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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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五章 은검(隱劍) (1)
혈루마옥은 절곡이다.
산을 잘 타는 사람도 쉽게 넘을 수 없는 큰 산이 버티고 있고, 큰 산에서 오른팔, 왼팔처럼 지맥이 갈라져 나와서 좌우로 쭉 늘어선다.
대산(大山)과 좌청룡, 우백호.
좌청룡, 우백호는 쭉 뻗어 나가다가 안으로 오므라들어서 산자락 부분이 맞붙는다.
혈루마옥은 이 두 지맥 사이에 위치한다.
조금 더 사실적으로 말한다면 산자락 끝 부분이 완전히 달라붙었다면 완전한 분지 형태가 된다.
한쪽 끝이 열려 있을 뿐, 분지 안에 위치한 셈이다.
혈루마옥으로 들어서는 길은 오직 한 곳, 좌청룡과 우백호가 맞닿는 협로(狹路)뿐이다.
협로를 통해서 안으로 들어서면 혈루마옥이다.
높은 산들이 좌우로 쭉 늘어선 절곡 전체가 혈루마옥이다.
혈루마옥 사람들이 알고 있던 자신들의 터전은 이 정도에 불과하다.
허나 혈루마옥을 벗어나면, 절곡의 저주를 풀고 협로를 뚫으면…… 자신들이 첩첩산중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산과 좌청룡, 우백호가 겹겹이 쌓인 산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혈루마옥 사람들은 산등성이로 올라서지 못한다. 좌측으로도, 우측으로도, 대산 주봉(主峯) 쪽으로도 올라가지 못한다. 올라가면 죽는다.
산을 벗어나지 못한다.
바깥 세상으로 향하는 문은 오직 협로뿐이다.
그것을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어낸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주를 풀었다고는 하지만 마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협로 쪽뿐이다. 산등성이를 넘으려던 자는 모두 절명했다.
왜 죽는가?
그 이유는 모른다. 어떻게 죽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대책을 세울 텐데, 이유조차도 모른다. 그저 허수아비처럼 픽 쓰러지면 그만이다.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외인은 산을 넘어올 수 있다.
산등성이를 넘어서 혈루마옥 안으로 들어선다. 과거, 혈루마옥에 도전했던 유지자문 고수들이 그런 식으로 침입해서 싸움을 시도했다. 물론 돌아갈 길은 없지만.
지금도 혈루마옥의 저주는 지속되고 있다.
혈루마옥 사람들은 산등성이를 넘어가지 않는다. 혈루마옥 사람들이 넘어갈 수 없는 경계선을 알았고, 딱 그 선에서 멈춘다. 정확히 어느 선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으로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혈루마옥 제일의 무인에게도 혈루마옥의 저주는 불어닥치고, 피하지 못한다.
외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산을 넘어올 수 있다. 하지만 위험지역 안으로 들어서면 언제 혈루마옥의 저주를 품게 될지 알지 못한다. 어느 순간에 불현듯 저주를 동반한다. 안으로는 들어섰지만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외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무작정 들어서는 사람도 꽤 있다.
촌장이 산등성이에 섰다.
그는 어느 사람처럼 위험지역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위험지역 바깥에서 발을 멈추고 계곡을 쳐다보면 혈루마옥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은 텅 빈 듯 조용하다.
많은 사람들이 중원으로 빠져나간 탓이겠지만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폐촌 같다.
“조용하니 좋군.”
촌장이 웃음기 띤 얼굴로 말했다.
“좋다는 말은 여러 차례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볼 수 없으니 섭섭해요.”
산등성이 반대쪽에서 찰랑찰랑 물방울 튀기는 듯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네도 왔는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번에는 낮게 깔린 저음이다.
“그래, 오랜만이야.”
촌장은 널찍한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 옆구리에 찔러넣은 호로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커어!”
촌장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여전히 화주(火酒)만 드시네요.”
“냄새가 풍기나?”
“독한 냄새만 풍겨요.”
