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il Returns to School Days RAW - chapter (85)
18. 미래를 위한 발판 (2)
새벽 5시.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을 시각이었다.
김현성은 정두철을 필두로, 최근에 반복해 왔던 러닝 코스를 달렸다.
“허억, 허억.”
한 10분쯤 지났을까?
시작부터 숨이 차올랐다.
평소라면 거뜬히 해내는 기본 훈련인데, 컨디션 난조 때문인지 김현성은 호흡을 관리하지 못했다.
“야, 괜찮아?”
김시우였다.
김시우가 보기에도 김현성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에 헐떡거리는 숨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김현성은 말없이 달리기를 이어 나갔다.
“너 그러다 큰일 나. 새벽 내내 화장실에 있었잖아. 몸에 이상이 생긴 거면, 일단 치료부터 받고 훈련을 진행하자. 네가 왜 그렇게까지 악착같은지는 알겠는데 그러다 잘못되면 아무것도 안 돼.”
“……싫어.”
“야!”
“싫다고 했잖아. 아직 참을 만해.”
시선이 마주쳤다.
퀭하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너머로, 김현성의 눈빛은 강한 열의로 타오르고 있었다.
말문이 막혔다.
김시우는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다가, 그 안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김현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훈련을 말리고 싶었다. 김현성의 몸에 이상 신호가 생긴 거라면, 고통을 인내하는 게 해결책이 아님을 알았다. 인간의 육체란 생각보다 연약하다. 부상으로 한번 나락으로 떨어졌던 김시우로서는, 창백하게 질린 김현성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직도.
김현성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악착같이, 복수라는 목표를 위해 본인을 산화하듯 달려드는지를.
김시우야 예전에 태권도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강도 높은 훈련일지라도 지금과 같은 생활이 익숙했다. 하지만 김현성은 달랐다. 평소에 운동을 곧잘 했더라도 단시간에 적응할 수 없는 훈련일 텐데, 김현성은 단 한 번도 힘들다거나, 더는 못하겠다는 나약한 말을 내뱉지 않았다.
독했다.
친구가 봐도 독종이었다.
김현성은 예전에 복수의 이유를 둘러댔지만, 그와 학창 시절을 보냈던 김시우로서는 그게 진실이 아님을 알았다. 더한 무언가가 있었다.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의 영역에, 김시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김현성을 조절하는 것밖에 없었다.
산화하지 않도록.
홀로 남지 않도록.
이후로도 수차례 만류했지만, 김현성은 오히려 사납게 반응했다.
“그만 말해. 관장님이 알아채시기 전에.”
결국.
김현성은 러닝뿐만 아니라, 새벽 훈련까지 모두 끝마쳤다.
* * *
취침 시간이었다.
욱여넣은 밥이 소화되기도 전에 잘 시간이었는데, 김시우는 김현성 몰래 정두철을 따로 찾아갔다.
“……새벽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현성이를 만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훈련이고 뭐고 문제가 심각해질지도 몰라요.”
“알아.”
“예?”
“나도 안다고.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김시우가 당황했다.
정두철이 알고 있다니.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정두철이 복잡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된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꼭 새벽 중에 잘못되는 애들이 있어. 그래서 수시로 살피는데, 새벽 중에 현성이가 자리에 없더라고. 아마도 무슨 문제가 생긴 거겠지. 화장실 문 너머로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지만, 난 그 문을 열고 현성이를 병원으로 보내지 않았어. 잘못된 일이지. 지도자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나는 시간을 되돌려도 선택을 번복하지는 않을 거야.”
“그게 무슨…….”
“시우야. 현성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걔가 하는 모든 일은 본인의 선택이야. 스스로도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면서도, 현성이에게는 반드시 감당해야만 하는 이유가 존재해.”
지난 몇 개월.
짧다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그 시간 동안, 정두철은 김현성에 관한 강한 확신이 생겨났다.
단순히 사춘기의 방황이 아니다.
악에 받친 눈빛, 고통을 참아 내면서까지 버텨 내는 인내력,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
확고했다.
김현성에게는 남들이 모를 이유가 존재했다.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나로서는 현성이를 말릴 수가 없는 거야. 내가 말린다고 걔가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아? 천만에. 아마 내가 아닌, 자신을 더 가혹하게 몰아붙일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나 버리겠지. 새벽 내내 고통을 참아 낼 만큼의, 정상이 아닌 몸 상태로 새벽 훈련을 전부 감당해 낼 만큼의 이유가 존재하는데,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현성이의 선택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지도 몰라.”
