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17
416화. 붉은 맛 (4)
그때 강소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일꾼도 더 왔으니까 더 힘내 봅시다.”
“뭘 하면 됩니까?”
“이제 배추를 씻어야 합니다.”
유순태의 말에 일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바다 아이들 리더 이관이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저 시계 고장 난 거 아니죠?”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은데?”
매니저의 말에 이관이 다시 물었다.
“아직 아침 7시 30분밖에 안 된 거, 실화예요?”
그 물음에 다른 일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 표정이 슬퍼 보이는지, 이관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그들과 같은 처지였으니까.
풍덩-!
첨벙첨벙-!
척-!
처억-!
배추가 절임통에서 나와 깨끗한 물에 들어갔다.
그럼 다른 사람이 배추를 살살 깨끗한 물에 헹군 뒤 그 옆의 깨끗한 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 집에 넣었다.
그렇게 총 세 번을 씻은 배추는 축 늘어진 채 커다란 바구니에 착착 쌓이고 있었다.
쌓여 가는 배추를 보는 일꾼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배추들이 전부 그들이 속을 넣어야 하는 배추라는 뜻이니까.
“다들 왜 멍하니 보고만 있습니까?”
“서둘러 씻지 않으면 배추가 너무 절여진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때 천해진과 윤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배우는 배우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또렷한 딕션에 그들의 말이 귀에 쏙쏙 박혔으니까.
그 목소리에 은은하게 실린 위압감 같은 것도 있었다.
“아! 네!”
“지, 지금 하고 있습니다!”
배추가 워낙 많다 보니 두 팀으로 나누어 배추를 씻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각 팀에 윤진과 천해진이 들어가게 된 것.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팀원들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닦달하고 있었다.
덕분에 절임통 안의 배추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옆에서 무채 양념을 하던 유순태와 강소 그리고 황진혁과 김지은은 피식 웃었다.
강소가 말했다.
“사실, 경쟁이라는 것이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지만 지금은 제법 유익하군요.”
“하하하. 그러게요.”
그때 유순태가 강소에게 말했다.
“강소야, 옆의 창고에서 액젓 좀 가져다줄래?”
“알았다.”
.
.
.
공원에 앉아 건너편의 양춘각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스타.
선글라스에 스카프까지 한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오늘 함께 있자는 그녀의 말에 네르갈은 선약이 있다고 거절했다.
여자가 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미행했는데, 그 장소가 양춘각이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니 뭔가 촬영이 있는 것 같았다.
‘촬영 스케줄이 있나?’
하지만 촬영이 있으면 촬영이 있다고 했을 텐데, 그런 자세한 설명 없이 선약이 있다고만 했으니 그것 역시 의문이었다.
또 이대로 돌아가자니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네르갈이 이곳에 있는 건 맞겠지? 다른 곳으로 샌 건 아니겠지?’
하여 네르갈이 언제 나오는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양춘각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앞치마를 두른 한 남자가 나왔는데, 그를 본 순간 아스타는 멍해졌다.
‘뭐, 뭐지? 저 엄청난 얼굴은?’
어둠의 족속이라 혼은 없지만, 그 없는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네르갈을 보면서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금 양춘각에서 나온 남자는 그런 네르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스타는 심각한 얼빠였다.
그러니 그녀가 강소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인간 맞아? 인간이라기에는 너무 잘생겼잖아!’
한편, 강소는 이미 아스타가 공원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천해진을 미행했다는 것도 말이다.
‘무슨 관계지?’
강소는 이따가 살짝 천해진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가게 옆의 창고로 들어갔다.
그 창고는 신축하기 이전부터 쓰던 컨테이너 냉장창고였는데, 그곳에 김치도 보관할 예정이었다.
강소는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액젓을 꺼냈고, 다시 양춘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에게 아스타는 안중에 없었다.
물론, 뭔가 헛짓거리를 할 기미를 보인다면, 즉시 나서겠지만 말이다.
아스타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 * *
점심시간이 되었다.
11시.
솔직히 점심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절인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하면 고춧가루 양념이 가득 묻은 장갑을 벗었다가 다시 끼는 건 힘들었다.
그래서 이른 점심을 먹고 배춧속을 넣기로 한 것.
오늘 점심 메뉴를 본 바다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사, 사장님, 지금 저희가 뭘 보는 거죠?”
“가, 갈비찜? 그것도 소갈비찜인가요?”
