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42
42
第九章 별타차(別打岔)[막지마라] (2)
“아씨! 아씨! 아씨!”
이제 열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계집아이가 목청을 높여서 아씨를 찾았다.
“아씨! 시간 다 됐어요!”
계집아이가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하지만 아씨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대답하지 않는다.
“큰일 났네. 늦으면 경을 칠 텐데.”
계집아이는 속이 타는지 발만 동동 굴렀다.
얕은 구릉이 작을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곳…… 인근 사람들이 파릉(波陵)이라고 불리는 곳은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소문난 곳이다.
그러나 바쁜 농사철에 한가롭게 저녁노을이나 감상하는 유람객은 없다. 그래서 명소임에도 불구하고 파릉, 넓은 구릉은 사람 구경을 하기가 힘들다.
계집아이는 파릉 한 곳에서 발만 구를 뿐이다.
아씨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찾을 방법이 없다. 구릉 아래로 내려가면 오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구릉 위에서 아씨를 부르는 것이 그나마 낫다.
“아씨! 아씨! 시간 다 됐다니까요!”
계집아이가 다시 목청을 높였다.
“후후후! 애타게 찾는 소리가 애절하구만. 어쩌지? 대답할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
“검만 내려놔. 그러면 이 어르신들이 잘해줄게.”
구릉 아래쪽에서 음침한 괴성이 울렸다.
사내는 굳이 음성을 낮추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가 구릉 위까지 퍼져가도 무방하다는 듯 대범하게 말한다. 허나 구릉이 워낙 넓고 커서 그의 음성은 방원 십 장 안에서만 맴돈다.
스읏!
여인은 검을 곧추세웠다.
그녀의 주위로 엽사(獵師) 다섯 명이 둘러서있다.
엽사 두 명은 활을 겨누고 있고, 다른 세 명은 각기 다른 병기를 들었다.
큰 도끼, 대도, 창!
활은 든 자는 좌우쪽에 섰다. 창을 든 자는 뒤에서 겨누고 있고, 전면에는 대부와 대도를 든 자가 섰다.
말은 대부와 대도를 든 자가 한다.
“아이야, 검을 내려놓지 그래?”
“…….”
여인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미동하지 않았다. 조용히, 분노 없는 눈길로 사내들을 쳐다봤다.
싸움은 벌어진다.
흥분은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주 침착한 마음으로, 냉정한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
“너 처녀냐? 처녀 아니지?”
대도를 든 자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하하하! 바랄 걸 바라야지. 저 얼굴에 아직까지 처녀겠어? 엉덩이 퍼진 거 봐라. 방아 하나는 잘 돌리겠는데.”
대부를 든 자가 맞장구쳤다.
울분이 치솟는다. 더러운 입을 찢어놓고 싶다. 허나…… 흔들리면 진다.
음악오귀(淫惡五鬼)는 성정이 더럽다.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음색을 밝히는 색마들이다. 노소를 가리지 않고 치마만 둘렀다 하면 침을 흘린다.
헌데도 그들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그들의 음행을 뿌리 뽑고자 하는 무인들이 많다. 지금도 음악오귀라고 하면 이를 가는 무인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음악오귀는 분명히 건재하다.
–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그런 놈들에게…….
이 말이 음악오귀를 대변한다.
하늘은 음악오귀에게 분에 넘치는 재능을 주었다.
그들은 무공에 대해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오성과 근력을 타고났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는 말은 정도문파 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음악오귀처럼 더러운 성정을 지닌 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 다섯 명은 한 형제가 아니지만, 한 형제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다.
많은 무인들이 그들 다섯 명이 펼치는 오인합격술에 무너졌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음악오귀와 마주쳤다.
대부를 든 자가 자신의 아랫도리를 움켜잡으며 말했다.
“이 어르신네 하물이 보통 크기가 아냐. 보통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면 세상 다 끝나는 줄 알지만, 이 어르신에게 당한 년들은 그게 아냐. 일이 끝난 다음에 오히려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니까. 뭐,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테니 같이만 살자나?”
