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234
233화. 미련 (2)
다음 날.
강소는 카페에 있었다.
그의 앞에는 달콤한 복숭아 티가 놓여 있었다.
아무리 적응하려 해도, 아메리카노는 자신의 입맛에는 탕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를 보며 유순태는 웃으며 말했다.
“그거, 원액에 물 탄 건데. 그 원액을 먹는 사람도 있어.”
“그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
“생각보다 많아.”
“…….”
아무튼, 자신의 취향은 복숭아 티였다.
그렇게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강소는 막 들어온 인물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여기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는 강소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는 우민수였다.
강소는 그의 전화번호가 있었기에, 만나자고 연락을 했고 흔쾌히 알았다는 답장이 왔다.
“앉으십시오. 뭐 드시겠습니까?”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립니다.”
강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오늘은 그가 부른 것이니, 그가 우민수의 커피를 샀다.
“그나저나, 강소 씨가 부르시다니! 이거 꿈 아니죠?”
“꿈 아닙니다. 요즘 바쁘실 텐데 이렇게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뇨! 요즘 휴식기라서 괜찮아요.”
“그럼 다행입니다.”
우민수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말을 골랐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갑자기 부르시고…….”
“사실 도움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도움이요?”
“차현태 씨라고 아십니까?”
“……그건 왜 물으시는지?”
그의 조심스런 물음에 강소가 대답했다.
“사실 그가 하영이의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하영이라면……?”
“그때 봤던 아이 말입니다.”
“아! 알아요! 그때 뭔가 뜨겠다 싶었는데, 진짜 확 떠 버렸더군요.”
우민수는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그래서 알고 싶으신 것이…….”
“제가 볼 때 뭔가 아직 망설임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본인은 열심히 하겠다고 하지만,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에휴.”
우민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도 하지요.”
“이유가 있군요.”
“사실은 말이죠.”
그는 강소에게 차현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배우라…….”
“네, 배우로 15년을 사셨는데 그게 쉽게 포기가 되지 않겠죠. 게다가 연기력이나 비주얼이 그리 딸리는 것도 아니고요.”
그의 말에 강소는 우민수를 보았다.
“그러는, 민수 씨는 모델 일에 대한 미련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돈이 생기니까 미련이 없어지더라고요.”
우민수는 익살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돈이 최고예요. 하하하.”
그 말에 강소 역시 웃어 주었지만, 뒷맛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 * *
다음 날.
유하영의 스케줄이 있었고 차현태는 차를 몰고 양춘각으로 왔다.
정식으로 매니저가 붙으면서, 차 역시 RD엔터에서 지급했기 때문이다.
검은색 SUV 차량이었는데 유순태는 그냥 자신들의 경차를 타고 다니면 된다고 했지만 고영민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법인 차이고, 또 매니저의 출퇴근 문제도 있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유하영 양이 저희 RD엔터에 벌어다 준 돈이 얼마인데요. 하하하!”
그 말에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영민이 유하영의 매니저를 소개하기 위해서만 양춘각에 방문한 건 아니었다.
“사실, 벚꽃 시즌을 앞두고 싱글을 발매하면 어떨까요? 이미 황태준 작곡가님께서 곡도 준비해 놨습니다.”
해서, 오늘 유하영은 RD엔터로 가서 노래를 연습해야 했다.
그때 강소가 말했다.
“저도 함께 가도 되겠습니까?”
평소 같으면 배달 일 때문에 따라갈 수 없었지만, 오늘은 양춘각의 휴무일이었기에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저번 3월 1일이 법정 공휴일이었다. 그 말은 즉, 양춘각에 손님이 많다는 뜻.
그래서 그날을 쉬지 않고 3월 중에 따로 쉬는 날을 잡았고, 그게 오늘이었다.
그의 말에 차현태는 고영민에게 전화를 했고, 그의 용건을 들은 고영민이 반색했다.
– 됩니다! 당연히 되지요! 어서 모셔 오세요!
그래서 강소도 함께 RD엔터로 향했다.
사실, 강소가 RD엔터로 가는 이유는 차현태 때문이었다. 그와 진솔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단둘이 있어야 했고, 전에 봤던 연습 때의 상황은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유하영의 신곡을 먼저 듣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차현태의 운전 솜씨는 훌륭했다.
금세 RD엔터에 도착했고, 그들은 곧바로 보컬 연습실로 향했다.
유하영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황태준 작곡가와 곡 연습에 들어갔다.
그 동안 매니저가 할 건 특별히 없었다.
그냥 대기하는 것 외엔 특별히 인사를 나누어야 할 스텝도 없었으니까.
강소는 하태복에게 말했다.
“여기 있을 거지?”
“네.”
그의 대답에 강소는 차현태에게 말했다.
“우리는 잠시 나가서 음료수라도 좀 마시죠.”
“……알겠습니다.”
휴게실로 온 그들은 캔 음료 하나씩을 들었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눈치챘군요.”
“제가 원래 눈치가 좀 빠릅니다.”
“제가 차 매니저님을 부른 이유는, 궁금해서입니다.”
“……?”
“무엇 때문에 망설임이 느껴지는지 말입니다.”
“……!”
강소는 우민수에게 차현태에 관해 물어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칫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고, 우민수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저는 각성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모르는 능력이 있어서인지 유난히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합니다.”
“그러…… 시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저는 어중간한 것이 싫습니다. 정말 매니저가 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어서 매니저를 하고 계신 겁니까?”
강소는 말을 이었다.
“제가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말하냐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영이에게 해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참 만에 차현태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배우였습니다. 15년이나 했죠.”
“오래 하셨군요.”
