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334
333화. 무적의 철가방 (2)
다음 날.
강소는 고영민에게 ‘얼굴 없는 가수’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을 걸었고, 고영민은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걸려 온 전화.
– 예능국장님이 전부 수락하겠다고 했습니다.
강소가 봐도 좀 무리겠다 싶은 것까지 받아들인다는 것.
그래서 의아했다.
‘대체 무슨 사정이 있기에, 이 정도로 나를 원하는 거지?’
강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고영민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 ‘얼굴 없는 가수’가 녹화 방송이거든요. 이번 주 월요일에 녹화를 합니다.
“그거 잘 되었군요.”
정기휴일이라 따로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 월요일 2시에 녹화 시작인데, 이 프로그램이 탈락하기 전에는 철저하게 익명이 보장되는 프로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의전팀이 전담해서 에스코트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출발 장소를 다른 곳으로 정해야겠군요. 제가 양춘각에서 산다는 것도 비밀로 하고 싶으니 말입니다.”
–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들으니, 다른 출연자들도 다 그렇게 한다더군요.
잠시 고민하던 강소가 말했다.
“RD엔터에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전화를 끊은 강소는 씩 웃었다.
이왕 이렇게 출연하게 된 것, 즐기다 올 생각이었다.
“와! 오빠! ‘얼굴 없는 가수’에 나와?”
식탁 앞에 앉아 그림일기를 쓰던 유하영의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었다.”
그 말에 유순태가 유하영에게 말했다.
“하영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 비밀이거든.”
“나도 알아요.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다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어요. 가면을 쓰는 건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하영이, 비밀 지킬 수 있지?”
“네.”
“그럼 우리 약속할까?”
유순태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고, 그렇게 유하영과 유순태는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 모습에 강소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유순태에게 말했다.
“고맙다.”
“고맙기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 * *
DBS(Deahan Broadcasting Station).
격변의 시대로 인한 혼란 중에도 언론은 필요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많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가짜 정보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것은 더 큰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각성자 협회에서는 방송국을 만들었고 적룡길드가 자본의 반을 투자했다.
그 방송국이 바로 DBS였다.
DBS는 본관과 동관, 그리고 서관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스튜디오들은 대부분 서관에 있었다.
월요일.
현재 서관의 제 2 스튜디오에서는 스탭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명 체크했어?”
“네! 방금 했습니다.”
“마이크랑, 음향은?”
“아까 체크했습니다.”
무대와 마찬가지로, 90명의 이들이 모여 있는 로비 역시 시끌시끌했다.
“오늘은 누가 우승하려나? 저번에 우승했던 151-3번이 우승하려나?”
“새로운 도전자가 누군지 봐야지.”
90명의 방청객은 ‘얼굴 없는 가수’의 방청객들이었다.
‘얼굴 없는 가수’는 90명의 일반인 방청객들과 10명의 전문가로 이루어진 패널들이 심사하는 방식이었다.
한 명당 1점씩, 총점이 가장 높은 출연자가 저번 주 우승자와 겨루어서 이기면 다음 주에도 출연하는 것.
지금까지 100점이 나온 적이 극히 드물었고 100점이 나온 출연자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
.
.
“지금까지 100점짜리 출연자가 몇 명이나 나왔지?”
DBS의 예능국장 고천길의 물음에 ‘얼굴 없는 가수’의 메인 PD 박대호가 대답했다.
“6명입니다.”
지금까지의 출연자들 수를 생각하면 손에 꼽히는 숫자.
당연히 그들 모두 화제가 되어, 명성도 높였다.
“그래,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요새 시청률이 많이 떨어졌던데?”
“그, 그건…… 다른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런칭해서…….”
그 말에 고천길은 피식 웃었다.
“핑계가 참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박 PD는 분하지도 않아? 과거 시청률 80퍼센트의 영광은 되찾아야 할 거 아니야?”
“그, 그래서 스토리를 중점으로…….”
“쯧쯧.”
박대호의 대답에 고천길이 혀를 찼다.