“이 맛에 들리면…… 후후! 이것보다 좋은 술은 없는 법이지. 깔끔하고, 취기 빨리 돌고, 싸고.”
“좋은 술을 가져온다면서 늘 깜빡깜빡해요.”
“바쁘게 살다보면 다 그런 거지. 어때? 검왕이 죽었나?”
촌장이 부지불식간에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검왕은 죽었다. 온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헌데 그 사실을 묻는다.
“…….”
대답이 없다.
“확신을 못하는가?”
“네.”
여인이 힘들게 대답했다.
여인의 대답도 엉뚱하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확신할 수 없단다.
“우리 쪽에서는 검왕의 시신을 확인했는데 말이야.”
“저희도 확인했어요.”
“그래? 언제 어떻게?”
촌장이 관심 있는 듯 급하게 물었다.
“시신이 파헤쳐진지 하루쯤 뒤에요. 아마 저희보다 하루 먼저 확인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럼 부패된 시신만 봤겠군.”
“전 검왕을 알아요.”
“그렇지. 자네가 가장 잘 알겠지. 그래, 자네 의견은 어떤가? 검왕이 맞던가?”
“몸은 검왕이에요.”
“몸은 검왕이라…… 묘한 말이군.”
“몸에 난 상처, 손상된 뼈. 모두 검왕이에요. 시신을 보자마자 검왕이라는 느낌도 들었고요.”
“헌데?”
“검왕이 죽을 리 없어요.”
여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검왕에게 손을 쓴 사람은 증평이다. 증평의 손속은 싸늘하지. 얼음처럼 차. 실수란 기대하기 어렵지.”
“맞아요. 검왕은 틀림없이 죽었어요.”
“헌데도 그 시신이 검왕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시신은 분명히 검왕인데…… 검왕이 죽을 이유가 없어요. 그 이유가 하나라고 생각된다면 미련을 버리겠지만, 죄송하지만 제게는 어떤 이유도 닿지 않아요.”
“그런가? 검왕은 죽었는데, 죽을 이유가 없으니 죽었다고 단정하지 못한다. 이 말이군.”
“네.”
벌컥! 벌컥!
촌장을 호로병을 들어 술을 들이켰다.
“누미는 어때요?”
이번에는 여인이 말을 건네왔다.
“잘하고 있네.”
“욕심이 대단하죠?”
“그럴 만한 재능이 있으니까. 아직까지는 분에 넘친 욕심은 부리지 않아.”
“곧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겠군요.”
촌장은 여인이 옆에 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장은 아닐 거야. 경고를 해놨으니…… 똑똑한 여자가 위협을 못 알아들을까.”
“위협까지 하셨어요? 상당히 마음에 드셨나봐요?”
“욕심만 안 부리면 참 좋을 텐데. 쯧!”
촌장이 아쉬운 듯 탄식했다.
그동안 여인과 같이 온 사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그 자리에 없는 듯, 두 사람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숨까지 죽였다.
“절 부르신 건……?”
여인이 용건을 물었다.
“성주를 쳐야겠어.”
“네.”
여인은 예상했다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검왕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하고.”
“네.”
“검성은 자네 힘만으로 무너트려야 돼. 거기에 이곳 사람들이 가세하지는 않을 게야.”
“염려마세요.”
“됐네.”
촌장은 검성을 무너트린다는 말을 아주 대수롭지 않게 했다. 그리고 여인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촌장은 할 말을 마친 듯 바위에서 일어섰다.
“다음에는 중원에서 보도록 하지. 자네가 권하는 술이 어떤 술인지 꼭 마셔보고 싶군. 허허허!”
촌장이 떠났어도 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검왕은 죽었어.’
몇 번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묘한 불안감이 싹터오른다.
그 점은 촌장도 마찬가지다.
촌장이 아직까지 혈루마옥에서 몸을 빼지 않은 것은 혹여 검왕이 생존했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검왕은 유지자문을 너무 쉽게 내줬다.
