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33)
26. 악(惡)은 악을 낳는다 (1)
변호사를 고용한 효과는 확실했다.
학교 측에서는 고동수 일행 처분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고, 형사 문제가 마무리될 때까지 정학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로 인해 학교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현성은 경계의 대상인데, 변호사를 고용하면서까지 친구를 고발했다는 소문에 더더욱 가까이할 수 없었다.
수업을 받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혹은 복도에서 마주칠 때.
친구들은 분명히 김현성을 발견했는데도,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시선을 돌려 버렸다.
학생들이 바글거리는 교실 안에서도, 김현성 근처로는 단 한 명의 학생도 다가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 김현성 무서워서 학교 다니겠냐?”
“그러니까. 시비라도 붙으면 곧바로 변호사를 부를 거 아냐. 진짜 고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쟤 진짜 왜 저러냐?”
“그냥 멀리하자. 그게 상책이야.”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학교에 녹음기를 들고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 원래부터 인연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골든 서클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김현성은 자연스럽게 고립되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멘탈이 무너질 법한 상황이었지만, 김현성은 전혀 동요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생활.
순탄할 것이라고 기대한 적은 없었다.
가시밭길일 것이고, 오히려 시작이 나쁘지 않아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상대가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자신의 전학으로 인해 학교 전체가 동요한다는 의미일 테니까.
여느 날처럼 수업을 준비했다.
그런데.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교실로 들어왔다.
드르륵.
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교과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용을 복습하고 있는데, 웅성거림의 주인공은 곧바로 김현성을 향해 걸어왔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 있던 의자를 끌고 와서는 맞은편에 앉았다. 책상 하나를 두고 김현성과 마주 보는 형태에, 김현성은 그제야 고개를 들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네가 김현성이구나?”
활짝 웃었다.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김현성은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전학을 준비하며.
정찬수로부터 받은 자료를 닳도록 확인했다.
그중 한 명.
‘S+ 등급의 최명훈.’
골든 서클 최고 등급.
자신을 향한 악의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최명훈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친구들이 들을 수 없도록, 그는 묘하게 듣기 거북한 목소리를 느릿하게 내뱉었다.
“너도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알고 있을 테니까 빙빙 돌리지 않고 말할게. 앞으로 이 학교에서 그 누구도 너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을 거야. 내 말이 무서운 것도 있겠지만. 전국 1등이라는 성적표도, 전학을 오자마자 친구를 고발한 네 행보도 다른 애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겠지. 그리고 네가 이 답답한 상황을 이겨 내지 못하고 사고라도 치는 순간, 우리 학교 선생들이 널 잔인하게 물어뜯을 거야. 대산에서 자랑하던 네 배경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씰룩, 웃었다.
골든 서클의 소속임을.
악의를 지니고 찾아왔음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최명훈이 시선을 슥 내리더니, 녹음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참 대단하기는 해. 이 학교에 전학 온 것도 모자라, 녹음기를 몰래 숨겨 놓고 엿 먹일 생각을 하다니.”
이번 의뢰.
보상이 상당했다.
김현성을 처리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에게 무려 1억을 지급하겠다는 명령이 떨어졌고, 최명훈을 비롯한 여러 인물이 바쁘게 움직였다. 깔끔하게 처리한다면 인센티브까지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 일반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김현성 하나로 인해 대성 미래 고등학교가 활화산처럼 들끓고 있었다.
“네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오늘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참지 못하겠으면, 이 상황이 너무 열이 받아서 누군가를 상대로 분풀이를 해야겠으면. 나를 찾아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용기만 있다면 언제든 기꺼이 상대해 줄 테니까.”
시선을 돌렸다.
다들 저마다 무리를 이루었다.
애써 이곳에 관심이 없는 듯한 반응이나, 진실은 그게 아님을 알았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모두가 이곳에 집중했다.
최명훈이 다시 김현성을 바라보았다.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 온 것을 환영한다, 현성아.”
* * *
최명훈이 반을 나섰다.
같이 왔던 친구가 쪼르르 따라오더니, 옆에서 말을 걸었다.
“왜, 그냥 처음부터 조져 버리지. 어차피 선생님들이 뒤를 봐줄 텐데 굳이 말로 때울 필요가 있어?”
이번 일.
최명훈답지 않은 방식이었다.
그는 보통 의뢰를 받으면 곧바로 움직였다.
같은 학교든 다른 학교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을 낸 뒤에 그를 철저하게 따돌릴 것을 명령했다. 누구도 최명훈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김현성을 상대로는 법의 테두리를 운운하기는 했지만, 처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그의 강력한 무력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최명훈의 모습에.
모세의 기적처럼 복도가 열렸다.
특별히 비키라고 경고한 것이 아닌데도,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 주었다.
최명훈이 말했다.
“너, 김현성이 어떤 새끼인 줄 알아?”
“알지. 대산을 먹었다며.”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야. 골든 서클을 통해 자료를 받아 보니까, 저 새끼 정상이 아니야.”
“그 정도야?”
친구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친구로서는 최명훈을 따라다니기에 골든 서클의 존재를 알지만,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전혀 몰랐다.
최명훈은 달랐다.
브로커의 경고가 머릿속에 선명했다.
“김현성이 먹었다는 그 대산의 학교도 이곳과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어. 학교 전체가 김현성의 적이었는데, 김현성은 혼자서 학교 전체를 들이받았어. 뭐, 거기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기껏해야 지방 학교인데 강한 새끼들이 있기나 하겠어? 문제는 그 이후야. 김현성은 단순히 싸움으로 끝내지 않아. 상대를 쓰러트리고 나면, 반드시 그 상대의 인생을 짓밟아 버리지.”
