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0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0화
“내가 바로 용사 벨테브레이다! 마왕! 네놈도 오늘부로 끝이다! 크크크!”
하아-!
“으하하하! 어떠냐! 내 소드 맛이! 무려 드래곤 본으로 만든 보검이다!”
절레절레.
“헤헤헤- 아니오. 내가 마왕을 처치할 수 있었던 건 레이디들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러니…….”
더는 못 들어 주겠군.
따악!
“악!”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박연.
“꿈에서 좀 깨지.”
“마왕?”
“그래. 나다.”
“방금 그건…….”
“꿈이지.”
“나한테 몽마를 보낸 거냐!”
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술 먹고 개꿈 꾼 거다.”
“그럴 리…… 으으.”
갑자기 밀려오는 숙취에 박연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에 서준이 피식 웃었다.
“술에 취해 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취했었나?”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더군.”
“그럴 리가! 난 한 번도 취해 본 적이 없는 몸이다! 오죽하면 내 소원이 취해 보는 거였겠나!”
“그렇다고 치지.”
“치는 게 아니다! 난 불독(不毒)의 몸이 된 지 오래…….”
박연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취한 모습 잘 구경했다.”
“제길. 근데 가게는 왜 온 거냐. 아직 문 열 시간도 아니지 않나?”
박연은 서준 형제에게 몸을 의탁(?)한 뒤로 가게 한켠의 작은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서준은 말없이 히드라의 맹독을 담은 유리병들을 선반에 정리했다. 그걸 본 박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히드라의 맹독?”
“알아보는군.”
“자꾸 무시하는데 내가 유일하게 처치 못했던 건 그대뿐이었다. 히드라 정도는 쉽게 처치했었어.”
“그랬나.”
“내 자랑 같아서 안 하려고 했지만 악룡으로 불리던 데이카란투도 처치한 적이 있었다. 히드라 정도는 일도 아니지. 근데 그 맹독들은 왜 챙겨 온 건가?”
“이게 환상적인 소스거든.”
“맹독이?”
“그래.”
“아무래도 그대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히드라의 맹독은 먹을 수 없다. 피부에 닿는 즉시-.”
“안다. 영원한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
“근데 그걸 먹는다고?”
“약간의 과정만 거친다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소스가 되지.”
“과정이라니?”
* * *
히드라의 맹독에서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중탕을 시키면 된다.
이 방법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건 말 그대로 못한 것이다.
애당초 히드라의 맹독은 피부에 닿기만 해도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는 신독이다.
드래곤들조차 한번 맹독에 닿게 되면 그 부위는 해독할 수 없게 될 정도의 신독.
때문에 시도조차 안 된 것뿐.
주방으로 간 서준은 냄비에 물을 받고 가스불을 켰다. 물이 팔팔 끓을 때쯤 맹독이 담긴 유리병을 집어넣었다.
이대로 20분만 지나면 된다. 그럼 맹독은 제거되고 아주 훌륭한 소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맹독을 중탕시키는 사이 아공간에서 아까 도축한 끄렉세그의 삼겹살을 다듬었다.
끄렉세그의 삼겹살은 결대로 자르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구워 먹건 쪄먹건 식감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결대로 자른 삼겹살 다섯 덩이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그런 서준의 행동을 지켜보던 박연이 말했다.
“뭐 하려는 거지?”
“고추장삼겹살 구이.”
“설마 맹독도 넣으려는 건가?”
“맹독이 빠지면 반쪽짜리가 될 거다.”
“허…… 미쳤군.”
“그건 두고 볼 일이지. 먹고 더 달라고나 하지 마라.”
“그럴 일 없다.”
그릇을 꺼낸 서준은 고추장 일곱 스푼을 풀었다. 그리고 간장 한 큰술과 고춧가루 약간, 설탕 두 큰술과 간마늘을 넣었다.
단맛은…… 마침 있는 사과가 좋겠다. 혹시 모를 노린내를 잡아주기 위해 맛술 한 숟가락과 매실청 두 큰술도 넣었다.
그리고, 잘 섞어 주기만 하면 된다. 어느 정도 걸쭉해진 양념에 중탕이 끝난 맹독을 두 스푼 떨어뜨렸다.
