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332
331화. 인어 연습생 (3)
하랑의 말에 강소는 자신의 손 위에 놓인 열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디든…… 말입니까?”
“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소 님께서는 원래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오셨다고 하셨지요.”
그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었군요. 그 열쇠가 있으면 강소 님께서는 원래 계시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면 인벤토리 안에 있는 호족들도 함께 가게 되는데 괜찮은 겁니까?”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어디든 왕의 눈에 띄지만 않으면 됩니다.”
하랑의 말에 강소는 하하 웃었다.
“사용방법은 어떻게 됩니까?”
“자신이 정확하게 그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든지, 아니면 그곳에서 만들어져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는 매개물이 있어야 합니다.”
하랑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열쇠를 잡고 그 열쇠에 새겨진 시동어를 외치면 원하는 장소까지 이어지는 포털이 생깁니다.”
“포털…… 이라면, 왕이라는 자의 권능이 아닙니까?”
강소의 말에 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간이동의 권능은 왕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권능이며, 그 열쇠는 선왕의 권능을 담은 아티펙트입니다.”
.
.
.
강소는 인벤토리에서 나왔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이었기에, 양춘각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그는 자신의 방 안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 두었던 소주를 꺼냈다.
좌식 탁자 앞에 앉아 소주를 잔에 따랐다.
꼴꼴꼴.
알싸한 알코올 향이 느껴졌다.
평소 술은 유순태와 함께 마시지만, 이렇게 혼자 마시는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늘처럼 머리가 복잡한 날에는 특히나 말이다.
“잘 되었군요. 그 열쇠가 있으면 강소 님께서는 원래 계시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실 겁니다.”
하랑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열쇠를 꺼냈다. 붉은색 보석 두 개가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한 번 이동하는 데 보석 하나이니, 딱 한 번 왕복할 수 있었다.
이 열쇠가 있다면 그는 하랑의 말대로 자신이 있던 세계로, 소녀가 있는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갔다가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문제는 어둠의 족속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둠의 족속들을 다스리는 왕이 이 세계를 노리고 있었다.
만약 강소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어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유순태 가족과 또 나와 인연을 맺은 이들을 두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물론 갔다가 돌아올 수도 있었다.
‘포털이라…….’
사실 강소는 전에 일본에 S급 게이트가 열렸을 당시, 그 안의 포털을 사용하려 했었다.
직접 죽음의 족속들이 사는 땅으로 가서 왕이라는 자를 대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왕이라는 자는 그걸 알아차리고 포털 사용을 막아 버렸다.
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이 상황에서 강소의 손에 이 ‘공간의 열쇠’가 들어온 것.
그는 마치 하늘이 자신을 시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어둠의 족속들이 사는 곳에 다녀오거나.
장마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소의 고민도 깊어져 가고 있었다.
탁.
강소는 소주잔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건 나중에 고민하고, 지금은 고영민 실장님 먼저 도울까?”
언제나 그러했듯,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고민에 대한 해답이 눈앞에 나타날 테니까.
* * *
다음 날.
강소는 김명희에게 전화를 걸어 인어 왕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 어머, 그래요? 안 그래도 인어 왕께서 강소 씨를 만나고 싶어 하셨는데 잘 되었네요.
“그렇습니까?”
– 네. 자신의 딸을 구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강소는 자신이 구해 준 해린이라는 이름의 인어 공주를 떠올렸다.
“아, 그 철부지 공주님 말이군요.”
그의 말에 김명희는 까르르 웃었다.
– 아마 집에 돌아가서 호되게 혼이 났을 거예요.
“그랬겠죠.”
– 그럼 인어 측에 문의해 볼게요.
사실 인간이 인어를, 그것도 인어 왕을 사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강소가 인어 왕의 딸을 구해 준 공로가 있었기에,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다음 날 밤.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운대의 해안가.
강소가 만들어 놓은 모래사장은 강소의 기운이 묻어 있어서인지 마수가 오지 못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곳에는 강소가 가져다 놓은 의자가 아직 있었다. 그 의자에 앉아 인어 왕인 해수령이 김명희에게 물었다.
“그래서, 강소 전사는 언제 오는 것인가?”
“곧 올 겁니다. 10시에 오기로 했으니까요.”
해수령의 뒤에는, 보좌관 역할을 하는 셋째 아들 해명과 호위인 진경이 서 있었다.
“그런가?”
그리고 약 3분 후.
시계가 정확하게 10시 정각을 가리켰을 때.
“처음 뵙겠습니다.”
낯선 목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란 인어들이 흠칫할 때 김명희가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 정말 10시 정각에 오셨네요.”
그들의 옆에 강소가 서 있었다.
“강소라고 합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해수령이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해수령. 인어들을 다스리는 자이네.”
“제 갑작스러운 만남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수령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입꼬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강소의 기운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그 강함은 자신이 보아 왔던 그 어떤 존재들보다 강했다.
‘지금 나에게 예의를 갖출 때 잘 대해야 하는 존재다. 수틀리면 나를 지키는 자가 몇이건 상관없이 저 손이 내 목을 비틀어 버릴 터!’
오랫동안 살아온 만큼 해수령은 지혜로웠다.
“허허허, 아니네. 내 딸을 구해 주고 또 전에 우리의 골칫거리였던 락 크라켄 무리마저 소탕해 준 우리 인어들의 영웅인데 내 어찌 접견을 거부하겠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래, 오늘 무슨 일로 나와 만나고 싶어 했는고?”
