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36
535화. 더 할 수 있습니다 (2)
금요일.
강소는 헌터 훈련소로 향했다.
여름 수련회의 시작은 다음 주 월요일.
오늘 미리 협의할 것들에 대한 회의가 있는데, 그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작년과 마찬가지로 검은색 헬멧을 썼다.
강소의 능력이면, 경비실이든 어디든 거치지 않고 곧바로 회의실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모든 훈련소 방문자는 경비실을 거쳐야 하는 것이 지켜야 할 규칙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헌터 훈련소입니다. 무슨 일로 방문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강소는 품에서 증명서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특별교관 증명서였다.
“……!”
그걸 본 경비원은 얼른 경례했다.
“실례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수고하세요.”
강소는 헌터 훈련소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뒷모습을 보며 경비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목소리가 낯이 익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짜장면을 자주 시켜 먹는 곳이었고, 불과 두 시간 전에도 짜장면을 시켜 먹었으니까.
강소는 곧바로 회의실로 향했다.
* * *
“회의실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회의 시작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서…….”
김지은은 헌터 훈련소에 왔다.
그녀 역시 헌터 훈련소의 특별 교관으로 초빙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귀찮은 일이었지만 강소가 특별 교관 제안을 수락했다는 말에 그녀 역시 수락했다.
그리고 오늘,
회의가 있기에 양춘각 알바가 끝나자마자 이렇게 온 것이다.
회의 시작은 4시 30분.
지금은 3시 30분이 갓 넘은 시간이었다.
“사실, 훈련소를 좀 둘러보고 싶어서 일찍 왔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안내를 맡은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이곳에 오시니, 감회가 새로우시죠?”
“네.”
“자유롭게 둘러보시다가 4시 25분까지만 회의실에 오시면 됩니다.”
김지은은 헌터 훈련소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녀는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이곳에 입소했다. 아버지는 조금만 더 늦게 입소하기를 바랐다.
정말 힘든 곳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입소 가능한 나이가 되자마자 이곳에 입소해 버렸다.
당시 그녀에게 있어 삶의 목표는 단 하나뿐이었다.
어머니를 빼앗아 버린 마수들을 전부 죽여 버리는 것!
그래서 매일매일 이를 악물고 수련했고, 헌터 훈련소를 수석으로 수료했다.
하지만,
기억을 떠올려 보니 정말 힘들었지만, 행복한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단순히 추억 보정 효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에게 훈련소 생활은 정말 생동감이 넘치는 그런 시간이었다.
삭막한 학창 시절로 인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그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던 곳이다.
처음 그녀에게 같은 기수의 훈련생들은 모두 라이벌이었다.
그들을 모두 제칠 수 있는 실력이 되어야 자신이 어머니의 복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1년 차 때, 동기 중 하나가 독불장군처럼 굴던 그녀의 뺨을 때리며 질책했다.
“왜 모두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거지? 우리는 동료야! 마수를 같은 적으로 두고 있는 동료라고! 왜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 거야? 왜 너만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우리는 너에게 짐짝 취급당하고 싶지 않아!”
그 말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김지은은 그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교관들 역시 그녀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고, 격려해 주었다.
“마수와의 싸움은, 김지은 훈련생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싸움이지. 그러니까 김지은 훈련생 혼자만 그 짐을 짊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김지은은 헌터 훈련소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으며 리더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열심히 훈련하고 있네.”
이렇게 오랜만에 훈련소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새로운 느낌이었다.
3년 내내 구르고 또 굴렀던 연무장도, 훈련이 끝나자마자 뛰어가 목을 축이던 급수대도…….
그리고 지금 새로운 기수의 훈련생들이, 그녀와 동기들이 했던 그대로 연무장을 구르고 급수대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급식실은 새로 지었네?”
힘들었던 훈련생 시절의 낙이라고 하면, 급식이었다.
훈련소의 급식은 정말 최고였기 때문이다.
“혹시…… 김지은 헌터?”
그때,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단정한 정장 차림의 여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그녀의 정체를 깨달았다.
“손민영?”
“기억하는구나!”
김지은은 손민영의 왼쪽 가슴에 달린 배지를 보며 물었다.
“너…… 헌터 훈련소 교관이야?”
“맞아. 나 여기 상담 교관이야.”
.
.
.
김지은은 손민영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 혼자 사용하는 사무실의 문에는 [상담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앉아. 차 마실래?”
“아니. 그냥 물 한 잔 줘.”
