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RAW novel - chapter 179
검왕과 검마는 이런 식으로 종칠과의 정을 즐기고 있었다.
혈마자는 어이가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사방이 끝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이런 멍청한…… 진에 걸려들었구나.”
혈마자는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분노에 몸을 맡긴 결과였다.
진에 갇히긴 했지만 뚫고 지나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혈마자 역시 진버에 조예가 깊었다. 취월이나 제갈린에 비하면 조금 모자라겠지만 말이다.
혈마자는 일단 주변을 살폈다. 수하들의 모습은 모두 보였다. 한꺼번에 거대한 진에 빠져든 것이었다. 사방이 넓은 벌판이니 어떻게 진이 구성되었는지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땅속에 진을 구성했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혈마자가 그러고 있을 때, 멀리서 몇몇 사람이 나타났다. 혈마자는 나타난 사람들을 보며 섬뜩한 살기를 내뿜었다.
“네놈들……”
나타난 사람들은 혈마자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아니, 잘 알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한가운데에 단형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단형우 뒤로 세 여인이 서 있었다.
“이곳에 진을 설치한 것이 네년이로군.”
혈마자의 눈이 제갈린에게로 향했다.
“맞아요. 당신이 이리로 오는 것을 확인하고 무영각을 이용해 만든 진이에요.”
제가린은 무영각을 이용해 혈마자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덕분에 혈마자의 목표가 하남표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혈마자가 하남표국에 와서 싸우면 아무리 싸움에 이기더라도 피해를 입게 된다. 하남표국에 더 이상 피해가 가는 것이 싫었던 제갈린은 다른 사람들에게 제의해 이곳에 커다란 진을 설치했다.
그 진은 혈마자 일당을 가둬 놓기 위한 진이었다. 단형우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도록 래주기 위해 만든 진이었다.
혈마자는 네 사람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그리고 사방으로 감각을 퍼뜨려 숨어 있는 자가 혹시 있나 확인해 봤다.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설마 정말로 너희들만 온 것은 아니겠지?”
혈마자의 말에 조설연이 보드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뿐이에요. 그리고 싸움은 단오라버니 혼자서 하실 거예요.”
조설연의 말에 혈마자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누군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단형우가 얼마나 강한지는 그동안 당한 것을 떠올리면 혈마자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혈마자는 단형우를 쳐다봤다. 그동안 직접 본 적은 없었으니 이번이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한데 단형우의 눈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격동을 참기 어려워 보이는 듯했다.
“천기자……”
단형우의 입에서 억눌린 말이 흘러나왔다.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저렇게 인자한 노인의 모습으로 자신과 친구들을 그 지옥에 처박은 그 얼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단형우의 눈앞에 서 있는 혈마자는 바로 천기자였다.
“흥,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마라! 난 천기자가 아니다!”
단형우는 혈마자를 노려봤다. 자신이 천기자를 몰라볼 리 없다. 혈마자는 분명히 천기자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천기자이면서도 천기자가 아니었다.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다 똑같다. 얼굴, 기질, 기운. 하지만 달라. 대체 넌 누구지?”
단형우의 얼굴에 약간의 혼란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 혼란이 깨끗이 가신 얼굴로 혈마자를 노려봤다.
“넌 천기자다.”
혈마자는 천기자였다. 단여우는 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혈마자는 흥미로운 눈으로 ?㈎痢?쳐다봤다.
“호오, 천기자의 안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천기자에게 원망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 크하하핫! 역시 뒤로는 구린 짓을 많이 하는 놈답군. 잘 들어라. 난 천기자가 아니다. 난 혈마자다. 나 역시 천기자는 씹어 마시고 싶을 정도로 증오한다.”
혈마자가 그렇게 말했지만 단형우의 결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단형우의 섬뜩한 눈빛이 혈마자를 단숨에 꿰뚫었다.
“컥!”
혈마자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온몸을 덮치는 날카로운 느낌에 몸을 제대로 지탱할 수 없었다.
혈마자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항거할 수 없는 공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혈마자는 그 공포를 억지로 눌러 삼키며 소리쳤다.
