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31
이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와 타이기록이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우진의 남우조연상 부문 노미네이트였다.
우진은 이 기쁜 소식을, UPBS 제작진과의 미팅 중에 접했다.
드라마 시즌 2 제작과 관련해 스케줄 조정을 하고자 만난 자리였거늘.
별안간 우진의 후보 지명을 축하하는 자리로 탈바꿈했다.
도미닉 쿡 감독 이하 스태프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해주었고,
“아카데미에 입성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우진!”
“제작부도 이 소식을 접했겠죠? 아마 여기로 뛰어오는 중일 것 같군요. 우진이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넣기 전에, 얼른 출연료 협상 도장을 찍고 싶을 테니까!”
“저, 저기….”
“???”
“저는, 처음부터 있었습니다만….”
“하하하!”
도미닉 감독의 익살스러운 농담과 제작 PD가 머쓱한 듯 천천히 손을 들면서 덧붙인 대답이 맞물려 폭소를 자아냈다.
“우진 배우도 우리 제작부의 옛 실수에 대해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는데, 감독님께서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제작 PD가 우진에게 새로운 계약서를 건넸다.
시즌 1의 대성공으로 우진에게 새롭게 책정된 시즌 2의 회당 출연료는 무려,
“시즌 2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진.”
42만 달러(한화 약 5억 원).
시즌 1보다 6배가 ‘훌쩍-’ 뛰어버린 액수였다.
시즌 2를 반드시 하겠다고 사전에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사가 최대한의 출연료를 챙겨주려고 하는 정성이 느껴지는 찰나였다.
우진의 몸값이 한 시즌 만에 이렇게나 뛴 이유는, 앞선 네 번의 시상식에서 그가 거둔 성과 때문인 것도 있었고.
농담이라고는 했으나, UPBS 입장에서는 우진의 수상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 최대한 그를 잡고자 하려는 의도가 분명 있었을 거다.
오스카 트로피까지 손에 넣는 순간, 배우의 몸값은 6배가 아니라 10배… 아니, 그 이상으로 뛰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물론, 몸값보다 ‘웹쇼라’라는 드라마에서 우진의 존재는 대체불가이기 때문인 게 더 컸겠지만 말이다.
“다른 조항에도 우진의 조건을 최대한으로 수용했습니다. 시즌 2 역시 1처럼 10화로 짧고 굳게 가자는 의견, 저희도 동의합니다.”
“저라는 배우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즌 2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계약 조건.
우진은 정중하게 묵례하며,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UPBS가 자신들이 지급해야 할 출연료의 규모보다 배우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듯.
우진 또한 출연료와 조건보다 좋은 제작진과 좋은 작품을 함께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계약이었다.
“크랭크인은 언제쯤 생각하시는 건가요?”
“음, 이번에도 사전 제작으로 진행할 거라서 저희는 최대한 빨리 들어갔으면 합니다. 어차피 준비는 다 끝났어요. 우진의 스케줄에 따라서, 나머지 배우들의 스케줄과 편성 계획도 조정할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 말인즉슨….”
우진이 말끝을 흐렸다.
그가 흘린 말을, 제작 PD가 대신 덧붙였다.
“네, 다들 우진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 대기 중입니다.”
한국에 잠깐 다녀오려고 했었는데, 다들 기다리고 있다….
안 되겠네.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당장 다음 주부터 촬영에 들어가도 좋습니다. 이번 주는 대본만 봐야겠네요.”
* * *
일주일간의 짧은 준비 기간을 가진 후, 우진은 ‘웹쇼라’ 시즌 2 촬영에 매진했다.
작품이 말 그대로 시리즈물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스핀오프 작품이 아닌 이상에야, 지난 시즌에 맡았던 캐릭터 연기를 그대로 이어가니까.
분석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덜 소요된다는 장점이 있다.
시상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UPBS 스튜디오는 프리 프로덕션을 일찌감치 끝내놓았다.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들끼리 하는 작업인지라, 촬영은 순탄했다.
그렇게, 한 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기인데도, 우진은 ‘웹쇼라’ 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러던 2월 말의 어느 날.
“야, 백우진!”
