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45
444화. 페어리Q (5)
ARH의 기계적인 음성이 들렸다.
김지은은 저 멀리 있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7시.
이제 슬슬 훈련을 마칠 시간이다.
“아니. 훈련 종료해.”
그녀의 말에 다시 기계적인 음성이 들렸다.
[김지은 님의 훈련을 종료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아침 훈련을 마친 그녀에게 비서 진모영이 다가와 수건과 물을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응.”
땀을 닦고 물을 마신 김지은은 자신의 왼팔을 보았다.
강소가 생일 선물로 준 왼팔의 팔찌.
그걸 볼 때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광대가 하늘로 승천했다.
“암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비가, 더 늘어나셨군요.”
방금 김지은이 그 암기를 이용하여 훈련하는 것을 본 진모영이 물었다.
“맞아. 전에는 10마리에 그쳤는데, 지금은 15마리 정도 되는 것 같아.”
그렇게 대답했지만, 사실 아니었다.
현재 그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비는 20마리 정도 되었다.
그녀가 일부러 수를 적게 말한 건 강소의 조언 때문이었다.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본인의 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편입니까?”
“네. 맞아요.”
“그러지 마십시오. 그건 위험한 행동입니다.”
“네? 어째서요?”
“혹시 모를 상황에서, 살 방도가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렇군요.”
김지은은 금방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녀 역시 쉽게 살아오지 않았으니까.
“실력의 3할은 숨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 지은 씨의 실력의 30퍼센트는 숨기도록 하십시오.”
“……그건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해당 되나요?”
“가족이든 보필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압니다. 그들이 뒤통수 때리거나 하지 않을 것을. 하지만 말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을 정말 아낀다면 제 말대로 하십시오.”
“…….”
강소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자신의 가족이나 비서가 그녀를 노리는 적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보를 넘길 수가 있다는 뜻이다.
만약 그로 인하여 자신이 죽거나 크게 다친다면 가족들이, 진모영이 그 죄책감을 견딜 수 있을까?
김지은은 강소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여 그녀는 강소의 지도로 크게 실력이 늘었지만, 일부러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아, 전에 내가 지시한 투자 건은 어떻게 되었어?”
“말씀하신 대로 페어리Q에 지시하신 금액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만, 정말 괜찮을까요?”
“뭐가?”
“그러니까…….”
김지은은 진모영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페어리Q에 투자한다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질 것이 확실한 도박.
하지만 김지은은 피식 웃었다.
“괜찮아. 그래 봤자 헤븐스 차일드에 투자해서 번 돈보다는 적으니까.”
“하긴, 그것도 맞기는 합니다. 그때도 아가씨의 선견지명 덕분에 크게 이득을 봤죠.”
진모영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희망이 보이기는 합니다. RD엔터에 심어 놓은 자들의 말에 의하면 페어리Q의 실력이 몰라보게 늘어서 직원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게다가 항상 기죽어 다니던 모습도 없다고 하네요.”
“하하하.”
그 말에 김지은은 작게 웃었다.
‘그런 특훈을 받고 고작 사람들 앞에서 기죽으면 웃긴 거지.’
김지은은 피식 웃으며 진모영에게 말했다.
“이번 투자 건은, 대놓고 소문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하늘이 계기를 준다면 이번 투자 건도 성공하겠지.”
* * *
페어리Q 멤버들은 타이틀곡 [너를 위한 고백]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서 촬영장에 왔다.
“와!”
“정말 여기서 찍는 거예요?”
그들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 촬영장.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그녀들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뮤직비디오를 찍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엄청난 규모의 촬영장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마을은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조금용 감독이 맡았다.
몸값이 비쌌지만 괜찮았다.
이번에 들어온 투자금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페어리Q 멤버들도 이번 투자금에 대해서 들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RD엔터 전체에 소문이 났으니까.
이에 대해서 고영민이 웃으며 말했다.
“투자자께서 페어리Q의 가능성을 보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멤버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곳에서 유명한 감독과 뮤직비디오를 찍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번 뮤직비디오는 조선 시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사랑이 주제였다.
그래서 여섯 명의 멤버들은 모두 한복을 입어야 했다.
“자자, 그럼 스타일링 시작합시다.”