손민영은 컵에 물을 따라 주었고, 자신은 커피를 탔다.
그리고 설탕을…….
“각설탕 다섯 개.”
“어? 기억하고 있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그나저나 정말 반갑네. 그러고 보니 오늘 여름 수련회를 앞두고 회의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온 모양이구나.”
“맞아.”
김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민영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다른 애들은…… 잘 지내?”
그 물음에 손민영이 대답했다.
“그럼, 살아 있는 애들은 잘 지내고 있지.”
“그렇구나.”
손민영은 김지은이 왜 동기들의 소식을 잘 모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나둘 전사하는 동기들의 소식이 괴로워서 소식 듣는 것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알고자 하면 누구보다 자세히 알 수 있는 위치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너는 언제부터 여기서 일한 거야?”
“나는 재작년부터. 공개 채용에 응시했고 합격했지.”
“그랬구나. 네 능력이라면…… 그런데 은탑에 특채로 채용되었지 않았어?”
김지은은 그래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손민영은 A급이었고, 각성한 능력은 고통의 심판관과 눈동자의 사제였다.
생물에게 고통을 주고, 또 그 생물에 대해 꿰뚫어 보는 능력.
그 능력은 심문관에 딱 맞는 능력이었고 그래서 은탑에 입사할 수 있었다.
손민영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타고난 능력이 그렇다고는 해도, 정보를 꼬치꼬치 캐묻고, 실토하라고 고통을 주고 하는 게 힘들더라고. 그래서 이곳에 온 거야.”
“그랬구나. 너라면 좋은 상담사가 될 거야.”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준 게 손민영이었으니까.
헌터 훈련소의 다른 훈련생들도 바로잡아 줄 것이 틀림없었다.
김지은의 말에 손민영이 호호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직 은탑 물이 덜 빠졌나 봐. 훈련생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
“하하하하. 곧 훈련생들도 적응하겠지.”
김지은은 시계를 보았다.
“이제 슬슬 회의실로 가야겠네. 다음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래.”
그녀는 손민영과 헤어져 회의실로 향했다.
그때, 그녀는 회의실로 오고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검은색 헬멧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에 김지은은 뭔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이 참 경쾌하네. 알바 오빠도 저렇게 걷는데. 몸의 비율 역시 완벽하고. 정말 전투에 유리한 몸이네. 그러고 보니 알바 오빠도 그랬지. 음…… 그런데 저 티셔츠는 어디선가 많이 봤던……?’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랐을 때, 김지은의 두 눈이 커졌다.
헬멧만 검은색에서 은색으로 바꾸면 영락없는…….
“아, 알…….”
“쉿-!”
검은 헬멧을 쓴 강소는 검지를 들어 입 쪽에 대었다.
김지은은 오늘 강소도 회의에 참석할 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헬멧을 쓰고 참석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때 뒤에서 안내를 맡은 교관이 말했다.
“아, 검은 헬멧님.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들은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각자 배정된 자리에 앉았는데, 수련회의 교관은 세 명의 특별 교관까지 하여 총 12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강소가 제로급 각성자인 ‘검은 헬멧’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두 번째 각성자에 대한 것은 현재 은탑에서 숨기고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두 번째 각성자가 있고, 검은 헬멧이라 불린다는 것은 주요 국가의 수뇌부들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래서 헌터 훈련소에서는 강소를 ‘은퇴한 전설적인 선배 헌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기, 어르신. 이번에도 이렇게 후학들을 위해 발걸음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저번 헌터 정기합숙교육 당시, 최효명이 강소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던 일에 대한 나비효과가 이곳 헌터 훈련소까지 미친 것이다.
강소는,
그냥 ‘이젠 나도 모르겠다’ 싶은 마음으로 대답했다. 설마 이곳에서도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제가 도울 수 있다면 당연히 와야지요.”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
.
회의가 끝났다.
강소는 헌터 훈련소를 나왔고, 그 뒤를 김지은이 졸졸 따라왔다.
그리고,
한적한 곳에 이르렀을 때, 김지은이 그를 불렀다.
“어르신?”
“…….”
“진짜 은퇴한 선배님이셨어요?”
그 말에 강소는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하아, 지은 씨까지도 정말 그럴 겁니까?”
“아, 아니에요?”
“네. 아닙니다. 저 아직 30대입니다.”
김지은은 헬멧을 벗자 드러난 그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얼굴은 언제나 옳지.’
더운 여름이었지만, 헬멧을 벗은 강소의 얼굴은 뽀송뽀송했다.
