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244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244화
* * *
고운 빛깔의 한복에 고수머리를 한 60대 초반의 여자가 깐깐한 눈길로 주방을 둘러봤다. 한동안 주방을 둘러보던 여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수아 씨.”
“네.”
“주방 청소 다 한 거 맞아?”
“그럼요.”
“아니, 여기 좀 봐. 다 한 게 아니잖아.”
안수아는 사장이 가리킨 싱크대와 조리대를 구석구석 살폈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사장이 저러는 건 주기적으로 있는 일이다.
사장 딴에는 직원 교육이라 여기는 것 같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왜 말이 없어? 자기가 보기에는 깨끗하다 이건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늘 말하잖아. 요리를 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니까? 요리를 하는 환경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 수아 씨 같으면 더러운 환경에서 조리돼서 나온 요리를 먹고 싶겠어?”
“아니요.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청소 다시 깔끔하게. 말 안 해도 알지?”
“네.”
사장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주방을 빠져나갔다.
그걸 보고 한 켠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이 지긋한 종업원들이 한마디씩 했다.
“사장님은 왜, 우리 조리장님한테만 저러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러게. 내가 보기에는 먼지 한 톨도 없구만.”
“그것보다 주방 청소를 왜 조리장님한테 시키나 몰라. 음식 하기도 바쁘신데.”
“우리 조리장님이 마음이 넓어서 그러지,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진작 관뒀을걸?”
“맞아, 맞아.”
종업원들의 대화에 안수아는 쓰게 웃었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서울 모처에 있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정식집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곳에서 일을 관두지 않는 건,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곳들보다 남편이 입원한 병원과 가깝고 20만 원을 더 쳐주기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조리장님. 두세요. 이따 우리가 깨끗하게 다시 청소할게요.”
“아니에요. 제가 해도 돼요.”
“밤늦게까지 취객들 상대하면서 운전하시려면 피곤하실 텐데 언제 청소를 다시 해요. 괜찮아요.”
“그래요. 우리가 사장님이 트집 못 잡게 아주 깨끗하게 해 둘 테니까 걱정 말고 먼저 들어가요.”
“맞아. 괜히 무리했다가 저번처럼 사고 나면 어쩌려고. 들어가세요.”
완강한 종업원들의 태도에 안수아는 앞치마를 벗고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늘 신세만 지네요. 감사합니다.”
“신세는 우리가 지지, 조리장님이 지나.”
“늦겠다. 얼른 가 봐요.”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요.”
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퇴근을 서둘렀다.
물론 퇴근을 했다고 해서 퇴근은 아니다.
그녀에게 퇴근은 또 다른 일터로의 출근이었다.
전동 킥보드를 챙기고 식당을 나선 그녀는 곧바로 핸드폰에 있는 어플들을 켰다.
어플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특이했다.
-대리러갈래.
-대리릉대리릉
-타자가자
그녀의 또 다른 직업은 바로 대리 기사였다.
그녀는 한 어플의 조회 카테고리로 들어갔다. 몇 건의 목록들이 주르륵 떴다.
‘오늘은 운이 좋네.’
목록에 괜찮은 콜이 보였다. 남이 뺏어 갈세라 얼른 배차를 받았다.
손님이 있는 곳은 1.2km 거리.
도착지는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였다.
근방에 먹자골목이 두 곳이나 있어 서울로 돌아오는 콜을 받기도 수월한 곳이기도 했다.
손님과 통화를 마친 그녀가 킥보드에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비상등이 켜진 차 한 대가 보였다.
“대리 부르셨죠?”
술이 불콰하게 오른 중년 남성이 인도 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보면 몰…… 어라. 여자네.”
“네.”
“에이, 여자가 모는 건 불안한데.”
취객들을 상대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이런 말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다. 처음 대리 일을 시작할 때는 화가 났었지만 이제는 내성이 생겼다.
“안전하게 댁까지 모실게요.”
“확실하지?”
“그럼요.”
“오케이.”
손님이 비틀거리며 뒷자리에 올랐다.
“출발하겠습니다.”
“살살 몰아. 속 울렁거리니까.”
“네네.”
“아가씨 같은데 왜 이런 일을 해? 젊은 사람이 번듯한 일을 해야지.”
쓴웃음을 짓는 그녀에 손님이 말을 이었다.
“왜 웃어, 기분 나쁘게.”
“죄송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가씨 바디가 참 육감적이던데 의사 선생님이 만들어 준 몸인가?”
이럴 때는 화를 내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면, 더 집요하게 파고든다. 안수아는 생긋 웃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거예요.”
“효도해야겠네. 그런 바디는 의사 선생님도 만들기 어려운 바디잖아.”
“그래야죠.”
그 후로도 손님은 희롱인지 농담인지 모호한 경계에 있는 말을 했다.
손님의 희롱이 멈춘 건,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돈은 이미 어플로 계산이 된 상태였다. 손님은 트렁크에 실은 킥보드를 내리는 그녀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입맛을 다셨다.
“저기 말인데.”
“네?”
“혹시 2차도 가나?”
“2차…… 요?”
“그 있잖아, 왜.”
“아? 아뇨!”
“흐음. 기사 아가씨 나이가 어떻게 돼?”
“서른일곱이에요.”
그녀는 대답을 하면서도 왜 내가 이런 대답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손님이 지갑을 열더니 오만원 권 열 장과 명함을 건넸다.
