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60)
30. 악의가 범람하는 순간 (4)
최명훈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했다.
그를 쓰러트렸다고 해도, 비상구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목에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이 득실거렸다.
“쟤부터 공격해!”
“시발.”
훅.
빡, 빡-!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두 명의 얼굴을 날려 버렸지만, 그들이 쓰러지는 광경 너머로 새로운 적들이 보였다. 김시우는 차분하게 호흡을 내뱉었다. 눈에 보이는 주먹을 피하고는 반격, 그리고 곧바로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적의로 일렁거리는 새로운 적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빠악!
하이킥이 작렬했다.
비틀거리며 무너지는 상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묵직한 주먹이 김시우의 가드 위를 때렸다.
“적당히 해야지, 이 개새끼가!”
비틀.
충격이 대단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김시우로서는 혼란스럽게 뒤얽히는 상황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상대는 S등급의 실력자였다. 그로 인해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S등급 한 명만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십수 명의 적들도 득실거리는 상황이다. 사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 내면서 상대를 쓰러트리려고 했지만, S등급의 상대는 공격을 흘려보내며 오히려 반격을 시도했다.
훅-
공격은 피했다.
이길 자신은 있었다.
문제는 시간은 김시우의 편이 아니라는 것.
상대가 버틸수록, 시간이 끌릴수록 김시우는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다 현성이가 위험해져.’
이번 작전.
김현성은 모든 위험을 떠안았다.
사실 충분히 안전하게 대비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그림을 위해 위험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시우가 김현성에게 약속한 것은 늦지 않게 도와주는 것. 만약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늦어 버린다면, 오피스텔에 들이닥친 골든 서클의 일원들은 계획대로 ‘한 명의 피해자’를 만들 것이다.
용납할 수 없었다.
김시우가 이를 악물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길을 뚫으려는 그때.
후웅.
빠악-!
“컥.”
S등급의 상대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갑작스러운 공격이기도 했지만, 순간적으로 시야를 파고드는 큼지막한 주먹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후드를 눌러쓴 거대한 체격의 사내가 보였다.
“넌 그냥 가. 내가 길을 열 테니까.”
상대의 정체.
그는 바로 배성호였다.
* * *
배성호.
그는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미성년자 고등학생들이 싸우는 자리에, 20살의 성인이 감당해야 할 법적인 책임은 간단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꺼이.
그는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김현성의 말이 옳아. 나 같은 놈은 사회에 나가 봤자 10년이 걸려도 1억을 모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해. 혹여 이번 일로 교도소에 들어간다고 한들, 그건 절대 손해라고 할 수 없겠지.’
졸업 직후.
배성호는 짧게나마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대학 진학에는 애초에 실패했고, 그의 성적으로는 번듯한 직장에 이력서조차 내밀 수 없었다. 결국에 택한 곳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자리.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땀으로 젖어서야 퇴근하는 날이 반복되었지만, 월급이랍시고 받은 돈은 채 3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괴리감이 일었다.
학교에서 그는 절대적인 갑이었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모두가 우러러보는 사람이었는데, 사회에 나가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겨우 300을 벌기 위해.
노동력은 물론이고 인격 모독도 감당해야 했다.
머리를 툭툭 미는 배불뚝이 아저씨의 모습에, 순간 자리를 엎어 버리고 직장을 때려치울 생각도 했었다.
결국에 그러지는 못했다.
20살의 나이.
성인은 그런 의미였으니까.
그런 시기에 김현성의 연락을 받았을 때, 배성호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1억을 줄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용병의 일.
받아들였다.
계획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고서, 징역까지 살 각오를 하고 이번 계획에 가담했다.
후웅.
콰직-!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다른 학생들의 주먹과는 다르게,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적이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배성호가 소리쳤다.
“가, 어서!”
길을 여는 것.
자신의 역할이었다.
김시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배성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난 코뿔소처럼 밀고 나갔다.
