ‘생일 축하해요. 강소 씨’라고 초콜릿 시럽으로 쓰여 있었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강소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신, 김지은, 오동수, 하태복, 이혁을 비롯한 사람들에 강소는 순간 멍해졌다.
“생일 축하한다.”
그때, 막 도착한 유순태 가족이 파티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어…… 고맙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강소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북받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생일 파티를 해 본 적은…….
“처음입니다.”
“?”
“생일 파티…… 처음입니다.”
그때 유하영이 말했다.
“오빠. 왜 울어?”
“어?”
강소는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 보았다.
오래전 말라붙었다고 생각했던, 눈물이었다.
그날, 강소는 깨달았다.
너무 행복해도 눈물이 난다는 것을.
무림에서 온 배달부 1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