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308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308화
* * *
몇 년째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던 삼거리에 별다방 DT점이 입점한 건 세 달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차연희는 이 삼거리 별다방 DT점의 오픈 멤버였다.
비록 박봉이었지만 근무 환경이라든지 복지적인 부분에서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출근이 하루하루 기다려졌다.
왜냐하면…….
딸랑!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키가 훤칠한 청년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차연희의 얼굴에는 발그스름한 홍조가 떠올랐다.
“어서오세요!”
“좋은 아침이오.”
“많이 더우시죠?”
“음…… 뭐 별로 덥진 않더이다.”
“그러시구나. 아! 주문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얼죽아.”
이 고객을 처음 맞이 했을 때는 괴상한 화법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적응이 된 차연희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죠?”
“잘 아는구려.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뜻이지.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나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시오. 아, 둘 모두 테이크 아웃으로.”
“사이즈는 라지 사이즈로 드리면 될까요?”
“매번 기억해 주니 참으로 친절하시오.”
“그야 맨날 오시니까…….”
뜻하지 않은 칭찬에 차연희의 얼굴이 다시금 붉어졌다.
자신이 이 카페의 오픈 멤버라면 손님은 오픈 손님이었다.
오픈 후 지난 세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제는 마카 맞죠?”
“맞소. 마카는…….”
“마왕의 카드요!”
“허허. 이제 척하면 척이구려.”
“앉아 계시면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알겠소.”
차연희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는 손님을 흘겼다.
다른 사람들이 되도 않는 하오체를 쓴다면 이질감만 잔뜩 느껴질 거다.
하지만 이 손님은 아니었다. 마치 조선 시대의 선비가 미래로 넘어온 것처럼 하오체가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이 손님을 좋아하게 된 것이…….
물론 처음에는 포기하려고 했었다.
손님과 직원으로 만난 관계가 아니던가?
섣불리 고백을 하거나 마음을 보였다거나 거절이라도 당한다면 앞으로 만나기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려고 했던 건데…….
‘분명 나한테 마음이 있으셔.’
차연희는 컵에 얼음을 담으며 보름 전 일을 회상했다.
한 달 전.
회식을 위해 동료 직원들과 함께 우연히 술 한잔해요라는 술집을 찾은 차연희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오전 8시 정각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가는 저 손님이었다.
손님은 그 술집의 직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차연희는 손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비스라며 비싼 삼겹살 구이를 한 대접 갖다주지 뭔가?
그게 끝은 아니었다. 시키지도 않은 콜라를 갖다주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서비스는 아니었다. 다른 테이블에는 물 한 잔 서비스로 내어 주지 않았었으니까.
결정적으로.
보름 전 또 한 번 술집을 찾은 차연희는 손님이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우연찮게 엿들을 수 있었다.
-모르겠어. 그래도 일단은 콜라로 내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
콜라로 마음을 표현한다…….
의아해하는데 잠시 후.
-서비스요.
손님이 콜라를 내어 주지 뭔가!
차연희는 그게 일종의 시그널이라고 생각했다.
왜 적극적인 대쉬를 안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모든 남자들이 적극적인 건 아니다.
특히 저런 미남은 더욱 그럴 거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만 기다리고 있어도 번호가 따일 텐데 굳이 적극적일 필요가 있겠는가.
자연히 대쉬가 서툴겠지.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얻는다!
이 말은 남자들에게만 국한된 표현이 아니다.
용기 있는 자가 미남을 얻는다!
차연희는 그런 각오로 오늘은 꼭 용기를 내 볼 참이었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손님이 미소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러자 차연희의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애써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속삭였다.
“저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번호?”
“절대 흑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하도 자주 오시니까 오시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하시면 준비해 놓을 수도 있고…….”
횡설수설하는 차연희에 손님이 미간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이런. 카페테라스에서도 번따를 당해 여기로 옮긴 것이거늘 여기서도 번따를 당하다니 이런 낭패가 있나.”
“네?”
“후…… 잘 아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하물며 그 대상이 나니 오죽하겠소. 하지만 난 임자가 있는 몸이오.”
청천벽력 같은 소리!
“호,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신 거라면…….”
“아니오. 난 정말 임자가 있소.”
“어떻게…… 하지만 반지도 안 끼고 계시고 한 번도 여자친구랑 통화하는 걸 못 봤는데…….”
“반지는 잃어버릴까 봐 외출할 때는 집에 두고 다니오. 여자 친구랑 통화는 여기 들어오기 전에도 했소. 다만 에티켓이란 게 있잖소.”
“에티…… 켓이요?”
“공공장소와 실내에서는 떠들지 말아야 하는 에티켓 말이오. 이제 커피 받고 나가면 다시 전화할 거요.”
이런 미친!
평소 욕은 입에 담지도 않던 차연희는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머금었다.
에티켓을 지키기 위해 기껏 하고 있는 통화를 끊는다니?
차연희에게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거짓말이면 좋겠다. 하지만 손님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차연희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마침 생각난 게 있는지 취조하듯 소리쳤다.
“그럼 저번에 그건 뭐예요? 왜 제가 갔을 때 다른 테이블은 안 준 서비스도 주신 거예요?”
“그야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
“…….”
“괜찮으시오?”
“하지만…… 하지만 친구분하고 통화하실 때 콜라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하신다고 했었잖아요! 그리고 곧바로 저희 테이블에 콜라 갖다주셨구요.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건데요? 차라리 제가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그건 광고 대사이오만.”
“……네?”
“콜라 광고 말이오.”
