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1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1화
뼈해장국을 먹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서준은 뼈부터 발라 먹는 편이었다.
뼈에 붙은 살들을 발라내고 겨자 소스에 콕 찍어 먹었다. 겨자 소스 특유의 달짝알싸한 맛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또 다른 살점은 초장에 콕 찍었다.
전과는 다른 새콤달콤한 맛에 혀가 전율하는 기분이었다.
그다음은 시레기였다. 시레기를 호호 불어 입에 넣었다. 국물이 배어든 시레기가 적당한 식감과 함께 식도로 넘어가자 나오는 건 감탄.
대망의 마지막은 국물.
숟가락으로 푹 떠서 호호 불어 입에 꿀떡!
“아…….”
서준의 감탄사에 반신반의하던 박연도 결국 숟가락을 들었다. 그는 서준이 먹은 방법들을 따라 했다.
뼈에 붙은 살들을 발라내 겨자 소스에 찍어 먹은 것이다.
“우오!”
눈을 부릅뜬 박연.
이번에는 초장에 콕.
“돼지고기 아닌가?”
“맞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맛이…….”
“국물도 먹어 봐라.”
박연이 국물을 퍼먹었다. 감탄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신음이 나왔다.
마왕의 계략(?)으로 알콜이 몸에 고스란히 축적이 된 상태라 숙취기가 남아 있었는데 한 숟가락 먹자마자 몸이 쫙 풀리는 기분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놀랍군.”
“마저 먹어라. 식으면 맛없다.”
박연은 허겁지겁 뼈해장국을 들이켰다. 마침내 해장국을 다 비운 박연은 서준의 눈치를 살폈다.
“다 먹었으면 이만 가지.”
“그게…….”
“왜 그러나?”
“하, 한 그릇만 더 먹어도 될까.”
피식.
“그래라.”
* * *
“우와! 아빠 최고! 최고!”
“서우 그렇게 좋아?”
“웅! 사랑해! 아빠! 헤헤헤!”
연신 뽀뽀 세례를 하는 서우.
그런 서우를 보며 연준은 뭔가 씁쓸한 표정이었다. 어느새 포장을 뜯은 서우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삐뽀삐뽀! 수우우웅!”
연준의 눈은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어려운 형편에 그 흔한 장난감 하나 사 주지 못했다.
마트에 갈 때마다 장난감에 시선을 고정하던 서우였다. 그런데도 사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아이였다.
얼마나 갖고 싶었을까.
얼마나 사 달라고 하고 싶었을까.
“괜찮냐?”
“형…….”
“왜 울고 그래.”
“고마워 형.”
“고맙긴.”
서준은 서우 선물로 산 장난감을 전부 연준에게 건넸었다. 아무래도 그가 주는 것보다는 연준이 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거.”
서준은 종이 봉투를 건넸다. 봉투를 살피던 연준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이, 이게 뭐야 형?”
“돈이지 뭐긴 뭐야.”
“처, 천만 원은 되어 보이는데…….”
“천만 원은 아니고 구백만 원 정도 돼.”
“어, 어디서 났어? 혹시…….”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그럼?”
“옛날에 사 둔 주식이 있었어. 가성 전자라고.”
연준이 입을 떡 벌렸다.
가성 전자.
격변 이후 급속 성장한 기업 중 한 곳이었다. 심연 길드와 계약을 체결한 뒤부터였다.
심연 길드에서는 마정석과 던전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가성 전자에 저렴한 가격에 납품했고, 가성 전자는 그걸 토대로 새로운 전자기기들을 만들어 냈다.
결과는 주가 폭등.
한국에서만큼은 마정석을 이용한 전자기기 시장에서는 독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업이 되었다.
“어, 얼마나 샀길래?”
“많이는 안 샀어.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까 천만 원 어치 정도 되더라.”
“근데 이걸 왜 나한테 줘. 형이 써야지.”
“전세금에 보태.”
“……알고 있었어?”
서준의 오감은 인간의 것을 초월한다. 듣지 못할 것이 없고 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우연히 통화하는 거 들었어.”
“민망하네…….”
“가족끼리 민망할 게 뭐 있냐. 보태서 써.”