“뭣들 하나! 포위해! 사방에서 놈을 쳐라!”
혈마자의 외침에 혈마회의 든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멀리서부터 단형우 일행을 포위했다.
하나하나 강자 아닌 자들이 없었다. 그들은 강렬한 기세를 쏟아내며 천천히 단형우와 그 일행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단형우는 가만히 서서 자신을 포위한 자들을 슬쩍 돌아봤다. 그리고 양손을 번쩍 위로 들어올렸다. 마치 등 뒤에 있는 사람을 후려치는 듯한 동작이었다.
콰아아아아-!
그 동작과 맞물려 단형우의 등 뒤로 검은 기운이 밀려갔다. 그 기운은 마치 해일처럼 높고 넓게 뒤로 뻗어 나갔다.
조설연을 비롯한 섬뜩한 세 여인은 검은 기운이 자신들의 몸을 통과하는 순간 약간 섬뜩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뒤로 고개를 돌려 검은 기운을 쳐다봤다.
그녀들을 통과한 순간, 검은 기운은 그대로 강기가 되었다. 어마어마한 강기의 해일이 뒤를 포위한 혈마회의 무사들을 덮쳤다.
콰콰콰콰-!
검은 강기의 벽이 사람들을 그대로 깔아뭉개고 지나갔다. 강기의 벽이 지나는 곳에는 시체조차 남지 않았다. 모조리 핏물이 되어 바닥에 스며들었다.
혈마자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그 광경을 쳐다봤다. 이것은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절대 아니었다. 어찌 인간이 수백 명의 고수들을 단숨에 핏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단번에 절반의 인원이 사라진 혈마회는 잠시 주춤거렸다. 하지만 아직 단형우의 양 옆과 정면에 많은 수의 무사들이 남아 있었다.
단형우는 양손을 들어 좌우로 손을 슬쩍 뻗었다.
콰우우우-!
단형우의 손바닥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새하얀 기의 회오리였다.
그것은 앞으로 뻗어나가면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앞으로 뻗어나갈수록 점점 회오리가 거대해졌고 기의 회전이 빨라졌다.
콰콰콰콰콰-!
기의 회오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그대로 휩쓸고 돌아다녔다. 이리저리 거침없이 움직이는 소용돌이가 혈마회 무사들을 분쇄해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피의 비가 내렸다. 핏물로 화한 무사들이 들판을 붉게 물들이며 쏟아져 내렸다. 어느새 제갈린이 설치했던 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기의 회오리가 진법의 근간이 되는 기의 흐름을 모조리 집어 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이 사라져도 이젠 별 상관없었다. 혈마자에게 남은 것은 단형우의 정면에서 여전히 눈에 광기와 투기를 담고 있는 혈마대뿐이었으니까.
“어, 어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이……!”
혈마자는 진정 믿을 수 없었다. 이젠 두렵지도 않았다. 너무나 기가 막혀 그냥 누워 버리고 싶었다. 혈마자는 혈마대도 단형우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혈마자는 바닥에 누워 버렸다. 그것을 신호로 혈마대 백 명이 단형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단형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검을 뽑았다. 이번 싸움에서 처음으로 검을 뽑은 단형우는 슬쩍 뒤를 쳐다봤다.
조설연, 우문혜, 제갈린이 살짝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들 역시 두려운 것이다. 단형우의 힘이. 하지만 세 여인은 절대 단형우와 혈마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들은 이 싸움을 끝까지 지켜볼 의무가 있었다.
“인혼(人魂)을 보여줄 수 있겠군.”
단형우가 가볍게 검을 찔러 넣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찌르기였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런 강력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타날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단형우를 향해 달려들던 백 명의 혈맏 무사들이 동시에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인혼은 혼을 자르지.”
단형우의 설명에 조설연은 예전 단형우가 검을 보여줄 때 왜 인혼을 펼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인혼은 인간의 경지로 펼칠 수 있는 검법이 아니었다. 사람의 혼을 자르는 검. 영혼조차 소멸시켜 버리는 무서운 검이었다.
