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67)
31. 균열 (4)
골든 서클의 배후를 특정하고도.
김현성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학교에 다니며 수업에 집중했고, 선생들은 정말 독한 녀석이라며 수군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학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교장과 교감이 부임했으며, 임시였던 담임의 자리도 새로운 선생님이 그 자리를 맡았다. 물갈이를 진행하며 골든 서클이 수작질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예상과는 다르게. 특별히 건드리는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았고, 폭풍 전야와도 같은 위태로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 중심.
태풍의 눈에 존재하는 김현성은, 평온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불쑥불쑥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난 며칠간 윤현민을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정황적인 증거만 존재할 뿐. 확실하게 골든 서클의 배후라고 특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어. 골든 서클 멤버들과의 사사로운 만남은 모두 명분을 부여했고, 골든 서클로 얻은 이득은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어. 철저한 인간이야. 먼 미래에 정체가 발각되지 않았을 만큼, 조금의 허점도 존재하지 않아.’
임철형의 방문.
그건 변수였다.
통제되지 않은 변수에도 곧바로 기사를 통해 명분을 만들 만큼, 윤현민이라는 인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윤현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권력자들의 삶은 상식의 범주에서 논할 수 없다. 단순히 태양 그룹의 후계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맹목적인 호의를 보일 수 있건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적절한 명분이 존재했다.
물론.
기브앤테이크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분명히 윤현민이 더 이득을 보는 구조였기에, 적절한 명분으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놓은 것 같았다.
‘나라는 균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임철형과 같은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겠지.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만반의 준비가 필요해. 결국에 여론을 선동해야 하는 나로서는, 한번 사용한 무기는 힘을 잃어버릴 테니까.’
식물인간이라는 감옥 속.
김현성은 배후를 무너트릴 수많은 방법을 생각했다.
이미 그와 관련해서 상당 부분 준비를 끝마친 상태지만, 지금부터는 그것을 윤현민에 걸맞은 계획으로 잘 변형시켜야 했다. 다행히도 이 상황들이 불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윤현민에 대한 살의에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기는 해도, 배후를 특정했다는 사실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마지막 마무리를 앞둔 지금, 김현성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죽이며 인내했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도록.”
“고생하셨습니다!”
학교가 끝났다.
일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담담히 짐을 챙기고, 어떠한 문제도 없이 하굣길에 동참했다.
그리고 교문을 나섰을 때.
“김현성 학생. 잠깐 이야기 좀 나누시죠.”
예상에 없는, 의문의 인물이 앞을 막아섰다.
* * *
상대의 정체.
정한일보 소속 방현태 기자였다.
듬성듬성 자란 수염에 꾀죄죄한 몰골이 인상적인 그는, 김현성을 찾아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성 미래 비리 사건.
진경희와 장원기가 쓸려 나갔던 그때, 방현태는 김판호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방현태 기자님은 이번 사건의 이면에 ‘권력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죠. 한번 김현성을 파헤쳐 보십시오. 김현성의 삶을 돌아보면, 기자님 기자 인생 최대의 소재 거리를 얻으실지도 모릅니다.”
김판호의 말.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한일보는 이번에 김판호로부터 정보를 받아 움직였지만, 그렇다고 김판호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그런 언론사는 아니었다. 정확하게 팩트를 기반으로 기사를 내보내는. 나름대로 정의로운 언론인을 추구하기에, 김판호라서가 아니라 사건 자체에 관심을 보였다.
김현성 사건.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판도를 아는 사람들은, 그 이면에 골든 서클이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문제는.
어째서 겨우 고등학생을 상대로 일이 왜 이렇게 커졌냐는 것이다.
김판호가 말하지 않았어도 관심을 보였을 방현태는, 그때부터 김현성의 과거를 캐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과거를 파헤칠수록 방현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얘, 대체 뭐야?’
최초의 사건.
그러니까, 김현성이 천일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골든 서클은 여느 때처럼 우수한 성적의 가난한 학생을 목표로 삼았던 것 같았다. 박민철 패거리의 행보, 신영민이 언급했던 말들. 종합적으로 계산해 보면 금방 돌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놀라운 건 김현성의 대응이었다.