“하하하! 그게 어디 형님뿐이오. 저한테 당한 년들도 같이 살자는 통에 미치겠소. 이런 기교는 처음이라나 뭐라나?”
대부와 대도를 든 자가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허나 그들은 음담만 늘어놓는 게 아니다. 싸울 준비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준비는 매우 치밀하다.
등 뒤에서 창을 겨누는 자…… 그에게서는 차디찬 뱀의 피가 느껴진다.
양쪽에서 활을 겨누고 있는 자들, 두 눈이 활활 타오른다.
이들은 진정한 싸움꾼이다.
앞에 있는 두 자가 늘어놓는 음담은 일종의 격장지계(激將之計)다. 음담에 휘말려 흥분하면 좋고, 흥분하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고…… 그래서 툭 던져본다.
스읏!
그녀는 왼발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검은 역수(逆手)로 잡고 검 끝을 앞으로 해서 가슴 앞에 세운다.
봉황투세(鳳凰鬪勢)!
봉황검법의 기수식이다.
“쯧! 이 어르신들이 즐겁게 놀아준다니까. 눈 질끔 감고 드러누워 봐. 곧바로 극락 구경을 시켜준다니까. 이미 알 것 다 아는 처지에 뺄 게 뭐야?”
양쪽의 활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겠다.
그녀가 움직이면 활이 쏘아진다. 일 보를 움직이기 전에 이 층에서 떨어진 수박처럼 몸통이 터져나갈 게다. 그보다…… 등 뒤의 창이 더 무섭다.
창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분명히 창이 등을 겨누고 있는데, 느낌상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공격할 기미조차 흘리지 않으니 더 답답하다.
‘감당하기 벅차.’
그녀는 식은땀을 흘렸다.
봉황검법의 창시자인 막수선자(莫愁仙子)가 직접 검을 들었으면 모를까, 이제 겨우 육 성밖에 이르지 못한 봉황검법으로 이들 다섯 명과 싸운다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녀는 음담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저들의 말이 귓전에 와 닿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활과 창이 너무 날카로웠다.
“후후! 정 검을 놓지 않는다 이거지? 그럼 이 어르신이 살짝 떨궈줘야지. 그 정도 인심쯤이야.”
대부를 든 자가 두 손으로 도끼 자루를 움켜쥐더니 서서히…… 서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순간, 그녀는 마치 거대한 돌덩이가 머리 위로 쳐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투석기(投石機)에 돌덩이가 담겼다.
투석기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줄이 끊어지면 즉시 성벽을 향해 돌덩이가 날아가리라.
저 도끼…… 머리 위로 쳐들리면 곧바로 내리쳐진다.
‘패, 패력(覇力)! 감당할 수 있을까?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런 자들에게 이런 무공을.’
그녀는 세간 사람들이 하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모두의 귀를 의심케 하는 음성, 아주 맑고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하지.”
“웃!”
대부를 머리 위로 쳐들던 자가 큰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면서 물러섰다.
그를 공격한 사람은 없다.
대부를 든 자는 공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복부를 강타당한 사람처럼 안색이 해쓱해져서 주춤주춤 물러선다.
‘누가? 고수!’
깜짝 놀라기는 그녀도 마찬가지다.
음악오귀와 그녀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를 듣는다. 풀잎 사이에서 움직이는 벌레소리를 듣는다.
오감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에 누군가 있다면 모를 리 없다. 누군가가 다가왔다면 더욱 빨리 눈치챘다.
말을 건넨 사람은 그들의 이목을 가리고 다가왔다.
음악오귀가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다가왔으며, 말을 건넸다.
대부를 든 자는 그 충격을 받은 것이다.
마음의 타격, 마음으로 당한 공격!
“누구냐!”
왼쪽에서 활을 겨눴던 자가 즉시 뒤돌아섰다. 순간,
퍼억!
