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59)
30. 악의가 범람하는 순간 (3)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김현성은 최명훈의 동선을 파악했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그와 관련한 모든 정보가 시시각각 김현성에게 전달되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명훈이 지난 며칠간 골든 서클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을 만나고 있고, 해당 학교에서는 방과 후에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강남에서만 무려 십수 개의 학교. 저희가 파악하지 못한 것까지 생각한다면, 최명훈을 중심으로 강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심부름꾼의 보고였다.
일련의 상황.
김현성은 단번에 그 의도를 파악했다.
‘골든 서클이 최명훈을 내세워 강남의 전력을 집결하고 있어. 학교 안에서 나를 처리할 수 없다는 판단에, 학교 밖에서 결판을 보려는 의도겠지. 그렇다면 곧이야. 1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전에 골든 서클은 반드시 움직일 거야.’
뻔했다.
상대는 분명.
학교 폭력이라는 악의를 내세워 자신을 처리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일단은 눈앞에 들이닥친 칼끝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고창범 상무님께 연락해서 당분간 피신할 새로운 장소를 구해 드리겠습니다.]“아니요, 괜찮습니다.”
[지금 거주하는 오피스텔은 위험합니다. 아무리 강남 역세권이라지만, 골든 서클이 마음먹고 움직인다면 문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상대는 이미 거주지를 파악하고 있을 테니, 위치가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거주지로 옮기시죠. 그리고 방과 후에는 항상 차량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차를 타고 거주지로 이동한다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타당한 조언이었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김현성의 대답은 달랐다.
“일단 알겠습니다. 충분히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뚝.
통화를 끊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심부름꾼의 조언에 곧바로 괜찮다고 말한 것은, 골든 서클과 적대하는 이상 언젠가는 감당해야 하는 위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거주지를 바꾼다고 한들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을까. 상대는 강남 전체를 손아귀에 올려놓는 세력이기에, 꼬리가 붙는다면 거주지가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다면 그때도 거주지를 옮겨 눈앞의 위험을 피하는 게 상책일까.
아니다.
감당해야 했다.
그들이 어떤 수를 쓰든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야만, 비로소 원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결국에 내 선택인 건가.”
창밖을 보았다.
지금은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 * *
그날 저녁.
김현성은 김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생각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자, 예상대로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야.”
[아니, 세상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은 없어. 아무리 중간고사 이전이라는 시기를 특정할 수 있다지만, 언제 어디에서 공격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잖아. 대체 어떻게 대비하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적들을 만난다면, 그때는 정말 살해당할지도 몰라. 걔들이 널 가만히 두겠어? 지금의 넌 절대 살려 두어서는 안 될 존재야.]“알아. 만약에 내 목적이 단순히 골든 서클을 무너트리려는 거라면, 내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계획을 진행했겠지. 그들이 신뢰를 잃는 순간 골든 서클은 존재 의미를 상실해 버릴 테니까. 그런데 내 목적은 그게 아니야. 난 지금껏 골든 서클에 가담한 모든 존재가 파멸하기를 바라. 그들이 무너지는 그 순간에, 그들이 같이 그곳에 매몰되기를 바란다고.”
고민의 결과였다.
승리가 아닌 파멸.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나는 아직 골든 서클의 주인이 누구인지 몰라.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내 계획대로 골든 서클을 무너트린다면, 정작 핵심적인 인물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겠지. 그들에게는 골든 서클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쉬울 수는 있어도,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골든 서클로 이룬 막대한 부와 명예로 부족함 없이 살아갈 거야. 그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난 나를 드러내면서까지 그들을 분열시켜야만 해. 골든 서클조차도 내 존재를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증명하면서 중간고사 1위의 성적을 따낸다면, 그때는 분명히 ‘베일’에 감추어진 존재들을 찾아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통화기 너머.
김현성의 악의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김현성이 가장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임을, 김시우 또한 충분히 이해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성과 감성.
복합적인 감정이 충돌했다.
