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307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307화
* * *
화아아아악!
가연물을 머금은 불씨가 맹렬히 타오르며 눈 깜빡할 사이에 선두에 있던 구조대장을 고립시켰다.
당황한 구조대장이 불길을 벗어나려 했지만…….
화아아악!
화륵! 화륵! 화륵!
활활 타오른 불길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며 탈출을 원천봉쇄시켰다.
“으윽…….”
마침 불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렸던 대원들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그들은 한끗 차이로 고립은 면한 형국이었다.
뒤늦게 화마에 갇힌 대장을 확인한 대원들이 경악하며 달려갔다.
하지만 갇혀 있는 대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화아아아아악!
천장에 불이 옮겨 붙으며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불기둥은 주변으로 점점 옮겨 갈 기미를 보였다. 그걸 확인한 대장이 소리쳤다.
“모두 어서 나가!”
“하지만!”
“지금 안 나가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 어서 나가!”
외침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발길을 떼진 않았다.
생판 모르는 남도…… 심지어 선악도 구분하지 않고 구하는 게 소방관이다.
범죄자도 구하는 마당에 동료를 버리고 도망간다?
그건 소방관들에게 있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대장은 현장에서 그들의 목숨을 수십번은 구한 생명의 은인.
생명의 은인을 두고 도망가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희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겁니다!”
“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여기 어디에 분명…….”
대원들이 방법을 찾겠답시고 시간을 지체하는 그사이에도 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불길이 그나마 남아 있는 퇴로마저 차단시키리라.
“명령이다! 어서 나가!”
결국 구조대장은 명령을 들먹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안 나가면 다 죽어! 몰라서 이래?”
“하지만…….”
“명령이다! 곽호재! 너가 책임지고 애들 데리고 빠져나가! 알겠어?”
“…….”
“왜 대답이 없어!”
대장의 호통에 곽호재가 이를 꽉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았다. 기다리마. 어서 나가!”
곽호재가 미련 가득한 눈으로 대장…… 아니 최건우를 흘긴 채 나머지 대원들과 함께 장내를 빠져나갔다.
“후.”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최건우가 낡은 철제 캐비닛에 기대앉았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을 보고 있노라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방화복을 입을 때마다 오늘 같은 날을 막연하게…… 아주 막연하게 예견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현실로 다가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장모님이 한소리 하시겠네.”
장인 장모께 결혼을 허락받으러 갔을 때였다.
소방관이란 직업을 들은 장모님은 질색팔색을 하시며 결혼을 극구 반대하셨다.
당신 딸이 청상과부가 될까 걱정을 하신 게다.
섭섭하긴 하지만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본인이었어도 딸이 소방관과 결혼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말렸을 테니 말이다.
그런 완강한 장모님의 승낙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위험한 현장에서는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였다.
한데 지금 그 약속을 본의 아니게 어긴 셈이 되었다.
나무라실 장모님 얼굴이 눈에 훤하다.
최건우는 시간과 산소 게이지를 확인했다.
이제 주어진 시간은 5분 남짓.
아내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핸드폰을 갖고 들어올걸 그랬다.
아쉬운대로 최건우는 앞섶을 뒤졌다. 담배 한 갑과 지포라이터가 달려 나왔다.
소방관이 되기로 마음 먹은 15년 전 체력을 키우기 위해 이 악물고 금연을 했던 최건우였다.
하지만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평생을 참는 거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언젠가 은퇴를 한다면 다시 피울 생각이었다.
앞섶의 이 담배와 라이터는 그런 의미에서 출동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담배였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멍하니 담배를 내려다보던 최건우가 장갑을 벗고는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손에 쥐어 봤다.
예전에는 그리도 익숙하게 쥐던 담배건만, 지금은 쥐는 행위 자체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3분…….”
남은 시간을 확인한 최건우는 산소 마스크를 벗었다.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매캐한 연기가 눈과 코를 찔러 왔다.
콜록콜록!
