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81)
34. 고대하고 고대했던 순간 (1)
경기도의 모 병원.
의료인과 환자들이 머무르는 그 공간에, 이례적으로 십수 명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은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각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다급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이게 어떤 사건인지 몰라? 식물인간 상태로 입원해 있는 사람이, 수능에 응시해 무려 만점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이거, 이거. 먼저 보도하는 사람이 무조건 대박 나는 사건이라고, 알겠어!?”
다들 난리가 났다.
수능.
대한민국에서 매년 진행되는 빅 이벤트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연도와는 다르게 만점자가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불수능이다 보니 이번 사건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은 진실을 궁금해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곧 조회 수며, 언론사에 조회 수는 그들의 흥행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똥이 마려운 강아지처럼, 기자들이 이곳에 몰려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병원은 기자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특히 식물인간의 병실은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가 없기에, 병원 밖에서의 대치 상황이 이루어졌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아직도 방법을 찾지 못한 기자들이 전전긍긍하는 그때, 안에서 핼쑥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나왔다.
“제가 최정우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병원에 양해를 구했으니, 취재를 원하시는 분들은 따라오시죠.”
“헉!”
“먼저 따라가!”
“XX 뉴스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기자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바로 뒤를 선점하려고 했고, 몇몇 기자들은 로비를 지나가는 와중에도 마이크를 들이밀며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은 입을 열지 않았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담담히 걸어가더니, 어느새 병실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끽.
“들어오시죠.”
병실은 1인실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보호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에, 기자들은 망설이지 않고 따라서 들어갔다.
그들은 생각했다.
‘아마도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거겠지? 머리에 든 게 없는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식물인간의 신분을 빌려서 수능을 볼 리가 없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대박 사건이야. 3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던 학생이, 깨어나자마자 불수능에서 만점이라니. 이거 무조건 스토리 나온다.’
모두의 예상이었다.
다양한 추측이 있었지만, 대리 시험은 말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탄로가 날 수밖에 없는 결과인데, 어떤 미친놈이 대리 시험을 보겠냔 말이다.
그런데.
막상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자들은 말을 잃었다.
“……어?”
“뭐야.”
병상 위.
한 청년이 누워 있었다.
죽은 듯이 존재하는 모습에,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그 청년이 본인들이 애타게 찾던 최정우라는 사실을 알았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얽혔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수능을 치렀다는 최정우가 대체 왜 병상에 누워 있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대리 시험을 치른 걸까.
그때였다.
아버지의 시선이, 기자들을 넘어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보시다시피 제 아들은 3년 전 그날부터 계속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찾고 계신 수능 만점의 주인공은, 바로 뒤에 있는 저분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홱 돌렸다.
바글거리는 인파 뒤.
의문의 인물이 있었다.
순간, 한 기자가 그를 알아보았다.
“……설마 김현성?!”
확실했다.
김현성.
반년 전에 사라졌던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 * *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최정우의 아버지.
최덕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잠시 대화를 하자며 카페로 안내한 그 사람은, 난데없이 테이블에 이상한 자료를 우르르 쏟아 냈다.
“아버님께서 심부름센터를 고용해 ‘가해자의 신상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 자료입니다. 아드님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원흉. 그 사람에게 복수하려고 준비하고 계신 거죠?”
“이, 이걸 어떻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앞의 사람.
김현성의 말대로였다.
최덕수의 아들 최정우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난 것도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중학교 때는 눈에 띄게 밝았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두워진 것이 걱정되었지만, 최덕수는 홀로 아들을 부양하며 모자람 없이 키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진학을 포기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 아들과 심하게 다투고 잠시 서먹한 시절을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에 심장이 멎어 버렸다.
아들이.
차에 치어 버렸단다.
달려오는 차에 그대로 몸을 날렸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식물인간으로 살았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다.
괜히 자신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것 같아, 매일같이 술을 퍼마시면서 자책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최정우의 친구라는 아이에게 진실을 들었다. 사실 최정우는 고등학교 때 심각한 괴롭힘을 당했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그리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최정우는, 매일 환청 환각에 시달리며 이대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고.
그것이 진실이었다.
최덕수는 분노에 매몰되었다.
가해자를 찾아 죽여 버리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김현성이 나타나 진실을 들쑤셨다.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지?
뿌리치고 일어나야 할까?
혼란스러워하는 최덕수에게, 김현성이 말했다.
“본인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마세요. 언젠가 아드님이 식물인간 상태에서 일어나면,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 곁을 지키고 계셔야죠. 사람들은 식물인간이 보고 듣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하지만, 아드님은 깊은 어둠 속에서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악착같이 생명줄을 붙잡는 것일 수도 있어요.”
“네가 뭘 알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이만 걸음을 돌리려는데,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제가 대신 해 드릴게요.”
“……뭐라고?”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감정이 메말라 버린, 걱정하는 음성과는 다르게 차갑게 물든 김현성의 눈빛이 보였다.