“……어떻게?”
“박민철, 강창석, 조용택, 신영민. 김현성이랑 붙었던 애들 전부 소년원에 끌려갔어. 더 소름이 돋는 건 정민호라는 애가 있는데, 걔는 지금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는 거야. 여기서 재밌는 사실을 말해 줄까? 그 정민호도. 골든 서클의 작품이야. 처음에는 다른 의뢰인이 의뢰를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사건이 터지면서 진실이 밝혀졌거든. 김현성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골든 서클에 의뢰해, 역으로 정민호를 궁지에 몰아넣어 버렸다는 게. 어때? 소름 돋지 않아?”
시선이 마주쳤다.
친구는 감당할 수 없는 진실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최명훈의 눈빛은 묘한 광기로 일렁였다.
일련의 상황.
웬만한 브로커들도 모르는 진실이다.
최명훈은 S+ 등급답게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달받은 상태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겁을 먹을 만한 일이었다. 김현성이 벌였던 일들은, 일개 고등학생이 감당할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최명훈은 달랐다.
이미 골든 서클에 완벽히 뿌리를 내린 그로서는, 오히려 끝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학교생활에 재밌는 사건이 생긴 것만 같았다.
“김현성, 그 새끼는 팔다리가 좀 부러진다고. 싸움에서 한번 패배했다고 끝낼 새끼가 아니야. 골든 서클을 역으로 이용하고 대놓고 이 학교에 전학 온 것처럼, 분명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꿍꿍이가 존재하겠지. 그런 애를 어떻게 다른 병신들처럼 똑같이 대우할 수 있겠어? 충분히 달여 먹어야지. 최대한 흠집을 내고,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툭툭 건드려야지. 그리고 마침내 위험을 무릅쓰고 대산에서처럼 일을 벌이면.”
히죽, 웃었다.
최명훈은 늘 생각했다.
이 일은.
골든 서클의 의뢰는.
자신의 천직이었다.
“이곳이 대산과는 다른 생지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어야겠지.”
압도적인 패배를.
최명훈의 머릿속에서 재밌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 * *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김현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수업에 집중했다.
최명훈의 경고에 복잡할 수도 있는 상황이건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툭.
무언가가 머리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잘못 느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툭, 툭.
수업 내내.
누군가가 계속 머리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의 정체를 확인해 보니, 지우개를 작게 잘라 낸 것이 땅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곧바로 범인이 보였다.
“뭐?”
소리를 내지 않는.
입 모양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같은 반 친구인 건 알겠는데,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보니 얼굴이나 이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최명훈의 의도일 것이다. 최명훈이 자신을 찾아와 경고한 것처럼, 자신을 툭툭 건드리는 행동 중 하나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사실 별일은 아니었다.
겨우 이 정도로는 화도 나지 않았지만, 김현성은 다시 칠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예상대로야.’
녹음기의 존재.
상대에게 한 방을 먹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겨우 녹음기를 조심하겠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골든 서클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소모품이 존재했다. 진경희 교감이 고동수 일행을 버린 것처럼. 그리고 그런 진경희 교감 또한, 골든 서클에게는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처럼.
녹취에 노출되는 존재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을 아무리 쓰러트린다고 한들, 그건 골든 서클에는 닿을 수 없는 소모전에 불과했다.
‘아마도 이들이 생각하는 데드라인은 1학기 중간고사겠지. 내 성적이 내신에 반영되는, 골든 서클 의뢰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평가의 자리. 그렇다면 나를 처리하기 위해 부여된 시간은 약 한 달 정도. 그동안 버티는 게 능사일까? 아니야. 고동수가 날 무고한 것처럼, 얼굴도 모르는 애가 내 뒤통수에 지우개를 툭툭 던지는 것처럼. 날이 거듭할수록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겠지.’
이건.
일종의 시험이었다.
어디까지 버티는지, 얼마나 버티는지.
자신의 인내심을 최대한 건드렸다.
결국에 폭발하며 사고를 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고동수를 처벌했던 것처럼 징계로 끌고 가면 가볍게 쫓아낼 수 있고, 최명훈은 김현성의 분노를 처참하게 짓밟을 힘이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완벽하게 무너트리고자 했다. 그들은 김현성이 위험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본인들을 과신하기에 아직은 너무나도 평범한 방법으로 접근했다.
“큭.”
웃겼다.
저들은 알까?
자신이 어떤 생각인지.
어떤 삶을 각오했는지.
애초에 녹음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건 다른 문제를 위한 밑바탕에 불과했고, 학교에서의 일은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고로.
‘나는 반드시 눈엣가시가 되어야만 해. 평탄하게 흘러가는 시간으로는 상대들이 조급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최명훈을 쓰러트리는 것?
그건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상대를 아무리 쓰러트려도.
계속해서 대체자가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지금 필요한 건 이 학교라는 시스템이 자신을 무너트리지 못한다는 확실한 예시.
“자자, 수업 끝. 점심 맛있게 먹어라.”
선생님이 물러났다.
김현성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옮기더니, 뒷자리에 있는 한 친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뭐?”
지우개를 던졌던 친구였다.
살짝 쫀 얼굴이었다.
그래도 최명훈에게 들은 것이 있기에, 이대로 물러나지는 않겠다는 듯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재밌어?”
김현성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녹음기였다.
그러고는.
툭.
녹음기를 껐다.
상대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감정이 번져 나가는 그때.
빠악-!
김현성은 그대로 주먹을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