“저는 영화 속 배우들처럼 빛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연기를 시작했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아직도 그 일에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사실 저는 배우가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게 배우라는 꿈을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배우를 포기하셨다는 겁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미련이 남습니다.”
“그건 그만큼 배우라는 직업에 애정이 깊으셨다는 의미겠지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습니다.”
차현태의 말에 강소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제가 말주변이 좀 없습니다. 그래서 상담도 잘 못 하고 설득도 잘 못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말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강소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차현태가 말했다.
“그럼 현실적으로 말해 주십시오. 제가 배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련을 어떻게 버립니까?”
“……네?”
예상치 못한 강소의 말에 차현태는 순간 멍해졌다.
“버린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버려지는 것입니까? 버렸다고 해도 문득문득 생각 날 텐데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 미련을, 다른 쪽으로 발전시키십시오. 배우에 대한 미련이라고 하셨죠? 그럼 하영이의 연기 지도를 해 주시면 되겠네요. 미련이 남았던 만큼 배우 일에 진심이셨으니 연기 지도 역시 진심으로 할 수 있겠죠.”
“아…….”
“빛나고 싶었다고 하셨죠? 그럼 하영이를 빛나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매니저님 역시 빛나게 되지 않을까요?”
강소는 말을 이었다.
“지난, 배우로서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경험을 하영이를 위해 써 주십시오.”
강소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아,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차현태가 놀라 벌떡 일어났지만, 강소는 유하영을 위해서라라면 아니 그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이 그가 아끼는 사람들이었으니.
* * *
며칠이 지났다.
차현태는 NBS 방송국에 도착했다.
그의 옆에는 유하영이 함께였다. 그리고 하태복은 연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차현태는 촬영장 안을 스캔했고, 딱 봐도 PD로 보이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유하영 양의 매니저 차현태입니다.”
“아, 반가워요. 하영이에게 정식 매니저가 붙었군요. 사모님은 이제 안 오시나 봐요.”
그 말에 대답한 건 유하영이었다.
“엄마는 뱃속에 제 동생이 있어요.”
“아!”
금세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임경철 PD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축하드려야겠네요. 대신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네.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차현태는 유하영이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입는 동안 다른 이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며, 미리 챙겨 온 피로 회복제를 돌렸다.
오랜 단역 생활로 다져진 짬밥이 있었기에 어떤 스텝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곧, 준비를 마친 유하영이 나왔다.
“매니저 삼촌!”
유하영이 차현태를 불렀고, 그는 얼른 유하영에게 달려갔다.
“네, 유하영 양.”
RD엔터에서는 매니저들에게 아무리 어린 아티스트라 할지라도 절대 반말을 하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었다.
매니저가 반말을 찍찍 하면 보는 스텝이나 관계자들 역시 그 아티스트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차현태 역시 그 이유에 공감했기에 유하영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았다.
“저, 어때요? 예뻐요?”
“네. 오늘도 빛납니다.”
“고마워요! 매니저 삼촌도 멋져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 이거 먹어요.”
유하영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서 주었다.
하태복에게 들은 정보에 의하면, 보통은 사탕을 주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초콜릿을 준다고 했다.
‘그럼 나, 인정받은 건가?’
곧 AD가 유하영을 불렀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저…….”
그때 한 스텝이 차현태에게 말을 걸었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죽은 자의 시간’에 출연하지 않으셨어요?”
그 스텝의 말에 차현태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때, 퇴마사 신부님 역할이셨죠?”
“3회에서 죽었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그 스텝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배우를 그만두신 건가요? 아까 이거 드링크 주실 때 유하영 양의 매니저라고 하신 것 같은데.”
“……네.”
살짝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차현태는 대답했다.
“매니저로 전향했습니다.”
“아쉽게 되었네요. 그때 제가 그 촬영장에 있어서 봤거든요. 그때 액션 연기가 좋았는데.”
“아, 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AD가 그 스텝을 부르면서 대화가 끊어졌다.
‘배우라…….’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명함을 보았다. 그 명함에 적힌 직책은 매니저.
과거는 손 흔들어 보내고, 이제 배우가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차현태는 고개를 돌려 유하영을 보았다.
문득, RD엔터의 휴게실에서 강소와 대화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미련을 어떻게 버립니까? 아무리 버린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버려지는 것입니까? 버렸다고 해도 문득문득 생각 날 텐데 말입니다.”
그의 말은 미련을 버리라는 다른 이들의 말과 달랐다.
“그 미련을, 다른 쪽으로 발전시키십시오. 미련이 남았던 만큼 배우 일에 진심이셨으니 연기 지도 역시 진심으로 할 수 있겠죠.”
강소의 말대로, 연기 지도라면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아득바득 노력했던 것이 어디 가지 않았으니까.
차현태는 스튜디오의 유하영을 보았다.
마치 앞에 친구들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유하영은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빛나고 싶었는데 말이지.’
빛나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강소는 말했다.
유하영을 빛나게 만들어 달라고, 그러면 차현태 역시 빛나게 될 거라고.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유하영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더 반짝일 수 있는지.
‘은퇴할 때까지, 내가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더 빛나게 해 주고 싶어.’
새로운 꿈이, 지금 막 생겨나고 있었다.
그때, 그에게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매니저 일이 그렇기에 그는 전화를 받았다.
“네, 차현태입니다.”
– 안녕하세요. 차현태 씨? 단역배우 건 때문에 연락 드렸는데요. 도서관 사서 역할이에요. 어떠신가요?
평소라면 반색하며 네네 하며 받았을 전화였다.
단역배우는 차고 넘쳤고,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차현태는 여유롭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안될 것 같습니다.”
– 네?
“이제 배우가 아니라 매니저입니다.”
그날.
차현태는 강소의 조언 덕분에 미련을 완전히 승화시킬 수 있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2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