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59
558화. 기다렸어 (1)
어비스.
언제나 어두운 하늘 아래, 성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평소처럼 매서운 바람이 아니었기에 어비스의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늘은 왕께서 기분이 좋으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일까요?”
그들은 베리트와 레오드의 반역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숙청의 칼날 아래 수많은 어비스의 주민들이 성 안으로 끌려갔고, 영영 나오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 반역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다 끌려간다는데…….”
“그래서인가? 요즘 어비스의 주민들이 많이 줄어든 기분이야.”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만.”
그때 그들에게 누군가 다가갔다. 붉은색의 로브를 입은 남자였다.
그자는 흉흉한 어비스의 정세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 누구신지?”
“그게 중요한가?”
붉은 로브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숨죽이며 살 건가? 자네들의 선조들은 자유를 위해 싸웠네. 하지만 그 후손들은 오히려 그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짐승처럼 살고 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나?”
“…….”
“우리는 고귀한 족속일세.”
“마, 맞습니다.”
“우리는 고귀한 족속입니다.”
“이렇게 왕의 눈치를 보며 억눌려 사는 걸 보면 자유를 위해 소멸하신 선조들께서 통탄하실 거네.”
붉은색 로브를 입은 남자의 말은, 어비스의 주민들에게 불씨를 지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붉은색 로브를 입은 남자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하지만 그 웃음은 비웃음이었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어. 자유를 위해 싸웠다라……. 참 웃긴 이유이지.”
사실 저들도 선조들이 무엇을 위해서 하늘을 향해 무기를 들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 진짜 이유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만약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반역을 일으키지 못했을 테니까.’
신은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그래서 자유 의지라는 것을 주었다.
그게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고, 마침내 검은색 성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발을 멈추었다.
그러곤 자신의 얼굴의 반을 덮은 로브를 벗고 성을 올려다보았다.
성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담긴 감정은, 탐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그 자리에는 네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했어. 그럼 우리는 이 어비스가 아니라 저 높은 곳에서 군림하고 있었겠지.’
그는 다시 로브를 쓰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
.
.
잠시 후.
그는 옥좌에 앉아 있는 왕 앞에 부복했다.
“왕이여, 벨부가 왕의 부름에 응하였습니다.”
“왔군.”
왕이 말했다.
“너에게 명령할 것이 있다.”
왕과 흑암의 12가문의 관계는 거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전쟁 때 맺은 이블 웨폰을 두고 한 약속으로 딱 세 번의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벨부의 가문에 사용할 수 있는 명령권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 말에 붉은색 로브의 남자, 벨부가 물었다.
“마지막 명령권이라는 건 아십니까?”
“알고 있다.”
그 말에 벨부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자신에게 남은 명령권을 사용한다는 건, 그만큼 다급하다는 이야기.
현재 이 어비스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흑암의 12가문의 가주들 대부분이 처벌받거나 실종된 상태였으니까.
‘그것도 두 번째 인간계에 내려간 이들이 말이지.’
물론 멀쩡하게 잘 활동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 궁금했다.
아무튼 왕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그들의 부재는 왕에게 큰 타격이 될 터.
그러니 이렇게 다급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말씀하십시오. 왕이시여. 신, 벨부. 충심으로 명을 행하겠나이다.”
“두 번째 인간계에 전쟁이 필요하다.”
“……전쟁이라 하셨습니까?”
“그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네 특기 아닌가?”
“맞습니다. 왕이여. 그게 제 특기이지요. 하지만 저 위에서 두고 보기만 하겠습니까?”
“너라면 그 방해를 뚫고 전쟁을 벌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은가?”
“하하하. 맞습니다.”
벨부는 씨익 웃었다.
“저라면 충분히 가능하지요.”
“내 너의 활약을 지켜보마.”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벨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몸을 돌려 왕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는 돌아가며 씨익 웃었다.
‘잘 되었군. 마침 그곳이 궁금했었는데 말이지.’
* * *
탄자니아의 세계연합 캠프.
