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60
그가 대본을 집어 들었다.
읽고, 또 읽으며 한참을 집중한 나머지.
창밖의 석양이 지고 있는 줄도 모르는 우진이었다.
* * *
“푹 쉬었어?”
“네, 그냥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하면서 잘 쉬었어요.”
“대본은?”
“당연히 봤죠.”
“사실은 대본만 봤는데,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하하, 아니에요.”
저녁.
김태곤 팀장을 비롯한 ‘팀 우진’ 스태프들은 미쉘을 따라 UTA를 방문하고 돌아온 찰나였다.
호텔에 들어온 뒤로는 룸서비스만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했었다.
이틀이 지나서야 다 같이 레스토랑으로 모이게 되었다.
“미쉘하고 얘기 잘하셨어요?”
“어, 내일모레라고 하네.”
미팅 날짜가 잡혔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마저 얘기들 하자고.”
“네.”
타이밍 좋게 메뉴가 나왔다.
버섯 스프와 소고기 스테이크.
열심히 일했으니, 기분 좋게 화이트 와인 한 잔씩도 곁들어주었다.
일상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는 식사가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멀리서 우진을 향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
“백우진 배우님 아니신가요?”
“네, 맞습니… 어?!”
우진이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말을 붙이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눈이 절로 휘둥그레지는 얼굴.
그는,
“역시 맞군요. 반갑습니다. 스즈키 마코토라고 합니다.”
지난 이틀간 우진의 관심이 쏠렸던 배우.
스즈키 마코토가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250화
우진과 스즈키 마코토가 나란히 손을 맞잡았다.
서로의 첫인상부터가 호감으로 다가온 모양인지, 교차하는 두 배우의 시선에는 부드러운 눈빛이 담겨있었다.
마침 나이도 동갑이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던 터라, 왠지 모르게 친근하다는 느낌이 절로 더해지는 기분이 든달까.
“저 사람은 누구예요?”
“스즈키 마코토.”
“그러니까, 누군데요?”
“일본에서 유명한 배우야. 일본에서 리메이크됐었을 때, 우진이 역할 맡았었던 배우.”
“아~”
“한국 최규보가 일본 최규보를 만난 거네요. 이렇게 보니까 뭔가 평행세계에서 온 동일 인물끼리 대면하고 있는 것 같아요.”
“뭐, 그런 셈이지. 나도 네 말에 동의한다, 혜정아.”
갑자기 다가온 이의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고이와 혜정의 물음에, 준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비로소 그의 정체를 알게 된 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즈키가 우진에게 운을 띄웠다.
“여기서 백우진 배우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에서 보여주신 연기가 매우 인상 깊었는데, 이렇게 대면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스즈키 배우님의 출연작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봤습니다. 인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특히 최규보 캐릭터를 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분석하신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많이 배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원작 배우님께서 극찬을 해주시니, 이거 정말… 쑥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군요.”
스즈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우진이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물었다.
“식사하러 오신 거죠?”
“네, 매니저랑 둘이 왔습니다.”
스즈키가 자연스레 본인의 매니저를 ‘팀 우진’에게 소개했다.
그의 매니저와도 다시 한번 인사를 주고받았다.
체격이 아주 좋았는데, 준안에 버금가는 풍채였다.
준안과 스즈키의 매니저가 서로를 보며 ‘흠칫-’한 것이 깨알 포인트였다.
주변 환경부터가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들이 많다고 느껴지는 대목.
성철 선배가 ‘나’와 스즈키의 접점이 꽤 있다고 말씀하셨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싶었다.
어찌 됐든, 이래저래 웃음 짓게 하는 포인트가 생각 외로 많은 만남의 시작이었다.
“스즈키 배우님.”
“아, 네.”
“괜찮으시면, 저희랑 합석하시는 게 어떠세요?”
우진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스즈키가 잠시 뜸을 들였다.
이내, 그가 대답했다.
“합석이요? 음, 저희가 그렇게 해도 배우님이나 일행분들께서 괜찮으실지….”
“그럼요. 저희도 환영입니다.”
“그래도….”
스즈키의 얼굴에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해졌다.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합석하길 원하는 본심과 달리 고민하는 것일까?
아, 잠깐만.
이것 또한 어찌 보면, 일종의 편견일 수도….
등등의 생각이 우진의 뇌리를 스져 지나가는 찰나였다.
“오호라~ 이쪽 매니저님도 한 체격 하시네요!”
스즈키의 매니저가 절묘한 타이밍에 준안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탱탱한 볼살이 밀려 올라가는 것은 덤이었는데, 겉모습과 달리 꽤 귀여운 구석들이 있었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짐브리’를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인 ‘도로로’나 에 나오는 금붕어를 연상케 하는 외모였다.
순간, ‘팀 우진’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왜냐하면,
“어, 한국어를 참 잘하시네요?”
“네, 재일교포라서요.”
그가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재일교포로, 이름은 사토시라 했다.
억양은 조금 달랐어도, 발음만큼은 완벽한 한국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어색함이 일절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인천에서 살았거든요.”
“오오, 인천요?!”
“네, 왜 그러시죠?”
“하하하, 이런 우연의 우연이! 제 고향이 바로 인천이거든요!”
“오, 진짜입니까?!”
배우들끼리 서로를 알아봄으로써 시작된 우연한 만남의 불씨가 매니저들 간에도 불타올랐다.
역시,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외형을 가진 이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기 마련인가 보다.
