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61
160화. 박물관 방문기 (3)
강소가 유하영의 경호원으로 따라가기로 했기에 하태복은 휴가를 받았다.
강소가 따라가는데 두 명이나 같이 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쉬고 있어야 할 하태복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었다.
강소의 물음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휴가 중입니다. 제 여가 시간에 하영 양의 사진을 찍으러 온 겁니다. 이게 저에게 힐링이거든요.”
그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사모님도 아십니다. 방금 전화를 걸어서 하영 양의 사진을 찍어서 팬클럽에 올려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거든요. 하하하.”
“그랬군.”
가만 보니, 하태복은 평소 입던 정장이 아닌 캐주얼한 옷차림에 고해상도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가까이 와서 찍지 왜 멀리서 이러고 있어?”
“아, 오늘은 파파라치 컨셉이라서요.”
“파파라치 컨셉?”
“그러니까 몰래 찍는다는 건데, 이게 자연스러운 연출이 가능해서 은근히 인기가 많습니다.”
“그렇군.”
강소는 유하영이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알았다. 그럼 열심히 찍어라.”
“네.”
그는 예술 혼을 발휘하여 유하영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강소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뭐든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은 것이지. 사진을 찍는데 왜 포복 자세로 찍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강소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
마정석 공학으로 만들어진 강화유리 진열대 안쪽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는 그것에 이끌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고, 그 물건을 보았다.
“이건…….”
둥근 모양의 구리 패 안에 양각으로 세 마리의 말이 새겨져 있었다.
그가 어릴 때, 아버지가 보여 주었던 가문의 상징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이건 네 고조부가 오래 전부터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언젠가 ……얻는다면 ……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여전히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셨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때 보았던 물건과 이것이 동일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게 왜 여기에…….’
강소가 혼란스러워 하는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마패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그는 고개를 돌려 되물었다.
“이게 마패라는 겁니까?”
“네.”
안경을 쓴 젊은 남자였다.
생긴 건 얼빵해 보였지만, 강소는 그가 각성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남자는 설명을 이어 갔다.
“고려 후기와 조선의 관리들이 지방으로 갈 때 나라의 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패입니다. 고려 시대 때에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나무라는 특성상 훼손이 심해서 세종 때 쇠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보시는 건 말이 세 마리라서 삼마패라 부르는데 세 마리의 말을 빌릴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원래 마패는 지방에 나랏일을 위해 파견되는 관리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암행어사들이 왕의 명을 받아 탐관오리들을 숙청할 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용도라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말의 마리 수가 많을수록 좋은 겁니까?”
“물론이지요. 그만큼 많은 말을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삼마패 이상의 패가 발급되었다는 기록은 별로 없습니다. 암행어사도 대부분이 쌍마패 혹은 삼마패였죠.”
“그렇군요.”
그들은 마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상당히 잘 아시는군요.”
강소의 말에 그 남자가 말했다.
“당연하죠. 여기 조선 시대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니까요.”
“아, 그러시군요.”
“박창식이라고 합니다.”
“강소라고 합니다. 오늘 설명 감사합니다.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별로 설명한 것도 없는데 부끄럽군요.”
그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강소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마패를 보았다.
‘이걸 왜 고조부가 가지고 계셨던 것이지?’
기억나지 않았던 가문의 상징이라는 물건이 무엇인지 오늘 드디어 기억해 냈지만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이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그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시간은 무척 빠르게 흘렀다.
점심을 먹고 다시 새싹 유치원 아이들을 위한 김명희의 해설이 시작되었는데, 강소는 그녀가 이 일을 위해서 따로 준비를 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잘 알고 있던 것인지 궁금해 졌다.
그리고 아까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청소를 하던 직원에게서 왜 그녀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는지, 심지어 CCTV 점검을 하러 왔다는 직원들이 B급과 A급 각성자인 이유도 궁금했다.