파견된 이들이 필수 인력만을 남기고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블랙맨들이 소탕되었고, 정리도 끝이 났으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8월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명희 씨.”
“린린 씨도요.”
“그동안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이 홀리 웨폰을 이전보다 더 잘 사용하게 된 건 명희 씨 덕분이에요.”
“뭘요. 당연히 알려 드려야지요.”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고 지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제널드 씨.”
“어이! 제널드! 명희 씨는 이미 애인이 있다고.”
“나는 단지 정보 교류를 위한 것이다. 오해 살 말은 하지 마라. 장청.”
“정말?”
“나는 뇌신에게 맞아 죽기 싫다.”
“크크큭! 그건 그렇지. 나도 마찬가지야.”
뇌신은 성진호의 이명인 ‘뇌신의 분노’에서 따온 그의 별명이다.
아침, 점심, 저녁, 매 식사 시간에 정확하게 맞추어서 전화하는 애인이 한국의 차기 각성자 협회장인 성진호라는 것을 알게 되자 캠프는 한 차례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성진호의 이름은 타국에서도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를 내심 마음에 담고 있던 남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모두 조심히 돌아가세요.”
“네. 명희 씨도 조심히 돌아가세요.”
하나가 되어서 싸웠던 그 경험은 그들에게 아주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 감정의 이름은 ‘전우애’였다.
김명희는 김해철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고했네. 김 과장.”
“길드장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김명희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네요.”
“나는 빨리 가서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저는 된장찌개요.”
그들은 하하하 웃었다.
그들이 머물던 곳은 임시로 지어진 캠프였기에 자는 것도 씻는 것도 불편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이트보다 훨씬 나은 환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집에서 먹던 음식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간편식이 있었지만 그래도 집에서 먹는 그 맛이 아니었다.
“따님이 목 빠지게 기다리겠네요.”
“안 그래도 언제 오느냐고 전화 왔었어.”
김명희도 김지은이 양춘각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김지은의 맨얼굴을 보고 긴가민가했었지만……. 결국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혹시 강소의 정체를 알고 접근한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김지은이 강소를 보는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냥…… 덕질이었다.
“그나저나 성진호 과장도 자네를 기다리고 있겠군.”
“그렇겠죠.”
김명희가 호호 웃었다.
그때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륙한다는 안내 방송이다.
부우우웅-!
비행기는 활주로를 달렸고, 이륙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중.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
그 소리에 비행기에 있던 이들은 다시 긴장 상태를 끌어올렸다.
그 소리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현재 본 기체를 향해 미확인 물체가 접근 중입니다. 실드 시스템 가동 중이나 충격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
.
격변의 시대 이전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비행기를 조정하는 파일럿은 보통 두 명이 있었다.
기장과 부기장.
하지만, 요즘은 한 명이 더 추가되었고 그를 전투 기장이라 불렀다.
비행기에 배치된 공중전에 특화된 헌터들을 지휘하는 동시에 공중의 마수를 탐지하는 역할이다.
전투 기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벌인 그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지금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미확인 물체가 마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다! 모두 충격에 대비해!”
“네!”
잠시 후,
콰앙-!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흔들렸다.
비행기에 탄 이들 대부분이 험한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헌터들이었기에 볼썽사납게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김명희는 순간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자, 잠깐! 이 오러! 이건 마수가 아니야! 이건……. 미사일?’
홀리 웨폰 덕분인지 그녀의 오러 감지 능력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예민해졌기에 알 수 있었다.
그랬다.
지금 비행기를 맞춘 건 미사일이다.
‘대체 왜 미사일이…….’
격변의 시대가 오면서 초기 미사일 기술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마수에게 통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격 능력이 있는 각성자의 등장으로, 미사일 기술 역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스텔스 기능이 있는 비행기도 맞추는 게 가능할 정도로 고도화된 추적 기술이다.
게다가 발사하는 것 역시 복잡하지 않았기에 마수를 상대로 많은 공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인간을 향할 줄은…….
‘뭐,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 다만 뒷감당이 문제였지.’
김명희는 안전벨트를 풀고 기장실로 달려갔다.