중원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적벽검문도 싱겁게 내줬다.
물론 이쪽 피해도 만만치 않다. 적벽검문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유지자문이 완전히 몰락한 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유지자문에서 죽은 사람은 유지오혼뿐이다.
비록 그들이 유지자문 최대 고수들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유지자문은 건재하다. 물론 그들이 당장 튀어나온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지만.
문제는…… 아무도 모르는 검왕의 힘이다.
검왕은 그녀와 혈루마옥의 밀통 사실을 알고 검성을 떠났다.
당시의 그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검성주가 사실을 인지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 그가 마공관에 있었다.
마공관의 마서들은 손상되지 않았다. 아무도 마서를 열람하지 않았다. 열람한 흔적은커녕 지난 세월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먼지만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는 마공관의 마서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그녀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검왕은 마공을 운용한다.
혈영마공을 사용했다.
말도 안 되게…… 산적 나부랭이들을 모아서 마신천강을 전수했다.
강남제일미녀라고 일컬어지던 유화아에게는 투살진기라는 마공을 쥐어주었다.
마공관의 마서를 환히 꿰뚫고 있다는 증거다.
음악오귀나 유화아 정도는 무엇을 배우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이 유지자문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급성장했다고 해도 코웃음만 흘린다.
화천이 괜히 중원에 나왔겠나?
아니다. 혈루마옥 촌장이 누미를 받아내기 위해서 일부러 내보낸 것이다. 혈루마옥의 모든 의술을 총동원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저주를 풀어서.
누미가 괜히 누강의 눈에 띈 것 같나?
아니다. 그녀가 누미를 던진 것이다. 누강의 눈에 띄도록. 적벽검문의 실체도 파악해내고, 검왕의 반응도 보기 위해서. 결국은 혈루마옥 손에 들어갈 것을 알면서.
검왕이 마공관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누미는 결코 누강 눈에 띄지 않았을 게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가 직접 누미를 혈루마옥으로 들여보냈다.
화천이 직접 나오는 것을 감수하면서, 누미가 누강의 제자가 되는 번거로움을 겪으면서…… 차근차근히 일을 진행시킨 것은 검왕이 마공관에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검왕은 어떻게 해서 마공관의 마서를 수련했을까?
원래는 검왕을 이토록 중시하지 않았다. 검왕의 존재는 겨우 십마 정도에 불과했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자, 그게 검왕이다.
헌데 바뀌었다. 그가 마공관에 은거해 있다는 사실을 하는 순간부터 모든 게 바뀌었다.
마공관은 현음자의 안배가 깔린 곳이다.
동서고금 전대후무한 건축기관학의 대가인 현음자가 마공관을 열려는 사람을 위해서 안배한 것이 있다.
마공관을 열려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한 부류는 마인으로 마공관의 마서를 이용하여 천하를 피로 물들이려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죽음을 내린다.
마공관의 기관진학에는 죽음이 준비되어 있다.
또 하나는 마공관을 만든 목적 그대로…… 후일, 엄청난 마인이 나타나서 마공관의 마서를 이용해야 할 때이다. 마공관의 마서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마공관을 열려는 사람이 나타날 때…… 그런 사람을 위해서 도움을 마련했다.
이 뒷부분…… 현음자가 후인을 위해서 도움을 남겼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검왕이 그 도움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검왕은 무시한다. 허나 현음자는 무시할 수 없다. 현음자가 마련한 안배라면 천하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누미를 던진 것이다. 검왕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검왕이라면 누미를 알아볼 것이다. 그녀가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 수 있으리란 것을.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
검왕은 죽었고, 그가 마련한 안배도 모두 깨졌다.
유지오혼이 죽었고, 적벽검문이 멸문했고, 누산은 사막에서도 쫓기고 있다.
혈루마옥은 건재하다. 천하를 휩쓴다.
검왕은 죽었다.
그런데 왜 이리 불안한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깊은 한숨을 불어쉬었다.
“휴우! 그래, 검왕은 죽었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