한차례 기침을 터뜨린 최건우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15년만에 피게 된 담배라 마른 기침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런 현상은 없었다.
다만 머리가 조금 띵했다.
산소 부족 탓인지 담배 탓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담배를 몇 모금 빨았을 때였다.
치지직!
무전기를 꺼 둔다는 걸 깜빡했군.
쓰게 웃은 최건우가 무전기를 끄려는데…….
-여보!
최건우는 흠칫 놀랐다.
-왜 말이 없어! 대답해 봐! 얼른!
물기가 한가득 묻어난 아내의 목소리다.
‘환청인가?’
산소 부족으로 인한 환청.
이게 더 설득력 있긴 했다.
-아무 말이나 좋으니까 뭐라고 좀 해 봐! 흑흑흑!
아내의 흐느낌에 최건우는 무전기를 들었다.
“왔어?”
-거기 있으면서 왜 이제 받아! 나올 수 있지? 나올 수 있는 거 맞지?
“그럼. 나갈 수 있지.”
-근데 왜 안 나와? 응? 얼른 나와. 나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얼른 나오라구…… 흑흑흑!
정신이 흐릿해져가는 가운데 최건우는 담배를 비벼 끄고 무전기를 꽉 움켜잡았다.
몸에서 느껴진다.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길어야 30초나 버티겠지.
아내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 말 만큼은 의식을 잃기 전 꼭 해야만 한다.
“여보.”
-흑흑! 미안해! 여보! 내가 다 미안해! 흑흑흑!
“아냐.”
-어떡해…… 어떡해…… 흑흑!
“걱정하지 마. 괜찮아. 울지 마. 대신 애들한테 사랑한다는 말 좀 전해 줘. 그리고…….”
말을 하려는데 돌연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직 말 못했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 이 말 만은 꼭 해야 한다. 해야 하는데…….
온몸이 나른해지고 의식은 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의식이 툭 끊길락 말락 하던 그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갑시다.”
의문의 목소리와 함께 최건우는 정신을 잃었다.
* * *
“……구조대에게 지급되는 산소통은 60분용이라고 합니다. 최건우 구조대장이 메고 들어간 산소통도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최건우 구조대장이 실종된 지 벌써 60분이 지났습니다. 부디, 부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카메라 불이 꺼지자 이문익은 한숨을 내쉬며 의식을 잃은 채 구급차에 실려가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실종된 최건우 구조대장의 아내라고 들었다.
한참을 흐느끼더니 결국 혼절을 했나 보다.
“쩝.”
기자로서 이런 현장을 취재할 때가 많지만, 그럴 때마다 입맛이 쓰다.
특히 이번 현장은 더더욱 그렇다.
동료를 구하러 들어간 소방관이 도리어 목숨을 잃게 된 케이스 아니던가.
문득 12구역의 소방관들이 떠올렸다.
최건우 구조대장에게도 12구역 소방관들과 같은 이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안타깝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을 만큼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
그때였다.
“에이프런 맨이다!”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에 이문익은 깜짝 놀랐다.
뜬금없이 무슨 에이프런 맨이란 말인가?
에이프런 맨이 왜 여기에 나타난단…….
“……진짜네.”
이문익은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에이프런 맨이었다.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각시탈과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에이프런 맨이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이프런 맨!”
“진짜다!”
“뭐 해! 어서 찍어!”
찰칵! 찰칵!
취재진 사이에서 연신 플래시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에이프런 맨이 현장으로 날아갔다.
* * *
“……!”
권승우는 눈을 부릅떴다.
머릿속으로 지난날 본부장에게 까였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회사에서 여러분한테 많은 걸 바랐습니까?
-다시 해 오세요.
-임팩트가 없잖아요. 이래서는 소비자들이 우리 음료수 마시고 싶겠어?
본부장에게 하도 깨져서 멘탈까지 깨졌더랬다.
그리고 멘탈이 박살난 채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거 같아 무작정 뛰고 또 뛰었다.
회피성 자기학대였다.
