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2
2
第一章 출래파(出来吧)! [나와라!] (2)
똑! 똑! 똑……!
동굴 천장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낸다.
여인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면서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얼굴을 하얀 면사로 가렸다. 옷은 화려한 궁장 차림의 취의(璻衣)다.
허리춤에는 봉황이 양각된 단검 한 자루와 한눈에 봐도 명품으로 보이는 옥적(玉笛)을 꽂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은 간신히 동구만 비춘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서 십여 보만 걸어도 앞이 깜깜해진다. 동굴이 얼마나 긴지, 얼마나 넓은지, 앞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볼 수 없다.
사박! 사박!
여인은 옷자락을 끌면서 동굴 깊이 들어섰다.
그녀는 일정한 보폭으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차분하게 동굴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푸드득! 푸드드득!
갑자기 동굴 안쪽에서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무엇인가가 빠르게 머리를 급습해왔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머리를 살짝 숙였다.
박쥐 몇 마리가 그녀를 스쳐지나 뒤쪽으로 날아갔다.
“참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야.”
그녀가 손을 들어 살짝 코를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동굴은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는 비린내로 가득 했다. 비린내가 나는 것만은 확실하다. 헌데 짐승의 비린내도 아니고 생선 비린내도 아니다.
좌우지간 냄새에 신경을 쓰자 역겨운 연기를 오래 맡았을 때처럼 두통이 생긴다.
박쥐 똥이 켜켜이 쌓이면서 뿜어내는 냄새다.
그녀가 동굴 안쪽으로 굽이를 돌자 그나마 동구를 비추던 빛조차도 사라졌다.
칠흑 같은 어둠에 아름다운 취의조차도 묻혀버렸다. 그때,
스읏!
앞쪽…… 짙은 어둠이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부드러운 바람이 고요한 수면을 건드릴 때처럼.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나 왔어.”
그녀가 영롱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둠 속에서는 침묵만 전해졌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조용하다.
“같이 가자고 왔는데…….”
“…….”
“이렇게 찬밥 취급 할 거야? 이런 곳에 계속 이렇게 세워둘 거냐고.”
영롱한 음성에 간드러진 비음이 섞여 나왔다.
“같이 안 가도 좋아. 얼굴이나 보자.”
순간…… 그녀가 움직일 기미가 보이자 다시 어둠이 일렁거렸다.
그녀는 움직이지 못했다.
“정말 이럴 거야!”
“…….”
“나 이번에 정말 독한 마음먹고 왔어. 그러니까 얼굴만 봐. 편히 있는 것만 보면 그냥 갈게.”
“…….”
“너무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얼굴도 안 보여줄 거야?”
그녀가 말을 하면서 발길을 움직이려고 했다. 순간, 어김없이 어둠이 일렁거렸다.
그녀는 일렁이는 어둠을 만지려고 하지 않았다. 어둠이 꿈틀거리자마자 곧바로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어둠을 본다.
어둠이 그녀를 본다.
그녀는 말을 잊은 채 처연한 표정으로 어둠을 지켜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좀처럼 침묵이 깨지지 않자 그녀가 허리춤에서 옥적을 꺼내 불기 시작했다.
삐리! 삘리리! 삘리리리! 삘리……!
끊어질 듯 이어지고, 가늘게 이어졌다가 굵어지고, 강했다가 약해지고…… 듣는 사람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아름다운 음률이 동굴 안에 맴돌았다.
그녀가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어둠 속에서 혼자 연주하기를 근 한 시진,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독주를 마쳤다.
그녀가 어둠 속을 쳐다봤다.
어둠은 그녀에게 더 이상의 진입을 용인하지 않는다.
한 걸음, 딱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압박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심히 걸어 들어갔을 터이다. 그리고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체 죽었을 게다.
그녀는 어둠을 알고 있기에 걸어 들어가지 못한다.
“이거 안 치울 거지?”
“…….”
“같이 나갈 생각도 없고.”
“…….”
“한 가지만…… 정말로…… 나 보고 싶지 않았어?”
“…….”
