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316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316화
* * *
눈가가 어느새 촉촉하게 젖은 연준이 자기 무릎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서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서우에게는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밖에 없었다.
“한잔할래?”
연준의 코앞에 소주잔이 불쑥 나타났다. 연준은 소주잔을 받아들었다.
쪼로록-.
서준이 술잔 가득 넘실거리도록 술을 따라 주자 연준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술이…… 쓰네.”
씁쓸한 표정으로 독백하는 연준에 서준이 면박이라도 주는 것처럼 말했다.
“그럼 술이 쓰지, 달겠어?”
“우문현답이네.”
이번에는 연준이 서준에게 술을 한가득 따라 주었다.
서준도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서준에게 연준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난 서우가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를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 서우도 알고 있었나 봐.”
“알고 있다니?”
“영영 엄마 못 볼지도 모른다는 거…….”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이 머물다 간 시간은 제법 길었다.
침묵이 불편했던 걸까?
연준이 애써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채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한 거래?”
“뭐가?”
“서우 꿈에 들어갔다 나오게 한 거.”
“몽마 덕이지 뭐.”
“몽마…… 그것도 악마 이름인가?”
“응.”
“그럼 그 몽마라는 악마의 능력도 갖게 된 거구나?”
서준은 과거 연준에게 마계에서 있었던 지난 삶들을 모두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지금의 무력을 갖게 된 경위까지도 말이다. 연준은 그걸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아마 그러자면 밤을 꼬박 새도 모자랄 지경일 터였다.
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
“분명 겉모습은 우리 형 맞는데…… 이런 거 들으면 신기하다니까.”
“신기할 것도 많다.”
“아, 형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혹시 나한테 말 안 한 능력 같은 거 또 있어?”
“능력?”
“가령 변신을 한다던가…… 아니면 음, 악마 군단을 소환한다던가 하는?”
그 말에 서준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사실을 실토할 때만 해도 마계에서 얼마나 힘들었겠냐며 위로하더니 그러고 얼마나 지났다고 이런 취급이란 말인가.
물론 싫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가깝기에 가능한 장난이니까.
* * *
방파제를 건장한 두 사내가 걷고 있었다.
고형건과 김시현이었다. 그리고 고형건의 얼굴에는 땀이 한가득이었다.
아무리 바람 부는 바닷가라지만 습하고 더운 여름 날씨에 무작정 걷기만 하니 땀이 주룩주룩 비처럼 흘러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로 오신다고 한 거 맞아?”
결국 고형건이 벤치에 풀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벌써 한 시간이 넘도록 주변을 찾아 헤맸다. 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확실히 여기로 오신다고 하셨다니까.”
“그런 거 치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김시현이 침음을 흘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여기로 오신다고 했는데.’
아무리 술에 취하신 사장님이라지만 딴 길로 샜을 리는 없다.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주차장뿐인데 어디로 새겠는가?
‘설마 저기로 넘어가진 않으셨을 테고…….’
커다란 주차장 너머에 왕복 2차선 도로가 하나 있긴 했다. 하지만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인도도 없었고 그 흔한 가로등도 없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해도 저기로 가진 않으셨으리라.
‘그럼 분명 이 주변에 계시다는 건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김시현에 고형건이 말했다.
“아, 이제 그만 가자. 안 보이잖아. 어쩌면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 숙소에 들어가셨을지도 몰라.”
침음을 흘리고 있던 김시현은 고형건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눈에 익은 지포 라이터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건……!’
분명 사장님의 라이터다.
확실하다.
“왜 그래?”
금방 돌아갈 기미를 보이던 김시현이 망부석처럼 굳어있자 고형건이 껄렁껄렁 걸어왔다.
“이거, 맞지? 사장님 라이터 맞지?”
“어? 그러네. 사장님 라이터네. 근데 이게 왜 여기 떨어져 있어?”
고형건이 의아해하던 그때.
저벅저벅-
뒤에서 의문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 * *
정신을 차린 황태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내 당수가 울대에 적중했을 텐데…….”
그런데 손끝에 전달되는 타격감은 전혀 없었다.
“실력자인가?”
그런 당수를 피한다는 건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허억!”
새삼 그 정체모를 실력자에 대해 떠올리던 황태수가 갑자기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벌벌 떨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
칠흑 같은 어둠 속.
황태수의 뇌리로 한박자 늦게 지난 기억들이 밀려왔다.
당수는커녕 정체불명의 상대에게 바로 제압을 당했었다. 그리고…….
“목을 잡혔고 그 다음에는…….”
상대의 손에 점점이 생성되던 새까만 블랙홀이 자신을 꿀꺽 삼켜 버렸다.
그래, 그랬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친 황태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슨 비현실적인 사이버 공간 같은 곳이다.
“설마…….”
황태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도 하기 싫다.
그래서 혹시나 하기도 싫다. 경우의 수에도 넣고 싶지 않고.
하지만 만에 하나……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면?
“히익!”
새된 비명을 내지른 황태수가 미친 듯 발버둥쳤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여긴, 여긴…….
“아공간이잖아!”
내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그래,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여긴 악마에게 밉보인 자들만 들어가는…… 감형 없는 뇌옥이다!
“으아아아아아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중형을 내리는……!”
무고를 토로하던 황태수의 뇌리로 문득 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준 군…… 아니. 구라다이노무시키! 정식으로 1:1 싸움을 신청한다!
-좋다, 이제 정식으로 널 퇴마하겠다! 이건 고명한 선사께 배운 퇴마신공이다. 하압! 합! 주화입마!
-큭…… 역시 만만찮은 상대로군. 하지만 이 공격은 막아내지 못 할 거다. 타합! 타합! 탑탑! 금강불괴!