숨이 턱끝까지 만드는……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 속으로 몰아넣는 자기학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우연…… 아니! 운명이라니!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분명 에이프런 맨이었다.
꿈에서도 아른거리던 에이프런 맨!
“크윽……!”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기획안을 밤낮을 지새우며 만든들 무슨 소용인가?
머리를 쥐어 짜내서 나온 기획안이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다 필요없다!
에이프런 맨!
에이프런 맨만 있으면 이제 막 입봉한 디렉터도 광고사에 길이 남을 광고를 만들 수 있을 터였다.
머릿속에 에이프런 맨을 소재로 한 광고가 무수히 떠오른다.
폭염 속에서 ‘사이다가 필요해!’ 절규하는 에이프런 맨…… 콜라를 내던지고 대신 사이다를 마시는 에이프런 맨…… 악당들을 사이다로 뚝배기 깨 버리는 에이프런 맨…….
많다! 많아도 너무 많아!
하지만 디렉터는 늘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하는 법.
‘우리 회사와는 계약 안 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 상에서는 에이프런 맨이 수천억을 받았네 어쩌네 하지만…… 업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에이프런 맨이 광고비로 받은 건 콜라 평생 무료 이용권이 전부라는 사실을!
그만큼 콜라를 사랑하는 에이프런 맨이다.
한데 숙적이라 할 수 있는 사이다 회사 광고 모델이 되려 하겠는가.
‘에이프런 맨을 광고에 사용해도 된다는 승낙만 받아도……!’
수많은 기업의 마케팅 팀과 광고 회사들이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녀서 에이프런 맨을 광고 소재로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에이프런 맨은 일종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특정 브랜드를 사용할 때는 로열티를 줘야만 한다.
하지만 에이프런 맨 같은 경우는 로열티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어디있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로열티를 지급하겠는가.
일단 저지르고 보는 방법이 있지 않냐고?
그랬다가는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컸다.
에이프런 맨에 대한 국민적 사랑은 계량조차 불가하다.
그럴 수 밖에 없긴 했다.
세계적인 영웅의 국적이 한국인이라니 얼마나 가슴 뿌듯해지는 일인가.
한데 특정 기업이 공익도 아닌 사익 추구를 위해 에이프런 맨을 광고에 이용했다?
범국민적인 비난에 직면하는 건 물론 바로 불매 운동이 일어날 터였다.
하지만 에이프런 맨에게 승낙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려 에이프런 맨의 인정을 받은 기업이 되니까.
“우오오!”
힘이 불끈불끈 솟아났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왔다!”
“우와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에이프런 맨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프런 맨의 품에는 최건우 구조대장이 안겨 있었다.
에이프런 맨은 최건우 구조대장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뭐지?”
“마법인가?”
“와…….”
에이프런 맨의 손끝에 피어오른 새하얀 빛이 구조대장의 숨결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콜록!
그러자 미동도 없던 구조대장이 기침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시민들은 함성을 내질렀고 기자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물론 권승우도 가만있진 않았다.
“비켜요!”
오로지 에이프런 맨에게 광고 승낙을 받겠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나아갔다.
집념은 승리했다. 비록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에이프런 맨의 목전에 도착한 것이다.
권승우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소리쳤다.
“에이프런 맨님! 여기좀 봐 주십시오! 에이프런 맨님! 제발 여기 좀 봐 줘요!”
애절한 외침이 통한 걸까?
에이프런 맨이 권승우를 바라봤다.
“저는 우성음료 홍보팀에 있는 권승우라고 합니다!”
각시탈 사이로 드러난 그 눈빛은 마치 ‘그런데?’라고 묻고 있는 듯 했다.
에이프런 맨의 관심이 다른 기자들에게 옮겨 갈까 권승우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외람되지만 저희 우성음료에서 에이프런 맨님을 소재로 한 광고를 찍고 싶은데 부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명성에 흠이 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권승우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끄덕.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비록 경쟁 회사처럼 에이프런 맨을 섭외하진 못했지만 이게 어디인가?
‘됐다!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