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180)
33. 반년 뒤 (5)
그 시각.
고창범은 아버지를 만났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고명진의 모습에, 고창범은 들끓는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말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말하는 그 소신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남들은 마진을 조금이라도 더 남겨 보겠다고 자재를 빼먹는 판국에, 아버지는 항상 기본보다 더 좋은 자재를 사용하겠다고 무리하셨죠. 그래서 한때는 욕을 먹은 적도 있습니다. 좋은 집, 적당한 가격에 명진의 집을 산 소비자들이 아니라, 같이 건축일을 하는 사람들이 왜 너희만 그렇게 유별나냐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너희 때문에 우리가 욕을 먹는다. 그런다고 사람들이 알아줄 것 같으냐. 맞습니다. 실제로 수십 년이 넘도록, 저희의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산에서 평판을 쌓고.
지금의 명진이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집에 들인 공에 비하면, 결국에 지방에 터전을 잡은 건설사 중 하나에 불과했다.
만약.
남들처럼 마진을 남기고 자재를 빼돌렸다면, 명진이 쌓아 온 세월 동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막대한 부를 얻었을 것이다. 건설업도 사업이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한 손해였고, 누군가는 여전히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삼대가 먹고 남을 정도로 남겨 먹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계속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지방에서 고여 버렸다고.
한때 고창범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명진건설의 돈을 빼먹으면서, 아버지는 왜 이렇게 미련하게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철근 하나, 시멘트 조금 빼돌린다고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합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부실한 건설 자재로 건물을 올리는 건설사들이 부동산 호황기를 맞이해 떼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면 명진은 미련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 준비하면서 저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가치인지를. 그리고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온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사람들의 신뢰는, 정말 큰 위기를 맞이했을 때.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야 그 빛을 발한다는 것을요.”
지금의 여론.
고창범이 믿는 무기였다.
명진건설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며, 고창범은 부정적인 여론이 빗발치는 상황에도 5천 세대를 잘 준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동안 명진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좋은 가격과 좋은 퀄리티로 집을 제공하겠다는데 감히 다른 건설사로 눈을 돌릴 수 있겠는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자신감이었다.
고창범은 한때는 양아치였고, 고명진은 사생아를 낳았을 만큼 사적으로는 좋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건설업계에서는 다르다.
사람들은 인품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평생 살 집에 전 재산을 투자하기 위해서, 명진건설이 보여 온 행보에 믿음을 보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았다.
골든 서클이 언론과 여론을 동원해 아무리 공격한다고 한들, 자신이 소신껏 잘만 준비한다면 명진건설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애초에 ‘타설 사고’로 명진이 얻었던 부와 명예는. 단순히 한순간의 반짝임이 아니라, 그동안 켜켜이 쌓여 왔던 신뢰가 폭발한 결과였으니까.
아버지를 보았다.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아니, 회장님. 좋은 회사를 물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명진.
아버지로서는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회장으로서, 그리고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존경했다.
고명진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급격하게 성장해 버린 아들을 바라보며, 고명진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와락.
“장하다, 내 아들.”
고창범을 안아 줄 뿐이었다.
* * *
태블릿 PC를 바라보며, 비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명진건설, 건설업계의 돌풍을 일으키다!] [사람들은 대체 왜 명진에 열광하는가.] [재작년. 타설 사고 대응으로 건설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명진건설이, 이번 발표회로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부동산 호황기가 정점에 도달하면서, 아파트 가격이 1~20억을 우습게 상회하는 상황.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지가 상승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지만, 명진건설은 시대의 흐름을 부정하듯 4억이라는 파격적인 분양가를 제시했다. 아파트의 퀄리티, 지리적인 이점, 그리고 주변 시세를 생각하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분양가인데도, 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 공급’ 사업의 일종으로 마진을 최대한 낮추었다는 것이 고창범 상무의 입장이다. 벌써부터 대산 포레스트에 입주하겠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기사가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이건 명진건설이 힘을 쓴 것이 아니다.
댓글이 증명하듯, 사회적인 현상에 언론사들이 반응했을 뿐이었다.
-역시 믿고 맡기는 명진.
-사실 당연한 결과지. 명진만 한 퀄리티, 명진만 한 가격.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교 대상이 없는데, 일반 사람들로서는 무조건 청약을 넣어야지. 이건 정말 명진건설이 대단한 거야. 명진건설 이름값이 붙으면 요새 호가가 수억이 넘어가는데, 본인들이 그 이득을 전부 포기하고 시장에는 4억에 내놓겠다는 거 아냐. 내가 장담하는데, 분양이 끝나고 나면 아파트 가격이 배로 뛸걸?
-투기꾼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청약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한다더라.
-나 서울 사람인데 이번에 청약 넣으려고. 서울에서는 절대 이 돈에 이런 집을 구할 수 없거든.
난리였다.
아무리 여론을 조작해도.
좋은 집을 남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데, 그 조건에 혹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사실상 끝났다.
25시 뉴스 기사 같은 것들은 욕만 먹고 저편에 밀려났으며, 사람들의 반응만 보더라도 5천 세대 공사는 완판을 예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명진건설을 무너트리는 것 또한 실패였다. 이번 분양에 실패해야 숨통을 끊는 건데,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비서가 이를 악물었다.
