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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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三章 은장적검(隱藏的臉)[숨겨진 얼굴] (1)
“참 별난 사람들이지.”
건장한 중년인이 말했다.
근육은 벌목꾼처럼 울퉁불퉁하고, 피부는 구릿빛이며, 눈에서는 맑은 광채가 쏟아진다.
나이는 많이 봐야 마흔 중순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다.
촌장이다.
굉장히 젊어졌다.
머리는 검어지고, 피부에는 탄력이 생겼다. 근육이 붙었고, 무엇보다도 생기가 강해졌다.
반로환동(返老還童)이다.
촌장의 무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기(內氣)를 눈에 보이는 외기(外氣) 상태로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존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인다.
이런 점이 외형의 변화도 끌어왔다. 굉장히 젊고 탄력 있는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물론 이런 외형의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혈루마옥의 저주를 벗어난 지금, 촌장은 폭주하는 마차처럼 질주하고 있다. 억지로 한계를 그었던 무공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는 중이다.
“이해할 수 없어요. 무공이 강하면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인데.”
중년 여인이 촌장의 말을 받았다.
“과시라…… 후후후! 너도 그런가?”
“당연하죠.”
“지금까지 용케 참았군.”
“참지 않았어요. 늘 과시하고 있었죠. 녹천과 사사건건 싸워온 게 바로 무공 과시거든요.”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있군.”
“저는 최소한 제 욕구가 어디까지 성장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그 점을 인정하고요. 저 사람들처럼 가식을 보이지는 않아요.”
“저 사람들이 가식이라고 생각하나?”
“아닌가요?”
“이제 막 뿔이 나기 시작할 때는 무엇이든 들이박고 싶은 것이 사실이지.”
촌장의 말에 여인은 입을 다물었다.
혈루마옥에서…… 촌장은 녹천과 증평의 다툼을 외면했다.
다툼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일부러 간여하지 않았다. 간여하지 않았다? 아니다. 간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어린아이들이 싸운다. 말릴까? 싸우다 지치면 관두겠지.
촌장이 그랬던 것 같다.
녹천과 증평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지만 촌장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보였던 게다. 녹천주와 증평주가 제아무리 강하게 성장해도 촌장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중원에 나와서야 깨달았다.
혈오가 태어나는 순간, 혈오를 통해서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어버린 순간, 혈루마옥 사람들은 모두 고삐가 풀린 것이다. 입에 물렸던 재갈이 없어졌다.
모두들 폭주했다.
‘여기까지만’ 하고 선을 그었던 무공의 한계가 사라졌다.
혈루마옥 무인들이 금제가 풀렸는데도 당장 중원 무림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바로 무공 때문이다.
무공이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즐겼다.
무공이 강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중원을 정복하는 것, 무림을 피바다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즐거웠다.
사실 중원을 쓸어버리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두 번째, 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촌장이 앞장서서 중원 무림을 공략했다면 지금쯤 중원은 살아남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촌장은 무림을 공격하지 않고 뒷전으로 물러났다.
왜 나서지 않는 것일까? 무공이 급진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느라고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가?
증평주는 촌장의 본심을 기련산에서 알게 되었다.
유지자문, 저들!
촌장은 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공이 강해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혈루마옥을 나올 때만 해도 충분히 강했다. 무림을 평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중원 무림을 피바다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중원 무림에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토록 고난하게 살았으니 너희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어린애 응석이다. 중원 무림을 정복하려는 것은 그들을 지배하려는 야욕이다.
모든 사람의 위에서 군림한다.
단지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제왕처럼 무림을 지배하려는 게다.
그리고 그런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럼 왜 움직이지 않았을까? 왜 무림을 정복하지 않은 것일까?
촌장은 기련산에서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검왕을 살려 보냈다. 마녀나 다름없이 변해버린 누미를 보여주었고, 누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해줬고, 누미를 상대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줬다.
한 마디로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검왕이라는 칼을 빌려서 누미를 공격하려는 게다.