“네!”
곧 그녀들은 한복을 입고 나왔다.
구중궁궐의 공주님, 사대부 집안의 아가씨, 여염집 처녀 등등 모두 다른 신분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카메오가 한 명 등장했다.
바로, 유하영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저잣거리를 걸어가는 아이 역할이었고, 현대에는 엄마 손을 잡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아이 역할이었다.
즉, 유하영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일종의 통로 역할인 것.
.
.
.
유하영의 촬영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페어리Q 멤버들은 이어진 촬영 때문에 배만 조금 채우고 유하영이 도시락을 욤욤 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하영이도 강소 씨에게 특훈을 받았다고 하던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에 넷째 고은이 말했다.
“하영아. 많이 먹어.”
“네. 언니.”
“요즘도 강소 씨에게 트레이닝을 받는 거야?”
“네. 훈련은 매일 해야 하는 거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힘들겠네. 이렇게 어린데…….”
그 말에 유하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안 힘들어요.”
그건 정말이었다.
강소가 진행하는 유하영과의 훈련은 그냥 노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세상에, 의젓하기도 하지!”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페어리Q 멤버들은 그 말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쇼케이스도 했고, 컴백 무대도 섰다.
그럴수록 페어리Q 멤버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특훈의 효과를 체감했다.
전에는 덜덜 떨었던 쇼케이스도, 음악 방송 무대도 모두 멘탈 흔들리는 일 없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 내가 알던 그 페어리Q가 맞아?
–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저 안무를 하면서 보컬이 흔들리지 않네, 침대인가?
그러면서 서서히 순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페어리Q의 너를 위한 고백, 10위권으로 진입했습니다.”
직원의 보고에 고영민이 중얼거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가?”
이제 필요한 건 단 하나의 계기였다.
* * *
“하아, 피곤해.”
페어리Q 멤버들은 매니저 권지석이 운전하는 차에 탄 채 헤헤 웃었다.
피곤하다고는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런 바쁜 스케줄이 있었으면 하고 늘 바랐지만, 그녀들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의도한 게 아닌 이상 바쁘지 않으면 슬퍼지는 직업이 연예인이었다.
“다음 스케줄은 NBS라디오 ‘나른한 시간을 깨워요.’입니다.”
권지석의 말에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어!”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던 현이가 소리쳤다.
“차, 차 세워 주세요!”
“네?”
“얼른요!”
그 말에 권지석은 갓길에 차를 세웠고, 멤버들이 물었다.
“왜 그래? 언니?”
“저기 할머니가 넘어지셨어.”
“뭐?”
멤버들은 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정말이었다.
한 할머니가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멤버들은 다급하게 달려갔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할머니?”
“으, 으으…… 허리가…….”
아무래도 빙판길에 넘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심각해 보였다.
“매니저님! 얼른 119에 전화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실 그녀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넉넉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눈앞에 아픈 할머니를 두고 그냥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약 5분 뒤,
119구급차가 달려왔다.
“신고하신 분들입니까?”
“네.”
현이가 대답했다.
“할머니께서 빙판길에 넘어지신 것 같아요.”
구급대원들은 할머니를 들것으로 구급차 안으로 옮겼다.
“저, 그런데 혹시…… 페어리Q 분들이십니까?”
구급대원의 말에 현이가 대표로 말했다.
“네. 맞아요.”
“사실, 저 팬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디 소방서에 계세요? 지금은 급하니까 나중에 저희가 가서 사인해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저희는…….”
그렇게 구급차가 떠나고, 페어리Q 역시 스케줄을 위해 다급하게 방송국으로 향했다.
처음 그녀들은 이 일을 단순한 사건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은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다음 날, 그녀들의 선행은 뉴스를 탔다.
[페어리Q, 스케줄 이동 중에 할머니를 구해.] [팬을 위한 깜빡 방문. 소방서에 온 요정들.] [페어리Q가 구한 할머니, 세영 그룹 회장의 부인이었다.]그녀들은 전혀 몰랐는데, 그때 구해 준 할머니가 재계 서열 5위인 세영 그룹 회장의 부인이었던 것!
이 일에 세영 그룹 회장은 개인적으로 보답을 했다.