“제가 대신 복수를 해 드릴 테니까. 제게 아드님의 이름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 * *
자리를 옮겼다.
사람이 없는 공터로 이동했고,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난 반년간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어째서 ‘최정우 환자’의 이름으로 수능을 보신 겁니까? 아버지와 모종의 거래가 있던 겁니까?”
다들 눈이 빨개졌다.
어떻게든 특종을 얻어 보겠다고 난리를 치는 기자들을 바라보며, 김현성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끓었다. 이 사람들은 감히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반년 전에 어떤 마음으로 학교를 떠났는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을 기다렸다.
지금의 이 상황.
고대하고 고대했던 순간이었다.
김현성은 수많은 인파 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방현태의 얼굴’을 발견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반년간.
아니, 정확히는 십수 년간 준비한 계획.
김현성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이번 수능을 해명하기에 앞서, 제가 반년간 사라져야만 했던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제 행보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피스텔 사건, 폭행 사건 등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또한 전국 모의고사에서 매번 만점을 받았던 제가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자퇴라는 선택을 했으니 다들 의아스러우실 수밖에 없었겠죠. 혹시 기억하십니까? 제가 오피스텔 사건이 끝난 직후, 배후를 언급했었던 것을요.”
팟팟팟.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은 김현성이 언급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워낙 임팩트가 대단한 사건이었기에, 이 자리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내용은.
[…………전 누군가의 악의에 노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의를 발산하는 존재는, 이번 사건이 증명하듯 제가 죽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그때.
난리가 났었다.
악의의 주인, 그 배후가 누구냐면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었다.
꿀꺽.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김현성은 이 긴장감에 종지부를 찍는 발언을 내뱉었다.
“저를 궁지로 몰아넣은 배후. 제가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골든 서클이라는 집단으로부터 협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 *
그 순간.
방현태는 실시간으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한때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김현성, 그리고 최정우를 대신해 불수능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스토리까지.
수많은 시청자가 몰렸다.
평일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수십만 명이 동시에 방송을 시청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김현성은 말을 이어 나갔다.
[골든 서클. 그들과의 악연은 제가 천일 고등학교에 다니던 17살 시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대가를 받고 목표물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골든 서클이라는 극악무도한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학교를 지배하던 신영민과 박민철 패거리는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아 저를 괴롭혔고, 저는 그들과 싸우는 도중에 그 배경이 ‘오혜지’라는 동급생이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어째서 저에 대해 의뢰했을까요? 성적? 분란? 아닙니다. 제가 그녀의 고백을 받아 주지 않았다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녀는 단순히 제가 망했으면 하는 마음에 의뢰를 넣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들의 악의에, 저는 골든 서클을 무너트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기자도.
채팅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가 숨을 죽였다.
김현성이 하는 이야기는,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였다.
[골든 서클은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세력입니다. 학교 선생님, 지역 경찰, 나아가 교육감 같은 권력자들까지. 모두 그들에게 대가를 받는 하수인에 불과하며, 실제로 저는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 처음 전학 갔을 당시 ‘눈엣가시’라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와 같은 여러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는 오피스텔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갖은 방법으로 저를 처리하려다가, 결국에는 답이 없다는 판단에 저를 직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만약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면, 고등학생 한 명이 학교 폭력으로 목숨을 잃어버린. 엄청난 음모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사건으로 마무리되었겠죠. 그래서 저는 자퇴를 택했습니다. 계속 버티고 있다가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더는 학교에서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정우의 이름을 빌려 다시 여러분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최정우가 바로 골든 서클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정찬수로부터 얻은 정보.
거기에는 최정우의 이름이 있었다.
단순히 학교 폭력 피해자라서가 아니라, 골든 서클이 만들어 낸 피해자였기에 그를 직접 찾아갔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골든 서클의 의뢰로 희생당한 수많은 피해자가 존재합니다. 최정우도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악의로 골든 서클에게 찍혔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괴롭힘을 당하다가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20살의 나이에 차도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목격자들 말로는, 마치 가해자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비명을 내지르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제가 왜 최정우의 이름을 빌려 수능을 보았냐고요? 그래야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줄 것 같았습니다. 골든 서클이 가진 세력은 언제든 여론을 주도할 만큼 강력하기에, 대한민국에서 매년 진행되는 수능이라는 빅 이벤트를 제 목소리를 높여 줄 무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제 예상대로 기자분들이 이렇게 몰려들었고,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제 이야기가 허황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계시겠죠. 진실이 아니고서야, 장래가 촉망되던 19살의 소년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판이 깔렸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동안 꾸역꾸역 삼켰던 말을, 드디어 내뱉을 수 있었다.
[여러분. 골든 서클은 실존합니다. 그리고 그 배후는…….]금단(禁斷)의 영역.
그 누구도 넘지 못했던 선.
[태양 그룹의 후계자 윤현민입니다.]김현성은 기어코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