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86
585화. 열쇠 (4)
김은식은 13대 제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이 새끼, 검수 안 받은 설계도로 아티펙트를 제작하는 거 왜 금지했는지 모르는 거냐?”
그는 김은식의 말대로 서철에게 직접 설계도를 검수 받을 생각이었다.
자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처럼 검수 받을 타이밍을 맞출 수 없었고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 검수받지 않은 설계도로 아티펙트를 만들자고!
그는 자신의 설계도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실패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아티펙트를 제작해서 서철 앞에 내놓고는, “제가 이걸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
어쩌면 그에게는 이런 그의 생각을 들킨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만약 이렇게 미리 들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사고가 터졌을 테니까.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금지한 거다.”
“하, 하지만 정말 오버 히트될지 안 될지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 아닙니까?”
“에휴, 말 존나 더럽게 못 알아 처먹네. 너 같은 설계도 가져온 녀석이 너 하나뿐인 거 같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녀석이 이런 설계도를 가져왔는데…….”
그리고 그런 설계도를 보고 내뱉는 살인적인 팩트를 고스란히 듣는 건 김은식이다.
그는 그 설계도를 제출한 사제들이 상처받지 않게 말을 전하는 역할.
물론 김은식의 말은 좀 거칠었다.
그게 좋다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서철에게 팩트로 두들겨 맞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았다.
서철에게 팩트폭행을 당해 본 적이 있는 제자들은 김은식이 대사형인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때였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헉!”
“사, 사부님!”
서철도 그 소란스러움을 들었는지, 개인 작업실에서 나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별일 아닙니다. 사부님.”
“별일 아니긴…….”
서철은 그들에게 다가왔고, 김은식의 손에 들린 설계도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설계도를 슥 살펴보았다.
“허! 대체 누가 이런 놀라운 설계도를!”
그 말에 그 설계도를 작성한 13대 제자는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대사형은 틀렸어! 나는 옳은 선택을 한 거야! 봐봐! 이렇게 인정받았잖아!’
그런데,
“정말 놀라워! 이렇게 엉망진창인 설계도를 작성하는 자가 내 제자라니 말이야.”
“……!”
“어디 가서 내 제자라고 하지 마. 기본적인 것도 이해 못 하는 멍청이를 제자로 받아들인 적 없으니까.”
“…….”
“차라리 유인원을 가르치는 게 낫겠군.”
서철은 말을 이었다.
“여기에 레드울프의 발톱이라고? 허! 오버 히트되어서 착용자가 다치기 전에 만들다가 폭발해서 죽겠군.”
김은식의 진단과 같았다.
“그리고 이 회로는 대체 왜 이렇게 꼬아 놨어? 이거 자신이 잘난 줄 착각하는 놈이 제 잘난 맛에 하는 전형적인 실수인데 말이야.”
“…….”
“이렇게 꼬아 놓고는 나중에는 자신이 왜 이런 설계를 했는지 이해 못 해서 쩔쩔매겠지. 주제에 자존심은 있어서 아직 인간의 수준으로는 해결 안 되는 방식이라고 우기겠지만.”
“…….”
서철의 한마디 한마디가 13대 제자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더 하다가는 13대 제자의 멘탈이 깨져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터.
그 전에 김은식은 얼른 서철을 만류했다.
그리고 서철의 검수를 받지 않고 아티펙트를 제작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면 팩트 폭행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사부님. 그쯤 하시죠.”
“종이가 아까운 설계도…….”
“아, 쫌! 사부님! 그만하시라고요. 존나 바쁘다면서요? 안 바쁜 거였어요?”
“험험.”
“설마 뻥 친 거예요? 총회 가기 싫어서?”
“아, 아니다. 정말 바쁘다. 그럼 나는 이만.”
서철은 자신의 작업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상황을 해결한 김은식은 13대 제자를 보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네가 빌어먹을 사부님께 직접 검수 사인을 받든 말든, 나를 깔아뭉개고 싶든 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닌데 말이야. 검수도 안 받은 설계도로 아티펙트를 만들지는 말자. 그러다 사람 죽으면 욕먹는 건 우리 공방이니까.”
“…….”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사부님께 말해서 파문시켜 버릴 거다.”
