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Main Character’s Little Sister RAW novel - Chapter (128)
“특히 미성년자 각성자는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어져서요.”
“요한 씨…….”
이보배는 손을 뻗어 최요한의 손등을 덮었다.
최요한은 손을 돌려 이보배의 손을 맞잡았다.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기에, 이보배는 최요한의 손을 잡고 가만히 있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거나 힘을 더 주어 꽉 잡거나 하지 않고 그냥 붙잡고 있기만 했다.
맞닿은 손으로 체온을 전하고 그녀의 것인지 최요한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맥박을 쉰 번쯤 헤아린 뒤에야 이보배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요한 씨 잘못이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보배 씨는 참 좋은 분이에요.”
뻔한 말에 뻔한 응대인데 공연히 볼이 달아올랐다.
이보배는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 거라 판단하고 슬쩍 손을 빼냈다.
최요한은 상냥해 보이나 속을 알 수 없는 눈에 이보배를 담았다. 수상한 이씨 형제들을 감시하기 위해 이보배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스스로에게 했던 변명에 불과했다.
둘은 별개였다. 이씨 형제가 수상하지 않더라도 최요한은 이보배에게 관심과 호감이 생겼을 것이다. 이보배는 뻔한 말에 뻔하지만 진심으로 응대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사람을 좋아하기 위해 핑계가 필요하다니.’
최요한은 본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씁쓸해진 입에 이보배가 그의 몫으로 가져온 자허 토르테를 집어넣었다.
그는 녹아내리는 초콜릿을 음미하며 위험한 취미를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과장님도 그렇고 보배 씨도 그렇게 말하니 그만둬야겠죠. 이제 남는 시간에 뭘 해야 하나.”
“다른 취미를 찾는 건 어떨까요?”
“가능하면 집중할 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최요한은 군무를 끝내고 다시 사교 댄스 교실을 연 화르세인지를 가리켰다.
“마침 선생님이 계시니 춤을 배워볼까요?”
“그것도 좋겠네요.”
“보배 씨가 도와주실 거죠?”
“당연하죠.”
이보배는 공자님에게 부탁해 달라는 말인 줄 알고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최요한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어어?”
이보배는 손을 잡혀 엉거주춤 일어났다.
최요한은 자연스레 이보배를 춤 교실 근처로 인도하더니 가슴에 손을 붙인 채 허리를 숙였다.
“한 곡 추실까요?”
도와달라는 말이 망나니에게 부탁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춤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보배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고 손을 내밀었다.
“기꺼이요.”
최요한은 이보배가 내민 손을 잡고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입을 맞췄다기보단 코가 스치듯 닿았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최요한과 이보배가 춤 교실을 구경하며 눈대중으로 익힌 자세를 취하고 움직였다.
결국 눈대중이었던지라 서로 껴안고 빙글빙글 도는 장난에 가까웠다.
어차피 주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고 있어 괜찮았다.
최요한도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 막춤 추는 둘! 춤은 그렇게 추는 게 아니니라! 이리 와서 제대로 배우거라!”
엄한 춤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둘은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박마노가 다가와 관심을 보였다.
“씁, 나 아까처럼 단체로 추는 건 괜찮지만 이런 춤은 오글거려서 못 추는데.”
“둘이 하는 강강술래라고 생각하면 되죠.”
“이해기 씨 발상의 전환 좋아. 아주 좋아.”
박마노가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이해기가 기대감을 품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박마노는 유마리와 이한생의 손을 붙잡았다.
“강강술래는 사람이 많아야 재밌지. 열 배속 강강술래 하실 분 이리 오세요!”
박마노가 판을 키우자며 사람을 모았다.
이해기는 허탈해하는 한편 박마노의 옆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동생을 떼어냈다.
그렇다면 오늘 밤의 주인공인 이귀한은 무엇을 하고 있나 확인해 보니.
“벽돌 노예로 5년 고생했습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노예에, 사람은, 사라딴, 소리. 정글, 사람, 없어.”
“댁들은 가족이라도 찾았지. 나는 쉬불, 다 죽었어. 다 죽었단 말이야!”
“저는 차원 이동할 때 이미 가족들 다 죽었었습니다. 거기서 결혼해 애도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돌아와 버렸으니. 우리 가족은 어떡합니까!”
각자의 불행을 토로하는 귀환자 무리에 껴 타인의 불행을 즐기고 있었다.
이보배와 눈이 마주친 이귀한이 재밌고 즐겁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언뜻 들려온 사연이 너무 슬퍼 울상을 짓는데 갑자기 몸이 떠올랐다.
“으악.”
“절 봐주셔야죠.”
최요한이 이보배를 들고 빙빙 돌며 과장되게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손에 들린 채 이전보다 빠르게 돌고 있자니 어쩐지 이 상황이 참을 수 없이 우습고, 즐거우면서 행복했다.