김지은이 물었다.
“그러면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뭐예요?”
그 물음에 강소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복잡한 촌수가 만들어 낸 사소한 오해가 섞인 해프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은 씨. 제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 주십시오.”
왜 비밀로 해 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강소가 그리 부탁하면 이유가 있는 것.
김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대신에…….”
“……?”
“저랑 데이트해 주세요.”
“데이트 말입니까?”
“네. 저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요.”
그리고 김지은은 가방 안에서 클렌징 티슈를 꺼냈고, 얼굴의 짙은 화장을 슥슥 지워 버렸다.
그러자 흑장미 헌터의 모습은 사라지고, 양춘각 알바생 김지은의 얼굴이 되었다.
강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제가 사죠.”
“앗싸!”
김지은은 강소를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걸 드릴까요?”
점원의 물음에 김지은이 대답했다.
“저는 딸기랑 초코를 섞어서 컵에 담아 주세요.”
강소가 말했다.
“저도 같은 거로 주십시오.”
“…….”
“저기요?”
“아, 죄송합니다.”
강소의 외모에 순간 멍해졌던 점원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주문을 받았다.
아이스크림은 금방 나왔다.
그들은 탁자를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사람들은 강소의 모습을 힐끔거렸고, 강소는 한숨을 내쉬며 인벤토리에서 모자를 꺼내어 썼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은 줄어들었다.
“맛있군요.”
“네.”
김지은은 행복했다.
이렇게 강소와 함께 데이트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요즘 들어 강소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서, 그만큼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사실 아이스크림 같은 거 사 주지 않아도 강소에 대한 것을 비밀로 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잡아야 했으니까.
“날씨가 덥기는 더운 모양이군요. 이렇게 아이스크림 가게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러게요.”
“하영이가 걱정입니다. 오늘 야외 촬영이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사실, 강소의 인벤토리에서 캔 백년설삼 덕분에 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소의 말에 김지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 서포트 보냈어요.”
* * *
그 시각.
드라마 디텍티브 포의 촬영 현장.
오늘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공원에서의 야외 촬영이었다.
비가 많이 오거나 하지 않는 이상 날씨가 덥다고 해서 장소를 바꾸거나 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배우들은 선풍기나 아이스팩으로 더위를 견디며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컷-!”
감독 송창열의 말에 카메라가 멈추었다.
현재 촬영 중인 장면은 정빈과 이진성이 의문의 이들에게 쫓기던 도중에 의문의 꼬마 유하영이 등장하여 그들을 숨겨 주는 장면이었다.
활동량이 많은 장면이다 보니, 금방 땀으로 축축해졌다.
“감독님, 좀 쉬었다 하면 안 됩니까? 저희 이 씬만 네 번 찍은 거 아시죠?”
단역들 역시 말은 하지 못했지만, 간절한 눈빛으로 감독을 바라보았다.
이진성이 말했다.
“하영이도 계속해서 저기 서 있기도 무리잖아요.”
“음, 그런가?”
사실 유하영은 나무 그늘에 서 있었고 백년설삼 덕분에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 힘들다는 게 그녀의 눈에 보였다.
“저는 괜찮아요. 조금 어지럽기는 한데 감독님이 계속하라고 하시면 할게요.”
“…….”
유하영의 말에 죄책감으로 심장이 따끔따끔했다. 게다가 듣기로 유하영의 뒤에는 엄청난 거물이…….
“30분 휴식!”
“앗싸!”
“감독님. 감사합니다.”
“윽!”
유하영의 하트에 송창열을 비롯한 스탭과 배우들은 심장에 무리를 느꼈다.
유하영의 사랑스러움은 치사량을 넘었으니까.
그렇게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 그곳으로 냉동탑차 한 대와 검은색 세단이 다가왔다.
끼익.
차가 멈추었다.
뒤따르던 검은색 세단에서 내린 사람은 진모영이었다.
“아이스크림입니다.”
“네?”
“이번 드라마의 투자자이신, 저희 아가씨께서 유하영 양의 이름으로 보내신 서포트입니다. 양은 충분하니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와아아아!”
촬영장이 난리가 난 것은 당연했다.
* * *
아이스크림 가게.
강소는 김지은의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러니까 지은 씨 개인 돈으로 아이스크림 서포트를 했다는 겁니까?”
“네. 제가 투자하고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금액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괜찮아요.”
김지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 덕질하려고 돈 버는 거니까요.”
무림에서 온 배달부 53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