“…….”
“대답은?”
“네. 알겠습니다.”
13대 제자는 뛰어난 다른 사형들이 대사형을 통해서 설계도를 검수받는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다.
서철에게 검수를 받는 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으니까.
김은식은 레드울프의 발톱이 필요했던 12대 사제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도 설계도.”
“네.”
그는 얼른 자신의 설계도를 내밀었고, 김은식은 설계도를 살피더니 말했다.
“이 부분이라면, 레드울프의 발톱도 좋지만 레드스네이크의 어금니를 사용해도 성능이 떨어지지는 않을 거야. 이 부분은 내가 사부님께 다시 검수를 받아 줄게.”
“감사합니다. 대사형!”
오늘도 김은식은 깔끔하게 사제들 간의 분쟁을 해결했다.
‘역시 대사형!’
‘대사형 최고!’
‘저래서 대사형이시구나!’
다른 사제들이 존경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비록 김은식의 말이 좀 험하지만,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랄 맞은 성격에 다루기도 엄청 까다로운 서철이다.
그런 서철을 케어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된 것.
만약 그들이 대사형이었다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갔을 터.
김은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씨×! 일거리 또 생겼네.’
그때,
“은식 씨. 손님 오셨어.”
그 말에 김은식은 뒤를 돌아보았고, 공방을 관리하는 직원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어? 큰 사부!”
“반갑다.”
그는 땅요정 아우룸이다.
“어쩐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그냥, 보고 싶어서 왔다.”
.
.
.
잠시 후.
김은식은 아우룸과 함께 서철의 개인 작업실로 향했다.
“어? 이게 누구야?”
서철은 아우룸을 반갑게 맞이했다.
“하하하. 반가워.”
노인인 서철과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우룸이 서로 말을 놓는 그 모습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뭔가 어색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김은식 역시 마찬가지이고.
아우룸은 원래 각성자 소속 공방 소속이었다. 하지만 10년 전에 공방을 나갔다.
얽매이는 것이 싫다는 이유였다.
그 후, 아우룸은 좀처럼 공방에 찾아오지 않았다.
‘좀 자주 찾아오면 좋으련만…….’
서철은 그게 못내 서운했다.
자신의 마지막 남은 혈육인 손녀딸까지 잃어버린 서철의 인간불신이 무척 심했을 때, 의지가 된 친구가 바로 아우룸이다.
“그래, 네가 그토록 인간을 믿지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거냐?”
“…….”
“내가 이 땅에서 오래 살아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은 아니라는 거야. 분명히 믿을 만한 인간도 있어. 네가 그런 인간을 찾지 못한 것뿐이야.”
덕분에, 서서히 서철의 인간불신이 옅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진짜 무슨 일이야?”
서철의 말에 아우룸이 말했다.
“사실,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실마리? 무슨 실마리?”
“실전되어 버린 기술에 대한 실마리 말이야.”
“……!”
그 말에 서철은 물론이고 김은식 역시 깜짝 놀라 두 눈이 커졌다.
그 말은 즉, 땅요정족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던 신비한 기술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는 뜻이니까.
김은식이 다급하게 물었다.
“저, 정말요? 대대로 내려오던 기술의 실마리를 찾았다고요?”
김은식의 눈에서 다시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우룸은 그 눈빛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가 이렇게 와서 땅요정족의 잃어버린 기술을 찾을 수 있다고 한 이유는 바로 김은식 때문이다.
그는 인간 아버지와 땅요정족 어머니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도깨비나 땅요정족은 인간과 결혼생활을 하는 게 가능했다.
아무튼, 김은식은 인간의 피가 섞이기는 했지만, 땅요정족의 마지막 후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서철과 아우룸이 인정하는 천재 장인.
그렇기에 아주 오래전 실전되어 버린 땅요정족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김은식은 전설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라져 버린 기술을 되찾겠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그 열망이 시들해지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없었으니까.
아우룸은 그게 못내 가슴 아팠고, 그래서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 그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 열망을 되살려 주고 싶어서.
“그 실마리라는 게 뭔지 알 수 없겠나?”
서철의 물음에 아우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팔찌 하나를 꺼냈다.