이성적으로는 김현성을 말려서 친구의 위험을 저지해야 했지만, 골든 서클을 향한 악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상 김현성이 전화를 건 순간부터 결정된 일이었다. 김시우는 조언할 수는 있어도, 그의 말이 김현성에게 조금도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침묵을 뚫고.
김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뭘 하면 돼?]그 말.
김시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바로 돌아온 대답에, 김현성이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흘러가는 대로 가되, 내가 공격받는 순간에 맞받아칠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하겠지. 대산의 전력을 집결시켜 줘. 지금 필요한 건 골든 서클과 똑같이, 학교 폭력의 영역에서 그들을 무너트릴 힘이니까.”
* * *
김현성의 부탁.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현성이 천일에 다니던 시절, 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명령을 잘 따르면 콩고물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김현성이라는 존재의 위압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은 달랐다.
김현성은 서울에 있다.
게다가 이번 일은 자칫 잘못했다간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천일을 포함한 대산의 학교들.
김시우가 그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말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일은 매우 위험해. 서울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순간 그건 한두 사람이 다치는 수준이 아닌, 형사적인 처벌을 감당해야 하는 문제로 번지겠지. 내가 이 자리에서 약속할 수 있는 건 너희가 만약 소년원에 들어간다면. 혹은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면, 현성이가 늘 그랬듯 그것은 금전적인 보상으로 환산될 거야. 너희의 희생이 금전적으로 절대 무의미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 강요는 아니야. 만약 포기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말해. 지금 발을 빼는 상황에는 그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을 테니까.”
“…….”
김시우의 말.
모두가 눈치를 살폈다.
정말 쉽지 않았다.
대산의 학생들이 서울까지 찾아가서 패싸움을 벌이고, 수십 명 혹은 그 이상이 다칠지도 모르는 엄청난 사건이다. 과연 학교 징계 정도로 끝날까. 이번 사건으로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한다면, 김현성에게 충분한 대가를 받아 온 사람들도 섣불리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할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목소리의 주인.
의외의 인물이었다.
대산 제일고 성대현.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이름이지만, 성대현은 김현성이 해 주었던 일을 잊지 않았다.
“난 말이야. 현성이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지옥에서 살고 있었을 거야. 현성이가 대산을 정벌하고서 학교 폭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어. 힘이면 뭐든 되는구나, 그리고 나 또한 강해져야겠구나. 그때부터 현성이처럼 되고 싶어서 체육관에 다니면서 미친 듯이 훈련했어. 그러니까, 난 무조건 할 거야. 내 학창 시절은 현성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끔찍한 기억으로만 남았을 테니까.”
이 자리.
단순히 각 학교의 양아치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대현은 대산을 정벌할 당시, SNS에 처음으로 글을 올렸던 피해자였다.
김현성의 도움을 받았던 그가,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다른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었다.
끔찍한 과거를 이겨 냈다.
처음에는 샌드백을 치는 것도, 링 위에서 얻어맞는 것도 매우 버거운 시기가 있었지만, 어느덧 제법 남자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대현을 비롯한 피해자들. 그들이 김시우의 부름에 이 자리에 모였다. 대산에서 김현성의 존재는, 단순히 힘으로만 정벌해 낸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은인.
그 단어로도 통용되었다.
너도나도 나섰다.
피해자들이었던 애들이 가담하자, 다른 친구들도 말했다.
“에라, 모르겠다.”
“우리도 하자.”
“다른 건 모르지만 김현성이 보상 하나는 확실하잖아.”
일련의 상황.
김시우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감정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김현성에게 고마움을 느꼈듯,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넌 옳은 일을 하고 있어.’
이번 일.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김시우가 뜨겁게 치솟는 감정을 삼켜 내며 말했다.
“지금부터 너희에게 계획을 설명해 줄게.”
* * *
예상대로였다.
중간고사 마지막 주말.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되는 시간에 골든 서클이 움직였다.
