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58)
30. 악의가 범람하는 순간 (2)
오피스텔 입구.
그곳에서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오피스텔을 오가는 사람들을 통제했다.
“돌아가세요.”
“지금은 엘리베이터 못 탑니다.”
“씨발, 그냥 말 들으라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어른들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리 미성년자라고 한들 수십 명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서슬 퍼런 기세의 고등학생들은 당장에라도 문제를 일으킬 것 같았다. 관리인이 일단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에 걸음을 돌렸고, 어느 순간 입구에는 고등학생들만이 남았다.
그중.
최명훈이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며, 위험하게 가라앉은 눈빛을 보였다.
‘아무리 너라도 이번에는 힘들 거야.’
박형준을 찾아간 날.
그는 계획에 대해 들었다.
박형준은 더는 학교에서 김현성을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강남을 무대로 활동하는 골든 서클의 일원들을 불러들여 ‘학교 밖’에서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구상했다. 여기서 재밌는 포인트는 스토리였다. 단순하게 학교 폭력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닌, 최명훈을 가담시켜 매우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학교 간의 전쟁.
집단으로 번진 폭행.
불행히도 한 학생이 죽어 버린 안타까운 사연까지.
김현성의 예상대로였다.
지금 골든 서클은 매스컴에 전시할,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밑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김현성이 죽는다면.
최명훈의 문자가 증거로 채택될 것이다.
인터폰에 기록된 음성 자료와 여기저기 흩뿌려진 증거들이, 김현성과 다른 학교가 전쟁을 벌이다가 죽은 사건이라고 설명해 줄 것이다. 골든 서클은 역시나 무서운 집단이었다. 그동안의 방식으로 김현성을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마자, 위험천만한 악의를 드러냈다.
입구 쪽 CCTV는 먹통이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관리인을 포섭했고, 최명훈은 무언가를 준비한 상태였다.
품을 어루만졌다.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정말 만약에. 그 많은 인파를 뚫고 내려온다면…….’
옷 안에.
칼이 있었다.
박형준은 최명훈에게 약속했다.
“이번 계획에서 넌 학교 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증인이야. 김현성이 다른 학교와 트러블이 있었다는 걸 네 문자와 증언으로 뒷받침한다면, 우리에게 뒷돈을 받아먹은 검사들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진실로 받아들이겠지. 그리고 만약에. 김현성이 기어코 모두를 쓰러트리고 오피스텔을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칼로 찔러 버려. 어차피 CCTV로는 진실을 확인할 수 없을 테고, 넌 김현성을 도
우려다가 실수로 찔러 버렸다고 변명하면 돼. 의도가 없는 살인과 미성년자라는 네 나이는 형량을 덜어 줄 거고, 네가 출소한 이후에는 골든 서클의 이름을 걸고 확실하게 보상하겠다고 약속하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김현성의 잘못이었다.
김현성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았다면, 이런 위험한 일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든.
뭐라도 받아먹든.
희생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판이었다.
최명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넌 절대 살아남을 수 없어.”
아마도 자신이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김현성이 거주하는 12층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으로 우르르 뛰어가는 고등학생들.
눈앞의 광경은 최명훈에게 확신을 주었다.
* * *
생로가 차단되었다.
앞에도.
뒤에도.
김현성이 빠져나갈 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으나, 김현성은 몰려드는 인파에 비상구로 떠밀렸다.
“죽어, 개새끼야!”
훅!
상대가 득달같이 주먹을 휘둘렀다.
김현성은 뒤로 빠지면서 공격을 흘려보냈고,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정확하게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작렬시켰다.
빠악!
“컥.”
피가 튀었다.
절묘한 크로스 카운터였다.
넘어가는 상대의 모습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김현성은 어느새 계단을 올라온 적들을 발견했다.
빡.
퍽, 빠악-!