“맞습니다.”
유순태는 특유의 사람 좋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점심 메뉴는 소갈비찜입니다.”
“와아아!”
환호하던 바다 아이들은 문득, 어제가 떠올랐다.
갈비탕을 먹고, 정말 갈려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점심 메뉴가 소갈비찜이라니!
‘대체 오늘 할 일이 얼마나 힘들기에 점심 메뉴가 소갈비찜인 것이지?’
바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자자, 어서 앉아서 먹자고. 갈비찜 국물 졸면 짜니까.”
그렇게 식탁 앞에 앉은 바다 아이들은 갈비를 하나씩 들어 각자의 앞접시로 가져왔다.
그리고 가위로 잘 자른 살코기를 조심스레 입에 넣어 보았다.
적당한 탄력의 야들야들한 고기가 씹히며 달달하면서도 짭짤한 육즙이 입안에 퐁 하고 퍼졌다.
“흐으으, 맛있어요.”
“이게 소갈비라는 거군요.”
점심을 먹은 후 마주하게 될 김장지옥은 소갈비찜 앞에서 까맣게 잊혔다.
와구와구 먹는 바다 아이들을 보며 강소는 씩 웃었고, 유순태를 향해 살짝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역시 순태가 사람…… 아니, 인어를 다룰 줄 안다니까.’
그때 윤진이 말했다.
“별로 도와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대접받고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김장을 도와주러 오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윤진과 유순태의 대화에, 천해진이 질세라 얼른 말을 이었다.
“먹고 힘내서, 열심히 김장 속을 넣어 보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 순간 다시 윤진과 천해진의 눈이 마주쳤고, 불꽃이 화르륵 타오르는 것 같았다.
점심 식사 후.
본격적인 배춧속 넣기가 시작되었다.
김장의 실질적인 마지막 순서였다.
바다 아이들과, 윤진, 천해진을 비롯한 다른 일꾼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김장에 속을 넣기 시작했다.
작년에 김장을 해 봤던 이들이 바다 아이들에게 속 넣는 방법을 알려 주며 능숙하게 속을 넣는 가운데, 의외로 윤진과 천해진도 김장을 상당히 잘했다.
“와, 잘하시네요.”
김치를 가득 채운 김치 통을 나르는 것을 담당한 강소의 말에 그들은 핫핫 웃으며 말했다.
“많이 해 봤거든요.”
“이런저런 행사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배추에 속 넣는 건 잘합니다.”
“매년 김장철만 되면 하는 연례행사라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묘하게 윤진과 천해진이 속 넣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1통을 채울 때 1통을 다 채우고 반 통을 더 채우는 속도였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바다 아이들이 쉴 틈이 없었다.
‘선배님들이 저렇게 부지런히 하시는데!’
‘얼른 해야지! 이거 방송 나가면 욕먹을지도 몰라!’
하지만,
산처럼 쌓여 있는 절인 배추 더미는 줄어들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점심이 갈비찜인 이유가 있었네.’
‘하아…….’
그때 그들의 눈에는 옆의 의자에 앉아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며 킥킥거리고 있는 매니저가 보였다.
그런 그를 막내 하격이 불렀다.
“형.”
“…….”
“매니저 형.”
“어? 어어! 왜?”
“제가 전에 듣기로 매니저는 그 소속 아티스트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고 하던데, 맞죠?”
“그렇지.”
하격은 강소에게 물었다.
“저, 선배님.”
아직 바다 아이들에게 강소는 선배님이었다.
“앞치마와 고무장갑 남은 거 있나요?”
“물론입니다.”
하격은 씩 웃으며 말했다.
“매니저 형. 얼른 와서 같이 속 넣어요.”
“일손이 부족하다잖아요.”
“맞아요. 얼른 와서 속 넣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오는 연락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건 다른 스탭분들이 확인해 주시겠죠.”
“……언제 전화가 올지도 모르고…….”
“그럼 그때 장갑 벗고 전화 받으면 되죠.”
매니저의 변명은, 그렇게 차단되었다.
금세 그에게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내밀어졌고, 그 역시 김장 지옥으로 끌려들어 갔다.
김장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서서히 말이 없어지고 있는 가운데, 윤진과 천해진은 서로를 노려보며 파바박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김치 통을 채워 가고 있었다.
“다섯 통째입니다.”