이보배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가기 싫어하는 오빠들을 설득한 보람이 있었다.
발이 바닥에 닿자, 이보배는 보답으로 최요한을 들고 빙빙 돌았다.
* * *
삐야아아악! 삑삑삑삑삑 삐삐 삐삐삑!
여섯 시간 만에 주인과 재회한 이우로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보배에게 달려와 안겼다.
이보배는 이우로를 어르고 달래느라 애먹었다.
“늦어서 미안해. 이제 집에 가자.”
삐삐삐삐 삐악삑삑!
한현우가 지난 여섯 시간을 보고하는 동안에도 우로는 이보배의 손바닥에 몸 전체를 비비고 비틀면서 쉼 없이 울었다.
그러더니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이보배의 손목에 몸을 말고 꼬리를 물었다.
과장 조금 보태 이보배가 힘껏 불면 날아갈 것같이 작고 가벼운 몸으로 손목에 붙어 혼신의 힘으로 버텼다.
이보배는 그런 우로를 열심히 쓰다듬어 달랬다.
한현우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내는 조용했다.
밤이 깊었기도 하고 오랜만에 사람 많은 곳에 가 춤추고 노니 피곤했다.
박마노가 빌려준 로 술기를 날려 버렸으나 기분은 취해 있는 이해기가 흥얼거리는 트로트가 적막한 차내에 퍼졌다.
한현우에게 맡겼던 이우로도 울다 지쳐 잠들었다. 잠든 중에도 이보배의 손목에 매달려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파티가 일찍 끝나 아쉽도다.”
딱 한 명, 파티가 일상이었던 망나니 공자님만 지금이 대낮인 양 생기 가득한 눈으로 아쉬워했다.
“실로 오랜만에 즐거웠다. 육신이 바뀌어도 나의 인기가 변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춤 선생으로 활약한 이한생에게 전화번호를 교환하자고 청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씨 남매가 겁을 준 덕분에 개인 정보의 소중함을 아는 이한생은 아무에게도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지만(심지어 유마리에게도) 그럼에도 좋다고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매일 자기 입으로 인기 좋았다고 하고 잘생겼다고 한단 말이지.’
이한생 왈,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은 은발 벽안 기생오라비라고 했다. 교차 검증으로 화르세인지 드 체키빙 공자님의 외모를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이보배가 질문했다.
“공자님은 원래 어떻게 생겼는데?”
“훗, 말해 무엇하느냐. 돼지가 감히 바로 보지 못할 미남이었다.”
“은발에 푸른 눈동자, 맞지?”
“평범한 은발이 아니니라. 성신의 은혜를 담은 빛나는 청은발에 북해처럼 깊고 푸른 청회색 눈이지.”
순정 만화에나 나올 법한 색 조합이었다.
이보배는 이한생의 얼굴에 청은발과 청회색 눈동자를 덧씌워 상상해 보았다.
어울리지 않았다.
“이목구비는 어때? 비슷해?”
“얼굴과 체격은 이 몸이 듬직한 맛이 있다만, 에잇, 묻지 말거라!”
화르세인지는 지레 찔려 성질 내고 입을 다물었다.
이한생과 화르세인지의 증언을 교차 검증한 결과 바람직한 결과가 나왔다.
‘오케이, 접수. 미소년 맞았네.’
청은발에 청회색 눈동자를 지닌 미소년 성자님이라니. 상상만 해도 신성해서 절로 신을 믿고 싶어졌다.
성신, 얼굴만 보고 성자 뽑아.
이보배가 자극적인 문구를 생각하며 신성 모독을 범하는 와중, 이한생이 화제를 돌릴 겸 다른 주제를 꺼냈다.
“오늘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들어 견문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악마는 대체 어떤 세계에 있었느냐?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구나.”
편애하는 막냇동생을 위해 참기 싫지만 잘 참은 대마왕을 자극하는 민감한 질문이었다.
이해기가 즉시 경고했다.
“화르세인지, 형에게 그런 거 묻지 마라.”
“맞아, 막내 오빠. 큰오빠가 떠올리기 싫대.”
“하지만 악마는 실종되기 전까지 인간이었지 않느냐! 차원 이동된 세계에서 무슨 일이 있어 악마가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적어도 어떤 세계였는지 알고 싶다!”
그건 이보배도 마찬가지다. 몇 번 넌지시 물어본 적 있지만 그때마다 이귀한은 대답을 회피하거나 무시했다.
막내 오빠를 나무라면서 이번에도 큰오빠가 무시하리라 여겼는데 이게 웬걸.
“완벽한 세계.”
이귀한이 처음으로 질문에 답했다. 이보배 혼자 짐작하고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답변이었다.
“완벽한 세계라고?”