인파와 뒤얽혔다.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는 주먹에 발로 차 버렸고, 비상구를 넘어서 달려드는 상대의 주먹을 얻어맞자마자 반격으로 얼굴을 날려 버렸다. 사실상 어디로든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김현성은 본능에 몸을 맡겼다. 어디로 도망치겠다는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밀리면 밀리는 대로 공간에 휘말리며 맞닥트리는 적들을 차례로 상대했다.
파악.
우당탕!
누군가가 그대로 몸을 들이받았다.
김현성이 적들과 뒤엉켜 계단 밑으로 떨어졌고, 바글거리는 인파가 쿠션처럼 충격을 흡수해 주었다.
번뜩 일어났다.
불안정한 자세에도.
콰직.
“크악!”
상대의 얼굴에 하이킥을 작렬시켰다.
동시에 얼굴이 홱 돌아갔다.
계단에서 올라오던 적이 주먹을 날렸지만, 김현성은 곧바로 이를 악물며 상대의 머리칼을 붙잡았다.
빠악!
빡, 빡, 빡.
“끄르륵.”
얼굴을 연속해서 후려쳤다.
처음에는 피가 터졌고, 두 번째는 눈이 풀렸으며, 세 번째에는 코를 비롯한 얼굴 이곳저곳이 함몰되는 모습이 보였다. 이로 인해 영구적인 장애를 얻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집단으로 싸움이 벌어진 지금, 자신의 죽음으로 마무리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저따위 부상은 기삿거리도 되지 않는다.
툭.
손을 놓았다.
정확히는 뒤를 공격당해 놓칠 수밖에 없었고, 김현성은 뒤를 돌자마자 상대의 얼굴을 날렸다.
빠악-!
머리가 핑 돌았다.
얼마나 쓰러트리든.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또 다른 상대가 그 자리를 메웠고, 김현성은 악에 받친 얼굴로 저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미친 새끼.”
“진짜 끝까지 하겠다는 거야?”
상대가 질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상황.
포기하는 게 정상이었다.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빌어야 했다.
그런데도 김현성은 멈추지 않았다.
연속해서 얼굴을 얻어맞으며 피가 튀었고, 계속되는 싸움에 숨이 가빠졌다.
일 대 다수.
이건 판타지가 아니었다.
그동안 아무리 고된 훈련을 감당했다고 한들, 이렇게 많은 인원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령 정두철이라 해도.
다를 건 없었다.
인간의 한계를 논하는 상황이나, 김현성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훅.
공격을 피했다.
빠악-!
상대의 얼굴이 함몰되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김현성은 또 다른 상대를 들이받더니 한데 뒤엉켰다.
복잡한 상황이었다.
상대로서도 인원이 너무 많아, 김현성을 효율적으로 공격할 수 없었다.
“허억, 허억.”
김현성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숨이 가빠 왔다.
아직도 상대는 조금도 줄어 보이지 않았다.
수십은 더 쓰러트린 것 같은데,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 따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빠득.
빠드드드득.
“끄아아아악!”
바닥에 널브러진 상대의 팔을 비틀었다.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지자, 김현성은 그를 놓아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렸다.
피로 흠뻑 물들어 침을 삼킬 때마다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김현성이 히죽 웃었다.
“그래, 나랑 마주치는 새끼들은 무조건 죽는 거야.”
공간을 가득 메우는 악의를 향해.
김현성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 * *
오피스텔 밖.
맞은편 카페에 박형준이 있었다.
그는 커피를 홀짝이며, 창 너머로 오피스텔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니요. 30분은 벌어 주셔야 합니다. 이후 문제는 크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상부에서야 서장님에게 책임을 물을 리가 없고, 이번 사건이 공론화가 된다고 한들 인근에 충분한 명분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경찰의 늦장 대응. 그 정도 타이틀의 대가로는 과분한 걸 받으시지 않습니까?”
[……일단 알겠습니다.]뚝.
통화를 끊었다.
방금 통화한 상대.
강남 경찰서 서장이었다.
오피스텔의 상황을 확인한 사람들이 신고 전화를 걸었지만, 그럼에도 경찰은 빠르게 대응하지 않았다. CCTV를 먹통으로 만든 관리인, 늦장 대응하는 경찰들. 김현성이 대산이라는 홈그라운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박형준은 강남이라는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실상 끝났다.
