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31)
25. 서울에 떨어진 핵폭탄 (6)
김현성의 예상대로였다.
고동수와 장원기.
그들은 골든 서클의 사주를 받았다.
정확히는 고동수는 끄나풀에 불과했고, 장원기는 브로커에게 정보를 전달받으며 어떤 그림인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릴 이유가 없었다. 고동수의 얼굴이 증거고, 고동수의 친구들이 증인이기에, 목격자가 없는 이 사건은 김현성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녹취라니.
생각도 못 한 전개였다.
장원기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했다.
“……녹취라니. 학교에서 무슨 녹취야. 문제없는 물건인지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손을 뻗었다.
펜을 부러트릴 생각이었다.
허세가 아니라 정말 녹취를 했다면, 이 증거만 없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문제였다.
김현성이 말했다.
“예, 확인하세요. 혹시라도 펜이 손상돼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자동으로 클라우드에 연결돼서 내용물이 저장되거든요.”
“아, 그러니?”
멋쩍게 웃었다.
의도가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장원기는 펜을 이리저리 살필 뿐, 안의 내용물을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확실해. 김현성은 이곳으로 전학 온 목적이 존재해. 그렇지 않고서야 고등학생이 녹음기를 들고 다닐 리가 없잖아.’
브로커로부터 들었다.
의뢰가 실패했고 의뢰인이 당했다는 등 정확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골든 서클과 수년간 인연을 맺은 만큼 대략적인 스토리는 알았다. 김현성은 골든 서클의 정체를 알면서도 전학을 택했다는 것. 매우 위험한 인물이니만큼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
잠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녹음기라는 철저한 준비물까지.
등골이 서늘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애일까.
대체 무슨 목적을 가진 걸까.
설마 골든 서클을 무너트리겠다는 목적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기에, 장원기는 살포시 펜을 내려놓았다.
툭.
“이미 신고를 했으니 경찰이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문제를 해결해 주겠지. 만약에 네 말이 사실이라면, 동수는 이 일을 반드시 해명해야만 할 거야.”
은근슬쩍.
장원기는 곧 있을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전가했다.
* * *
경찰서는 근방에 있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경찰들이 도착했고, 선임으로 보이는 경찰관이 녹취를 틀어 내용을 확인했다.
[진짜 재수 없는 새끼가 맞네. 야, 솔직히 좀 그렇잖아. 너 하나 때문에 지금 피해를 보는 학생이 몇 명인데. 그럼 최소한 수업 시간 때 얌전하게 있든가, 아니면 지금처럼 X같이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고동수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곧 들려올 대사에, 고동수는 스스로도 부끄러운 모양인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네가 자초한 일이야.]그 말을 끝으로.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현성이 뭐 하냐 묻고 고동수가 대답하는 내용도 있었기에, 사실상 더 이상의 논쟁은 불필요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고동수와 그의 친구들. 그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상황은 명백했다.
경찰관이 녹취를 끄며 말했다.
“세상이 참 흉흉하네. 겨우 19살짜리가 자해 공갈이라니. 야.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랬어?”
“……죄송합니다.”
“바른대로 말 안 해?!”
고동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외통수였다.
녹취 파일이 나온 순간부터, 그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절대 골든 서클의 명령이라는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냥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은데,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전국 1등이 전학을 온다니까 짜증이 났어요. 다들 잘 아시잖아요. 저희가 성적에 얼마나 예민한지. 그래서, 뭘 어떻게 해 보려던 게 아니라 분풀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이건 범죄야, 범죄!”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경찰관의 시선이 휙 친구들을 향했다.
“너희는?”
“……동수랑 똑같은 이유예요.”
“죄송합니다.”
사실상 상황이 정리되었다.
경찰관이 이번에는 장원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 선생님도 그러는 거 아닙니다. 김현성 학생에게 얘기를 들으니, 선생님이 이 패거리 얘기만 일방적으로 듣고 매도했다지 않습니까. 선생이 말입니다. 그래도 모든 학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신고는 이미 접수되었고, 저로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게 다 제 불찰입니다. 동수의 얼굴이 너무 처참해서, 순간적으로 공정성을 잃었습니다.”
상식적인 흐름이었다.
마치 이대로.
경찰관이 이들 모두를 처벌할 것만 같았다.
제일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경찰관의 모습이, 아직 세상이 완전히 썩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때였다.
“이만 여기서 마무리하시죠.”
낯선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인자한 인상의 중년 여성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 * *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교감.
안익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공석인 지금, 학교 최고 권력자인 진경희 교감이 상황을 진정시켰다.
“애들이나 장원기 선생님이나 모두 악의적으로 이번 일을 의도한 건 아닐 겁니다. 이 강남이라는 곳이 성적 때문에 별별 일이 다 벌어지는 곳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등수로 예민한 시기에, 전국 1등이 전학을 온다니까 애들로서는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겠죠.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장원기 선생님으로서도, 갓 전학 온 현성 학생보다는 이미 유대감을 충분히 형성한 다른 학생들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었을 거고요.”
“그래도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녹취 파일이 없었다면, 이 학생이 전부 뒤집어쓸 뻔했습니다.”