이 하루를 대비하기 위해서 숱하게 서울에 올라왔다는 것을 골든 서클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개새끼가.”
훅.
최명훈이 달려들었다.
아직 한쪽 팔이 온전치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위협적인 주먹을 휘둘렀다.
일반적인 상대였다면.
충분히 먹혔을 것이다.
그런데 김시우는 고개를 트는 동작으로 주먹을 흘려 보내더니, 역으로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빠악-!
“컥.”
크로스 카운터.
최명훈의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강렬한 충격에 이를 악물며 다시 주먹을 휘둘렀지만, 김시우는 근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수차례의 공방에 단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최명훈으로서는 숨이 턱 막혔다. 주먹을 뻗을 때마다 역으로 돌아오는 강렬한 충격에, 당장에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떴다.
‘이 새끼.’
만만치 않았다.
정보로는 충분히 파악한 인물이었는데, 막상 상대해 보니 조사한 것 그 이상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계획은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기에, 김시우와 같은 녀석들이 김현성을 도와주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훅-
파고드는 주먹이 보였다.
최명훈은 한발 빠르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빠악.
머리와 주먹이 부닥쳤다.
상식적으로는 머리의 충격이 상당하겠지만, 한발 빠른 타이밍은 최명훈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의도적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후웅-!
뒷손을 크게 휘둘렀다.
애초에 이 공격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한쪽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폭발적인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먹혔다.’
통했다고 생각했다.
김시우는 절대 반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빠악-!
“크흡.”
몸이 휘청거렸다.
본능적으로 깁스한 팔을 들었기에 망정이지, 사각에서 파고드는 변칙적인 킥에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니 상대는 발차기 스페셜리스트다. 한쪽 팔이라고는 하나 주먹싸움에도 밀리는 바람에, 김시우의 발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변칙적인지를 잠시 잊고 말았다.
“끝이야?”
김시우의 담담한 반응.
그제야 알았다.
김시우는 강했다.
만약 최명훈의 몸이 정상이었다고 해도, S+ 등급인 자신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겨우 대산이라는 지방에 김현성과 김시우 같은 실력자가 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만약 김현성에게 패배하기 전이였다면 끝까지 실력으로 승부를 보겠지만, 지금의 최명훈은 달랐다.
벼랑 끝.
뒤가 없었다.
상대를 인정하자, 최명훈의 눈빛이 위험하게 변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팟.
타다닥.
달려들었다.
김시우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며, 달려드는 자세 그대로 김시우를 들이받았다.
확.
콰당!
뒤엉켜 넘어졌다.
지금이 기회였다.
김시우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최명훈이 무언가를 꺼내서 김시우의 복부에 푹 찔러 버렸다.
칼이었다.
김현성을 처리하기 위해 준비했던 ‘비장의 무기’를, 김시우라는 방해물을 처리하기 위해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최명훈이 눈을 부릅떴다.
파르르 떨리는 눈은, 눈앞의 상황을 부정했다.
“……이게 무슨.”
“예상은 했다만. 정말 쓰레기 같은 새끼네.”
확.
콰직-!
팔꿈치가 얼굴에 작렬했다.
최명훈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며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칼로 찌른 공격.
복부에 분명히 박혔다.
만약 김현성이 칼을 맞았다는 이전 사례가 없었다면, 김시우는 얇은 방검복(防劍服)을 안에 입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날카로운 감촉이 상당한 충격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복부가 뚫릴 정도는 아니었다.
김시우가 벌떡 일어났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최명훈의 모습에, 그대로 그의 얼굴에 사커킥을 갈겨 버렸다.
빠악!
끝났다.
얼굴이 함몰되며 최명훈이 정신을 잃었다.
김시우가 고개를 들었다.
최명훈에게서 시선을 거두자, 혼란스럽게 뒤얽혀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비켜, 이 씨발 새끼들아.”
김현성이 있는 12층.
상황이 촉박했다.
김시우는 주저 없이, 악의가 들끓는 공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