빠득.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
짓밟고, 또 짓밟아도.
김현성이나 고창범이나 도무지 죽질 않았다.
문제는 이대로 보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윤현민에게 보고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에, 비서는 최후의 방법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수밖에.’
고창범.
그에게 직접 연락할 차례였다.
* * *
비서는 굳이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고창범의 연락처는 이미 확보해 둔 상태였기에, 신분을 밝힌 뒤에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김현성을 버리고 투항해. 만약 이번에도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네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불행한 일들이 벌어질 거야.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죽어 나가면서 공사가 지연될 거고, 정부에서는 명진의 사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 것이며, 주변 사람들이 누군가의 습격을 당하는 등 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 거야. 그걸 다 감당할 수 있겠어? 네가 상대하는 이 집단은 대한민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데, 겨우 일개 기업 따위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냐고.”
위협적인 협박이었다.
목에 칼을 들이밀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마음대로 해.]핸드폰 너머.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비서가 아무리 살벌한 내용을 떠들어도, 고창범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너희의 말처럼 된 게 하나라도 있었나? 예나 지금이나 너희는 고등학생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빌빌대고 있잖아. 그런데 김현성은 달라. 현성이는 내게 매번 증명했어. 아무것도 아닌 시절부터 지금까지. 너희의 존재를 몰랐을 그때부터, 현성이는 항상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도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어.]낙장불입(落張不入)이었다.
김현성을 신뢰하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골든 서클과 같이 하기에는 선을 과도하게 넘어 버렸다.
그들을 따른다고 한들.
결과는 뻔했다.
지금 당장은 김현성을 처리하기 위해 당근을 내밀겠지만, 김현성이 사라지고 더는 골든 서클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언제든 태도를 바꿀지 몰랐다. 그동안 충성을 맹세한 하수인들조차 매정하게 버리는 집단이다. 고창범은 그런 집단을 믿고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좀 멍청해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만 믿거든. 난 김현성을 믿어. 그러니까, 다시는 이딴 전화로 날 흔들려고 하지 마. 알겠냐, 이 씨발 새끼들아.]뚝.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일방적인 대화에, 비서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네, 재밌어.”
고창범은 알까?
이번 최후통첩은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기회였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지금의 명진건설은 어쭙잖은 권력으로는 무너트릴 수 없는 여론을 등에 업었어. 내 권한을 넘어섰다는 의미겠지.’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
“무슨 일이지?”
윤현민이 있었다.
문이 닫히며, 비서가 안으로 사라졌다.
쿵.
그날.
한승조는 폐기되었다.
골든 서클 내부에 피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다음 날.
골든 서클의 명령을 받은,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폭풍 전야였다.
대한민국의 이면에 크나큰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빅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수능.
마침내 그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해당 이슈를 담당하는 기자들이 말했다.
“만점자가 있을까요?”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이번에 유독 불수능이었잖아. 모의고사에서 날아다니던 애들도, 수능이 끝나고 나서는 다들 앓는 소리를 하드만. 내가 보기에는 만점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본다.”
수능이 끝난 직후.
수험생들은 가채점을 진행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만점을 맞았다는 학생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회의적이었다.
만점을 맞은 학생은 무조건 떠벌리기 마련인데, 다들 눈치만 보는 이 상황에 만점자가 없다고 단정했다.
기자가 말했다.
“참 아쉽게 됐어. 고등학교 내내 모의고사를 씹어 먹었던 김현성이라면 만점을 맞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걔가 따로 시험을 봤을 확률은 없을까요.”
“없어. 김현성이라는 수험생이 있는지 따로 확인하기도 했고, 애초에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바람에 수능은커녕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거든. 자퇴 후에 6개월이 지나야 검정고시 자격이 생기는 것을 생각하면, 시기상으로 수능은 아예 불가능해. 걔가 치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검정고시가 내년에 있는데, 올해 수능을 대체 어떻게 볼 수 있겠어.”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불수능이라는 결과가 밝혀지면서, 수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들 김현성의 이름을 언급했다.
최근 3년.
전국 고등학생 중에 가장 압도적이었던 존재.
그를 향한 기대감이 대단했기에, 아쉬움 또한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도 어렵지 않게 풀어내던 것을 보면, 불수능이어도 분명히 성적을 냈을 것 같았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마침내.
성적이 발표되었다.
기자들은 미리 확보한 정보통을 통해서, 만점자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했다.
“헉.”
“만점자가 있는데?”
“전국에서 유일한 만점자라니! 최정우가 대체 누구야!?”
난리가 났다.
다들 최정우라는 수험생을 찾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최정우는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23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수능을 치렀을 뿐만 아니라, 모두를 경악시킨 특이 사항이 있었다.
기자 한 명이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선배, 이것 좀 보세요. 제가 최정우라는 학생의 신상 정보를 확인했는데, 얘 지금 식물인간이에요. 병실에 누워서 지낸 지 벌써 3년이나 지난 상황이라고요.”
“뭐!?”
식물인간.
기자들이 발칵 뒤집혔다.
식물인간인 사람이 대체 어떻게 수능을 치렀단 말인가.
그리고 만점이라는 결과는 또 뭐고.
“지금 입원한 병원이 어디야!”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몰랐다.
이 결과가, 대한민국을 뒤덮을 화마로 번지리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