“고마워 형…… 진짜 고마워.”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는 연준. 그간 했을 마음고생이 보여 가슴이 시큰했다.
그때.
딸랑!
“어?”
“하하. 안녕하십니까. 오늘 장사하죠?”
“그럼요. 편한 곳에 앉으세요.”
최성균과 그의 팀원 오성식이었다.
둘은 다른 테이블 대신 주방이 바로 보이는 다찌 형식의 테이블에 앉았다.
“계란 후라이 맛을 못 잊겠더라구요.”
“그러셨습니까?”
“계란 후라이랑 일단 소주 두 병만 주시겠어요?”
“네.”
감정을 추스른 연준이 얼른 술과 기본 안주를 내어 왔고, 서준은 아루트스 후라이를 준비했다.
기름을 두르고 달궈진 팬에 아루트스 후라이를 투하!
지글지글 익어 가는 아루트스 후라이.
이대로는 아쉽단 말이지. 오늘은 특별히 귀한 조미료도 추가다.
독성을 제거한 히드라의 맹독. 맹독 몇 방울을 톡톡 떨어뜨렸다.
그리고 바로 접시에 담아 내줬다. 입맛을 다시던 최성균이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마약 같다니까. 끼니 때만 되면 이게 떠올라.”
피식 웃은 최성균이 계란 후라이를 잘게 찢어 입에 갖다 넣었다.
“와…….”
그리고 자연스레 나오는 감탄사.
오늘은 더 맛있다. 오랜만에 와 먹어서 그런 건가? 아니, 따지고 보면 오랜만에 먹는 것도 아니다.
며칠 전에도 와서 먹지 않았던가. 그런데 맛이 뭐랄까…….
‘고소한데 담백하고, 담백한데 은은한 단맛도 맴돌고 설명이 안 되네.’
그의 얕은 미식가적 지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오묘한 맛이었다. 그러다 보니 술은 뒷전이고 허겁지겁 후라이만 먹게 됐다.
두 사람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사이 연준이 다가왔다.
“형 나는 서우랑 밥 좀 먹고 와도 될까?”
마침 아까 재워 둔 끄렉세그 삼겹살이 떠올랐다.
“기다려. 내가 고추장 삼겹살 재워 둔 거 있어.”
“삼겹살도 사 왔어?”
“박연이 하도 먹고 싶다고 난리를 치길래.”
피식 웃은 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은 재워 둔 삼겹살을 꺼냈다. 척 보기에도 양념이 잘 스며 든 것 같았다.
달군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올렸다.
치이이이익!
듣기 좋은 빗소리와 함께 매콤달짝지근한 양념 냄새가 퍼져 나갔다.
다 구운 것들은 먹기 좋게 잘라서 접시에 담아 연준에게 건네줬다.
한쪽에서 연준과 서우의 감탄 소리가 들려오자 최성균이 물었다.
“고추장 삼겹살인가요?”
“아, 네. 좀 드릴까요?”
“하하…… 금겹살을 공짜로 먹을 순 없죠.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저번에 도와주신 것도 있고요.”
“아, 사채업자들 말이죠? 그 인간들 또 옵니까?”
“손님 덕분인지 안 오더군요.”
“다행이네요.”
양념구이는 다 좋은데 타는 게 문제였다.
‘실드가 있었지.’
다른 프라이팬을 준비하려다 문득 마계에서 쓴 방법이 떠올랐다.
프라이팬에 결계를 치면 놀랍게도 타지 않게끔 구워 먹을 수가 있다.
은박지를 덧씌운 효과랄까. 역시 접시에 담아 최성균과 오성식에게 건넸다.
먼저 오성식이 맛을 봤다.
“와……! 사장님 이거 진짜 삼겹살 맞아요?”
“그럼요.”
“이거 뭐라고 해야 되지. 맛이 고기는 고기인데 양념하고…… 감탄 밖에 안 나옵니다. 어디서 요리 따로 배우셨어요?”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입에 맞는 정도가 아니에요! 이건 혁명입니다! 레볼루션! 팀장님! 팀장님도 어서 드셔보세…… 팀장님?”
최성균은 이미 맛을 보고 있었다. 다만 호들갑을 떠는 오성식과는 다르게 흐느끼면서.