다시 섞어 주고, 완성된 양념들을 삼겹살에 부어 주면 끝.
이대로 세 시간만 잘 재워 주면 훌륭한 목살구이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 어디 가는 거지?”
삼겹살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냉장고에 넣고 가게를 나서자 박연이 그를 붙잡았다.
“잠깐 볼일 좀 보러.”
“나, 나도 같이 가도 될까?”
“심심한가?”
“시, 심심하다기보다는…… 아! 사전조사랄까.”
“사전조사?”
“여, 여기서 얼마나 더 살아야 할지 모르지 않나. 근데 맨날 이 좁은 가게에 갇혀 지낼 수도 없고…….”
“일리 있네.”
“그치?”
“따라와라.”
서준을 따라나선 박연은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에게는 두 번째 외유나 다름이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 마왕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 이후 좀처럼 가게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겪는 굶주림은 그에게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어디 가는 것인가?”
“돈 벌러.”
“돈이라면 넘치지 않나? 천계에서 약탈한 금은보화들만 해도…….”
“다시 말하지만 난 천계를 약탈한 적이 없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보화들은 이미 부하들한테 나눠 주고 왔다.”
“그 많은 걸? 전설에 의하면 마왕이 가진 금은보화라면 대륙도 살 수 있을 거라던데 그 많은 걸 어찌…….”
“굳이 필요 없으니까.”
마왕치곤 희한하다니까.
박연의 중얼거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서준이 향한 곳은 황태수의 사무실이었다.
입구를 가로막던 기도가 인상을 팍 썼다.
“뭐야?”
“황 사장을 만나러 왔다.”
“미친새끼. 우리 사장님이 니 친구냐? 어디서 X도 아닌 게…….”
그때.
저 멀리서 황태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헉헉! 아이고, 형님! 이 자식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형님을 못 알아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뭐해! 얼른 형님께 인사 안 올리고!”
기도가 쭈뼛거리며 인사를 하자 서준은 바로 본론부터 들어갔다. 던전에서 얻은 몬스터의 부산물들을 아공간에서 꺼낸 것이다.
허공에 나타난 아공간에 황태수 사장이 입을 벌렸다.
‘스, 스킬인가? 아니면 아티팩트?’
뭐가 됐건 심기를 거스르면 죽는다. 죽어도 곱게 죽진 못하리라.
최악의 경우에는 저 아공간에 처박힐지도 몰랐다.
‘아공간에 갇히면 죽지도 못하고 억겁 속에 세월을 보낸다던데…….’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이, 이게 다 뭡니까 형님?”
“형님이라곤 하지 말도록.”
“예, 형님.”
“흐음.”
“아…… 죄송합니다. 사장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게 다 뭡니까 이 사장님?”
“보면 모르나. 몬스터 부산물이잖나.”
황태수 사장은 서준이 아공간에서 꺼낸 것들을 세심히 살폈다. 부산물이라 해 봤자 별 건 없었다.
고블린과 오크의 머리 마흔 개, 그리고 좁쌀만 한 마정석 세 개.
“이걸 왜 저한테…….”
“네가 사 갔으면 한다.”
“이건 저보다도 정부에 포상금 받고 넘기는 게 훨씬 많이 받을 겁니다.”
“무슨 등록이란 것도 해야 한다며? 귀찮은 건 질색이다.”
“아, 네. 그렇긴 하죠.”
“비싸게 사가라고는 안 한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시세대로만 쳐주면 된다.”
“그러시다면야 뭐……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고블린은 한 마리당 십만 원입니다.”
“생각보다 비싸군. 그게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인가?”
평소라면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며 덥썩 물고 후려쳤겠지만 상대가 누구던가.
떡대들을 순식간에 패대기친 실력자인 건 물론, 아공간 스킬까지 소유한 각성자였다.
“예. 정부 포상금은 십오만 원입니다. 여기에 이것저것 떼면 시기마다 좀 다르긴 합니다만 통상적으로 8~10만 원에 거래되고 있죠.”
“그럼 지금은 10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건가?”