“……!”
여느 때와 다름없이 촬영장에서 캐릭터에 몰입하고 있었던 우진의 귀에,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뛰어오더니, 우진의 품에 ‘쏙-’ 안겼다.
“이게, 얼마 만이야!”
“뭐, 뭐야?!”
“어라? 반갑다는 말부터 안 튀어나오네? 나만 반가워하냐?”
“아니, 그게 아니라… 말도 없이 대체 언제 온 거야, 누나?!”
우희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누나의 등장에, 우진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어안이 벙벙한 동생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우희가 이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엄마도 왔지롱!”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우진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그 끝에서, 어머니가 수줍게 웃고 계셨다.
“엄마까지?!”
“혹시라도 너 몰입 중인데 방해되면 안 된다고, 멀리서 본다고 하셨어.”
“아이고, 지금 괜찮은데.”
“그러니까. 그래 보여서 이 누나가 냅다 달려온 거 아니겠냐.”
“와우, 누나는 역시 배려라는 게 없어. 엄마의 반만 좀 닮았으면….”
“시끄럽고! 대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고 꽃돼지가 그러던데, 맞지? 따라와.”
“아, 아아-!”
우희가 우진의 양 볼을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우희에게 그대로 끌려가는 우진의 뒷모습을 보며,
“저분이 그… 오늘 오신다고 하셨었던 우진 배우의 누나분인가 보군요.”
“네, 우진하고 똑같이 생겼죠? 저도 아까 공항에 픽업 나가서 처음 뵀는데, 놀랐어요. 굉장히 활력이 넘치시는 분 같더라고요.”
“우진이 가족분들을 오랜만에 보는 건가요?”
“그렇죠? 계속 할리우드에 있었으니까요.”
“촬영 시간 넉넉한데, 좀 더 천천히 준비해야겠군요.”
“배려 감사합니다, 도미닉.”
도미닉 감독과 에이전트 미쉘이 조용히 읊조렸다.
* * *
가족이 촬영장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거늘.
한국도 아니고 미국 할리우드라서 더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고 보니, 준안이 계획한 깜짝 이벤트였다고 한다.
우진은 아카데미 시상식 발표 직후에 잠시 한국에 다녀오길 희망했었다.
꿈에 그려왔던 무대에 점점 가까워지니, 가족을 굉장히 보고 싶어 하는 게 준안의 눈에 보였다.
그러나, 2017년에 뿌렸던 씨를 수확하는 2018년 초 그의 스케줄상으로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
그래서,
「우진이가 가기가 좀 힘들 것 같아. 시상식이랑 차기작 관련한 일정들이 워낙 빽빽해서…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자기가 미국으로 한 번 오면 어떨까 싶네.」
「내가?」
「어. 이왕이면, 어머니도 같이 오시면 더 좋고. 어때? 가능하겠어?」
「되긴 돼. 오빠도 알다시피, 나 이번에 이직하잖아. 인수인계도 거의 끝나가. 한 달 정도 여유가 생길 것 같네.」
「정확히 언제쯤이지?」
「한, 2월 중순부터?」
「딱 좋다. 3월 첫 주가 오스카거든. 가족이나 친지들도 같이 참석해도 돼.」
「오, 좋아! 엄마 꼭 모시고 가도록 얘기해볼게.」
「되면, 우진이 몰래 1등석으로 예매해놓을게.」
「그거 때문에라도, 내가 꼭 가고 만다!」
준안은 생각을 뒤집었다.
‘우리’가 못 가면, 반대로 모시면 될 일 아닌가.
“…그랬구나.”
우희의 설명을 듣고 상황을 이해한 우진이 고개를 주억였다.
“준안이 형, 고마워요.”
“뭘, 이런 걸 가지고! 우진이 너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나 자신을 위한 것도 있었어.”
“어머, 사랑꾼!”
“으악!”
우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준안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내 그가 우희를 껴안으며 말했고, 고이와 혜정은 평소와 다른 준안의 모습 앞에서 두 손이 오그라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덕분에, 우진의 대기실에는 웃음꽃이 만연했다.
“아들~ 보고 싶었어.”