* * *
그날 최성균은 여자 친구와 별것도 아닌 일로 다퉈서 기분이 썩 안 좋은 편이었다.
“전화 좀 받지.”
전화기만 붙잡고 자취방에 도착했다.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현관의 신발장을 보니 어머니의 낡고 헤진 구두가 보였다. 또다. 좀 오지 말라니까 또 왔다.
“아들?”
해맑게 웃으며 마중을 나오는 엄마.
“아, 좀 오지 말라니까 왜 또 왔어.”
“왜 오긴. 너 반찬 가져다주려고 왔지.”
“그럼 미리 연락이나 하고 오던가. 이게 뭐야.”
“미안하다. 너 바쁠까 봐 그랬어. 밥 안 먹었지? 엄마가 너 좋아하는 고추장 삼겹살…….”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뭐가 좋다고 투정에도 해맑게 웃는 엄마에 괜히 짜증이 치밀어 마음에도 없는 날선 말이 튀어나왔다.
“그딴 거 알아서 잘 사먹으니까 좀 오지마!”
버럭 소리치며 자취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멍청하게도 엄마가 아니라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련하게도 엄마가 아니라 여자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아, 왜?
“유선아.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아까 내가 말이 좀 심했었지? 너 기분 어떤 줄 뻔히 알면서…….”
주절주절 떠들던 그때.
콰콰쾅!
굉음과 함께 자취방 건물이 무너졌다.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엄마에게 사과할 기회조차 없이.
* * *
음식과 술은 놀랍다. 누군가를 추억하게 하고,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를 그리게 한다.
그게 바로 음식과 술이 주는 진정한 풍미인 것이다.
최성균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서준은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쪼로록-.
“정작 엄마한테는 미안하다고도 말 못했어요. 너무 미안하다고…… 엄마가 싫었던 게 아니라 그날이 싫었던 거라고, 그러니까 마음에 담지 말라고…….”
쪼로록-
“참 멍청하지 않습니까? 기껏 마지막 순간에 한다는 말이 투정이었다니…… 하하.”
“몰랐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진짜 짜증 났던 건 엄마가 아니였어요. 다리가 불편한 엄마가 아들 반찬 하나 전해 주겠다고 먼길 오는 게 짜증 났던 것뿐이죠. 그걸, 그걸 전…….”
서준은 가만히 휴지를 건네줬다.
“죄송합니다. 그새 사장님이 편해졌나 봅니다. 별걸 다 털어놓네요.”
“괜찮습니다.”
“성식아. 이만 일어나자.”
“……네.”
“얼맙니까?”
“3만9천 원입니다.”
“후. 다음에는 이런 꼴 안 보여 드리겠습니다.”
“최성균 씨.”
“예?”
“오늘은 못 다한 말씀 해 보십시오. 평생 한이 됐던 말. 전부 다요.”
“무슨……?”
“혹시 꿈에서 볼지도 모르잖습니까.”
피식.
“그럼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최성균은 가게를 빠져나왔다.
“팀장님…….”
“됐다. 아무 말 하지 마.”
“…….”
“먼저 간다.”
그가 사는 곳은 역삼동이었다. 택시를 잡아 집에 도착한 그는 술이 조금 깨자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왜 그랬지.”
사선을 함께 넘나든 그 동료들은 물론이고 친구들한테도 털어놓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술이 조금 들어갔다고 그런 비밀을 털어놓다니…….
“늙었나.”
나이가 들면 감성적으로 바뀐다더니 아무래도 그런 건가 보다.
성균은 이부자리에 누웠다.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던 그때.
“성균아.”
누군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난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엄마가 환히 웃고 있었다.
1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어, 엄마?”
“우리 아들 잘 있었어?”
“엄마…….”
“왜 울고 그래. 엄마가 너무 늦게 와서 화났구나?”
“미안…… 엄마, 미안. 내가 그때 했던 말들 전부 다 미안해. 진심 아니었어. 나, 나…….”
성균의 엄마가 그를 꼬옥 안아 줬다.
“알아. 다 알아.”
“미안해 엄마…….”
“괜찮아.”
엄마 품에 안긴 성균은 엉엉 목 놓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