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37
137
第二十八章 구중옥(九重獄) (2)
밥을 지어 먹고, 잠을 자고, 또 밥을 지어 먹는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늘어지게 잠만 자도 무방하다.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한 사내가 바위 위에 앉아서 돌부처처럼 건너편 벼랑을 쳐다본다.
운공조식을 취하는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쳐다보다가 식사 때가 되면 슬그머니 일어나서 밥을 짓는다.
사내는 밥을 잘 짓는다.
사내가 지은 밥에는 기름기가 자르르 흘러서 보기만 해도 군침이 삼켜진다.
반찬이 특별할 필요도 없다.
조용한 곳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 데도 기쁨이 일어난다.
일상(日常)이 고요하면 무료해진다.
무료는 지루함으로 표시되고, 지루함은 잠을 불러온다. 또는 따분함을 일으킨다.
사람은 고요함에 익숙하지 못하다.
허나 무인들은 고요함에 익숙하다. 운공조식을 취하는 동안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내면 깊이 내려간다. 바깥세상을 차단한 채 자신만 본다.
운공조식을 깊이 할 줄 아는 무인은 이미 선승(禪僧)이며, 도인(道人)이다. 최소한 육신을 잊어버리는 초선정(初禪定)에는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지는 운공을 풀어버린 후에도 지속된다.
내공이 깊은 사람은 단지 힘만 센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안다.
칼날이 얼굴을 내리쳐도 눈을 감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볼 수 있는 정력은 그렇게 생긴다.
사내는 그런 정력으로 고요함을 기쁨으로 만든다.
사내를 지켜보는 여인도 그만한 정력이 있기에 끝없는 나른함을 기쁨으로 승화시킨다.
할 일도 없고, 고요함만 끝없이 이어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컹! 컹! 컹!
황소만 하게 큰 개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발버둥 치면서 으르렁거린다.
“으……!”
개 줄을 잡고 있는 자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뒤를 쳐다봤다.
“됐다.”
마군이 차게 말했다.
기린산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냈다.
사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천험의 험지.
사람이 들어가기 싫어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곳.
컹컹! 컹!
개가 절벽을 향해 짖는다.
이곳이다. 이곳으로 검왕과 증평주가 지나갔다.
마군은 절벽을 살폈다.
굉장히 험하고, 길이라는 것이 있나 싶지만…… 굳이 가자고 하면 가지 못할 것도 없다.
“됐다. 이제 물러들 가라.”
마군은 수하들을 뒤로 물렸다.
눈앞에 놓인 절벽 길은…… 가고자 하면 가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오직 마군 혼자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수하들 중에서 이 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수만 부르는 길…….’
마군은 검미를 꿈틀거렸다.
왠지 모르지만 이 길에 흥미가 생긴다. 오직 그만이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적어도 마군 정도는 되는 자들만 건너라는 길이기 때문에 흥미가 생긴다.
그에게 떨어진 명령은 누산을 잡는 일이다.
허나 누산은 없다. 기린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누산은커녕 사람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오직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은 이곳뿐이다.
개가 짖지 않았나. 사람 냄새를 맡았다고. 사람이 이 길로 들어섰다고.
여기서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누산이 이 길로 갔을 수도 있다. 아니면 검왕과 증평주가 갔을 수도 있다. 또 그들 모두가 이 길을 통해서 저 안쪽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
마군은 오직 두 번째만 생각했다.
누산은 이곳에 없다. 오직 검왕과 증평주만 있다.
개가 검왕의 냄새에 반응했다고 해서 하는 생각이 아니다. 그의 직감이 그렇게 말한다.
“성주님께 전갈을 띄워라. 명을 받들지 못하겠다고.”
“마군!”
수하들은 이미 뒤로 물러섰다. 마군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물러섰다. 헌데도 마군의 등 뒤에서 꾹꾹 눌러 짜는 듯한 음성이 싸늘하게 들려온다.
“누산은 네가 찾든가.”
“마군!”
“난 이 길로 간다.”
“…….”
이제는 마군을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한참 만에 약간은 정리된 듯 차분해진 음성이 들렸다.
“이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틀림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보여. 그래서 가겠다는 거다.”
“마군!”
“일단 성주님께 전갈을 띄우고…… 누산은 찾지 못했다고 해. 검왕과 증평주만 찾았다고. 누산이 저 안에 있는지는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내 생각이 맞을 거야.”
“알겠습니다. 누산은 없었다고 보고하겠습니다.”
“넌 남아서 누산을 계속 찾아.”
“그래야겠죠.”
“후후!”
마군은 가늘게 웃었다.
적어도 마군 정도 이상이 되는 고수만 건너라는 절벽 길이 그를 유혹한다.
쉬이익!
마군은 절벽을 향해 신형을 쏘아냈다.
한 사람이 생각한 것은 다른 사람도 생각할 수 있다.
마군이 찾은 곳, 다른 사람도 찾았다.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
사내가 뜻밖의 말을 했다.
“들어가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그래. 안 들어간다.”
“음!”
사내에게 물은 자가 오히려 당황한 듯 침음성을 토해냈다.
절벽 길은 고수를 부른다. 절벽 길을 건널 수 있을 만한 무공과 내공이 있는 자들…… 그들은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당연히.
헌데 사내는 그런 부름을 무시한다.
“건너가 보고 싶은 게냐?”
“네. 건너가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건너가자.”
“…….”
대답은 없다.