세 여인이 단형우의 말을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쓰러진 백 명의 혈마대는 마치 원래부터 혼 자체가 없는 사람들 같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살아 잇었다. 단지 혼이 없는 것뿐이었다.
혼이 없는 사람은 살 수 없다. 이들 역시 조만간 죽음에 이를 것이아.인혼은 너무나 잔인하고 무서운 검이었다.
그녀들이 그렇게 떨고 있을 때, 단형우가 천처히 혈마자를 향해 걸어갔다. 세 여인은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이제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 되었다.
혈마자는 누운 채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기자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 모든 것이 이제 끝났다. 한 사람에 의해. 천기자의 잔재인 단형우 한 사람에 의해서 말이다.
“끄으윽!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고작 천기자의 잔재 따위가……”
단형우는 혈마자 앞에 서서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혈마자는 그런 단형우를 보며 힘없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난 혈마자다. 천기자 따위가 아니야. 절대로, 천기자는…… 천기자는 그저 나와 같은 몸을 썼을 뿐이다.”
단형우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단형우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혈마자는 천기자와 다른 영혼이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천기자와 완전히 똑같은데 다른 느낌을 말이다.
“무려 육십 년을 천기자에게 눌러 암흑 속에서 살아왔다. 육십 년을 암흑에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건지 아냐? 그 절망과 고통의 시간이 무려 육십 년이었단 말이다.”
혈마자의 눈에서 원독이 흘러나왔다.
“육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빛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난 그 빛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점점 내 시간이 늘어났지.”
혈마자의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천기자의 시간은 줄어들었다.
사실 혈마자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암흑 속에서 살아야 했던 것은 천기자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더 갖기 위해 강제로 혈마자를 내면 깊은 곳에 가둬 버린 것이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영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런 강제적인 대법은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대법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천기자는 자신의 시간을 점점 잃어갔다. 대신 혈마자가 그것을 대신했다.
천기자는 혈마자의 증오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을 혈마자가 훔치지 못하게 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혈마자의 야욕을 분쇄할 여러 가지 안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혈마자는 천기자의 기억을 최대한 빼앗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혈마자가 생각한 것이 바로 그림자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능력을 나눠 천기자를 넘어설 생각이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적어도 거의 목적을 이룰 뻔했다. 단형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천기자가 어떤 수를 썼기에 너같은 괴물을 만들어냈는지 말이다.”
혈마자의 말에 단형우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역시 천기자에게 당한 불쌍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말은 해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난 천기자 덕분에 지옥에서 살아야 했다.”
단형우는 지옥에서 십 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 십 년은 실제로는 수백 년을 넘어설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적어도 단형우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곳에서 수백 년을 살아왔다. 내가 느끼기엔.”
혈마자는 단형우의 얘기를 듣고는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핫! 천기자에게 정말로 보기 좋게 당?구나! 그것은 진법이다! 네놈이 지옥에 빠진 것도 다 진법의 환상이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낀 것도 모두 진법이란 말이다! 크하하핫! 난 못하지만 천기자는 할 수 있었지. 그놈은 진법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까. 크하하핫!”
혈마자의 웃음은 단형우의 마음을 흔들었다. 고작 진법에 갇혀서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절대 믿을 수 없었다.
아흔아홉이나 되는 친구들이 모두 그 회색 지옥에서 죽임을 당했다. 고작 진법 안에서 말이다. 단형우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裏?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세 여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말을 모두 믿으실 필요 없어요. 그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에요. 진실이 아닐 거예요.”
사실 진실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있으랴. 어차피 친구들은 죽었고, 단형우는 살아남아 여기 이렇게 서 있는 것을.
혈마자는 웃음을 멈추고 이번에는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문혜를 쳐다봤다.
“이제 끝날 때가 되었군. 모든 것을 잃었으니 나도 더 이상 살아갈 생각이 없다. 그럴 기력도 없고.”
혈마자의 눈빛을 느낀 우문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단형우 뒤로 몸을 숨겼다.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기자의 잔재임을 알면서도 결코 버리지 못했던 하나가 바로 너다. 나와는 다른 영혼으로부터 기인해 태어났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 없었다.”
