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12
112
第二十三章 인화시(引火柴) (2)
“아!”
“으음!”
탄식과 깊은 신음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검왕만은 어떤 대책이 있겠지!
상대가 혈루마옥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설마 개죽음을 자초한 것은 아니겠지.
모든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검왕이 혈영마공을 끝없이 피워 올릴 때만 해도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검왕의 기세는 십마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백 장 바위가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굉렬함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인간이 받아낼 수 없는 기세!
검왕과 수월화가 내공대결을 벌일 때도 검왕이 유리하다고 봤다.
여인을 얕보는 것이 아니다. 혈루마옥 무공은 유지자문 고수들조차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정통 내공 대결을 벌인다면 아마도 검왕이 조금은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검왕이 밀렸다.
한순간에, 눈 깜짝할 순간에 승부가 결정지어졌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검왕이 패했다. 부언이 필요 없다. 완벽하게 패했다.
검왕이 죽었다.
둘이 싸워서 한 사람이 죽었다.
이것보다 더 완벽한 패배는 있을 수 없다.
“우리…… 왜 온 거지?”
백화요녀가 중얼거렸다.
검왕이 저렇게 나가떨어지는 판국인데, 그들이 무엇을 어찌하겠는가. 유지자문 고수들이 죽고, 적벽검문이 초토화되었는데, 그들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그들은 수월화를 건드리지 못했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혈루마옥의 무공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암울했다.
검왕이 전개한 무공을 안다.
혈영마공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폭멸이다. 말 그대로 폭멸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발악이다. 폭멸을 전개하면 방원 십 장이 초토화된다는 것도 안다.
실제로 싸움터 주변은 난장판이다. 풀뿌리가 뽑혀 올랐고,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갔다.
경력이 폭발한 흔적은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헌데 여인은, 수월화는 손톱만 한 상처도 입지 않았다. 하다못해 긁힌 흔적조차도 없다.
이런 여인을, 혈루마옥을 무슨 수로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폭멸을 펼칠지 못한다. 폭멸만한 무공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 무공이 검왕에게 꺾였다. 폭멸을 펼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정녕 할 것이 없다.
십마…… 무림 위에 우뚝 선 최고 고수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문득, 비형은잠이 중얼거렸다.
“말귀를 알아들을지 모르겠지만…… 난 검성으로 가보겠소. 검성주는 합리적인 사람이고…… 그나마 내가 검성과는 조금 자유롭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오늘 일을 있는 그대로, 목격한 그대로 말할 생각이다.
검성보고 나서서 싸워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게 아니다. 솔직히 검성에게 그만한 힘이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적벽검문이 무너졌다. 유지오혼이 꺾였다.
솔직히 말해서 당금 무림 어떤 문파도 혈루마옥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도 말은 해줘야 할 것 같다.
검성이 어찌 대응할지 알 바는 아니되,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알려줘야 할 것 같다.
검왕이 그 일을 부탁한 것인가?
사실을 알아도 뾰족한 수단이 없지만, 그래도 알기는 해야 한다는 말인가.
십마는 비로소 자신들이 할 일을 알았다.
십조잔괴가 말했다.
“내가 혈천성으로 가지. 혈천성주도 내 말에는 귀를 기울여 주는 편이니까.”
“껄끄럽기는 한데…… 내가 소림으로 가지.”
흑포사추가 말했다.
구파일방과 십마의 관계는 검성과의 관계처럼 매우 좋지 않다. 서로 눈에 띄기만 하면 어떻게든 사달을 내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관계라고나 할까?
십마와 구파일방은 물과 기름이다.
그런 곳으로 자진해서 찾아간다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다.
흑포사추가 구파일방 중에서도 태산북두라고 일컬어지는 소림사로 가겠단다.
강신천마가 말했다.
“하오문 쪽은 내가 맡지. 그놈들 미천하기는 하지만…… 세력이 무척 넓어서 도움이 될 거야.”
“고집불통들이 말귀를 알아들을까?”
십조잔괴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알아듣도록 말해보고,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면…… 제길! 난들 뭔 수가 있나.”
강신천마가 고개를 내둘렀다.
그들은 하오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하오문 문도들이라고 판단되면 수족 부리듯이 부려 먹었다.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면 두들겨 팬다. 때로는 죽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오문이 십마에게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다. 그들 개개인은 두들겨 맞고, 때로는 죽임을 당하지만 하오문 자체는 여전히 십마와 거리를 두고 있다.
강신천마는 하오문 본단을 찾아갈 생각이다.
하오문 본단은 비밀 중의 비밀이라서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는 알고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예전 같으면 무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혈루마옥 사건은 무력이 필요 없다. 그가 조언하는 말이래 봐야 조심하라는 말밖에 더 되지 않을 테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말을 듣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셈이다.
그저 조심하라고 주의만 주면 된다.
검왕이 그들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가 정녕 이것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중원 천하를 떠도는 일뿐이다.
그들은 검왕에게 일별을 던졌다.
검왕의 시신을 안장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검왕에게는 사람이 있다.
그는 십마보다도 쓸모없는 누강과 음사를 데리고 왔다.
아마도 그들에게 뒤처리를 부탁한 것일 게다. 말은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먼저 가오!”
쉬익!
십조잔괴가 먼저 신형을 띄웠다.
“같이 가. 방향이 같으니까. 난 개방(丐幫)이야!”
백화요녀가 십조잔괴를 뒤쫓아 신형을 쏘아냈다.
“사숙!”