이해기도 마찬가지였는지 당황한 음색이었다.
이귀한은 가로등을 지나갈 때마다 길어지고 짧아지길 반복하는 그림자를 응시했다.
“고아도, 전쟁도, 기아와 질병도 없는,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나 도둑, 강도, 살인범, 강간범이 없는 완벽하게 깨끗하고 결백한 세계.”
가로등의 유무과 상관없이 이귀한의 발치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어졌다.
이한생이 헛구역질하면서 반대편으로 몸을 붙였다.
이보배의 손목에 몸을 말고 잠들었던 이우로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눈을 떴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세계. 아무도 울거나 화내지 않는 세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질투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
이귀한이 히죽 웃었다.
“나만 빼고.”
“히이이익.”
삐이이익!
이한생이 목욕하기 싫은 고양이처럼 발버둥 치다가 기어이 이보배가 있는 앞좌석으로 넘어왔다.
이우로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다가 입에 문 꼬리를 놓치고 이보배의 무릎에 떨어졌다.
운전에 방해되는 건 둘째 치고 형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기에 이해기가 형을 말렸다.
“형, 그만하자.”
“어둠과 그림자 없이 빛만 가득했던 세계.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그래서 더 역겨웠던 세계. 나만 빼고 모두가 행복했던 세계. 나만 빼고 모두에게 공평했던 세계. 나만 빼고 모두가 정의로웠던 세계.”
이해기가 급히 갓길에 차를 주차했다.
이해기는 차에서 이귀한을 끄집어냈다.
이귀한이 나오자 차내에 있던 어둠이 꿀렁이며 흘러내렸다.
“그래서 내가 그 세계의 어둠이 되었고, 그래서 내가 그 세계의 그림자가 되었고, 그래서 내가 그 세계의 질병이 되었고 전쟁이 되었고 타락이 되었고 부패가 되었고 파괴가 되었고 영원한 죽음이 되었는데!”
“큰오빠!”
“그래도 너희는 잊기 싫었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이보배를 뒤로 감추고 긴장하던 이해기의 어깨에 힘이 풀렸다.
그렇지만 완벽히 경계를 풀진 않았다.
이귀한은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을 완벽하게 감추고 히죽히죽 웃었다.
“잊기 싫고 보고 싶었어. 그래서 돌아왔어. 잘했지?”
“잘했어. 정말 잘했어, 형.”
“돌아와 줘서 고마워, 오빠.”
“우웨에에엑, 정화!”
이해기는 그제야 안심하고 여동생을 붙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는 전봇대를 붙잡고 토하는 남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이보배는 막내 오빠를 작은오빠에게 맡기고 큰오빠를 상대했다. 이우로는 그녀의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숨겼다.
“말해줘서 고마워. 고마운데 힘은 참으면 안 돼?”
“동생을 괴롭히는 건 형의 의무이자 권리.”
“막내 오빠 기분 좋게 놀았는데 토하면 기분 나빠지잖아.”
“그럼 기분 좋아지게 또 놀자!”
이귀한은 물로 입을 헹구는 이한생의 손을 붙잡았다.
“뭐냐?”
“강강술래!”
동생들 노는 데 끼고 싶었으나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고 싶지는 않았던 이귀한이 뒷북을 쳤다.
화르세인지가 황당해하든 말든, 이귀한은 둘째의 손도 잡고 둘을 돌리기 시작했다.
“형, 이게 무슨 강강술래야!”
“어, 어지럽다, 이 악마야!”
강강술래를 추고 싶다더니 이귀한은 남동생들을 붙잡고 빙빙 돌며 괴롭혔다.
대마왕의 속도를 버티지 못한 이해기와 이한생의 발이 지면을 벗어나 허공을 갈랐다.
놀이터에서 무수한 아이들을 날려 버린 놀이 기구가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그 놀이 기구 이름이 뭐더라.’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원심 분리기란 단어 말곤 생각나는 게 없었다.
이보배가 핸드폰으로 놀이 기구 이름을 검색해 보려는데 다급한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우웁! 소, 속이!”
대마왕의 1차 공격으로 속을 게워낸 화르세인지가 2차 공격으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성자님의 토사물이 밤하늘에 흩뿌려질 위기에 이보배는 을 사용했다.
“큰오빠 그만!”
파괴신은 제자리에 무릎 꿇고 회귀자와 망나니는 바닥에 처박혔다.
이보배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스킬 시전의 해로움을 실감했다.
“막내야, 말로 하면 살살 멈추는데. 이건 다 막내 탓.”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 화르세인지도 괜찮을 거다.”
이해기가 전투계 각성자의 물리 방어력을 운운하며 괜찮다고 했으나 아픈 것과 바닥에 처박힌 것은 별개의 사건이다.