정두철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핏줄이 돋아난 그의 주먹은 그조차 고통스럽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또한.
힘들었다.
지도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선택들에, 정두철은 눈을 질끈 감아 현실을 외면했다.
만약 자신이 김현성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 더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라리 자신의 품에서 그를 케어하고자 했다.
“나는 현성이가 계속하겠다고 한다면 끝까지 몰아붙일 거고, 중간에 포기한다면 그것 또한 받아들여 줄 거야. 그런데 아직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고 눈을 부릅뜨며 발악하는 애를 상대로, 아직 정신이 무너지지 않은 애를 상대로 이제 그만하라고 대체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너희가 프로를 희망한다면 나는 위험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훈련을 진행하겠지만, 지금 너희가 하려는 일은 프로 무대와는 달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까.”
김시우를 바라보았다.
슬픔이 섞인 그 눈빛에, 김시우는 더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의 판단에 맡길 뿐이야.”
* * *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김현성은 창백한 얼굴로 점심 훈련, 저녁 훈련까지 정상적으로 끝냈고, 다시 새벽에는 화장실로 뛰어들어 가 변기를 붙잡고 먹은 것을 전부 토해 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천장과 땅이 뒤집히는 기분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새벽 러닝 코스를 달리고 있었다.
버틴다, 버티지 못한다.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버텨야만 했다.
지난 과거를 되새기고 증오감을 불태우며, 김현성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 나갔다.
첫 일 주일.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전신에서 비명을 질렀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했으며, 밥을 먹는 시간인데도 배는 이미 불러 있는 상태였다. 식고문의 존재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단순히 훈련 강도를 떠나서 하루에 5끼를 먹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고, 밥을 먹다가 토를 할 것 같으면 토와 함께 밥을 삼켰다.
그렇게 이 주, 삼 주, 사 주.
시간이 흘렀다.
점차 적응해 나갔다.
더는 새벽에 화장실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밥을 욱여넣는데도 토가 올라오지 않았다.
쳇바퀴가 굴러가듯 반복되는 삶이었다.
새벽 운동, 밥, 취침, 점심 운동, 밥, 취침, 저녁 운동, 밥 취침, 중간에 간식을 섞어서 5끼를 무조건 채웠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취침 시간을 빼고 과외를 가르쳤다. 인간적으로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스케줄이건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김현성은 어느 순간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 주 차.
퍼엉!
휘청-
샌드백이 크게 요동쳤다.
김현성의 주먹이 작렬할 때마다, 샌드백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폭발음을 토해 냈다.
퍼엉!
빠악, 빠악, 빠악!
빨랐다.
순식간에 샌드백을 강타하더니, 출렁이며 돌아오는 샌드백을 흘려보냄과 동시에 발차기가 작렬했다.
퍼엉!
정말 섬뜩한 소리였다.
체육관을 가득 울려 퍼지는 소리는, 과거의 김현성으로서는 절대 발휘할 수 없었던 파괴력을 의미했다. 이 모든 것은 벌크업의 성과였다. 70킬로 초반대였던 김현성의 체중이 어느새 80킬로까지 늘어났다.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이상으로도 체중을 늘릴 수 있겠지만, 정두철과의 상의 끝에 80킬로 초반에서 멈추기로 했다.
고등학교 싸움에서 체급은 중요하다.
하지만 과하게 비대해질 경우, 오히려 스피드가 떨어져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판단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싸움을 하게 될지 몰라. 단순히 일대일이라면 체급을 높이는 것이 무조건 유리하겠지만, 다수를 상대하는 상황에서 내 몸무게만큼 체력이 떨어지겠지. 그러니 이 이상은 아니야. 지금부터는 지방을 깎아 내고, 80킬로의 체중을 진짜 근육으로 채워 넣을 필요가 있어.’
빠악-!
샌드백이 요동쳤다.
합숙 훈련 한 달째.
김현성은 인내의 시간을 거쳐, 분명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 * *
그날도 저녁 훈련이 끝났다.
예정대로라면 저녁 식단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김현성이 갑작스럽게 물었다.
“관장님. 지금의 저는 어느 정도 수준이죠?”