이 사실을 알려 줘야 했다.
흔들리는 기내였지만, A급을 넘어서는 능력은 흔들리는 기내에서도 중심을 잡고 달릴 수 있게 했다.
“감찰 2과 김명희입니다. 지금 즉시 알려 드릴 게 있습니다.”
자신의 소속을 말한 김명희가 전투 기장에게 말했다.
“현재 본 기체와 충돌한 건 미사일입니다.”
전투 기장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그렇군요.”
“알아차리셨군요.”
“제가 전투기 조종사 출신입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죠.”
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현재 실드 능력 덕분에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한 발입니다. 그 이상은 실드가 버티지 못하고 깨지면서 본 기체는 추락할 겁니다.”
“다른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을 가능성은요?”
“없습니다. 코앞까지 오는 동안 몰랐다는 건 비가시 미사일이라는 건데……. 우리를 살려 둬서 증거를 남기겠습니까?”
비가시 미사일.
마정석 공학으로 만든, 보이지 않는 미사일이다.
김명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현재 비가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건 국가 단위로 한정되어 있었다.
엄청나게 비쌌으니까.
그 말은 즉, 뭔가 노리는 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지금 생각할 게 아니었다. 그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자신은…….
“해치를 열어 주세요.”
“!”
“제가 나가죠.”
뒤에서 김해철이 말했다.
“나도 함께 가지.”
“길드장님! 하지만 길드장님은…….”
“나만 비겁하게 살아남고 싶지 않네. 그리고 하나 보다는 둘이 더 이 상황을 벗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나?”
“……그렇죠.”
그들은 곧장 비행기의 해치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마수와의 싸움을 위해서 만든 외부와의 출입구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공중의 비행기에 서 있는 것은 물론 나가는 것도 불가능했지만 그들은 각성자이다.
고위 각성자들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들.
아파트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멀쩡한 게 고위 각성자들이다.
그러니까 냉병기 하나 들고 마수와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산소 호흡기를 쓴 그들은 날아오는 미사일의 오러를 확인했다.
비가시 미사일은, 레이더에만 확인되지 않는 게 아니라 진짜 안 보였다.
마수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효과가 좋았으니까.
그렇기에 직접 그 오러를 확인해야 했다.
“길드장님. 전방을 기준으로 2시 방향이에요.”
“알았네.”
운 좋게 비행기가 안전해진다고 해도, 그들까지 무사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김명희는 우리엘의 단검을 들었고, 김해철은 라구엘의 검을 들었다.
“작별 인사가 필요한가?”
“아뇨.”
죽음이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나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인지 생에 대한 미련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미안한 사람이 있었다.
가족과 가족이 될 사람.
‘미안해.’
그렇게 속으로 작게 사과하며 김명희는 자신의 단검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온다!”
그들은 오러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미사일을 향해…….
“?”
“?”
그들은 두 눈을 깜박였다.
분명 미사일이 코앞까지 왔음을 느꼈다. 그 파동이 어마어마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훅하는 느낌과 함께 미사일이 사라져 버렸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김해철이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미사일 어디 갔어?”
그리고 김명희는 왠지…… 된장찌개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 * *
그 시각.
강소는 인벤토리 안에 있었다.
“다행히 전부 수거했군.”
그때 강소에게 박유진이 다가왔다.
“오셨네요. 이번에 바지락을 캤는데 좀 드실…….”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강소 옆에 있는 것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흐엑! 그, 그거, 미사일이잖아요!”
“아십니까?”
“그럼요! 사진이나 TV로 본 적 있는 걸요. 그리고 실물로도 우연히 본 적 있고요.”
박유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체 그건 왜 가져오신 거예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기만큼 안전하게 보관할 곳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 강소를 보며 박유진은 생각했다.
틀림없었다.
자신 앞의 저 남자가, 두 번째 제로급 각성자였다.
이곳이 인벤토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짐작은 했지만…….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녀는 바지락이 든 바구니를 내려놓고,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정리 좀 해야겠네요.”
무림에서 온 배달부 55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