“언제까지 그런 거에 집착할 거야?”
“하,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감동적인 사연에 관심을 더 가지지 않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사연팔이도 한두 번이지.”
고천길이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실력 있는 출연자에 더 열광한다는 거 알잖아.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취지도 바로 그거고. 숨겨진 가수의 발굴. 그리고 선입견에 가려져 있던 스타들의 재발견.”
“알죠…….”
박대호가 말을 이었다.
“알지만, 부장님도 아시다시피 그 정도로 실력 있는 가수가 어디 흔한가요?”
박대호의 말대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많아도 100점을 받을 정도로 잘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만약 100점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릎을 꿇어서라도 출연시킬 터.
시청률은, PD의 지위이자 광고 수익의 중요한 잣대였으니까.
“그래서 내 이번에 힘을 좀 썼지.”
“네?”
고천길은 탁자 위에 놓인 대본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톡톡.
“오늘 출연자 중에 말이야. 내가 힘을 좀 쓴 출연자가 있거든.”
모든 참가자의 이름은 번호로 불렀다.
참가자 153-1번부터 153-8번까지.
153-1은, 153회 출연자 중 1번째라는 뜻.
사실 출연자들의 가명을 짓기 어려워서 대충 그리 부르는 것이었지만, 그게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번에 우리 방송국에서 런칭한 ‘그들의 청사초롱’ 알지?”
“알죠.”
“그 OST를 부른 사람이야.”
“네?”
박대호는 깜짝 놀랐다.
“그 무적의 철가방이요? 그자가 나온다고요?”
고천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출연시키느라 힘들었지.”
‘얼굴 없는 가수’의 메인 PD인 박대호가 출연자들의 신상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이 프로가 ‘얼굴 없는 가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방송 초창기에는, 불공정 시비가 종종 있었다.
공정하게 했음에도 시청자의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여, DBS에서는 ‘얼굴 없는 가수’를 위해 출연자를 섭외하는 팀인 ‘시크릿 팀’을 따로 운영했다.
예능국장 직속 팀으로서, 그곳에서 출연자를 선별하면 출연자는 집에서부터 의상을 갈아입었다.
의상은 전 출연자가 똑같았다.
앞이 보이도록 특수 처리된 검은색 상자 모양의 가면과 검은색 긴팔 티셔츠 그리고,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양말과 검은색 구두까지.
그렇게 검은색 일색인 차림으로 의전팀의 에스코트를 받아 방송국 대기실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한 회당 출연하는 인원은 총 8명.
각 출연자를 담당하는 스탭이 있었고, 그 스탭은 그날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제비를 뽑았다.
그 제비가 담당한 출연자의 순서였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불공정 시비를 차단하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 덕분에 ‘얼굴 없는 가수’는 장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아무튼, 각 출연자에 대한 정보는 오직 ‘시크릿 팀’만 알고 있었다.
혹시 ‘시크릿 팀’이 정보를 누설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맹세의 사제’ 능력자의 능력으로 해결했다.
[누구에게도 절대 출연자의 신상에 대해서 유출하지 않는다]이것이 맹약의 내용이었다.
맹약에는 서로가 거는 것이 있어야 했고 시크릿 팀은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섭섭하지 않을 만큼의 추가 수당을 받았다.
아무튼, 그런 시스템 때문에 메인 PD인 박대호도, 작가들도 출연자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
‘무적의 철가방이라…….’
박대호도 무적의 철가방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요즘 말 그대로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들의 청사초롱’의 OST를 들으며 감탄했었다.
귀가 녹을 정도의 실력이었으니까.
그런 실력자가 등장한다면, 세간의 화제를 불러 올 수도 있고 또 시청률도 올라갈 터였다.
“그런데, 국장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뭐가 문제인데?”
“혹시 이거 나중에 알려지면 공정성 시비 붙고 그러지 않을까 해서요.”
“박 PD, 이 8명의 출연자들 중에 누가 무적의 철가방인지 알아?”
“제가 어떻게 압니까?”