수하들은 녹천주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
그들은 절벽 너머에서 벌어질 살육을 예상한다. 고수들을 불러서 무엇을 하겠는가. 죽이기밖에 더하겠는가. 모조리 죽을 수밖에 없는 방법을 사용할 테지.
녹천주는 모든 살육이 끝난 후에 저곳을 들어갈 볼 셈이다.
이것은 강자가 원하는 게 아니다.
강자들은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점에는 관심이 없다. 절벽 길을 넘을 수 있을 만큼 고강한 자들을 모아놓고 어떤 식으로 죽일 것인가가 궁금한 것이다.
강자들은 살상대상이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 어떤 식으로 죽이려고 할 것이냐가 궁금할 뿐이지 자신의 죽음은 신경 쓰지 않는다.
강자존(强者存), 이것이 무림이다.
약한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 패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강자가 나타나서 검을 들이대면 약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강자들은 절벽 길 너머에서 벌어질 살육 현장을 보고 싶어한다.
녹천주도 수하들의 마음을 안다.
녹천주의 수하들 중에는 절벽 길을 넘을 수 있는 자가 적어도 십여 명은 넘는다.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자들 중에서만 골라도 그 정도는 된다.
십여 명…… 많은가?
절대 많지 않다. 이 십여 명이 중원 무림을 쓰러트릴 병기들이니 절대로 많지 않다.
그들은 절벽 길을 넘어서고 싶어한다.
녹천주라고 강자들의 마음을 모를까. 하지만 그는 또 다른 것도 짐작한다. 이번 한 번만 눈 찔끔 감고 참으면 창창한 앞날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도.
그가 절벽 길을 쳐다보면서 웃었다.
“지켜보자.”
스읏! 슷!
마군이 조심스럽게 절벽 길을 넘기 시작했다.
사실, 절벽 길이라고는 하지만 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절벽에 매미처럼 대롱대롱 매달려서 발 디딜 곳을 찾아 나가는 것이 고작이다.
발 디딜 곳을 찾는다.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말 길이 나타났다.
길이라고는 하지만 절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게걸음으로 건너가야 한다. 하지만 절벽에 매달려서 발 디딜 곳을 찾으며 나아가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휘이이잉!
절벽을 휘감은 바람이 마군도 휘감았다.
마군은 강풍을 견뎌내며 맞은편 절벽을 봤다.
‘천험의 요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은 길로 들어설 때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절정 고수가 아니면 나아갈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만 했다. 헌데 막상 길 위에 올라서니…… 맞은 편이 보인다.
정확하게 말하면 맞은 편에서 이쪽을 노려본다.
누군가가 저곳에 있다면…… 활을 든 궁수가 겨냥하고 있다면…… 피할 곳이 없다.
두 다리는 절벽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두 손도 자유롭지 않다. 등을 바짝 붙이고 게걸음으로 건너야 하는 곳에서는 두 손도 절벽에 붙여야 한다.
화살이 날아온다면 방어할 방도가 없다.
휘이잉!
또다시 절벽 밑에서 강풍이 솟구쳐 올라온다.
이 강풍도 손발을 묶어 버린다. 강풍이 휘몰아칠 때면 온 마음을 다해 떨어지지 않도록,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천하제일의 고수라도.
허면 저쪽 절벽에 있는 자도 화살을 쏠 수 없지 않은가. 강풍이 세차게 몰아치니.
맞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맞은편 절벽에서 활을 쏠 요량이라면…… 이 정도의 강풍쯤은 충분히 계산에 넣었을 게다.
특히 저쪽은 수십, 수백 번에 걸쳐서 연습을 할 수 있다.
저곳에 궁수를 배치했다면 절벽 길을 통과할 수 있는 고수는 일 할이나 이 할로 줄어들 게다.
절벽 길을 통과할 수 있는 고수가 대폭 사망한다는 말이다.
허나 그토록 염려하던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송양지인(宋襄之仁)인가.’
마군은 피식 웃었다.
전장에서 도의를 따지면 멍청이가 된다. 적이 강을 건널 때 공격해야 한다. 강을 다 건넌 후, 전열을 가다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어리석은 자의 어짊이 이곳에서도 일어난다.
저쪽에 궁수 한 명만 배치했더라도…… 아니, 궁수 백여 명쯤 배치시켜 놨다면…… 다른 자들은 모르겠는데, 자신은 틀림없이 나가떨어졌을 게다.
이곳에서 마군이 죽는 것이다.
스읏!
마군은 절벽 길에서 연이어진 철삭 다리를 봤다.
저 다리만 건너면 맞은 편이다. 헌데,
‘웃!’
마군은 잡가가 뱀을 만난 쥐처럼 사지를 딱딱하게 굳어져서 꼼짝달싹은 하지 못했다.
‘움직이면 당한다!’
이것은 본능이다.
무인의 본능이 이미 뒤를 잡혔다고 말해준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그를 겨냥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누가!’
그는 정녕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절벽 길을 건너왔다. 좌우는 물론이고 위아래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절벽 길을 건넌 사람은 그 혼자다.
그는 지금도 절벽 길에 매달려 있다. 눈앞에 철삭 다리가 보이지만 아직 안전한 땅에 올라선 것은 아니다.
즉, 누군가가 그의 등을 노린다면 그 역시 절벽 길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누구냐!”
마군은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말했다.
철삭 다리를 본 것이 실수인가. 그가 철삭 다리를 보는 순간, 뒤를 잡혔다. 그래서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다. 고개를 돌리면 즉각 공격을 당할 터이니.
뒤에서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왔다.
“가지 않으려면 길을 비켜야지?”
확실하다! 누군가 뒤에 있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