배성호를 의식하고 달려드는 적들이 있었지만, 그동안 무르익은 그의 신체 능력은 고등학생 레벨을 넘어섰다. 골든 서클에서도 충분히 S등급을 받을 실력자. 펑펑 소리와 함께 적들이 나가떨어졌다. 몇몇 주먹이 배성호의 얼굴과 복부에 박혔는데도, 배성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훅.
빠악-!
천일의 평가는 옳았다.
신영민 다음.
김현성만 아니었다면 대산은 그가 먹었을 것이다.
배성호의 주먹이 연속해서 상대를 때려눕혔다.
이미 징역이든 병원행이든 전부 각오했기에, 살벌하게 부풀어 오르는 그의 존재감을 감당하는 건 쉽지 않았다. 덕분에 길이 열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누군가가 소리쳤다.
“씨발, 저 새끼 성인 아니야? 성인이 왜 여기 있어?”
문득.
후배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자신도 이번 작전에 가담할 수도 있다는 말에, 후배는 그러다 징역살이를 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아무리 1억을 받는다고 한들. 몇 년의 세월이 사라지는 건 쉽지 않은 문제였다.
참 웃기게도.
이 대한민국에서는 20살의 남자가 긍정 회로를 돌릴 여지가 존재했다.
배성호가 말했다.
“군대 대신이라고 생각하지 뭐.”
배성호가 히죽 웃었다.
자신을 알아보든 말든.
“그래서 뭐?”
빠악-!
상대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 * *
오피스텔 밖.
혼란스러운 내부만큼이나, 밖에서도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보이십니까? 어떤 미친 새끼들이 오피스텔을 공격하는 바람에, 서울 한복판에서 패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목소리의 주인.
천일의 학생인 조재진이었다.
촉새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1년 전부터 너튜브를 시작했다.
구독자가 겨우 천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채널이었지만, 그의 라이브 영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미친.
-와, 진짜 패싸움이네.
-여기 강남역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이잖아. 존나 비싼 곳인데 여기서 왜 패싸움이 벌어져?
처음에는 구독자 수십 명.
적은 인원이 시청했다.
그런데 패싸움이라는 너무나도 자극적인 상황에,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에서 언급되더니 순식간에 영상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시청자가 수천 명으로 늘어나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SNS가 발달하면서 정보 전달이 빨라졌고, 인기 상승 동영상으로 선정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거 대체 무슨 상황임?
조재진이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
채널 떡상각에, 그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지금 오피스텔에 있는 저 새끼들이 갑자기 제 친구를 공격했습니다. 저희는 연락받고 허겁지겁 도와주려고 온 거고요. 고등학생이 무슨 패싸움이냐고요? 제 친구들은 뭐 싸우고 싶어서 싸우고 있겠어요? 친구를 구하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패싸움으로 번진 거지. 그런데 여기서 진짜 소름 돋는 사실을 말씀드릴까요?”
그의 역할.
처음부터 이것이었다.
이번 싸움은 단순한 학교 폭력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김현성이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낼 판을 깔았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경찰에 신고했는데 지금 10분이 넘도록 출동하지 않고 있어요. 경찰서랑 겨우 5분 거리도 되지 않는데 말이죠.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강남 한복판에서 백 명이 넘는 고등학생이 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데, 경찰은 코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요. 이건 뭐가 있는 게 분명해요.”
-이거 맞음.
-저도 주변에 있는 사람인데, 한참 전에 신고했는데도 경찰이 출동하질 않네요.
-와, 진짜 뭐 있나?
-세상이 말세다. 서울 한복판에서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경찰이라는 새끼들이 나 몰라라 하다니.
-경찰에 물어보니 지금 주변에 6중 추돌 사고가 벌어졌대요. 그거 때문에 늦는 듯.
그건 작은 불씨였다.
진실이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었다.
불씨가 점점 활활 불타오르는 사이, 오피스텔 안에서의 싸움도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 * *
대체 몇 명을 쓰러트렸을까.