촌장이? 다른 사람도 아닌 촌장이? 왜? 자신이 누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모습까지 연출하면서?
누미가 혈오를 통해서, 혈오를 통해 혈루마옥의 저주를 풀어낸 무인들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 대상 속에 촌장까지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촌장은 이미 그 사슬을 풀어버렸다. 이제 촌장은 어떤 저주에도 걸려있지 않다.
그럼에도 기련산에서 촌장은 검왕과 누미의 싸움을 부추겼다. 자신은 천축으로 가겠다고 했고…… 한동안 중원 무림에서 빠지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검왕이 누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검왕의 행동 속에 촌장이 바라던 게 있다. 촌장이 중원 무림을 지켜보기만 하는 이유가 있다.
유지자문!
유지자문 고수들은 수월화가 모두 처리했다.
증평주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수월화가 나서서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무공이라던 유지자문 무공을 격파했다.
그것으로 유지자문은 끝난 줄 알았는데…….
촌장은 여전히 유지자문을 기다렸다. 유지자문의 실체가 드러날 때까지 자중했다. 기다렸다.
이제 저들이 나타났다.
허면 저들은 진짜인가? 저들이 유지자문의 모든 것인가?
유지자문은 세외별문(世外別門)이다.
그들은 중원사에 간여하지 않는다. 중원을 정복하겠다거나 천하제일무인이 되겠다는 등의 야욕도 없다. 오직 무도(武道)로써 무공을 수련한다.
그런 만큼 유지자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적벽검문도 세외별문이기는 하지만 검왕의 등장으로 인해서 많은 부분이 노출되었다. 혈루마옥 입장에서는 더 이상 세외별문이 아닌 것이다.
허나 유지자문은 여전히 세외별문이다.
수월화가 유지자문 고수들을 모두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촌장은 여전히 저들을 기다려왔지 않은가.
저들은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무림에 나서지 않는다.
촌장이 무림을 피로 물들여도 저들은 수수방관할 것이다. 결코 나서지 않을 것이다.
촌장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가만히 있는 저들을 애써서 끄집어냈다.
그만큼 촌장의 마음속에는 저들을 처리하고픈 욕망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촌장이 말했다.
“잘 지켜봐라.”
“네.”
“만약 내가 지거든, 즉시 혈루마옥으로 돌아가라.”
“그럴 리는 없겠죠.”
“후후후! 나도 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무공이란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는 것이니.”
“저는 저들을 그렇게 강하게 보지 않아요.”
과거 전례가 있지 않나. 수월화가 유지자문 고수들을 격파하지 않았나.
“저들이 무림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
“저들에게 무공은 종교이기 때문이다.”
“종교요?”
“촉두금력(觸頭禁力)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두(頭)는 뇌(腦)를 말하는 것일 테고…… 뇌가 세상을 인지하기 전에는 힘을 쓰지 말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나도 모른다. 저들도 모르지. 그래서 그 글자의 뜻을 파헤치기 전에는 무림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말쯤은 무시해도…….”
“후후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저들에게 무공은 종교이고, 촉두금력이라는 말은 절대 교리임을. 됐다. 내가 하는 말이나 명심해라. 잘 지켜보다가 내가 지면 즉시 혈루마옥으로 돌아가거라. 중원에는 더 이상 미련 두지 말고.”
촌장은 나이 마흔이 넘은 증평주를 어린아이처럼 대했다. 어린아이에게 말하듯 한 번 말해도 알아들을 말을 두 번, 세 번 언급하며 다짐받았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노인들이 길가에 앉아서 주먹밥을 먹는다.
노인…… 이상한 말이다. 노인이라는 말 자체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쓰기에는 뭔가 어색해 보인다.
저들은 노인이다. 하지만 노인이라고 부르면 어색하다.
실제로 저들 중에는 머리가 아주 검은 사람도 있다. 겨우 쉰이 되었을까 말까 한. 하지만 그도 노인처럼 보인다. 노인이라고 부르면 딱 맞다.