“나이가 좀 있긴 한데 그쪽도 수요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뭐. 이건 팁이고 이건 생각나면 전화해. 대리 한 달 해서 버는 거 하루면 벌 수 있어.”
그녀는 멀뚱멀뚱 손님이 내미는 돈과 명함을 쳐다봤다.
“뭐해? 받기 싫어?”
마음 같아서는 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십만 원이었다. 자존심도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나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밸도 없는 사람처럼 배시시 웃어 보이며 돈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꼭 연락하라고. 알았지?”
“들어가세요.”
손님이 사라졌음에도 그녀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명함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귓속에는 방금 손님이 한 말이 자꾸 맴돌았다.
-대리 한 달 해서 버는 거 하루면 벌 수 있어.
상념에 잠긴 그녀를 일깨운 건, 한 통의 문자 메시지였다.
[♡♡♡귀요미♡♡♡][오후][20:51] 힘들 텐데 오늘은 병원 안 와도 돼.남편에게서 온 것이었다.
멍하니 내용을 곱씹던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명함을 북북 찢어 버렸다.
* * *
“안 와도 된다니까 힘들게 왜 왔어.”
병상에 누운 장년 남자의 얼굴에서는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
안수아의 남편 최정우였다.
“어제 못 왔잖아.”
“대신 엊그제 왔잖아.”
“치. 자기는 내가 오는 게 싫은가 보네?”
“수아 네가 힘들까 봐 그러지.”
“하나도 안 힘들거든요. 본인 걱정이나 하세요.”
안수아가 최정우의 손을 마주 잡았다.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까끌까끌해진 손에 안수아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남편은 보디빌더로 활동했을 만큼 건강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고 있다.
‘왜 하필 저희인가요.’
안수아는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왜 하필 우리냐고…… 왜 하필 성실하게 살았던 내 남편이 췌장암이라는 몹쓸 병에 걸렸어야 하냐고…… 도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자가 3기나 4기 같은 말기 즈음에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최정우도 마찬가지였다. 발견이 늦어 암이 3기에서 4기까지 진행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췌장암은 3기부터는 수술도 불가하다.
아무리 명의로 손꼽히는 의사가 있는 병원이라 해도,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시한부 선고가 전부였다.
최정우의 경우는 짧으면 6개월에서 길면 12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요양 병원에 들어왔다.
흔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속담이 있다.
안수아가 그랬다. 그녀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췌장암은 완치 사례가 드물다.
하지만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연명 치료를 통해 10년 이상 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른 건 크게 바라지 않았다. 딱 10년만…… 아니, 5년만이라도 남편이 옆에 있어 줬으면 싶은 바람이었다.
안수아는 간절한 그 바람이 기적을 일으키길 바라며,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신을 믿지 않고 살았던 게 잘못이었나 싶어 교회에도 다녔다.
생전 기부를 너무 적게 한 문제였나 싶어 없는 살림에 기부도 해 봤다.
내가 내뱉은 말들이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는 상처가 되어 업(業)이 된 건가 싶어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지인들은 모두 찾아다니며 일일이 사과를 했다.
그러는 틈틈이 항암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었다.
아직 남편은 모르지만, 그러고도 돈이 모자라 전세금까지 뺐다.
그러기를 5개월.
차도는 없었다.
오히려 남편의 병세는 깊어만 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수아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윽!”
문뜩 최정우가 신음을 흘렸다. 고통에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애써 고통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 만 가.”
최정우가 힘겹게 한 자 한 자 말했다.
시시때때로 통증이 찾아온다. 특히 밤에 그 통증은 배가된다.
통증이 시작되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말들로도 대체 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이 찾아온다.
이때에는 그 어떤 진통제도 쓸모가 없다. 헤로인 보다 효과가 강력하다고 알려진 펜타닐 패치도 무용하다.
그러면 의지와 다르게 고통에 몸부림쳐지며 나도 모르게 비명을 터뜨린다.
제발 살려 달라고, 아니. 차라리 죽여 달라고, 그래서 이 고통 좀 끝내 달라고, 간호사들에게 사정한다.
최정우는 이런 비참한 모습을 안수아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안수아를 힘들게 하는 점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편을 보면서도 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
“오빠…….”
“끄윽!”
어떻게든 고통을 참아 내려던 최정우였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던 최정우가 결국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악!”
최정우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댔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한 켠으로 물러난 안수아는 그 모습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최정우는 진통제가 투여됐음에도 고통에 악을 꽥꽥 질러 대다 제 풀에 지쳤는지 잠에 들었다.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최정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안수아에게 원무과 직원이 찾아왔다.
미납된 금액 때문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미납된 금액이 있어서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얼마나 되나요?”
“이천만 원이 조금 넘네요.”
사채까지 끌어다 써서 납부했건만 어느새 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죄송합니다.”
“저한테 죄송할 건 없으세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일단은 이번 달도 미납인 걸로 알고 전산에 올릴게요.”
그건 이번 달도 그녀의 편의를 봐주겠단 말과 다름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힘내세요.”
원무과 직원의 편의로 급한 불은 껐지만 산적한 문제는 이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OK대출][오후][11:51]고객님. 왜 전화를 안 받으십니까? 전화 받으세요.정류장에서의 일 이후 며칠간 연락이 없던 사채 사무실에서 다시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