“이런 미친……!”
황태수는 한차례 욕지거리를 머금었다.
사실 긴가민가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꿈인지 생시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뜻이다.
꿈이라면 천만다행이지만…….
사실 황태수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미 전적이 있으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구라다이노무시키는 썩 물러가라!
-주님께 청합니다! 저 사탄을 지옥으로 쫓아 버리소서! 아멘!
-주님과 함께 하는 성 미카엘 대천사님! 저 사탄으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소서! 저 사탄의 간계에 저의 보호자가 되소서!
감히 악마를 상대로 구마 의식을 진행했었던 전적 말이다.
술김에 사탄도 울고 갈 악마에게 구마 의식을 진행한 본인이다.
한 번을 더 못할까.
심지어 이번에는 제대로 된 구마 의식도 아니다.
주화입마며 금강불괴가 뭐란 말인가?
“빌어먹을…….”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아무리 술에 취했기로서니 저딴 말은 왜 늘어놓은 걸까?
주화입마가 악마에게 어떤 타격을 입힌다고…… 금강불괴가 악마에게 무슨 해를 입힐 수 있다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사나이 황태수…… 여기서 죽을 순 없다!”
각오를 다지자 새삼 힘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그에 황태수는 몇차례 심호흡을 한 채 크게 소리쳤다.
아니, 소리치려고 했다.
“사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사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로 지낼 수 있…… 음?”
혀가 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한 황태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두 인물.
“……!”
황태수는 눈을 부릅떴다.
어째서 형건이와 시현이까지 여기 있단 말인가?
“그나저나 아까 뭐라고 말씀하고 계셨습니까?”
“예. 뭔가 굉장히 결연하던데 말입니다.”
“그건 너희가 알 필요 없다. 그나저나…….”
“말씀하십시오.”
“너희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거냐?”
“그건 저희가 묻고 싶은 말씀이지 말입니다. 여긴 대체 어딥니까?”
“여긴…… 아공간이다.”
“아공간이요?”
“그래. 근데 너희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여기까지 끌려온 거냐?”
“죄…… 라니요? 눈 떠 보니 여기였지 말입니다?”
“눈 떠보니 이 지옥이었다라…… 아니. 그건 너희 생각일 거다. 악마가 극악무도한 건 맞지만 영문도 없이 이 감옥에 집어넣진 않거든. 곰곰이 생각해 봐라. 분명 무슨 죄를 지었을 거다. 불경죄라던가, 괘씸죄라던가.”
“아니, 아까부터 악마, 악마 하시는데…… 악마가 대체 누굽니까? 저희는 그저 사장님 찾으러 왔다가 의식을 잃었는데 깨어 보니 여기 였을 뿐입니다.”
“날…… 찾으러 왔었다고?”
“예. 시현이 말로는 사장님이 담배 피러 갔다 오신다고 하셨는데 그 뒤로 안 돌아오셨다면서요?”
제삼자의 일을 말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아 하는 고형건의 말과 김시현의 태도에 황태수는 왠지 울컥했다.
이 녀석들은 본인들이 지금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어디에 왔는지도 모를 거다.
“크윽.”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너희가 충신이었구나, 너희가 충신이었어…….”
황태수의 등에는 한자로 새긴 문신이 하나 있었다.
충신불첨기군(忠臣不諂其君)
충신은 임금에게 아첨하지 않고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니
충신진충보국(忠臣盡忠報國)
충신은 충성을 다해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다.
물론 이 말에 감명을 받아 새긴 건 아니다.
무식하게 몸을 도화지처럼 막 쓰느니 원고지로 쓰는 게 좀더 유식해 보여 한자를 새긴 것 뿐.
생각없이 새긴 문신이었지만 이제 알겠다.
누가 충신인지!
“크윽-!”
“설마 우십니까?”
“울긴…… 아니다.”
“근데 왜 그러십니까?”
“기뻐서 그런다, 기뻐서…… 됐냐!”
“여기 꼼짝없이 갇힌 게 기쁘십니까?”
“꼼짝없이 갇히긴! 걱정마라. 내가 너희를, 너희 두 사람은 기필코 여기서 빠져나가게 해 주마!”
확신에 찬 황태수에 김시현이 반색했다.
“사장님은 여기가 어딘지 아시는 거군요!”
“알지. 아주 잘 알지. 몇 번이나 봤으니…….”
“호오,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귀 좀 막고 있어라.”
“갑자기 귀를요?”
“음공이라고 들어 봤는지 모르겠는데 잘못 들으면 너희 실청(失聽)할지도 모른다.”
고형건과 김시현은 묵묵히 두 귀를 막았다.
두 사람은 황태수를 제갈공명처럼 일세를 풍미할 책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책사가 아무런 생각없이 귀를 막으라 하진 않겠지.
마침내 두 사람이 귀를 막자, 황태수가 소리쳤다.
“사장님! 제가 사장님께 큰 실수를 범했사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의 본심이 아니었나이다!”
“…….”
“예, 압니다. 사장님께서도 제가 괘씸할 거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사장님은 자비로운 분이 아니십니까? 자비로운 악마가 아니냐는 말입니다요! 그러니 한 번만, 딱 한 번만 제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사장님께 견마지로를 다할 수 있는 기회를 달란 말입니다요!”
“…….”
“듣고 있는 거 다 압니다! 이런 제가 탐탁지 않으신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사나이 황태수……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그런다면 저는 평생을…….”
그때였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반색한 황태수였지만…….
“……!”
그는 발소리 주인의 얼굴을 보고 눈을 부릅 떴다.
‘……천사?’
백옥 같은 피부에 새하얀 날개…… 영락없는 천사의 모습을 한 사람이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