한 달 전과 똑같은 질문이었다.
정두철이 김현성을 바라보았다.
겨우 한 달의 성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김현성은 몰라보게 근력을 발전시킨 상태였다.
비상식적이지는 않았다.
한참 성장기 나이에, 매일 5끼를 먹어 가며 훈련을 세 번이나 반복했으니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김현성의 의지가 만들어 낸 성과였다. 김시우조차도 새벽에 응급실에 실려 갔을 정도의 강도인데도, 김현성은 약한 소리 한번 내뱉지 않고 모든 훈련을 감당했다.
강해졌다.
정두철로서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한 달 전의 네가 실력 있는 프로 선수들을 상대로 무조건 패배했다면, 지금의 너는 비벼 볼 수라도 있겠지. 그렇다고 승리한다는 의미는 아니야. 네 근육은 급격하게 발달하는 바람에 아직 그 밀도가 완성되지 않았어. 80킬로의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그 밀도를 쥐어짜 내고 너만의 완벽한 육체를 완성해 내야만, 프로 무대에서 전성기를 만끽하는 선수들을 쓰러트릴 수 있어.”
“그런가요.”
여전히 실망스러운 평가였다.
겨우 한 달 만에 프로들을 쓰러트릴 수 있다면, 선수들에게 프로라는 단어가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김현성은 재능이 있었다.
재능이 대단하기에, 비벼 본다는 평가라도 받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그럼 관장님을 상대로는요?”
그건.
선을 넘는 질문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김현성은 지금 정두철의 존재를 넘보는 듯한 뉘앙스로 말했다.
“글쎄.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겠지.”
“한번 직접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저도 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요.”
정두철이 씰룩, 웃었다.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김현성은 스스로의 위치를 파악하길 바랐다.
예전에 비해 얼마나 강해졌는지.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통하는지.
정두철을 상대로 그 의도를 드러냈고, 그게 악의적인 의도가 아님을 정두철도 잘 알았다.
평가의 무대였다.
스스로를 평가하길 바라는 김현성의 모습에, 정두철은 그 의도를 기꺼이 받아 주었다.
“올라와.”
“감사합니다.”
따로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훈련한다고 핸드랩을 감은 상태였기 때문에, 순식간에 링 위에서 마주 보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김시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딱히, 본인도 나설 생각은 없었다.
정두철이 말했다.
“사실 널 훈련시키면서 이런 날이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알았어. 네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너로서는 스스로의 강함을 평가할 상대가 필요하겠지. 그리고 네 눈앞에는 비록 퇴물이 되었다지만 전 UFC 챔피언인 내가 존재하고.”
꽉.
글러브를 매만졌다.
매듭을 강하게 묶으며, 싸늘한 눈빛을 보였다.
“어디 한번 해봐. 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앞으로 걸어갔다.
김현성이 자세를 잡고 상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자, 정두철이 거리를 좁히더니 곧바로 주먹을 뻗었다.
훅.
피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찰나의 순간에 반응해 내는 모습이었다. 김현성은 한발 물러나면서 정두철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툭, 툭 거리를 차단하는 잽. 10킬로를 증량한 만큼 충분한 파괴력이 담긴 잽이었지만, 정두철은 바로 코앞에서 잽이 멈추는 거리를 파악하더니 순간적으로 공간을 파고들었다.
빠악-!
가드 위로 주먹이 작렬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하단에 킥이 작렬, 김현성이 물러나자 또다시 파고들며 주먹이 수차례 폭발했다.
빠악.
빠악, 빠악!
막아냈을 뿐이지.
경기 양상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정두철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정두철의 존재감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김현성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아직은 일러.’
김현성의 도전.
이해했다.
근력이 붙고 자신이 강해진다는 생각이 들면, 혈기왕성한 나이에 지난 패배를 잊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찍어 누를 생각이었다. 아직은 이르다는 사실을, 그 정도의 강함으로는 절대 위험하게 일을 벌이지 말라는 경고를. 정두철은 지도자로서 차가운 현실을 보여 주고자 했다.
퍽!
얼굴이 뒤로 넘어갔다.
김현성의 얼굴에 피가 터졌고, 정두철은 한 발 더 파고들면서 후속타를 작렬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빠악!
“!!!”
복부에 작렬하는 주먹.
그 강렬한 충격에, 정두철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