가해자들 모두.
인생을 시궁창에 처박아 버렸다.
골든 서클의 의도를 완벽하게 박살 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천일을 집어삼키더니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어서 대산을 정벌했다. 처음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진실임을 확인하기 위해 몇몇 사람들을 찾아갔는데, 그들은 사건의 전말을 물으면 창백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는 천일의 교사.
“……제가 현성이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기자님이 알고 있는 진실은 축소되었으면 축소되었지, 조금도 허황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막말로 김현성이 천일에 계속 다녔으면. 천일의 교사 전부가 현성이의 눈치를 봤을 겁니다. 오죽했으면 천일이 김현성의 것이었다는 말이 있었겠습니까.”
두 번째는 다른 학교의 학생.
“김현성이요? 진짜 대단했어요. 갑자기 대산에 있는 양아치들을 전부 쓸어버리겠다고 선포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정리해 버렸어요. 듣기로는 막 수십 대 일로도 싸웠다던데. 걔는 진짜예요.”
파면 팔수록.
알면 알수록.
이게 현실인지 의심이 들었다.
일개 고등학생에 불과한 김현성은, 분명히 고등학교 이전에는 배경도 존재하지 않는 가난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겨우 일 년 만에 천일을 넘어 대산을 먹어 버렸다. 가장 의아스러운 부분은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면서 대산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서울로 향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학을 오자마자 벌어졌던 징계위원회 사건 등을 보았을 때, 김현성은 애초에 골든 서클과의 분란을 각오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금.
“……이게 말이 돼?”
방현태는 넋이 나간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사 결과.
일개 고등학생이 골든 서클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골든 서클이 어떤 집단인가.
언론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집단이지만, 관련자들의 이름값이 상당해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아무리 대단한 언론사라고 한들. 골든 서클은 목을 걸어야 할 상대였다. 사실 정한일보에서도 골든 서클을 다뤄 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올 만큼의 거물이었다.
그런 상대를.
김현성이 들이받았다.
김판호의 말처럼, 김현성이 지난 2년간 보여 준 행보는 상식적이지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그 순간.
방현태는 결심했다.
김현성을 직접 만나 봐야겠다고.
* * *
장소를 옮겼다.
한가한 카페에서,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방현태가 본론을 말했다.
“빙빙 돌리지 않고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김현성 학생. 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그게 본론입니까?”
“제 말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골든 서클과 대립하냐는 말입니다. 이번에 대성 미래 고등학교 비리 사건을 시작으로 김현성 학생의 뒤를 좀 조사해 봤습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산에서 엄청난 일들을 벌였고, 고등학교 3학년에 강남 한복판으로 전학을 오더니 골든 서클과의 전면전을 쾅!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지가 않았습니다. 김현성 학생이 의도적으로 골든 서클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이 행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김현성이 빤히 바라보았다.
대답하지 않는 모습에, 방현태는 말을 이었다.
“사실 저 같은 언론인들에게, 골든 서클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세력입니다. 미성년자들을 빌미로 서로의 권력을 공유하는 극악무도한 집단. 분명히 어떤 방식으로 세력이 유지되는지를 알고 있는데도, 그동안 정한일보를 비롯해 많은 언론사가 골든 서클의 ‘골’ 자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그 세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카르텔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들을 차마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 세력을. 김현성 학생이 건드린 겁니다.”
“지금도 본론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참!”
말문이 막혔다.
이 상황.
매우 심각했다.
잠깐 발끈했던 방현태는, 감정을 추스르며 김현성의 표정을 살폈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언급하는 상황에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김현성 학생은 살해를 당할 겁니다. 확실합니다. 오피스텔 사건과 같이 규모가 있는 사건을 일으킨 그들이, 적대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김현성 학생을 내버려 둘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골든 서클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의를 거두고 기사를 잘만 작성하면 김현성 학생의 안위는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방현태의 제안.
호의였다.
그는 진심으로 김현성을 걱정했다.