“아…… 요새는 고블린 공급이 많아져서 8만 원 정도입니다.”
“그럼 나한테도 8만 원에 사 가라.”
혹시 트집 잡힐까 봐 최대한의 액수를 부른 황태수는 눈을 치켜떴다.
이거, 생각보다 착한 놈이잖아?
“아, 예. 감사합니다, 사장님.”
“오크는 얼마지?”
“오크는 오십만 원입니다. 여기에 이것저것 떼고 나면 30~35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지요. 요새는 34만 원에 거래되곤 합니다.”
“그럼 996만 원인가.”
“고블린이 14마리고 오크가 26마리니…… 예. 맞네요. 996만 원.”
“마정석은 얼마나 하나?”
“이 정도 크기라면…….”
황태수가 힐끗 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다. 이것도 시세대로 받겠다.”
“개당 오십만 원이 한계일 겁니다.”
“1,146만 원.”
“예.”
“바로 지급 가능하겠지?”
“물론이죠.”
황태수가 사무실 한켠의 금고를 열었다. 현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중 몇 개를 꺼내 돈 세는 기계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1,146만 원을 건넸다. 돈들을 전부 아공간에 집어넣은 서준이 사무실을 나가려 할 무렵.
“아.”
“예?”
“비밀은 끝까지 지키는 게 좋아.”
“그, 그럼요.”
“앞으로도 종종 보지.”
“예, 살펴 가십시오!”
서준의 모습이 사라질 동안 허리를 굽히고 있던 황태수는 서준이 사라지자 깊은 한도의 한숨을 토해 내며 기도를 가리켰다.
“이 새끼 데려온 놈 누구야! 당장 치워! 똥오줌도 못 가리는 새끼가 무슨 기도를 한다고!”
* * *
“저건 뭐지?”
박연은 용사치고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하긴…… 왜 그런 말도 있잖나.
한 우물만 판 엘리트들일수록 세상 물정에 어두울 가능성이 크다고.
서준은 박연도 그런 경우일 거라 생각했다.
“세제다.”
“세제?”
“설거지할 때 쓰는 거지.”
“그럼 저건? 생긴 건 꼭 콜라처럼 생겼는데…… 소주인가?”
“초록색이면 다 소주로 보이나? 사이다라는 음료수다.”
박연이 쭈뼛거리며 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서준은 피식 웃었다.
“몇 개 담아도 된다.”
필요한 생필품들을 담던 서준의 눈에 문득 장난감 자동차가 들어왔다.
서우와 마트를 찾았을 때 서우가 장난감 코너를 뚫어지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장난감이 하나도 없었지.’
낡은 인형과 팔이 부러진 로봇은 있었지만 서우가 제대로 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본 적은 없었다.
가격을 보니 이해가 된다.
-소방자동차 붕붕카
-290,000₩
어른 손보다 살짝 큰 장난감 하나가 30만 원에 육박한다. 서준은 장난감 몇 개를 카트에 담았다.
순식간에 200만 원을 쓰게 됐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제 이거 먹어도 되나?”
“그래라.”
사이다를 벌컥 들이켠 박연이 감탄을 터뜨렸다.
“콜라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군. 하지만 콜라보다는 못한 것 같다.”
콜라에 단단히 빠졌군.
피식 웃은 서준의 눈에 해장국집이 들어왔다. 입에 군침이 돌았다.
아르투스 알이라던가 끄렉세그의 삼겹살 구이는 마계에서 숱하게 먹었지만 뼈해장국은 언제 먹어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서준은 뼈해장국 두 그릇을 주문했다. 한국식 패스트푸드(?) 답게 금방 해장국이 나왔다.
팔팔 끓는 해장국과 그 사이로 얼핏 보이는 돼지뼈, 그리고 그 돼지뼈를 수북하게 덮고 있는 시레기들.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지만-
“개밥인가.”
대륙인의 눈에는 개밥처럼 보일 뿐이었다.
“먹어 보면 놀랄 거다.”
“별 신뢰가 안 가는군.”
서준은 겨자소스를 종지에 담고, 공기 그릇에는 초장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른 빈 그릇에는 뼈를 담아 본격적으로 해장국을 즐길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