“저는 여섯 통째입니다만, 손이 느리시네요.”
“…….”
그 둘의 치열한 경쟁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딱 봐도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분위기를 유순태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의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강소야.”
“알았다.”
강소 역시 유순태가 무슨 생각인지 알았다.
그는 고무장갑을 끼고 작업대 앞에 앉았다.
그리고 배춧속을 넣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강소의 속도는 윤진과 천해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한 통을 채웠다.
두 통을 채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여섯 통을 넘어 일곱 통째였다.
그렇게 깔끔하게 열 통을 채운 강소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 즐겁게 합시다.”
“아, 네.”
“즐겁게! 즐겁게!”
“하하하!”
한편, 윤진과 천해진은 뭔가 허탈해졌다.
‘아, 저분 앞에서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부끄럽네.’
하늘을 나는 황새 아래, 지렁이들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윤진과 천해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안녕하세요.”
그때 양춘각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한도명 사장님.”
그는 인근 조아 정육점의 한도명 사장이었다.
“어유, 고생하십니다. 여기 유 사장님이 부탁하신 고기입니다. 오늘 저녁에 수육을 해 드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한도명은 그 옆의 식탁 위에 들고 온 고기를 올려놓았다.
쿵-!
그 소리에서 고기의 무게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김장을 도와주는 분들하고 드신다고 해서 특별히 좋은 부위로 가져왔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때 한도명의 눈이 커졌다. 윤진과 천해진을 알아본 것이다.
“아니, 저분들이 왜 여기서 김장을?”
“도와주신다고 오셨습니다.”
“세상에나! 사인을 부탁해도 될까요?”
그 말에 강소가 말했다.
“제가 나중에 받아 놓겠습니다. 지금은 장갑을 빼기 힘든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부탁합니다. 고기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한도명이 나가고, 유순태는 고기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때 오동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형들은 수육 드셔 본 적 있으세요?”
“수육?”
“그 돼지고기 삶은 거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오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인간 세상에 와서 수육을 먹어 봤거든. 물론 맛은 있었지만 그렇게 막 엄청난 맛은 아니었어.”
“맞아.”
오동수의 말을 거든 것은 황진혁이었다.
“김장하고 나서 수육을 드셔 본 적 있으십니까?”
“아뇨.”
“김장이 처음이에요.”
“그럼 이따가 기대하십시오. 수육 중에 최고는 김장하고 먹는 수육이거든요.”
그의 말에 다른 이들도 오동수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김칫소와 함께 먹는 수육은 맛있지.”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바다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드디어 김장이 끝났다.
“와아아-!”
“끝이다!”
한쪽에 나란히 쌓아 놓은 김치 통들을 보며 바다 아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환호했다.
서둘러 오늘 사용한 물건들을 닦는 동안,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칙칙칙칙-!
압력솥 안에서 돼지고기가 맛있게 익어가는 소리였다.
뒷정리하고 식탁 앞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 압력솥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취이이이익-!
그리고,
강소와 김지은 그리고 오동수는 얼른 식탁에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수저와 젓가락이 놓이고, 앞접시가 놓였다.
그리고 미리 덜어 놓았던 김칫소가 접시에 다소곳이 담겨 식탁 위에 올라왔다.
“역시 돼지고기에는 새우젓이지. 하하하.”
“이 귀한 새우젓이!”
“헉!”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 전부 비싼 요즘, 새우젓 역시 무척이나 비쌌다.
곧 식탁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와아아아!”
“우와아아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의 자태는 정말 아름다웠다.
“자, 먹읍시다.”
“네!”
그때 천해진이 말했다.
“내일도 김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말에 바다 아이들의 손이 멈추었다.
그랬다.
김장은 오늘이 끝이 아니었다.
‘하하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하하하하.’
바다 아이들은 애써 웃으며 군침 돌게 새빨간 김칫소를 향해 젓가락을 내밀었다.
다들 김칫소의 맛이 궁금했다.
열심히 배추에 속을 넣었지만, 김칫소를 먹어 보지 않았으니 호기심이 더해진 것.
‘맛있다고 했었지?’
‘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그들은 김칫소를 가득 집어 입에 넣었다.
“어? 그거만 먹으면 어떻게 해!”
“엄청 매울 텐데…….”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았다. 곧 얼굴이 새빨개졌다.
“으…….”
“콜록콜록!”
정말 강렬한, 붉은 맛이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41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