불현 듯 최근 에이프런 맨이 등장해 화제가 된 광고 하나가 떠올랐다.
확실히 그 광고에서 에이프런 맨이 비슷한 말을 하긴 했었다.
-모르겠어. 그래도 일단은 콜라로 내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
라고.
“아…….”
차연희는 얼굴이 후끈거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게 사람이라더니 딱 그짝 아닌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게 된 것 같구려. 미안하오. 하지만 어쩌겠소.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진 모르겠소만…… 다음 생을 기약해 보시오. 그럼 이만.”
예의 손님이 꾸벅 인사를 하고서는 걸어 나갔다.
아니. 걸어 나가려고 할 때였다.
손님이 나가다 말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의 노트북을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뭡니까?”
기척을 느낀 노트북 주인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화면을 가리자 예의 손님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이다를…… 왜 내가 사이다를……!”
“사이다요? 이 광고 말하는 거예요?”
손님이 가리킨 노트북 화면에는 믿을 수 없게도 에이프런 맨이 콜라를 내던지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콜라를 내던진 에이프런 맨이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이번 여름은 톡 쏘는 사이다로 에이프런 맨과 함께!
“어찌…… 내 허락도 안 받고 어찌! 으아아아아!”
예의 손님…… 아니. 박연이 괴성을 질러 대며 매장을 뛰쳐나갔다.
* * *
박연은 우성 음료에서 사건의 전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대치동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 때 에이프런 맨이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작업 도중 실종된 소방관을 구조하고 유유히 사라진 에이프런 맨…….
의아하긴 했더랬다.
그 시간에 자신은 분명 곽도철을 만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누가 나 대신 에이프런 맨 행세를 했는지!
누가 정의의 이름을 욕보였는지!
“마왕……!”
마왕이다. 마왕이 아니고서는 그 짓을 할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우성 음료 직원이 촬영한 동영상에 등장한 ‘가짜 에이프런 맨’의 모션이 마왕과 97% 일치했다.
-……부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명성에 흠이 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가짜 에이프런 맨’은 고개를 거만하게 끄덕거렸다. ‘진짜 에이프런 맨’은 저런 거만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는다.
저런 식으로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거릴 사람은 마왕 밖에 없다.
번쩍!
박연이 텔레포트를 사용해 가게로 이동했다.
가게에는 마왕이 나와 있었다.
“너지!”
박연이 다짜고짜 소리치자 테이블을 닦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뭐?”
“에이프런 맨을 사칭한 게 네놈인 걸 다 알고 왔다! 시치미 뗄 생각은 하지 마라!”
“사칭?”
“그래, 사칭! 1대 에이프런 맨에서 은퇴했으면서 왜 치사하게 에이프런 맨 행세를 한 거냐! 아니! 행세만 했으면 내가 말을 않는다. 누구 마음대로 사이다 광고를 허락한 거냐!”
“아…… 그거 말이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쩌다 보니? 그게 말이냐!”
“소는 아니지.”
“말장난할 때가 아니다!”
“그래. 미안하게 됐다. 진심으로.”
박연은 당황스러웠다.
‘이게 아닌데…….’
무슨 사과가 이리 빠르단 말인가?
이래서야 할 말이 없잖은가!
“그…… 미안하다면 다냐!”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대신에 고무장갑하고 퐁퐁으로 보상하지.”
“흥. 고무장갑하고 퐁퐁으로 해결이 될 문제였다면…….”
“고무장갑 십만 개에 퐁퐁 십만 개.”
“……진작 제안을 할걸 그랬군. 근데 이십만 개는 안 될까?”
“콜.”
이십만 개라면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가격으로 환산해도 무려 20억에 달하는 금액이니까.
박연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 피어났다.
그런 박연을 보고 서준이 말했다.
“근데 커피는?”
“아, 그거 깜빡 놓고 왔다. 가서 찾아올게!”
도로 뛰어나가는 박연을 보며 서준은 피식 웃었다.
여러모로 단순한 용사님이다.
* * *
-아! 말씀 드리는 순간 몽유도원도가 우리나라 땅을 밞게 되었습니다! 감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메라에 호태왕비가 비치자 기자들이 셔터를 마구 눌러 댔다.
번쩍번쩍 터지는 플래시에 후루룩 자장면을 흡입하고 있던 황태수가 단무지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이런 거 보면 괴물들이 애국자라니까.”
한차례 중얼거린 황태수는 자장면 그릇을 내려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더듬더듬 라이터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스윽 나타났다.
생각 없이 담뱃불을 붙이던 황태수가 질겁을 하며 일어났다.
“헉!”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사장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진 어쩐 일로다가…….”
“긴히 부탁할 일이 있어서.”
“부탁할 일이요? 아이구, 그런 게 있으시면 전화로 절 부르시지. 어떤 부탁인데 친히 걸음을 하셨습니까요?”
“저번에 고 부장님한테 듣자니 운전을 잘한다더군.”
“하하! 형건이가 언제 또 그런 말씀까지……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거시기 하지만 어디 가서 못한다는 말은 안 듣습니다.”
“그런가?”
“면호도 1종 보통에 2종 소형, 거기에 대형 면허랑 견인차 면허까지. 없는 면허가 없걸랑요.”
“그렇군.”
“근데 어떤 부탁을 하시려는 건지?”
“운전 좀 부탁할까 해서.”
“운전이요? 어려운 일은 아니긴 한데…… 차라리 사람을 쓰시지 않고요?”
“모르는 사람보다는 친분 있는 사람이 나으니까.”
“그 말씀도 맞긴 합니다만…… 그럼 뭐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