대답이 없다. 어둠이 무반응으로 일관한다.
그녀는 어둠이 말하는 바를 알았다.
그녀가 무엇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어둠을 움직이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앉았던 바위에서 일어섰다.
“알았어. 갈게. 헌데…… 나, 분명히 말했다. 마음 독하게 먹고 왔다고. 당신은…… 정말 날 피곤하게 만들어. 날 독한 여자로 만든다고. 결국 버티지도 못할 거면서.”
그녀가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어둠은 침묵했다. 조금도 일렁거리지 않았다. 먼지가 가라앉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밝은 빛이 보인다. 동구가 보인다. 동구를 지키는 장한 네 명도 보인다.
사박! 사박! 사박!
그녀는 치맛자락을 땅에 끌면서 걸었다.
“역시 그렇죠?”
“후후! 고집이 세신 분이라니까.”
장한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여인은 말없이 가마에 올랐다.
장한들은 여인의 심기를 헤아린 듯 입을 다물고 가마를 들어 올렸다.
장한 중 한 명이 말했다.
“예정하신 대로?”
“가!”
“알겠습니다.”
장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악(善惡)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떤 행위가 선한 것이고, 어떤 행위가 악한 것인가?
선하다는 사람을 모아서 한 무리로 만들어 놓으면, 그중에 더 선한 자가 있고 덜 선한 자가 생긴다. 악한 자들을 한 무리로 모아놓으면 개중에서도 덜 악한 자와 더 지독한 자의 구분이 생긴다.
선악의 기준은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과 같다.
종이를 반듯이 펼쳐놓고 오른쪽이라고 생각된 부분을 잘라버리면 오른쪽이 없어지는가? 잘라낸 종이에서 또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이 생긴다.
이런 개념에서 마공관이 탄생했다.
마공관은 절대마공을 모아놓은 곳이다.
인세에 두 번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될 사악한 마공!
그러나 사악하다는 기준이 무엇인가?
이 마공들보다 더 사악한 무공이 나타나면…… 아주 지독한 마공이 나타나서 무림을 초토화시킨다면…… 정종무공으로 상대할 수 없을 상황이 도래하면…….
그런 상황이 오면 마공관의 마서들은 오히려 마공을 참조하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다.
혹여 있을 지도 모를 중원 종말의 시대를 대비해서 마서들을 봉인(封印)해 둔다.
당연히 마공관의 경계는 매우 엄중하다.
마공관을 들어서는 길은 딱 하나, 십리사로뿐이다. 다른 삼면, 절벽 위에는 절대 사로(死路)다. 설사 천인(天人)이라고 해도 살아남기 힘든 기진(奇陣)이 설치되어 있다.
마공관은 마공관주가 관장한다.
검성에서 당주에 해당하는 일류고수가 목숨을 걸고 마공관을 책임진다.
허나 그도 마공관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한다.
알려진 바로, 마공관 안으로 들어가서 마서를 접하기까지는 여섯 개의 철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각 철문과 철문 사이에는 파해가 불가능한 죽음의 절진이 펼쳐져 있다.
절진의 파해도는 부성주와 총관, 그리고 세 명의 장로에게만 비밀리에 전수되고 있다. 한 사람이 절진 하나만 파해할 수 있어서 마서를 넣거나 꺼낼 때는 일위고수(一位高手) 다섯 명이 마공관으로 모여야 한다.
마공관주는 겨우 첫 번째 철문만 열 수 있을 뿐이다.
흑심을 품고 마공관 안으로 침입한 자가 있다고 해도 마서를 취할 수 없는 구조다.
마공관은 이런 곳이다.
누구의 침입도 불허라는, 침입자는 절대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다.
마공관 무인들이 모르는 곳이 있을 수 없다.
마공관 정중앙에는 망루(望樓)가 세워져 있는데, 망루에서 쳐다보면 마공관의 동향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구도 침입하지 못한다.
어떤 누구도 은밀히 움직일 수 없다.
망루에는 음사로 여겨지는 무인이 안광을 번뜩이고 있지만, 기관진 안에서 가마가 움직이는 모습은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찾아낼 수가 없다.