그녀들에게 숙소를 선물한 것.
이 일은 매스컴을 타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연예인들에 관한 관심은 그들의 음악 혹은 작품에 대한 화제를 뜻했다.
그로 인해 10위권에 머물렀던 그녀들의 곡 역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
.
.
페어리Q는 이동 중이었다.
멤버들이 잠을 자지 못해서 비몽사몽한 와중에, 운전 중이던 권지석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아! 정말입니까?”
권지석은 전화를 끊고, 페어리Q 멤버들에게 말했다.
“방금 실장님께 전화가 왔었습니다.”
“……?”
“이번 주 음악 방송 1위 후보라고 합니다.”
“네?”
멤버들은 언제 졸았냐는 듯이 화들짝 잠이 달아났다.
“저, 저희가요?”
“1위요?”
그녀들의 물음에 권지석이 대답했다.
“네. 축하드립니다.”
* * *
강소는 TV를 보았다.
저녁 6시.
5시부터 시작한 음악 방송이 슬슬 끝나 갈 시간이었다.
– 이번 주 1위는,
– 페어리Q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폭죽이 터지며 꽃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트로피를 받아 든 현이도, 다른 다섯 명의 멤버들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6년이나 기다렸던 1위였다.
그동안 힘들고 서러운 일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을 터였다.
그 모든 일이 머릿속을 스치며, 눈물이 터져 나온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1위를 손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순태가 말했다.
“드디어 1위를 했네.”
“그러게, 축하한다고 메시지 보내야겠다.”
“그나저나 사람 일은 모른다고, 구한 사람이 세영 그룹 회장 부인이었다니!”
그 말에 강소는 씩 웃었다.
그녀들이 구해 준 사람이 평범한 노인이었어도 그녀들의 선행은 화제가 되었을 터였다.
아무튼, 그 일이 계기가 되어 1위를 하게 되었지만, 그건 그녀들이 만든 계기였다.
만약 그녀들이 그냥 지나갔다면, 오지 않았을 1위였으니까.
많은 이들이 도움을 주었지만, 결정적인 기회는 그녀들이 잡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보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강소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 오게 된 것이 신의 뜻인지 아니면 어떤 우연의 산물인지 말이다.
‘뭐, 곧 알게 되겠지.’
* * *
페어리Q가 1위를 한 그날 저녁.
세 명의 여자 연습생은 고영민의 호출을 받았다.
“자리에 앉아.”
“네.”
그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내가 왜 불렀는지는 짐작하고 있지? 녹음한 내용은 잘 들었다. 그리고 우리 RD엔터에는 약속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이들은 필요 없지.”
“그, 그럼 저희가 계약을 해지할게요.”
삭발이라니! 아이돌을 지망하고 있는 만큼,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럼.”
고영민은 탁자를 톡톡 쳤다.
“그 전에 이거 먼저 확인하고.”
그 위에 있는 건, 세 명의 연습생 계약서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연습생이 계약 기간 내에 무단으로 계약을 해지할 시에 배상해야 하는 배상금에 대한 서류였다.
회사에서 더 이상 가망이 보이지 않을 때 내보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습생 쪽에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가 문제였다.
회사 쪽의 귀책사유가 없는 이상, 아무리 힘들어도 3년은 채워야 했다.
그래서 계약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일은 명백하게 그녀들의 잘못이었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소속 아티스트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을 자제한다.]즉, 욕하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지만 들키지는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들은 유하영에게 들켜 버렸다.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볼게. 어떻게 할래?”
다음 날.
RD엔터의 여자 2반 연습생들은, 연습실로 들어온 세 명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어?”
“뭐, 뭐야? 갑자기?”
“어, 언니들?”
그도 그럴 것이 그 세 명의 여자 연습생이…… 삭발한 채 연습실에 들어왔으니까.
이번 일은 RD엔터의 연습생과 아티스트들에게 ‘입 잘못 놀리면 삭발당한다.’라는 교훈을 주었다.
그건 그들에게 손해는 아니었다.
입 잘못 놀려서 한 방에 훅 간 연예인들이 제법 많았고, 그만큼 입조심은 롱런하기 위한 미덕이었으니까.
무림에서 온 배달부 44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