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88)
1388화 대단원의 막을 내리다 (2)
초휴의 말이 끝나자 방금까지만 해도 천혼의 뒤에서 거세게 물결치던 황천 혈해가 삽시간에 역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범천에서 넘어온 산하와 사직의 힘과 합쳐져서 천혼을 완전히 에워쌌다.
일단 생사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 세상의 숨 쉬는 생령들은 그 힘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그건 그야말로 무적의 힘, 그것도 진정한 무적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무사가 한꺼번에 덤벼들어 깰 수 없는 난공불락의 힘인 것이다.
단, 살아있는 생령들이 죄다 죽는다면 기운과 생기도 소멸하게 된다. 이는 곧 초휴가 이 힘을 잃게 됨을 의미했다.
“안 돼!”
생사의 힘이 협공을 가하자 천혼이 짐승처럼 노호성을 내질렀다. 무려 오백년 동안 계획해온 일이었다.
그는 독고유아를 대신할 희생양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았고, 급기야 상대를 능가할 수 있기를 꿈꿔왔다.
하지만 온갖 수단을 다 써버린 지금, 막판에 와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꿈꾸고 계획해왔던 모든 것이 처음부터 죄다 틀렸음을 말이다.
생사의 힘이 돌고 돌아 삶과 죽음이 반복되었다. 어느덧 천혼의 몸도 이 천지간에 완전히 소멸하고, 한 가닥 마기만이 남아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초휴가 살짝 손가락을 튕기자, 그마저도 천지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어쩌면 수십년 후쯤 그 누군가가 흩어진 이 마기 가닥을 얻는 기연을 만나, 마교 교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마기가 어디로 향할지, 누가 차지하게 될지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독고유아가 초탈한 후, 그가 차지했던 다섯 세상의 힘 모두가 제각기 원래 속했었던 세상으로 환원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마기 가닥도 언젠간 자기가 원래 속했던 이 세상으로 되돌아오지 않겠는가.
다들 숨이 멎을 것 같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서서히 표정이 풀어지더니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영현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백년 동안이나 치열히도 싸워 왔건만, 이른바 대겁난이라는 것이, 소위 대쟁지세라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독고유아가 너저분하게 남겨 놓은 유물들의 잔재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그와 반평생에 걸쳐 싸워온 영현기조차 자기가 독고유아보다 절대적으로 못한 존재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휴의 시선이 도존을 향했다. 그러자 그는 주천성신대진을 맹성하에게 돌려주더니, 차분하기 그지없는 몸짓으로 초휴에게 예를 올리는 게 아닌가.
“초 교주, 드디어 정상에 오르셨구려. 대인도 패했고 나도 패했소. 하지만 이번 일에는 나 혼자만 연루되었을 뿐, 삼청전은 절대 무고하오. 빈도는 스스로 무공을 폐하고 목숨도 끊을 것이니, 부디 삼청전의 명맥만은 끊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리외다.”
상대가 보여준 차원이 다른 힘 앞에서 도존은 감히 반항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먼 옛날 소싯적, 단순히 지난날 대라천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다는 존재가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에서 영소종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물론 그 길은 도존 스스로 택한 것이었다. 그는 훗날 언젠가 천혼이 성공하여 자기를 데리고 진정한 정상에 오를 날을 고대해왔고, 그런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바람은 물거품이 되고 종국에 가서 참담하게 패배한 것이다. 하지만 도존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어차피 패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좀 더 품격 있고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그래야 삼청전의 명맥이 유지될 가능성이 조금 더 커질 테니까.
초휴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죽은 사람 수만도 이미 차고 넘칩니다. 구중천의 절정급 실력자가 하필 이렇게 어수선할 때 목숨을 끊는다면 우리로서도 손실이 큰 셈이오. 마침 대라천과 하계를 잇는 통로를 지킬 사람이 필요하니, 도존이 천수를 다하고 입적할 때까지 입구를 지켜주면 좋겠군요. 단, 입구 밖으로는 평생 나올 수 없다는 조건이오.”
도존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초휴를 향해 대례를 올렸다.
“초 교주, 고맙소이다.”
그런데 이때 종신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그대도 정상을 밟았으니, 응당 거기도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소?”
“어디를 말입니까?”
초휴가 의아하여 묻자 종신수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답했다.
“자재천, 혹은 그대들이 장생천이라 부르는 곳!”
이에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생천이라니! 정말로 장생천이 있었단 말인가?!
종신수가 놀람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장생천은 그대들의 상상과는 사뭇 다른 곳이오. 다른 사람들은 들어갈 수도 없지만, 초휴라면 가능하지.”
말을 맺은 그는 영현기를 돌아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대도 가능하고.”
“그 장생천이라는 곳이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초휴는 그저 호기심에서 물었다.
초휴는 장생천에 꼭 가보고 싶다는 열망 같은 건 없었다. 이 경지에 이르고 보니, 그의 눈에는 웬만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그토록 갈구하는 장생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종신수가 미간에서 빛살을 쏘아내어 공간의 문 하나를 열었다. 혼돈의 기운이 충만한 문이었다.
“여기가 바로, 장생천이오.”
말과 함께 종신수가 그 안으로 성큼 발을 내디뎠다.
초휴와 영현기 또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지금 초휴의 실력으로 이 세상에 두려울 게 무에 있겠는가.
하지만 막상 진정한 장생천이 눈 앞에 펼쳐지자 초휴는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가 여태 상상해온 장생천은 신선이 사는 선계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그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사람 누구나 으레 그리 상상할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정적만이 짙게 깔린 세상이었다.