“나도 몰라. 그러니까 문제없지.”
* * *
그 시각.
강소는 출연자 대기실에 있었다.
물론, 검은색 일색의 복장이었다.
평소 TV에서 보던 검은색의 사각형 가면을 자신이 쓰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그가 있는 대기실의 문 앞에 놓인 의자에는 젊은 남자 스탭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가 강소의 담당 스탭이었다.
사전에 단단히 교육을 받았는지, 그 스탭은 필요한 말 만 하고 절대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았다.
그때, 스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비 뽑고 오겠습니다.”
그 말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 스탭이 들어와 커다란 이름표를 건넸다.
“8번째 출연자세요.”
그렇게 강소의 이름은 153-8이 되었다.
대기하는 시간은 정말 길었다.
거의 3시간 정도 대기했을 때 드디어 강소의 순서가 되었다.
“이쪽으로 저를 따라오세요.”
담당 스탭의 뒤를 따라 무대로 향했다. 강소는 무대를 스윽 보는 것으로 모든 구조를 파악했다.
무대 앞에는 90명의 방청객이 좌우로 나뉘어 있었고, 정 가운데에는 심사를 맡은 10명의 전문가들이 앉아 있었다.
강소는 가면 너머로 보이는 전문가들을 살폈다.
보통 이 자리에 나오는 출연자들은 긴장하고 덜덜 떨었지만, 강소는 그렇지 않았다.
황제 앞에서도 떨지 않았는데, 단순히 노래를 부르고 평가받는 자리에서 떨릴 리가 없었다.
그때, 강소는 씩 웃었다.
그의 오른쪽 방청석 1열에 앉아 있는 한 여자의 기운이 무척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로 김지은이었다.
아무리 시크릿 팀이 철저하게 보안을 지켜가며 참가자를 섭외한다고 하여도 적룡길드의 눈과 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김지은은 강소가 ‘무적의 철가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얼굴 없는 가수’에 출연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방청권을 얻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적룡길드의 차기 길드장은 평범한 여자의 모습으로 ‘얼굴 없는 가수’를 방청하고 있었다.
김지은의 표정은, 강소가 등장하자 밝아졌다.
강소의 덕후 김지은이었다.
이미 그의 발걸음과 몸짓만 봐도 강소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쩜 좋아. 알바 오빠는 가면을 써도 멋있어.’
잔뜩 풀어진 얼굴로 강소를 바라보는 그 모습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험험, 마지막 참가자네요. 153-8번 참가자.”
“네.”
“이 프로그램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사회를 맡은 자는, 전에 유하영이 꼬물이 동요대회에 참석했을 때 사회를 맡았던 유재영이었다.
유재영의 말에 강소가 말했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참여했습니다.”
“그렇군요.”
정석적인 대답이었다.
여기서 ‘예능국장이 나가라고 압박을 줘서 나왔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럼 바로 노래를 들어 보겠습니다. 무슨 노래를 준비하셨나요?”
“제가 들려 드릴 노래는, 조진용의 ‘비’입니다.”
“네, 박수로 청해 듣겠습니다.”
곧, 무대가 어두워지고 조명이 들어왔다.
MC 유재영은 옆으로 빠지고, 강소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한편, 전문가 패널들은 강소를 보며 서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노래가 시작되면 그들의 마이크가 전부 꺼졌기에 외부로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번 출연자는 어떠려나?”
“글쎄요? 뭐,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지 않아서 좋네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그들은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2시에 시작된 녹화가 벌써 6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방청객들은 그저 듣고, 마음에 들면 표를 던지면 되지만 전문가 패널들은 아니었다.
하나하나, 노래에 대한 감상평을 말하고 또 지적하기도 하고 칭찬도 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비평하기 위해 노래를 들으며 분석하려니 머리도 아프고 피곤하고…….
여하튼, 돈 버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 참가자가 마지막 순서가 아니라는 거지.’
오늘 새롭게 출연한 153번대 출연자들 중의 우승자와 저번 회차 우승자와의 대결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3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