준안과 사토시가 붙어 있으니, 어떤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묘한 귀여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거구인 김태곤 팀장까지 합세하니, 그야말로 삼위일체가 따로 없었다.
만난 지 5분밖에 안 됐거늘.
마치 죽마고우들끼리 오랜만에 동창회에서 만난 듯한 친근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덕에, 조금이나마 깔려있었던 어색한 기류도 깔끔하게 젖혀진 지 오래였고.
“자,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실례라니요! 얼른 앉으시죠.”
스즈키는 그제야 편안한 얼굴로 우진의 테이블에 합류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갔다.
이로써, 오성철에게 들어서 우진만 알고 있었던 한 가지.
즉, 자신과 스즈키가 내일모레 배역을 두고 경쟁을 펼칠 예정이란 사실.
이를 양측 구성원 모두가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리우드에서, 그것도 개인 스태프를 대동한 상태로 한·일 양국의 톱스타 배우들이 만났으니.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고.
그래서일까.
저녁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파이팅이 넘쳐나고 있었다.
누구는 할리우드에 남고, 누구는 본국으로 짐을 싸게 되겠지만.
우진과 스즈키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남는 자가 누가 될지는 중요치 않았다.
좋은 인연이 쌓였다는 게 중요했지.
“여기 묵고 계신 거예요?”
“네, 우진 배우님도?”
“저도요. 몇 호세요?”
“1014호입니다. 우진 배우님은?”
“어?! 맞은편 방이셨었네요? 저 1020호입니다.”
“와, 아무래도 저희가 인연이었나 봅니다.”
말을 나눌수록, 접점은 쉴 새 없이 튀어나왔다.
지난 이틀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게 되레 신기할 정도.
하긴, 이틀 동안 방에서만 지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말이다.
웨스트엔드 사람들도 그렇고, 난생처음 생긴 일본 친구도 그렇고.
해외에서의 인연은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기는 법이구나.
우진이 말을 이었다.
“스즈키 배우님. 식사 끝나고 제 방에서든, 배우님 방에서든 간단하게 맥주 한잔하실래요?”
“저는 좋습니다. 연기 얘기로 꽃을 피우겠네요.”
“저희에게 그보다 더 재밌는 주제도 없을 테고요.”
“매니저분들끼리도 나눌 얘기가 많아 보이는 참이니, 저희가 ‘슬쩍-’ 빠져줍시다.”
스즈키가 익살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수줍은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가 살짝 턱짓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느새 배우들끼리보다도 사이가 돈독해져 보이는 준안과 사토시가 눈에 들어왔다.
“사토시, 스시 최대 몇 접시까지 먹어봤어요?”
“한 50접시?”
“푸핫! 아직 멀었네.”
“…무슨 소리입니까?!”
“난 60접시까지 먹어봤거든요. 정확히는 61접시!”
“크흠, 나도 다시 생각해보니 62접시를 먹은 것 같습니다만?”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진, 진짭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나보다 잘 먹는 사람을 내가 본 적이 없는데?”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은 법!”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건지.
호탕하게 웃으며 와인을 기울이다가도, 서로 누가 누가 더 잘 먹나를 가지고 귀여운 경쟁을 벌이기 바쁜 모습들이었다.
매니저의 본능인가.
친해진 건 친해진 거고, 그걸 떠나서 본인들이 담당하는 배우들끼리 경쟁할 운명이라 하니.
덩달아 매니저들끼리도 서로에게 절대 질 수 없는 선의의 경쟁심이 붙었나 보다.
졸지에 두 사람의 빈 잔에 각각 물을 따라주느라 바쁜 고이와 혜정도 은근히 이 광경을 즐기는 듯한 모습들이었고.
김태곤과 김미소는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먹방’ 대결을 관람하고 있었다.
아이고, 못 말려.
눈이 마주친 우진과 스즈키가 이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피식-’
두 사람 다.
터진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었다.
* * *
미팅 일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단연 ‘경쟁’이었다.
서로의 정체를 알고 있는 우진과 스즈키의 경쟁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경쟁자가 누구인지, 몇 명이 더 있는지는 아직 모르니까.
게다가, 애초에 캐스팅 리스트에 오른 배우들끼리만 경쟁한다고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어이, 미쉘. 미팅 내일모레라고 하던데, 들었나?”
“뒷북치지 마시고요. 그냥 갈 길 지나가시지 그러세요? 왜 자꾸 말을 거실까? 너 나랑 친해? 난 전혀 아닌데.”
“하하, 매번 까탈스럽게 구는 건 여전하네. 미쉘, 가시 좀 치고 살면 어디 덧나나?”
“너한테만 그러는 겁니다. 어쭙잖은 걱정하지 말고 그냥 꺼져 주십쇼~”
“그래,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볼 일 없으니까 그냥 가라~”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아, 입 닥치고 그냥 좀 가!”
“화내지 말고, 레이디. 간다!”
“저 토 나오는 새… 에휴.”
자신이 데려온 배우가 최종 캐스팅이 되느냐, 마느냐 여부에 따라 추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UTA만의 특이한 시스템 때문이었다.
물론, 돈은 철저히 성과에 따른 보상에 불과하므로 그 자체만으로는 미쉘의 경쟁 심리를 자극할 수 없었다.
그러면, 캐스팅 디렉터 간의 경쟁이란 무엇이냐.
먼저, 캐스팅 디렉터가 발굴하는 배우들은 무조건 신인, 혹은 중고 신인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