해수령의 물음에 강소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칫 인어 연습생들의 잘못을 해수령에게 고자질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해수령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했다.
고영민이 각성자 협회와 인어 왕이라는 두 거대한 고래 사이에 낀 새우 꼴이 되어 매일 매일 말라 가는 건 강소의 입장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었다.
‘하영이의 활동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고, 그건 아니 될 말이지.’
강소의 말을 들은 해수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문제가 있었군. 예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고, 자신을 과신할 때 문제가 생기는 법이지.”
“맞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제가 원하는 건, 약간의 당근과 채찍입니다.”
“당근과 채찍?”
강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고, 해수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가 원하는 건 타당하고 또 어렵지도 않은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렇게 일련의 대화를 마치고, 해수령은 바다로 돌아갔다.
풍덩-!
곧 그들의 하반신이 물고기의 모습으로 변했고, 바닷속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휘유! 인어 왕이 저런 저자세라니! 놀라운데요?”
김명희의 말에 강소가 말했다.
“그렇게 놀라운 일입니까?”
“그럼요. 사실 협회장님 앞에서도 조금 고압적인 자세거든요. 아무튼, 원하는 것을 얻으셔서 다행이에요.”
* * *
RD엔터.
인어들은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죠!”
댄스 레슨을 맡은 선생은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다리를 좀 더 빠르게 움직여야지요! 그러면 박자가 늦잖아요!”
“죄송합니다.”
인어들은 자신들이 유연했기에 춤도 잘 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어들에게 뜻밖의 취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다리의 움직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어들이 인어의 모습으로 바다에서 헤엄칠 때 팔과 허리만 쓸 뿐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장대비가 쏟아지며 급격하게 낮아진 기온에도 인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댄스를 연습하고 있는 것.
“다시!”
“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댄스 레슨이 이어졌다.
“그럼, 레슨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알아서 연습해서 다음에는 더 좋은 모습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댄스 선생이 댄스 연습실에서 나가고, 인어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하아, 하아. 힘들어.”
“죽을 것 같아.”
이관은 동생들을 보며 말했다.
“10분 정도만 쉬고, 다시 연습 시작하자.”
“네.”
그때 한 인어가 말했다.
“저…… 형.”
“……?”
“저, 그만 하고 싶어요.”
“무슨 소리야?”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만 할래요. 저.”
“왕의 명령을 거역할 생각이야?”
“…….”
이관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 힘든 건 이해해. 하지만 우리는 인어들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 개선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지니고 왔다. 그리고 너희 스스로가 이 일에 자원했다는 건 알지?”
“……아, 알아요.”
“그런데 벌써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그 냉철한 말에 몇몇 인어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관의 말이 하나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돌로 데뷔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쉽게 생각했지만, 점점 가면 갈수록 그들은 지금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고, 고영민이 들어왔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군.”
“아, 안녕하세요.”
고영민은 인어들의 의기소침한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가 충분히 예상했던 모습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힘든데, 타의에 의해서 하는 연습생 생활이었으니까.
그리고 슬럼프를 겪는 연습생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문제는, 일반 연습생은 자신이 하기 싫다면 쿨하게 계약 해지를 하겠지만, 그들은 인어들이었고 또 특수한 관계에 매여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의 멘탈을 추슬러야 하는 것.
‘그걸 보면 강소 씨는 참 놀랍단 말이지.’
인어들의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자신에게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강소 덕분에 자신이 고생을 덜 하게 되었다.
그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펼쳤다.
“인어 왕께 온 편지이다.”
“네?”
“이관, 네가 대표로 읽어 봐라.”
고영민의 말에 이관은 일어나 편지를 두 손으로 받았고, 공손하게 읽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RD엔터와 고영민 실장의 말에 잘 따를 것을 강조하며 그들에게 포인트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포인트 제도요?”
이관의 물음에 고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너희들에게 개인별로 포인트를 지급하거나 차감할 거다. 포인트에 따라 너희가 원하는 간식을 주거나 외출을 허용하거나 등등의 혜택을 줄 거다. 그리고 이는 왕의 명령이다.”
그 말에 인어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니까.
“그럼 내일 있을 댄스 점검에서 높은 포인트를 얻기를 바라마.”
고영민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나갔고, 인어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포인트 제도 따위는 멍게나 주라고 해요.”
그들의 말에 이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만둔다고 말하기 전에, 이거 먼저 읽어 보지 그래?”
“……?”
그들은 편지를 보았다.
이관이 읽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추신 1. 너희가 한다고 자원했으니, 중도에 그만두는 건 허락하지 않겠다. 자의에 의한 중도 포기는 엄벌로 다스리도록 하겠다.]추신은 또 있었다.
[추신 2. 강소 전사는 우리 인어들의 은인이니 만나면 정중하게 예를 갖추도록 해라.]두 번째 추신은 영문 모를 내용이었지만, 확실한 건 그들이 마음대로 아이돌 데뷔를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인어 하나가 말했다.
“형, 저희…… 연습해요.”
“그래.”
그렇게, 처음의 자만심이 가득했던 인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강소 덕분에 그들은 성실한 연습생이 되어 가고 있었고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영민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슬슬 인어들의 데뷔를 본격적으로 준비해도 될 것 같았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존재를 떠올렸다.
‘장마가 끝나면, 족발이라도 사 들고 찾아 가야겠군.’
무림에서 온 배달부 33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