이대로라면 그가 위험하다는 확신에, 본인에게 좋지 않은 일인데도 이렇게 찾아오는 것을 택했다.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실.
김현성은 방현태를 알았다.
‘골든 서클 폭로 사건. 유서가 발견되었을 때, 가장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던 기자 이름이 방현태였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할까.
때마침 언론사는 필요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불나방 같은 언론사가.
김현성이 말했다.
“만약에 말입니다. 골든 서클을 무너트릴 기회가 있다면, 기자님은 그 기회를 쟁취하실 겁니까?”
“그게 무슨……!”
“제 안위를 챙겨 주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그런 호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제가 말씀드린 제안에 관심이 있다면 본인의 의지를 증명해 주십시오. 이경철 국회의원의 늦둥이. 그 쓰레기가 학교에서 어떤 극악무도한 일을 벌이는지를. 그 사건을 조사해 세상에 폭로한다면, 그때는 기자님을 믿고 제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방현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상과는 달랐다.
도움을 주려고 온 것이지, 이런 전개로 진행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확신이 들었다.
김현성은 일개 고등학생이 아니라고.
절대 평범한 학생의 반응이 아니었다.
김현성이 재차 말했다.
“앞으로 한 달. 한 달 안에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오늘의 만남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 * *
카페를 나섰다.
방금 말한 정보.
시한폭탄이었다.
이경철과 골든 서클의 관계를 폭로하는 순간, 제아무리 기자라고 한들 목숨이 위험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선다면.
정한일보를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만약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도 상관은 없었다.
김판호의 말을 받아 적는 몇몇 언론사들이 이미 후보군에 있었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오피스텔에서 사건이 발발했지만, 그 난리가 났는데도 김현성은 이사를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그대로 거주하는 것이, 골든 서클로서도 부담스러우리라고 판단했다.
띵.
[12층입니다.]걸음을 옮겼다.
익숙하게 문 앞에 도착한 순간, 김현성의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 있다.’
문 아래.
투명한 테이프 조각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눈에 띄지 않는 테이프 조각을 문에 끼워 두었다.
그런데 그게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이번에도 정체 모를 누군가가 집에 침입했다는 의미였다.
‘오피스텔 사건의 여파가 다 가라앉지도 않은 지금. 이렇게 대놓고 움직인다는 건 사람들의 시선을 배제하고서라도 날 처리하겠다는 거겠지.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지금은 물러나는 게 맞아.’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윤현민을 특정한 순간부터, 자꾸만 피가 끓어올랐다.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나도 얻는 것이 존재하겠지.’
문을 열고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자료는 오피스텔 비밀 공간에 보관되었기에 들키지 않았을 거고, 지난 사건에서 증명되었듯이 경찰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물러나는 모습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죽음이 절대 간편한 해결 방법처럼 보여서는 안 되고, 안에 누가 있든 상대를 쓰러트린다면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윤현민을 잡아넣을 실마리. 고지로 향하는 외줄 위에 선 지금, 김현성으로서는 일말의 가능성도 놓칠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삑.
[4]문자를 보냈다.
위험하다는 신호였다.
곧 고창범이 고용한 사람들이 도착할 것이다.
김현성은 숨을 한번 고르고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착용했다.
너클이었다.
사건을 전시할 필요가 없는 지금, 무기를 배제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 얼굴의 멍도 채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현성은 너클을 착용한 주먹을 꽉 움켜쥐며,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만약 감당할 수 없는 숫자를 발견한다면. 곧바로 뒤로 빠져 지원군과 합류할 계획이었다.
끼익.
쿵.
문이 열렸다.
안의 풍경이 보였다.
예상대로였다.
몇몇 낯선 사내들과 한 명의 사내.
안으로 들어가려던 김현성은, 순간 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수많은 가능성 중에, 지금과 같은 시나리오는 없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인물.
깔끔한 인상의 사내가, 김현성을 발견하고서는 살가운 미소를 보였다.
“네가 김현성이구나.”
윤현민.
정체를 감추어야 할 그가.
김현성의 오피스텔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