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233
232화. 미련 (1)
허름한 술집.
한 남자가 혼자 닭 모래집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앞에 앉았다.
“왜 청승맞게 혼자 마시고 계십니까?”
“아, 민수 왔냐?”
그 남자의 이름은 우민수.
작년에 데뷔하여 아직 신인이라 할 수 있었지만, 작년에 찍은 퓨전 판타지 드라마 ‘천 년을 넘어’에서 여자 주인공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충성스러운 호위무사로 단번에 뜬 스타이기도 했다.
워낙 허름한 술집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 배우 그만둘 거다.”
“그만둔다고요?”
“계속 이 길을 걷는 게 맞는지 모르겠거든.”
우민수는 자신 앞의 남자를 보았다.
자신보다 세 살 많은 형인 단역배우 차현태.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인연으로 계속 알고 지내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연기력도 뛰어났고, 마스크도 준수했으니까.
하지만 왠지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단역만 전전하고 있었다.
“형님…….”
“아무튼, 이제 배우 접을 거다. 그래서 RD엔터 매니저로 지원했다. 오늘 면접도 봤고.”
체념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우민수는 그에게 좀 더 참고 견디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과거 모델 일에 매달렸던 자신이 느꼈던 비참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와 노느냐로 급이 달라지는 연예계였지만, 그래도 그를 외면할 수 없었던 건 예전의 자신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태 형님.”
“왜?”
“형님도 아시죠? 제가 모델 일을 하다가 배우로 전향한 거 말입니다.”
“알지.”
“저는 그때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분이 말했죠. 사람은 정답이라고 생각해도 하늘은 정답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그럼 하늘이 생각하는 나의 정답은 무엇일 것 같으냐?”
“저 역시 그때 그렇게 물었고, 그분은 말했습니다. 그건 본인이 더 잘 알지 않냐고. 아니면 하늘이 자신이 생각지도 못할 방법으로 알려 준다고요.”
“그러면, 빨리 알려 줬으면 좋겠다.”
차현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갈 거다.”
“2차 가시는 겁니까?”
“아니 집에 간다. 그러니까 따라오지 마.”
“제가 택시 잡아 드리겠습니다.”
우민수는 차현태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서야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던 차현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남은 미련 때문인지 속이 답답해져 왔다.
“기사님, 저 이 근처의 공원에 내려 주세요.”
곧 택시 기사는 근처의 공원에 섰고, 우민수가 선불로 낸 택시비에서 남은 돈을 거슬러 주었다.
“수고하십시오.”
택시에서 내린 차현태는 비틀거리며 공원을 걸었다.
그러다 울분에 차 소리를 질렀다.
“내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해 왔는데!”
영화 속 배우들을 동경하여 연기판에 들어온 그는 돈도 없고 빽도 없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엑스트라부터 굴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감독의 눈에 들었고, 드라마 쪽으로 옮겨 가 출연 기회를 여러 번 얻었다.
하지만…….
그에게 유명세를 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오지 않았고, 결국 오늘 매니저 면접을 봤다.
자신이 잘 아는 바닥은 이쪽 바닥뿐이었으니 38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그렇다고 막노동판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젠장!”
그는 홧김에 근처를 굴러다니던 캔을 발로 걷어찼다.
까앙-!
그런데, 하필이면 그 캔이 근처의 조형물을 맞고 튕겨져 나왔다.
캔이 날아오는 경로상, 그 캔은 틀림없이 그의 얼굴에 명중할 터!
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배역을 위해 액션스쿨을 다녔다고 해도, 지금 날아오는 캔을 피하기는 부족했다.
‘윽!’
그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얼굴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가 슬며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낯선 누군가의 손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헬멧을 쓰고 있는 자의 목소리로 보아, 젊은 남자인 것 같았다.
그의 손에는 차현태가 찼다가, 도리어 맞을 뻔했던 캔이 잡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캔을 보면 발로 차지 말고, 꼭 쓰레기통에 넣어 주십시오.”
“네, 네.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헬멧을 쓰고 있는 남자의 손에는 철가방이 들려 있었고, 철가방에는 붉은색 글씨로, ‘양춘각’ 이라는 식당 이름과 전화번호가 쓰여 있었다.
‘배달부인가?’
그 남자는 다시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졌다.
아찔한 경험을 한 탓인지 차현태는 술이 확 깼다.
‘어휴, 뻘짓하지 말고 집에나 들어가야지.’
아직 남은 연기에 대한 미련 같은 건 그냥 집에서 술을 마시며 털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따르르릉.
차현태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는 간밤에 마신 술 때문에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차현태 씨 되시나요?
“네, 제가 차현태입니다.”
– RD엔터의 인사과입니다.
낭랑한 목소리의 여직원이 전해 준 소식은, RD엔터의 매니저로 채용되었다는 것이었다.
비록 38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로드 매니저부터 시작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없지는 않았다.
“매니저 경력은 없지만, 나에게는 그동안 방송계를 굴렀던 경험이 있으니까.”
.
.
.
매니저로 입사한 차현태는 한 달 동안 매니저 교육을 받으며 견습 기간을 거쳤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에게 담당 아티스트가 배정되었다.
* * *
양춘각은 평소와 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 고영민이 새로운 매니저를 소개해 주기 위해 방문한다고 했다.
“좋은 매니저가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유순태의 말에 강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좋은 사람이 하영이의 매니저가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으로 골라 오셨을 거예요.”
“고영민 실장님이 원래 사람 보는 눈은 있으시지 않습니까?”
하태복이 말했다.
앞으로 함께 촬영장에 오고 갈 동료이기에 인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은 씨의 근무 시간은 끝나지 않았습니까?”