겉늙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저들을 노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저들의 모습에서 노인의 기운이 읽히기 때문이다.
노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생기 없고, 힘없고, 외형이 무너진 모습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허나 다른 부분도 있다. 경험 많고, 능숙하고, 세상을 달관한 듯한 부분이다.
저들에게서는 후자가 읽힌다.
세상에 대해서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
“여로(旅路)에는 주먹밥이 제격이죠. 맛있습니까?”
촌장이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소금도 뿌리지 않은 맨밥인데 맛인들 있겠소.”
노인 중에 한 명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참 맛있게 드십니다.”
“방금 전까지는 맛있었는데, 당신을 보니 맛없어졌소. 그러다가 또 주먹밥을 보니 맛이 돌아왔소.”
우걱!
말을 하던 노인이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다.
“금언은 풀으셨소.”
촌장이 그들 옆에 앉으며 말했다.
노인들은 더 이상 촌장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주먹밥만 먹었다. 혼신을 다해서.
그렇다. 혼신을 다해서 주먹밥을 먹는다. 그들은 그저 주먹밥을 먹을 뿐인데, 옆에서 보면 혼신을 다해서 먹는 것처럼 보인다. 오직 주먹밥을 먹는 것에만 집중된 사람들처럼.
촌장은 눈 앞에 펼쳐진 논을 바라봤다.
한쪽에서는 주먹밥을 먹고, 한 사람은 논을 쳐다본다.
“어떠냐?”
중년 여인이 물었다.
“강해요. 무척.”
“같은 종류냐?”
“아니요. 많이 달라요. 제가 상대한 자들은 그저 무공이 강한 자들이었어요. 은류(隱流) 계통의 무공이라서 비교적 쉽게 상대할 수 있었는데…….”
수월화가 미간을 찌푸렸다.
수월화뿐만이 아니다. 증평 여인들 모두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촌장과 노인을 지켜봤다.
그들 모두가 고수 아니던가. 상대방을 읽을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는가.
촌장과 노인들, 누가 더 강한지 알 수 없다.
촌장이 옆에 있을 때만 해도 촌장이 훨씬 강하다고 생각했다. 촌장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늘 그렇게 생각했고, 믿었다.
헌데 촌장이 노인들 곁에 앉자 누가 더 강한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촌장도 강하다. 노인들도 강하다. 촌장의 강함은 쇳덩이의 강함이고, 노인들의 강함은 갈대의 부드러움이다.
비교가 안 된다. 어느 것이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비교할 수 없는 강함들은 실제로 부딪쳐보지 않고는 결코 판가름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저들 노인들은 수월화가 무너트린 유지자문 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라는 거다.
예전 유지자문 고수들은 쇳덩이였다.
쇠와 쇠가 만났으니 비교가 되었다. 수월화라면 그들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만들어졌다.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쇠와 물이 만났다면…… 쇠가 강한가, 물이 강한가.
질문 자체가 우문이다. 또한 답이 나올 리 없다. 하지만 둘 중에 한쪽은 틀림없이 무너질 것이다.
“저들을 왜 굳이 끄집어낸 거죠? 그때 기련산에서 검왕만 죽였다면 모든 게 끝났을 텐데요.”
“저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을 못 한 거겠지. 만약 촉두금력이라는 말을 해자(解字)했다면…… 자신 없었을 거야. 촌장도. 그래서 해자하기 전에 불러낸 게 아닌가 싶기도 해.”
“촌장님이 사계(邪計)를 썼다고요?”
수월화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촌장은 강하다. 정통 무인이다. 어떤 무인이든 강함으로 짓누른다.
헌데 상대방이 너무 강할까봐 더 이상 강해지기 전에 불러내서 무너트린다?
이것은 수월화가 생각하고 있던 촌장의 모습이 아니다.
만약 증평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촌장은 무공의 극치를 원하는 게 아니다. 오직 중원을 정복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중원을 정복하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심가의 참모습이다.
“나도 아니기를 바란다만…….”
증평주가 힘없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