활을 든 자는 뒤돌아서기가 무섭게 둔탁한 소리를 흘리며 풀썩 꼬꾸라졌다. 그 순간,
쒜에엑!
오른쪽에서 활을 겨누고 있던 자가 즉시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다른 화살을 재웠다.
활을 쏘고 다시 재우고…… 일련의 동작이 눈 한 번 깜짝이는 순간보다 더 빠르다.
뚜욱!
대나무 장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컥!”
창을 들고 있던 자가 고통을 호소했다.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창은 어느새 부러져 있다. 칼로 저며낸 것이 아니라 힘으로 분지른 듯…… 분질러진 창대 중간 어림이 매우 투박하다.
창을 든 자가 배를 움켜쥐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스읏!
미지의 인물은 또 다른 움직임도 보였다.
그는 부러진 창대를 쥐고 있다. 오른쪽에서 화살을 재우고 있던 자, 그의 관자놀이에 창대를 댔다.
“죽을래?”
미지의 인물이 싸늘하게 말했다.
순간, 활을 든 자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활과 화살을 놓아버렸다.
“손.”
활을 들었던 자가 머리 위로 두 손을 들었다.
“내리면 죽는다.”
“누, 누구냐!”
“맞을래?”
“…….”
“그렇지. 입 다물고…….”
부러진 창대를 든 사내가 활 들었던 자의 앞을 태연히 걸었다.
‘누구지?’
여인은 나타난 사내를 주시했다.
음악오귀는 음악한 색마들이지만 무공이 높아서 징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이들에게 검을 들이댔던 자도 오히려 횡액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자들이 허수아비처럼 무너진다.
부러진 창대를 든 자는 넝마조각을 이어붙인 것 같은 장삼을 입었다. 머리는 여인처럼 길게 길러서 허리 어림까지 늘어지는 것을 질끈 묶었다.
머리에는 방갓을 썼다.
간신히 목 부근만 보일 정도로 깊은 방갓이다.
얼굴은 볼 수 없고, 체형으로는 판별할 수 없다.
처음 보는 고수인 것만은 분명한데.
“누, 누구! 누구냐!”
대부를 든 자가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르게 더듬거리면서 물었다.
“일압부(一壓斧). 광부목자(曠斧木子)와는 어떤 관계냐?”
“일, 일압부를 어떻게……? 너, 너 누구야!”
“광부목자와는 어떤 관계냐?”
“죽엇!”
대부를 든 자가 대부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가 힘차게 내리찍었다.
쒜에에엑! 꽈지지지직!
공기가 찢어진다. 세상이 찢어진다.
사내는 대부를 내리친 것에 불과한데, 앞에 선 자는 전신이 찢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헌데,
따악!
부러진 창대를 든 자가 장난처럼 창대를 휘둘렀다. 그리고 대부가 주인을 잃고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가 툭 떨어졌다. 대부를 들었던 자는 손아귀가 찢어져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창대를 든 자가 다시 물었다.
“마지막이다. 광부목자와는?”
“사, 사부. 사부다.”
“……예상은 했다만…… 광부목자가 어찌 너 같은 쓰레기를 키웠을까. 아니…… 광부목자는 이런 꼴을 볼 사람이 아니지. 살아있다면. 죽었겠군.”
“음!”
“네놈이 죽였나?”
“…….”
대부를 든 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얼굴만 새파랗게 질려서 사내를 노려볼 뿐이다.
“망나니들이란.”
창대를 든 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다가 창대를 까딱거렸다.
대도를 들고 있는 자에게 병기를 내려놓으라는 표시다.
물론 대도를 든 자는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아니, 순간적으로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짐승도 말귀는 알아듣는데, 어떤 인간들은 꼭 맞아야 말을 듣는단 말이야.”
쒜엑!
사내가 움직였다. 창대도 번뜩였다.
대도는 움직이지 못했다. 살짝 쳐올리는 듯했으나, 이내 뚝 떨궈졌다. 그리고 난타가 이어졌다.
퍼퍼퍼퍼퍼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