바닥에 얼굴부터 처박힌 화르세인지가 손을 들어 올려 이보배의 발목을 잡았다.
“건방진 돼지. 내 오늘은 기필코.”
“진짜 미안해, 막내 오빠. 고의는 아니었어. 알지?”
“기필코, 우웁.”
차에서 이귀한에게 1차로 공격받고 2차로 원심 분리기로 고문당하면서 뒤집힌 위장에 땅에 처박힌 충격이 결정타가 되었다.
무덤에서 기어 나오는 좀비처럼 이보배를 향해 기어가던 이한생이 그대로 토했다.
이보배는 밤하늘이 아니라 자신의 발등과 새 구두에 퍼부어진 토사물을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석을 새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맑아진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
이한생은 자신이 만든 참상을 보고 침묵했다.
얼마나 힘차게 토했는지 원피스에도 토사물이 튀었다.
“……미안하다.”
공자님이 웬일로 솔직하게 사과했다.
“아냐, 오빠. 이걸로 퉁 치자.”
이보배는 관대하게 막내 오빠를 용서했다.
이보배가 그러했듯 망나니 또한 고의가 아니었으니 이쯤에서 화해하는 편이 옳았다.
“둘 다 참 착해.”
이해기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균열의 날 이전의 둘이었다면 서로 머리 끄댕이를 붙잡고 너 죽네 나 죽네 오늘로 가족의 연을 끊네 마네 싸우다가 부모님이 말려야지 떨어졌을 것이다.
아니면 이보배가 오빠들 뒤로 도망쳐 이한생이 서럽게 ‘형들은 꼴통만 예뻐해!’라고 서러워하든가.
만약 균열의 날 이후 이한생이 망나니가 아닌 양아치로 깨어났다면 이보배가 이귀한 앞 이해기처럼 설설 기었을 것이다. 그러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이한생이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하게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지금의 동생들도 보기 좋았다.
이귀한도 같은 생각인지 동생들을 보고 뿌듯하게 웃었다. 비록 이해기처럼 자세히 기억하지 못해 감회가 새롭지 않더라도 동생들이 전부 살아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책임이 무겁고 삶이 너무 힘들어 모두 버리고 도망치고 싶어 했던 청년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진 후 자책하던 청년이 있었다. 늘 도망치고 싶어 하던 주제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 청년이 있었다.
이귀한은 그 나약한 청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이귀한이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동생들은 그 나약한 청년을 기억하고 있으니.
이귀한의 선과 정의는 오래전에 오염되고 변질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나 아무렴 어떤가. 사람에서 한없이 먼 그를 기꺼이 형, 오빠라 부르고 정화해 주겠다고 노력하는 동생들이 있는데.
‘죽여주겠다는 동생이 제일 고맙지만.’
인간보다 신에 가까운 이귀한 보시기에 동생들이 한평생 피똥 싸게 노력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으나.
이귀한은 타락의 주인답지 않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회귀자도 있고, 환생한 성자님에, 파괴신을 오빠로 둔 동생도 있다.
운 좋게 정화에 성공할지 모르는 일이다.
동생과 재회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리란 두려움에 귀환을 포기하려 한 적 있다. 도망가려던 이귀한을 붙잡은 건 도망쳐선 안 된다는 나약한 외침이었다.
‘도망치지 않길 잘했어.’
이귀한은 이른 귀환의 일등 공신인 둘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착해, 둘째야.”
“내가 착하다고?”
“그럼. 난 나쁜 놈이라 착한 놈 구분할 수 있지롱. 내 동생들은 다 착해.”
회귀자는 형의 칭찬을 믿지 않다가 이어지는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착해.”
타락과 파괴, 부정의 군주에게 착하다는 말은 욕이지만 분위기상 관대히 봐주기로 했다.
“집에 가자. 얼른 씻고 싶어.”
이보배는 인벤토리에 비축한 물로 구두에 묻은 토사물을 흘려보내고 오빠들을 재촉했다.
“그래, 집에 가자.”
“잠시 기다리거라. 속 좀 가라앉혀야겠다.”
“그럼 느리게 밟을 테니까 넌 뛰어와. 길 알지?”
동생 놀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이해기의 발언에 이한생이 뒷목을 잡았다.
셋째는 길길이 날뛰고 둘째는 실실 비웃는다. 막내는 를 남발하지 않기 위해 참을 인을 중얼거렸다.
이귀한은 그런 동생들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이런 나날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지만 불가능하다. 잘 알고 있다. 이귀한의 입장에서 보면 순식간에 지나갈 찰나의 시간.
‘더 길게 늘릴 수 있지만 싫어하니까 참아야지.’
이귀한은 참기 싫다. 하지만 동생들을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다. 세상에 부술 세계 많고 죽일 생명 많아도 동생들이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이 최고니.
마침내 집에 돌아온 귀환자는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