마공관에 설치된 기관진(機關陣)은 전전대 중원 제일의 진법가라고 불렸던 현음자(玄陰子)의 작품이다.
가마는 석벽 안쪽으로 굴을 뚫어서 낸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 지상에서 이십여 장 높이에 있는 또 다른 동굴로 들어섰다.
그곳에서는 마공관의 정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연무장은 물론이고, 연무를 하는 자들의 숨소리까지 손에 잡힐 듯이 감지됐다. 마공관 너머로 실지렁이처럼 길게 이어진 십리사로까지…… 멋진 풍경이 연출되었다.
여인은 가마에서 내려 마공관을 잠시 내려다봤다.
휘이잉!
바람이 불어와 면사를 흩날렸다.
잠시 조각을 해놓은 듯한 턱선과 붉고 도톰한 입술이 엿보였다.
아름답다! 너무 예쁘다!
입술과 턱만 보고도 예쁘다는 감정이 일어난다. 탄력 있고,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은…… 남자라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마공관을 내려다보는 여인의 눈에 한기(寒氣)가 맺혔다. 그리고 드디어 짤막한 말을 토해냈다.
“가!”
“재고(再考)를!”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직한 사내의 말이 바로 뒤를 이어 튀어나왔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가마가 동굴 안으로 들어설 때만 해도 텅 빈 동굴이었는데, 지금은 복면을 한 사내들이 거의 서른 명 가까이 부복해 있다.
음성은 그들 중 맨 앞에 있는 자가 발했다.
“가!”
여인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복면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부복한 자세 그대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소신에게 주어진 권한에 따라 열 시진 지연을 부탁드립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내 결심, 변하지 않을 것 알잖아!”
“재고를!”
“알았어. 네가 주어진 권한을 쓰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어. 열 시진. 열 시진 기다릴게. 열 시진이 넘어서면 즉시 움직여. 촌각도 지체치 말고.”
“알겠습니다. 그동안 충분한 재고를!”
“알았다니까.”
여인이 나직이 말했다.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이지 않고 침착하게, 차분하게 말했다. 이미 결심이 굳어졌다는 뜻일 게다. 열 시진이 아니라 스무 시진동안 재고에 재고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을 결심처럼 보인다.
그래도 복면인은 부복을 풀지 않은 채 기다림을 택했다.
여인이 벽을 향해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운공조식(運功調息)을 시작했다.
열 시진은 하루에서 두 시진이 빠지는 꽤 긴 시간이다.
화가 나서, 혹은 급격한 심정 변화로 내린 명령이라면 숙고를 통해서 충분히 거둬질 수 있다.
면벽(面壁) 열 시진.
본인의 마음을 돌이켜 보고, 돌이켜 보고, 또 돌이켜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번쩍!
여인이 눈을 떴다.
그녀가 면벽에 들어갈 때는 정오가 훌쩍 지난 미시말(未時末) 무렵이었다. 열 시진이 지난 지금은 아침을 먹고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진시(辰時)다.
그녀가 가부좌를 풀지 않고 면벽한 채 말했다.
“열 시진이 지난 것 같은데?”
“정녕 재고가 안 되겠습니까? 이 길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입니다.”
“네게 주어진 권한이 또 있나?”
“재고를!”
“가!”
“존명(尊命)!”
이번에는 복면인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가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머리를 깊이 숙여 보인 후, 쾌속하게 신형을 쏘아냈다.
쒜에엑! 쒜에에엑!
복면인이 비조가 되어서 날아간다. 그 뒤를 다른 복면인들이 뒤따른다.
“전 아직도 모르겠는데…… 그분이 정말 이럴 가치가 있는 겁니까?”
가마꾼 중에 한 명이 여인에게 말했다.
“가치가 있어.”
여인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가치가 있지. 호호! 금강석(金剛石)도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보옥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반짝이는 돌덩이일 뿐이야. 호호호! 중원에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곳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아무도 몰라. 호호호!”
여인의 웃음소리가 석굴 가득히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