이번 작전에만 백 명이 넘게 동원되었다.
김현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혼자서 그 많은 인파를 감당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죽으면 돼.”
웃었다.
이번 사건으로 세상이 난리가 날 것이다.
강남 한복판에서 대규모 패싸움이 벌어지는, 학생 한 명이 죽어 나가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딱 그 정도였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아 이 사회를 비판하나,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논할 뿐 크게 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김현성이라는 학생이 왜 죽었는지를 살펴보기보다는. 늘 그렇듯 혀만 찰 뿐이다. 학교 폭력은 전 국민이 크고 작게 모두 경험했던 일이기에,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길이 번져.
본인이나 본인의 자식들에게 닿기 전까지는, 그들은 이 불길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를 몰랐다.
그렇게 의뢰는 성공할 것이다.
전국 1등이 사라지고 나면.
김현성을 중심으로 한 불만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과정이 과격하다고 한들 결과는 만들어 냈으니까.
그렇게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려는데, 박형준의 시야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뭐야, 저건.”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
그들이 오피스텔로 향했다.
문제는 그들의 교복이.
‘천일 고등학교?’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대산의 학생들이었다.
* * *
어떠한 대화도.
특별히 당황스러워하는 반응도 없었다.
천일 고등학교를 비롯한 ‘대산의 학생들’이 오피스텔이 들어서더니, 선두에 있는 한 학생이 담담하게 말했다.
“길 열어.”
팟.
타다닥.
대산의 학생들이 달려들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골든 서클의 일원들을 향해, 그들이 거침없이 공격성을 드러냈다.
빠악.
빡, 빡!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거침없이 휘두른 주먹에 강남 학생들이 쓰러졌고, 대산의 학생들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이 계속해서 밀고 나갔다. 상대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김현성이 이들을 부른 것이 분명해 보였으나, 상황이 어떻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밀려드는 대산의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일련의 상황.
최명훈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이게 무슨.”
대산의 난입.
계획에 없던 일이다.
애초에 이번 계획은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김현성은 이런 상황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백 명이 넘는 인원을 동원해 ‘살해’하려는 계획이다. 이런 계획을 알았다면 혼자서 오피스텔에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했을까? 진즉에 도망쳤을 것이다. 어떻게든 안전한 환경을 확보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텐데, 김현성은 분명히 아무것도 모르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
대체 어떻게 대산의 학생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이 서울에 나타나기 위한 거리적인 문제도 말이 되지 않았다.
‘설마. 우리의 계획을 예상했다고?’
소름이 쫙 돋았다.
이번 계획은 철저하게 통제했다.
가담한 인원들을 엄선했고, 계획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그렇다면 김현성이 예상했다는 것인데, 사실 유출되었든 예상했든 모두 이해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알았다면.
도망치는 게 옳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김현성이 무엇을 의도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이미 계획은 시작되었고, 위에서 보고받은 대로라면 김현성은 궁지에 몰렸어. 이 녀석들은 널 구해 주지 못해. 넌 이미 끝난 거라고.’
이건 자충수(自充手)가 명백했다.
골든 서클은 이번 계획을 위해 정예를 동원했다.
최소가 C등급부터고 이 자리에는 다른 S등급들도 있었다.
겨우 지방의 어중이떠중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김현성은 반전을 도모했지만, 멍청하게도 본인을 과신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최명훈이 소리쳤다.
“공격해! 지방 새끼들 아무것도 아니니깐 밀리지 말라고!”
거칠게 나섰다.
자신도 싸울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어느새 인파를 뚫은 누군가가 최명훈의 앞을 막아섰다.
“너야?”
“뭐?”
다부진 체격.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
처음에 선두에서 오피스텔에 들어섰던 인물이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순간.
최명훈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김현성과 관련된 주요 인물 중 한 명.
상대는 바로.
“너구나, 최명훈이.”
김시우.
그 김시우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