혈마자의 말에 우문혜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자식들은 모조리 죽였지만 차마 손녀딸을 죽일 수는 없더군. 태어날 때부터 봐왔기 때문인가.”
혈마자의 말에 우문혜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천기자의 손녀라는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리고 절대 그래선 안 되는 일이었다. 천기자와 단형우가 어떤 관계인지 뻔히 아는데, 만일 그렇게 되면 앞으로 자신은 어쩌란 말인가.
혈마자의 미소가 우문혜에게 향했다. 우문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 그만 가라.”
단형우의 말이 이어졌고, 혈마자의 몸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어병? 마치 먼지로 만든 사람이 흩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단형우는 뒤돌아 세 여인을 쳐다봤다. 창백하게 질린 우문혜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조설연과 제갈린이 보였다.
단형우가 손을 뻗어 세 여인의 손을 동시에 움켜쥐었다. 세 여인의 손이 동시에 단형우의 손에 잡혀 은은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 손을 빼지 않았다.
단형우는 우문혜를 바라봤다. 우문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난 상관하지 않는다. 넌 내 가족이다.”
단형우의 말에 우문혜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우문혜의 눈물을 바라보며 단형우가 한 걸음 걸었다.
황량한 벌판에 남은 것은 방금 전에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핏자국뿐이었다.
세상이 뒤집어 지고 있었다. 정천맹의 몰락은 호사가들의 입에 수시로 오르내렸다.
정천맹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구대문파가 움직였기 때문이지만 세상에는 그냥 천마신교와의 싸움이 그 원인이라 알려졌다.
무림맹은 강시들과 처절한 싸움 끝에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무림맹 본단이 예전 그 자리에 다시 세워질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천마신교는 정천맹과 싸운 후, 구대문파와도 일전을 벌였다. 그 결과 결국 삼분지 이가 넘는 인원이 죽고 패해 후퇴했다. 구대문파 역시 커다란 피해를 입었지만 승리했다는 자부심이 그 피해를 잊게 만들었다.
실제로 천마신교는 얻을 것은 모두 얻고 돌아가는 셈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런 내막은 알지 못했다.
천마는 비록 구대문파에 대해 신강을 돌아갔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천마신교의 가장 큰 문제덩어리들을 모조리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천마신교는 좀 더 거대하게 자라날 토대를 만들게 되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마신 단형우가 있게 될 것이다.
무림맹에 반기를 들었더 백여 개의 문파들은 자신들끼리 살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아무리 혈마회의 협박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림맹을 공격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 무림맹이 체계를 정비하면 바로 불똥이 날아들 것이다.
그들은 그들끼리 뭉쳐 새로운 세력을 형성했다. 비록 군소문파에 불과했지만 백 개가 넘는 문파가 하나로 뭉치니 무시하지 못할 힘이 되었다.
게다가 그들이 익힌 무공은 혈마자가 만든 무공이다. 천기자에 비해 절대 모자라지 않는 무공의 천재가 바로 혈마자다.
그런 혈마자의 무공을 익혔으니 문파들의 힘도 강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을 공격할 때도 단형우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백 개가 넘는 문파, 정확히는 백다섯 개의 문파가 모여서 사파를 천명했다. 새로운 사도련의 탄생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원래 정파였지만 이제 더 이상 정파의 이름을 달고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무림맹에 반기를 들고 다른 문파를 공격했을 때부터 벌써 정해진 일이었다.
그렇게 무림의 일이 천천히 정리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허차엥 새로운 장원이 문을 열었다. 그곳은 단씨가 장주로 있는 장원이었다. 하남단가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허창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하남단가는 허창을 비롯해 하남 전역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하남표국을 거느린 가문이었다.
하남단가의 가주가 된 단형우는 장원 뒤뜰에 가만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어둠이 낮을 잡아먹었다.
하늘에 하나 둘 별이 뜨기 시작했다. 이내 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이 들어섰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단형우 뒤로 세 여인이 다가왔다. 이제는 무림에 그 위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삼신녀(三神女)가 된 여인들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조설연의 물음에 단형우가 고개를 내려 그녀를 쳐다봤다.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