누강은 발이 얼어붙었다.
검왕이…… 검왕이 죽다니!
밀지가 백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맥없이 무너질 줄이야.
“숙부! 아냐, 이건 꿈이야!”
그는 검왕이 죽었다고 믿을 수 없었다.
허나 확실하게 죽었다. 혈루마옥 여인이 직접 검왕의 시신을 살펴보기까지 했다. 죽음을 확실히 확인했다. 그러니 기적을 바랄 수도 없다.
그런데도 누강은 검왕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는 신중한 사람과 급진적인 사람이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사람과 누가 봐도 썩은 다리일망정 건널 수 있을 것 같기만 하면 무작정 건너고 보는 사람이 있다.
성격 차이라고 한다.
헌데 그 성격 차이…… 정말 성격 차이 때문에 그런 습성이 나타나는 것일까?
단언하건대 한 치 앞이라도 볼 수 있다면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는 성격은 사라질 것이다.
검왕은 양쪽 모두다.
돌다리를 두들겨 볼 정도로 신중하고, 티끌만 한 희망만 있어도 앞으로 돌진한다.
어떤 때는 신중하고, 어떤 때는 무모하다.
하지만 이 양쪽 모두…… 어느 쪽을 택할 때라도 검왕이 선택했다면 맞다. 무모해 보이는 일이라고 해도 검왕이 달려들면 반드시 성사된다.
검왕이 한 치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도 인간인 이상 앞날은 보지 못한다.
검왕은 신중하다. 매우 신중하다. 하지만 그가 신중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직 주변에 있는 몇몇 사람만이 검왕도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
신중함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생각하는 시간이 짧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그의 뛰어난 머리에서 기인한다.
다른 사람이 십 일 동안 숙고할 문제도 검왕이 생각하면 순식간에 파헤친다.
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혜지는 무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도 그런 머리가 작동된다.
그런 혜지는 그를 젊은 나이에 검왕의 위치까지 올려놓았다.
여기서 나온 특징이 생각 없는 무모함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생각이란 것이 없이 무작정 돌진하기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다. 사실은 이미 생각을 끝내고 방향을 정한 상태인데.
“간다!”
“안됩니다. 무모합니다.”
“너, 빠져.”
과거, 검왕이 검성에 있을 때 자주 있었던 대화다.
그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바늘구멍조차 없어 보여도 반드시 뚫고 나간다.
이것 역시 뛰어난 머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머리가 뛰어나니까 아무도 보지 못하는 구멍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하다 싶은 구멍을 찾아냈으니 자신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검왕은 구멍을 봤다. 어떤 구멍인지 모르겠지만,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찾았다. 그래서 모두가 무모하게 생각한 싸움조차도 한 것이다.
헌데 그가 죽었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검왕의 죽음 역시 예정된 수순 속에 들어있는 게 아닐까?
누강은 검왕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쉬이익!
그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신형을 쏘아냈다.
아직 여인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겨우 몇 걸음 정도 움직였을 뿐이다. 허나 그는 신형을 쏘아냈다. 저 여자들이 뒤돌아서서 그를 가격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숙부!”
누강은 검왕을 꼭 끌어안았다.
검왕은 확실하게 죽었다.
검왕의 애검이 그의 심장에 꽂혀있다. 뿐만 아니라 백회혈(百會穴)에도 흑색 장인(掌印)이 뚜렷하게 찍혀 있다.
장인은 아마도 검왕을 살폈던 시녀가 찍었을 게다.
“주, 죽었습니까?”
뒤늦게 달려온 음사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누강은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확실한 죽음이기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쭈욱!
누강은 검왕의 몸에서 장검을 뽑아냈다.
순간,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쭈욱 뻗어 나갔다.
숨결이 조금이라도 붙어있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게다. 출혈이 심해서 죽을 수도 있고, 검을 뽑으면서 오히려 장기를 손상할 우려도 있다.
정말로 아주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털썩!
음사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래도 시신을 부둥켜안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다. 숨은 붙어있겠거니, 무슨 다른 방도가 있겠거니.
제길! 방도는 무슨!
누강과 음사는 검왕을 부둥켜안고 앉아있었다. 일어날 힘도, 무엇을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 * *
보고가 들어왔다.
“검왕이…… 죽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왕은 예전에도 죽은 적이 있다. 하지만 혈천성의 사술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혹,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돕지 않을까?
“십마는?”
십마 정도가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두 물러갔습니다.”
“한 명 남김없이?”
“한 명 빠짐없이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이놈 이거…… 뭐하는 짓인가?”
그는 손으로 미간을 짚었다.
검왕이 무슨 짓을 벌인 것 같은데, 괜히 개죽음을 당한 것 같지는 않은데…….
혈루마옥의 촌장, 그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검왕과 유지오혼은 완벽하게 개죽음을 당했다. 아니, 개죽음을 자초했다. 그들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 싸움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뭔가? 무슨 수작을 벌인 것인가?
“검왕, 확실히 죽었나?”
그는 몇 번을 물어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올 물음을 다시 던졌다.
“죽었습니다.”
대답은 역시 같았다.
“후후후! 후후후후!”
촌장은 웃었다.
“만약…… 만약…… 우리가 다시 이 척박한 곳으로 쫓겨 들어온다면…… 오늘 이 일 때문일 거야. 검왕이 죽었다는 것…… 후후후!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죽음은 없는 법이지. 검왕의 죽음. 반드시 이유가 있을 텐데…….”
촌장의 미간은 더욱 깊게 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