하지만 천장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그 의문은 곧 풀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어야 할 것 같았기에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
.
.
어느덧 박물관 현장 학습이 끝났다.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하영은 옆에 앉은 이윤주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서 강소는 유하영의 사진을 찍었고, 이를 보던 박문자가 웃으며 말했다.
“윤주도 같이 찍어도 돼요.”
“아, 그래도 됩니까?”
“네. 그리고 저에게도 사진 한 장 보내 주세요.”
임소영도 말했다.
“저도 한 장 보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강소는 가장 귀엽게 나온 사진을 둘에게 보냈다.
옆을 보니 창가에 앉은 한유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함께 여럿이 섞인 복잡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문득 강소는 아까 유하영이 그에게 살짝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있잖아. 오빠. 물건들 설명해 주는 선생님, 짜장면 먹으러 많이 오는 언니 맞지?”
역시 유하영은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런데 천장 위에 되게 신기한 사람이 있어. 사람인데 내 손바닥보다 작아. 그런데 나쁜 사람 같아.”
게다가 강소가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블랙맨에 대해서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 사람이 예쁜 그릇을 훔쳐 가려고 해. 예쁜 그릇이 불쌍해.”
강소는 유하영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알았다. 내가 예쁜 그릇을 훔쳐 가지 못하게 하마.”
“꼭이야!”
* * *
박창식은 시계를 보았다.
이제 곧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상 밑에 둔 가방을 보았다. 그 안에는 낯선 이가 준 청화백자매조죽문호의 레플리카가 들어 있다.
그는 마른세수를 했다.
온몸의 신경 세포가 곤두서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갔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선택했다.
‘모 아니면 도만 있는 건 아니지. 그중에는 개도 있다 이거야.’
그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구입했던 약이 있었다.
게이트의 부산물이 꼭 좋은 쪽으로만 발달한 건 아니었다. 단번에 고통 없이 목숨을 끊게 할 수 있는 독약 같은 것들도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를 뒤따를 결심을 했었다. 그런 그를 막은 건 그의 절친이었다.
‘명진아. 이번에는 안 될 것 같다. 네가 뒷수습을 해 준다고 했지만 그로 인해 너에게 피해를 주는 게 더 싫다. 메시지를 괜히 보낸 것 같네. 그냥 처음부터 이걸 선택했으면 됐는데 말이야.’
그는 미소 지었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삶이었고, 또 괜찮은 하루였다.
마패에 관심 있어 하는 학생에게 마패에 대해 설명해 주었던 것도 즐거웠다.
박창식은 독약병을 들었다.
평범한 피로회복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그 병의 뚜껑을 열려는 순간.
탁.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신입 해설사였다. 그녀는 박창식을 향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말했다.
“생긴 것만 띨빵한 줄 알았더니 생각하는 것도 띨빵하네?”
“!”
“그러지 마. 명진이가 얼마나 슬퍼하겠어.”
“서, 설마……?”
“쉿! 거기까지!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줄게. 시간 없으니까 듣기만 해. 너는 그들이 준 레플리카와 진품을 바꿔치기 해서 전해 주기만 해.”
“하, 하지만.”
“우리, 아마추어 아니다.”
그리고 그녀, 김명희는 박창식의 손에 들린 병을 잡아채며 말했다.
“음료수 잘 마실게요.”
그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알아챘다.
자신의 친구 김명진이 뭔가 손을 썼고, 지금 비밀리에 각성자 협회가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독약을 뺏어 간 그녀는 김명진의 누나가 틀림없었다.
‘네가 이번에도 날 살리는구나!’
이제 모든 망설임은 사라졌다. 그녀의 말대로 각성자 협회는 아마추어가 아니니까.
그는 발아래에 놓인 가방을 들었고, 조심스레 그 안의 상자를 꺼냈다.
이미 모두 퇴근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그는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그는 CCTV의 사각지대를 통해 청화백자매조죽문호가 있는 수장고로 향했다.