“저도요, 엄마.”
할리우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년 단위에 한 번꼴로 뵙는 어머니의 얼굴.
여전히 아름답고, 밝았다.
우진은 어머니의 손을 하염없이 매만졌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아들을 위해,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도 아무 티를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뒤에서 지켜봐 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이란.
이렇게 한 번 손을 잡는 것으로도, 온전하게 느껴진다.
“우진아, 곧 촬영 시작한다네.”
“아, 네. 엄마, 누나. 저 준비하러 가볼게요.”
“그래, 아들~ 파이팅!”
“내 동생, 연기하는 거 처음으로 직관하겠네.”
“흔치 않은 기회니까, 잘 지켜보라고.”
“그래, 기대한다.”
“이따 봐. 형, 누나랑 어머니 잘 부탁해요.”
우진은, 촬영장에 온 가족을 케어할 준안을 대신해서 매니저 역할을 자처한 미쉘과 함께 세트장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누나가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고 생각하니까, 평소보다 더 긴장이 된다.
그만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솟구치고.
“…….”
카메라 앞에 선 우진은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캐릭터에 집중했다.
온 세상이 멈췄다는 기분이 몰려오는 찰나,
– 번뜩.
그는 눈을 떴다.
“레디, 액션!”
배우 백우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 *
한동안, 일상의 패턴은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제작진이 흔쾌히 협조를 해주었기에, 어머니와 누나는 ‘웹쇼라’ 촬영장에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면, 할리우드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과 디저트 집을 돌아다니느라 바빴고.
아카데미 시상식 5일 전.
‘웹쇼라’ 현장은 일주일간의 휴차를 맞이했다.
우진뿐만 아니라, 몇몇 다른 배우들의 스케줄까지도 고려한 일정이었다.
그 덕분에, 어머니와 누나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희가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월스 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물론이요, LA에서 가볼 수 있는 모든 관광 명소를 돌아다녔다.
그 사이, 시상식 이틀 전.
우진과 ‘팀 우진’ 멤버들, 그리고 어머니와 우희가 시상식 당일에 입을 의상 세팅이 모두 끝났다.
뿌듯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시상식 당일 아침부터 고이와 혜정이 제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의상 챙기랴, 메이크업 샷 일정을 틈틈이 확인하랴.
시상식의 아침은, 이렇게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흘러간다.
“아들~ 어때?”
“예뻐요, 엄마.”
“나도 나도! 나는 어때?”
“백우희, 너는… 차라리 모자를 쓰는 게….”
– 퍽!
“아파!”
“…물어본 내가 바보지!”
너무나도 큰 자리라서, 처음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사코 만류하던 어머니는 난생처음으로 전문가의 손을 거친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해하셨다.
동생보다 많이 튀어 보이면 안 된다면서 생각보다 가벼운 드레스를 고른 우희 역시, 마찬가지.
즐거워하는 어머니와 누나의 함박웃음을 보면서 우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옆에서, 준안은 하트가 연신 ‘뿅뿅-’거리는 듯한 눈빛으로 우희만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준비를 마친 우진 일행은 곧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인 ‘돌비 극장(Dolby Theatre)’ 공연장에 도착했다.
바닥에 길게 수놓아진 레드카펫.
스타들을 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팬과 수많은 취재진이 뿜어내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그 중심에 선다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굉장히 낯설고 떨리는 일일 텐데.
하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우진의 걱정과 달리,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레드카펫을 걷는 내내 가족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우진은 금세 마음을 놓았다.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와, 시상식이라는 게 바로 시작하는 게 아니었구나.”
“그럼, 그럼. 사전 행사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방금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다음에 포토 타임을 마쳤잖아? 이제 매체별 인터뷰가 있고, 리셉션이라고 해서 사전 파티가 있어. 그다음 순서가 누나가 TV에서 보는 시상식인 거야. 끝나면 또 파티하고.”
“진짜 신기하다! 얼마나 걸려?”
“나도 아카데미는 처음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미쉘 말로는 10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와우! 다 필요 없고, 난 파티하고 싶어. 파티만 하면 돼!”
“동생이 후보에 올랐는데, 말 참 예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