“압니다. 그에 대해서는 따로 현성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사실 이게 참 복잡한 문제라서요. 원래라면 현성 학생이 이 학교에 전학 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데, 안익수 교장의 독단적인 일 처리로 이번 일이 진행됐습니다. 현재 그로 인해 내부 감사도 진행하는 상황이고요. 결과만 보자면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나, 이 학교에도 나름대로 사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아이들 모두 자라나는 새싹이지 않습니까? 너무 가혹하게 다그치지는 말아 주세요.”
“하아, 이러면 안 되는데…….”
경찰관이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금까지 불같이 분노하던 모습이 어색할 정도로, 너무 쉽게 진정하는 느낌이었다.
진경희가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아예 없었던 일처럼 그냥 넘어가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체적으로 강력한 징계를 내리겠습니다. 본인들의 행동을 뉘우치고 반성할 만큼의 충분한 처벌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단, 피해자가 괜찮다고 말한다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해 드리겠습니다.”
경찰관의 시선이 김현성을 향했다.
그러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성 학생. 어떻게 할까? 그래도 같은 친구인데 교감 선생님 말씀처럼 이대로 마무리하는 건 어때.”
그 모습에.
김현성은 아주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 * *
학생도.
선생도.
경찰도.
모두 잘 만들어진 연극처럼, 대본과 같은 대사를 주고받으며 그들이 원하는 결말을 돌출해 내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번 생에서는 분명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먼저 권력자들을 회유하면서 항상 상황을 이용했지만, 데자뷔(dejavu)처럼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전생의 한순간.
분명히 자신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건만, 징계위원회에서는 너무나 황당한 결론을 내놓았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십시오. 코뼈가 부러지고, 피멍이 들고. 김현성 학생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인데, 대체 어떻게 이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번 사건은 명백하게 김현성 학생의 학교 폭력으로 생긴 문제입니다.”
오대환.
김영철.
현생에서는 김현성을 감싸고 도는 그들이, 그때는 김현성을 벼랑 끝으로 밀어 버렸다.
그때도 이랬다.
김현성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고, 할머니는 눈물로 호소하면서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을 들어 주었을까? 단 한 명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진짜 피해자의 편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마치 NPC라도 되는 것처럼 이미 정해진 대본을 읊으며 김현성의 가해를 확정해 버렸다.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펜 형태로 만들어진 녹음기를 챙겼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말뿐인 주장이 아니라 진실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필요했다.
‘한 치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는구나.’
새삼 체감되었다.
이 공간은.
골든 서클의 본거지였다.
대산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위험하리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들은 첫날부터 노골적인 악의를 드러냈다. 스스로 뺨을 때리는 고동수를 바라보며. 고동수의 말을 일방적으로 믿는 장원기를 바라보며. 김현성은 굳이 녹음기라는 무기가 존재함을 먼저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얼마나 더럽게 나오는지를 끝까지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
판이 만들어졌다.
녹음기를 제시한 순간부터 외통수였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라고 부른 경찰관조차도, 어느 순간부터는 은근슬쩍 문제를 덮으려 했다.
상황은 뻔했다.
경찰관도 돈을 먹었을 것이다.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선생들 대부분이 썩었다는 것은, 형사 사건을 해결해야 할 인근 경찰서 또한 다르지 않다는 의미였다. 골든 서클이 탄생하고서 십수 년이 지나는 동안 이 학교에서는 여러 의뢰가 완수되었다. 그 역사가, 대산 카르텔과는 다른 강남 카르텔을 형성했다.
앞을 보았다.
고동수와 친구들.
장원기와 진경희.
그리고 경찰관들까지.
한눈에 보였다.
김현성에게 이대로 끝내자는 결말을 강요하는 그들의 눈빛에, 김현성은 오히려 웃음을 보였다.
“재밌네요.”
“……재미있다고?”
진경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김현성의 발언.
모두를 우습게 보는 느낌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재밌을 수밖에 없잖아요. 전 단 한 번도 저를 매도한 쓰레기들을 용서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제 분노를 경찰관이 대변하고, 교감 선생님은 와서 분노와 타협하고. 그리고 이렇게 적절한 타협안을 내놓았잖아요? 제 시선에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가 마치 분란이라도 일으키는 사람처럼 보여요. 잘 마무리될 수 있는 일을 굳이 파탄 내는 그런 존재처럼.”
“……말이 좀 심하네? 우리는 현성 학생의 입장도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거야. 만약에 현성 학생으로 인해서 이 학생들이 형사 처벌을 받는다면. 다른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렇지 않아도 불합리한 전학이라고 생각하는 판국에, 인식이 더 좋아지진 않겠지.”
“교감 선생님 말씀이 맞아. 너도 1년 동안 학교생활 잘해야 하지 않겠어?”
장원기가 거들었다.
피식, 웃었다.
대화는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김현성이 힐끗 시계를 확인했다.
“곧 오겠네요.”
“뭐가?”
조금 전.
김현성은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경찰에 신고했던 시점이고, 수신인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미 인근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탁.
교무실 문이 열렸다.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체격.
불도그처럼 생긴 외모.
누가 봐도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은 외모와는 달리,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서류 가방이 인상적인 중년 남성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말했다.
“다들 여기 모여 계셨군요. 김현성 학생의 변호사, 박종수라고 합니다.”
김현성은 이 상황을.
상대의 실수를.
절대 그냥 끝낼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