아무런 생기도 감지되지 않았다. 물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의심될 정도로 메마른 모습이 아닌가.
어쩌다 간혹 무너진 가옥 같은 거나 보일 뿐, 눈길이 미치는 족족 회백색 바위와 봉우리가 전부였다.
급기야 장생천 어디에도 음양오행과 같은 기본적인 원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바람인들 불겠는가.
한마디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고요하기만 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초휴는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 회백색 민둥산이 낯익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종신수가 황천천을 봉쇄하느라 옮겨왔던 그런 산이 아닌가.
“여기가, 장생천이 맞습니까?”
종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생천이야말로 다섯 세상의 시초니까. 이곳은 진정으로 선인들이 존재하는 곳이오. 수명이 천년만년에 달하고, 무선이라 해도 장생천에서는 그저 수련의 시작단계일 뿐이오. 원래는, 그랬소.”
영현기가 여전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그런데 장생천이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소?”
“절제할 줄 몰랐기 때문이오.”
종신수가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선인들이 절제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이 세상 산하의 기운을 빼앗았소. 산하의 기운이 점차 쇠약해지더니 결국 고갈되다시피 하고 말았지. 역설적이게도, 선인들이 자신의 장생을 위해 장생천을 희생시킨 셈이 되었소.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이 모습이오. 이 세상의 기운이 쇠망함에 따라, 이곳을 그리 만든 책임이 있는 선인들 모두가 그 인과를 떠안게 되었소. 그들 중에는 독고유아처럼 세상과의 연계를 끊어낼 수 있는 자도 없었소. 그러니 어쩌겠소. 선인들도 장생천과 더불어 자멸할 수밖에. 장생천이 멸망할 당시 흘러나온 힘이 다른 네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이오. 다만, 그 어느 세상도 완전하지는 못했지. 그게 바로 인간들이 상고 대겁난을 겪어야만 했던 이유요. 죽음의 기운만을 골라 흡수할 황천천이 따로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그러면 당신은······?”
초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종신수를 바라보았다. 선인들이 모두 죽었다면, 그는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나는 인간이 아니오.”
종신수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장생천 최후의 선황(仙皇)께서 장생천에 마지막 남은 힘을 이용해 응집해낸 생령이오. 다른 네 세상에서 인과가 정상적으로 흘러가도록 감독하고 있소이다. 나머지 세상의 인간들이 장생천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오. 하지만 이미 인과의 흐름이 엉망으로 교란되고 말았소. 초휴, 이제 그대는 세 개 세상의 인과를, 영현기는 반 개 세상의 인과를 바꿀 능력을 갖추게 되었소. 그래서 내가 그대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오. 오늘 이후로 삼계(三界)의 인과가 어찌 흘러갈지는 나도 장담하기 어렵소. 전적으로 그대의 선택에 달린 셈이지.”
초휴가 영현기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게나. 오늘부로 나는 완전히 세상사로부터 손을 뗄 참이니까!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단 끝까지 가본 다음에 다시 생각해볼 걸세. 그러는 자네는 어쩔 계획인가? 독고유아처럼 초탈을 추구하러 다른 세상으로 갈 건가, 아니면 계속 여기에 남을 건가?”
다른 세상으로 갈 거냐고?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전생이었노라 착각했던 그 세상도 어딘가에 정말로 존재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거기서의 삶이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내 힘의 원천이 바로 이 세상인데 어딜 또 간단 말입니까? 지금 양계 모두가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일단 손을 좀 보긴 해야겠죠. 다른 건 그다음에나 생각할 겁니다.”
“엉? 뭘 어쩌려고?”
영현기의 물음에 초휴가 자신의 발치를 가리켰다.
“장생천의 사례를 똑똑히 보았지 않습니까. 절제하지 않으면 우리의 후대에 정말로 이 꼴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대라천을 다시 봉쇄해서 양계 간 힘의 균형부터 도로 맞춰야 할 테지요. 동일 종문이 양계 모두에서 전승을 이어가는 거야 상관없습니다. 단, 하계 무사들은 진단경까지만 수련하고, 일단 진화련신을 돌파하면 반드시 대라천으로 넘어가 수련을 이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도존이 거기서 문만 지키고 있는 것도 실력 낭비일 테지요. 하계 무사들이 대라천으로 도약해 날아오르는 걸 감독하고, 대라천 강자들이 마구잡이로 하계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을 맡길 생각입니다.”
영현기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약해 날아오르다······. 그것 참 재밌는 표현이고 괜찮은 발상이군그래. 그나저나 이 도야는 출가해서 후손도 없는데 후대 씨 마를 걱정까지 하게 생겼구먼. 보아하니 자네 사정도 나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데, 후대 걱정이 많기도 하군. 오지랖도 참.”
초휴가 웃었다.
“사람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고는 종신수에게 물었다.
“그러면 어르신은 앞으로 무얼 하실 건지요?”
그가 답했다.
“이제 내가 인과를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진정한 ‘인간’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오. 내 생각과 감정이라곤 없이 머릿속에 세상의 온갖 인과 걱정만 잔뜩 들어차 있는 삶은 이제 벗어나 볼까 싶소. 시시각각 인과의 균형을 맞춰야만 하는 강박감에 늘 시달리다 보니 툭하면 길을 잃었던 게지. 이제 그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생명체의 기척 하나 들려오지 않는 장생천을 바라보던 초휴가 들어왔던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그 너머로 한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이만 가십시다. 대쟁지세는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끝이 났으니 이제 신기원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