기억도 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뛰쳐나간 그 순간부터, 김현성은 미친 사람처럼 주먹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빠악!
“큭.”
얼굴이 돌아갔다.
사각에서 치고 들어오는 주먹에 피할 수 없었고, 이미 엉망이 되어 버린 얼굴로 붉은 피를 뿜어냈다.
한계였다.
느려진 반응이 그를 증명했고, 그동안 훈련해 왔던 시간이 마치 무의미하다는 듯이 팔다리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실제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매일 같이 훈련한 사람들도 막상 5분 3라운드 경기만 펼쳐도 당장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인다. 그런데 지금 김현성은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을 상대로, 무려 15분이 넘도록 쉴 틈 없이 주먹을 주고받고 있었다.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지금 김현성을 움직이고 있는 동력은, 뼛속까지 각인된 훈련과 분노였다.
훅.
빠악!
“악!”
“미친 새끼. 좀 쓰러져라.”
기어코 반격을 쑤셔 넣었다.
상대의 콧대를 주저앉히고서, 김현성은 주먹을 몇 번 더 날리더니 비상구 문으로 다시 돌아갔다.
‘혼자서 뚫는 건 불가능해.’
기적은 없었다.
일대일로는 그 누구라도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지만, 세계 챔피언이라고 한들 이 많은 인원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실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믿으라고 말하면서도. 이와 같은 위기에 처하리라는 것을, 김현성은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당해야 했다.
김현성은 이번 작전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명확했다.
‘골든 서클이 더는 학교 폭력으로 나를 무너트릴 수 없다는 확실한 예시. 그리고 그들의 악의가 범람하는 이 순간을 세상에 드러낸다면, 골든 서클의 소속원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겠지.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게 위협이 되어야만 해. 불안해서 더는 버틸 수 없도록.’
빠득.
이를 악물었다.
확실한 결과가 필요했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모두에게 임팩트를 남길 그런 결과.
그래서 감당했다.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했다.
“이젠 끝…… 컥!”
빠악!
상대의 얼굴을 날렸다.
힘이 빠지는 바람에 뒤엉켰고, 사방에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김현성은 그중 아무 다리나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물어 버렸다.
꽈악.
“악, 아악!”
상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김현성의 주먹이 얼굴에 작렬했다.
급소건 뭐건.
비겁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김현성은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깨물고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관장님의 말은 옳았다. 정말 한계에 도달할 때 내뻗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주먹.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악착같이 훈련한 것이라고.
훅.
빠악-!
상대의 얼굴이 짓이겨졌다.
쓰러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끝까지 싸우는 걸 멈추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비상구 안쪽 공간으로 이동했다.
마침내 엘리베이터를 등졌을 때, 김현성은 황급히 버튼을 눌렀다.
탁탁.
벼랑 끝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새로운 적들이 나타난다고 한들, 지금은 도박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막아!”
“엘리베이터 못 타게 해!”
서로 뒤엉켰다.
주먹을 날리면.
김현성도 얼굴을 맞았다.
또다시 주먹을 날리면.
사방에서 날아드는 주먹질에, 김현성은 몸을 웅크려야 했다.
그러다.
빠악-!
“크흡.”
복부에 강렬한 충격이 파고들었다.
눈을 부릅떴다.
육체적인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 이번만큼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 밀려들었다.
그런데도 버텨 냈다.
‘난 죽지 않아. 절대로.’
악에 받쳤다.
핏빛이 돋아나는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 순간에도.
감당하지 못할 악의에도.
김현성은 그 모든 걸 뒤덮을 독기를 표출했다.
그때였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스르르 열리는 문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현성아!”
익숙한 목소리.
김현성이 웃었다.
엉망인 얼굴에,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도 않았다.
“……늦었잖아.”
엘리베이터 안.
김시우를 비롯한 천일의 학생들이 득달같이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