강소의 말에 김지은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도 하영이의 새로운 매니저가 궁금해서요. 그리고 하영이의 팬클럽 회장으로서 매니저와 미리 인사하는 건 필수죠.”
“하긴, 그렇군요.”
사실 그녀는 유하영의 매니저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알아내고자 하면, 알아내지 못할 것이 없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나이 38살. 특이사항은 15년의 배우 경력이라고 했었지.’
단역배우로 15년을 살았다는 건, 다른 건 다 제쳐 두더라도 끈기는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 강소가 말했다.
“오시는 것 같다.”
“아, 그래?”
유순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 맞을 준비를 했고, 그 와중에 강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영민과 함께 오고 있는 사람의 기운이 낯익은 것이 어디선가 만났던 적이 있음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딸랑.
문이 열리고 고영민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
고영민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인사드리세요. 유하영 양의 아버지십니다.”
“안녕하세요! 유하영 양의 매니저 차현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반갑습니다. 우리 하영이 잘 부탁드립니다.”
“네,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그때, 2층에서 임소영과 유하영 내려왔다. 그들을 본 고영민이 말했다.
“저분은 유하영 양의 어머니, 그리고 옆의 아이가 유하영 양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매니저 차현태입니다!”
그들의 인사에 임소영은 웃으며 인사를 했고, 유하영도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유하영입니다.”
유하영의 미소에 차현태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그 정도로 유하영의 귀여움은 치명적이었다.
“그리고 이분은 유하영 양의 경호원, 하태복 씨.”
“반갑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차현태는 하태복에게서 왠지 모를 카리스마와 위압감을 느꼈다.
A급 각성자 특유의 위압감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이쪽은 양춘각에서 알바를 하는 분인데, 팬클럽 회장님이시기도 하지.”
차현태는 그 소개에서 왠지 고영민이 어려워하는 느낌을 받았다.
알바를 하는 젊은 여성일 뿐인데.
“안녕하십니까?”
“네, 제 이름은 김지은이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특히 우리 하영이의 연예계 생활 전반에 있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 주실 거죠?”
“무, 물론입니다.”
하지만 차현태 역시도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팬클럽 회장이라지만 일개 알바생 앞에서 왜 주눅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분은 양춘각에서 배달을 하고 계시는 분인데 간혹 하태복 경호원이 일이 있을 때 대신 경호원을 해 주시곤 하시지.”
“처음 뵙겠습니다. 강소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며 차현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양춘각이라는 이름이 낯이 익은데?’
곧 그는 공원에서 자신이 홧김에 찬 캔이 얼굴과 충돌하는 불상사를 겪을 뻔했을 때 구해 준 배달부가 들고 있던 철가방에 양춘각이라 쓰여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강소의 목소리가 묘하게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다.
배우를 오래 해서인지, 기억력도 좋았고 목소리도 잘 구분할 수 있었다.
“혹시, 전에 공원에서 봤던?”
“아! 기억하시는군요.”
“그땐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입사 첫날 멀쩡한 얼굴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었기에 도운 것뿐입니다.”
그들의 대화에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아는 사이입니까?”
고영민의 물음에 차현태가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공원에서 다칠 뻔한 일이 있었는데, 구해 주셨습니다.”
“아! 그런 인연이!”
“차 매니저가, 우리 하영이 매니저가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하하하.”
한편, 강소의 얼굴을 처음 본 차현태는 감탄했다.
‘그보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가 있지?’
자신도 잘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소의 얼굴은 그런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는 것으로 모자라 탈탈 털어 버렸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에 반응이 없는 것이 이해되었다.
고영민은 매니저가 할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첫 인사가 끝났다.
* * *
그날 밤.
영업을 마치고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유하영이 강소에게 말했다.
“오빠! 우리 밖에 나가서 산책하고 오자!”
요즘 유하영은 산책이라는 말을 배워서 곧잘 써먹고 있었다.
“아직 추울 텐데…….”
유순태의 말에 유하영이 말했다.
“답답해요!”
요즘 들어서 유하영은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싫은지 밤에 놀이터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유순태가 강소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강소야. 부탁한다.”
“알겠다. 마침 꼬롱이와 뽀뽀도 갑갑해하는 것 같으니 같이 데리고 놀다 오지.”
그렇게 해서, 오동수를 데려다주면서 놀이터에서 놀다 오기로 했다.
“내일 뵐게요.”
“그래.”
“오빠! 잘가!”
오동수의 집 앞에까지 데려다준 강소는 유하영과 놀이터로 향했다.
문득, 강소는 오늘 본 차현태 매니저라는 사람을 유하영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영아.”
“왜?”
“네 매니저라는 사람, 마음에 드니?”
“응. 마음에 들어. 좋은 사람이야.”
유하영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속상한 일이 있나 봐.”
“속상한 일?”
유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막 뭔가 서글프고 안타깝고 그런 것 같아.”
“하영이, 그런 단어도 알아?”
“응. 드라마 보고 배웠어.”
“하하하.”
사실 강소도 차현태라는 자의 눈에서 망설임 같은 것을 읽었다.
그는 이왕 유하영의 매니저가 되었으면,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 했다.
망설임 같은 것이 있는 어중간한 상태에서는 뭘 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그때, 강소는 낯익은 기운을 느꼈다.
그는 그곳으로 시선을 향했고, 술집 앞의 가판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을 보았다.
‘역시 차현태 매니저군, 그런데 그 앞에 있는 자의 기운 역시 낮이 익은데…….’
곧 그는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우민수였나? 배우로 직업을 바꾸고 잘 풀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딱 봐도 그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민수 씨를 만나 봐야겠군.’
무림에서 온 배달부 23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