수장고 안에 있는 청화백자매조죽문호와 자신이 가져온 레플리카를 바꿔 넣던 중 그는 미묘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라? 이거…….’
그가 기억하는 대상에는 그의 눈으로 본 것 역시 해당되었고,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수장고에 있던 청화백자매조죽문호도, 그가 들고 온 레플리카도…… 둘 다 진품이 아니었다.
* * *
“여기는 올빼미 둘. 방금 쥐새끼께서 치즈 물고 빠져나가셨다.”
“여기는 올빼미 하나. 알겠다.”
“여기는 표범 하나. 알겠다.”
통신을 마친 김명희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와! 진짜 그자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오늘, 새싹 유치원에서 박물관으로 현장 학습을 오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걱정했다.
혹시나 애꿎은 아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현장 학습을 취소해 버리면 날다람쥐 측에서 눈치챌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강소가 함께 온 것을 보고 그녀는 안도했다.
만약에 중간에 작전이 잘못되어서 아이들이 위험해진다고 해도 그가 있다면 안심이었으니까.
다행히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김명희에게 강소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 아무래도, 김 과장님이 찾고 있는 자는 쥐새끼인가 봅니다. 아니면 아주 작게 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든지 말입니다.
그 메시지에 그동안의 모든 의혹이 풀렸다.
그자가 어떻게 그리 신출귀몰했는지, 어떻게 촘촘한 수사망을 뚫고 도주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뭐야? 소형화 각성자였어?’
소인화와 달리 소형화 각성자는 자신이 들고 있는 모든 것이 함께 작아진다.
상당히 희귀한 능력이었다. 그래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 능력을 이런 쓸데없는 짓에 쓰다니!’
아무튼, 그의 능력에 대해 몰랐다면 이번 작전은 틀림없이 실패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번 작전의 메인은 그자가 오기 전, 작전 팀이 준비한 레플리카에 위치 추적기를 붙여서 수장고의 진품과 바꿔 두는 것이었다.
레플리카와 바꿔치기하는 날다람쥐의 수법을 알고 있었고, 또 확실한 제보가 있었기에 세운 작전이었다.
CCTV를 점검하러 온 사람들은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자가 그걸 눈치챘다면 작전은 실패하는 것.
그렇기에 그녀는 강소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고양이를 수배했다.
각성자 고양이를 말이다.
그는 수인화라는 능력을 가진 각성자로, 고양이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감찰과 직원이었다.
소인화 능력이든 소형화 능력이든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건 바로 포식자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날다람쥐의 시선을 돌린 상태에서 수장고의 진품과 레플리카를 바꿔치기할 수 있었다.
날다람쥐의 수법을 역이용한 것.
날다람쥐는 그들이 의도한 대로 먹잇감을 물고 자신의 뒤를 봐주는 조직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중에 롤 케이크라도 사서 감사 인사하러 가야겠네.’
* * *
밤이었다.
양춘각의 1층은 불이 켜져 있었고, 유순태와 강소 앞에는 안주로 고구마튀김과 함께 맥주가 놓여 있었다.
“오늘 수고 많았다.”
유순태의 말에 강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 혼자 수고 많았지. 나는 무척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랬다면 다행이네.”
“그런데 말이야……. 혹시 마패라고 알아?”
“암행어사 출두야 하고 외칠 때 쓰는 마패 말이야?”
유순태의 말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그거 혹시 흔한 거냐?”
“흔한 거였으면 박물관에 있겠냐? 그건 왜 묻는데?”
“그냥…… 궁금했다.”
확실한 무언가를 알아내기 전에 말할 수는 없었기에 강소는 입을 닫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너 혼자 있으니까 좋았냐?”
“응?”
“아까 아침에 보니까 ‘나는 자유예요!’하는 표정이던데?”
“……야.”
그 말에 유순태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야.”
무림에서 온 배달부 16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