“그자가 제작한 물건일세. 내가 힘들게 빌려왔지.”
그건 강소가 선물 받은 팔찌이다.
아우룸이 열쇠 제작비를 받지 않겠으니, 일주일만 빌려 달라고 사정해서 빌려온 물건이다.
“헉! 이, 이거 뭔가?”
그 팔찌를 본 서철은 깜짝 놀랐다.
아티펙트 제작 능력뿐만 아니라, 아티펙트 감정 능력 역시 각성한 서철이다.
그렇기에 팔찌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수호의 은빛 날개-S]아무 무늬도 없는 평범한 은색 팔찌임에도 S급이다.
놀라운 건 그게 S급이라는 게 아니라, 그 팔찌를 만든 기술이었다.
“이, 이 회로…… 대체 어떻게 이런 회로를 이 팔찌에 새긴 거야? 무슨 재료를 썼기에…… 뭐, 뭐야? 재료가 은과 약간의 합금뿐이라고? 마수들의 신체를 사용하지도 않고 단순히 회로로 이런 아티펙트를…….”
“이봐. 진정하게.”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서철은 빽 소리를 질렀다.
“이런 엄청난 기술을 봤는데!”
“하하하.”
“자네가 왜 그렇게 세공기술에 집착했는지 알 것 같군. 세공기술이 있어야 회로를 새길 수 있으니…….”
서철은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젠장! 회로만 파고드는 자네를 비난만 하고…….”
끝없이 자괴감에 빠져드는 서철을 보며 아우룸이 손을 내저었다.
“나는 괜찮네.”
“아니야. 내가 안 괜찮아.”
그 모습에 김은식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유하영의 팬클럽에 접속했다.
“사부님. 이거 보셨어요? 오늘 올라온 영상인데?”
“어?”
영상 속에서 유하영과 노민아가 방긋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초코빵 언니 오빠들!] [우리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콘서트 때 좋은 모습 보여 주려고요] [하지만 콘서트에 못 오시는 초코빵 언니 오빠들을 위해서 노래 조금만 불러 볼게요]곧 음악 소리와 함께 노민아와 유하영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걸 보는 서철의 얼굴은 언제 자괴감에 땅을 팠냐는 듯이 싱글벙글이었다.
“뭐냐? 그건?”
아우룸의 물음에 김은식이 씨익 웃었다.
“하영이의 영상이에요.”
“응? 유하영이라면 그 귀여운 아이?”
“네. 사부님이 하영이 팬이라서요. 그래서 덕질할 때 행복해하시죠.”
“그렇군.”
“하영이 덕분에 사부님을 조련…… 아니, 케어하기 존나 편해요.”
* * *
며칠 뒤.
강소는 열쇠를 다 만들었다는 아우룸의 연락을 받고 합정의 매장으로 향했다.
“왔나?”
“네. 어르신.”
아우룸은 상자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열어 보게나.”
강소는 상자를 열었다.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와! 대단하군요.”
그 안에 있는 열쇠는, 원본과 카피본이 완벽하게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만드셨습니까?”
“그야, 본 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 붉은 성주님께 그 열쇠를 만들어 드린 게 우리 땅요정족들이거든.”
역시 그랬다.
“그래서 아쉬워. 기술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정말 완벽한 물건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닙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아무튼, 전에도 말했듯이 반쪽짜리 기술로 만든 거라서 그 안에 담긴 기운은 5년 정도밖에 못 가. 그리고 강한 기운을 담을수록 유지 기간은 더 짧아지지.”
“그럼 얼마 정도까지 버틸 수 있습니까?”
“아무리 강한 기운을 담아도 6개월은 버틸 거야.”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강소는 그 상자를 챙기며 말했다.
“그럼 보수는…….”
“보수는 이 팔찌를 빌려준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지 않나?”
그는 팔찌를 다시 내놓았고, 강소는 그걸 손목에 차며 말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 게다가 나중에 그 장인을 소개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죠.”
“내게는 그게 그 무엇보다 큰 보수일세.”
“알겠습니다.”
이제 열쇠를 마련했으니, 중요한 작업만이 남았다.
왕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한 작업이.
무림에서 온 배달부 58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