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뭔가가 잘못됐다
능력자들의 등장은 한국 증시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먼저 각국에서 투자해 세웠던 블랙메탈 가공공장이 신라그룹에 철수를 통보했다.
유지하는 조건을 붙이지 말고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했고 아르마는 일단 이유를 듣고자 했다.
유일하게 인터뷰에 응한 국가는 캐나다였다.
메이플 인터내셔널의 한국 담당 이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라고 나가고 싶겠습니까? 대체제가 있다손 쳐도 지금까지 투자한 게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윗선에서 철수하라고 한 건가요? 괜찮은 선에서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는 쓰게 웃었다.
“사정이 그렇게 됐습니다. 원래 경제는 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던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딱 집어서 말하진 않았지만 캐나다 정치인들이 반유지하 열풍에 합류한 게 원인일 것이다.
캐나다 내부에서도 다수의 능력자가 등장하면서 블랙메탈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지금까지 한국에 투자한 것을 버리고 새 리스크를 짊어지겠다는 결단은 그만큼 반유지하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세계 유수의 경제지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해먹어도 너무 혼자 해먹었다. 그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
유지하의 입장에선 뭘 해먹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하여튼 그 지독한 오해는 전 세계에 퍼져 있었다.
이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일어섰다.
“한국에서 구입한 안드로이드는 외국에선 쓸 수 없겠죠?”
“전시용으로는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거 유감이군요. 하여튼 메이플 인터내셔널은 정식으로 한국에서 철수함을 통보하고자 합니다.”
“접수했습니다. 참,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만 차후에 다시 한국 시장에 진입하려 할 경우 수수료가 다소 높아질 겁니다.”
그는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저야 심부름꾼이니까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겠죠.”
그렇게 캐나다가 철수하자 나머지 국가들도 줄줄이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유지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리스크를 굳이 짊어질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군.”
“마스터에 대한 혐오감이 리스크보다 크다는 증거겠죠. 그리고 기업인들은 어지간하면 철수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철수를 결정한 건 정치인들이에요.”
“하긴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아무튼 리스크를 진다고 했으니 나중에 재진입하려고 하면 곱게 받아 주진 마.”
“수수료를 3배 정도는 받을까요?”
“물량도 절반으로 줄이고 러시아와 독일에 더 넣어.”
두 국가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도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주었다.
러시아야 거의 경제동맹이나 다름없으니 그렇다 쳐도 독일이 인상적이었다.
총리가 유지하에게 전화를 걸어 철수는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완공이 끝난 핵융합 플랜트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였지만 핵융합 플랜트가 공급하는 전력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제 프랑스에서 비싼 값에 전력을 공급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물론, 독일에서도 능력자를 모으고 블랙메탈의 가공을 시도했지만 유지하와 관계를 끊는 것은 바보짓으로 여기는 입장이었다.
―블랙메탈이 희소한 자원인 만큼 공급처를 줄이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높다.
―유지하를 독재자라고 비판하지만, 그렇게 비판하는 국가들 대부분은 과거 그 이상의 짓을 저지른 적이 있다. 언급하지 않는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실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서 유지하와의 관계를 끊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한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를 유지하에게서 전해 들었다.
“현재 사이커들이 만드는 블랙메탈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요?”
“아주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그걸 해결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그거 다행이군. 하마터면 공장을 철수시킬 뻔했지 뭡니까.”
물론, 푸틴에게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건 유지하도 잘 알고 있었다.
두 독재자는 서로를 필요로 했다.
“그나저나 일본이 레일건을 탑재한 군함을 건조한다던데 상당히 기대되는군요.”
“레일건 전투함이 필요하십니까?”
“그게 필요하지 않은 국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미국과 약속은 한 것은 압니다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협정은 협정이므로 포신과 축전지 기술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혹시 모를 결함을 방지할 수는 있겠죠.”
“그 말씀은?”
“앞서 말한 치명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겁니다. 러시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드리죠.”
레일건을 공급할 수는 없지만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개발 과정에서 생길 중대한 결함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도움이 어디 있겠는가?
능력자들의 출현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고 러시아에도 사례가 많았다.
그들을 불러 모아 국내에서 레일건을 제작한다면…….
푸틴 대통령은 흥분감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현재 러시아의 전력으로는 태평양에 진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건 한국에 맡기고 흑해와 발트해 등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레일건 전투함이 있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번에 우리를 도와준다면 크게 사례하겠습니다.”
“기대되는군요. 곧 사람을 보내죠.”
“그나저나 일본이 어떤 결함을 겪는지 대충이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대단한 건 아니고 쪼개질 겁니다.”
“포신이 쪼개진다는 말입니까?”
“운이 좋으면 그렇게 되겠죠.”
그럼 운이 나쁘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 * *
일본은 이번 아타고급의 레일건 탑재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극도의 보안을 지켰고 최고의 전문가집단을 투입해 개장 작업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테스트에도 EU의 국방무관을 많이 참관시키기로 했다.
유지하를 많이 의식한 결정이었다.
정작 그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지만 어쨌거나 테스트를 위한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 내에선 드디어 레일건 전투함을 가진다며 굉장히 들뜬 분위기였고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비판하긴 했으나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아타고급 아무리 개량해도 전용 플랫폼한테는 안 되지. 미국도 줌왈트급 버리고 레일건 전투함 새로 건조하는 판에.
―근데 일본이 이번 실험에 기대를 많이 하는 모양임. 성공하는 즉시 재무장 선언하고 헌법 9조 개정에 들어갈 것 같은데.
―그놈의 헌법 9조는 대체 언제 개정하는 거냐? 무슨 20년 내내 난리야.
―이번에는 진짜임. 일본 애들 대마도 반드시 돌려받겠다고 벼르고 있자너.
―솔까 대마도 점령은 선 넘은 감이 있음.
―선 넘은 건 일본이 먼저임. 누가 유지하 없는 틈을 타서 독도 점령하래?
―일본 반응 보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방해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하겠다는 입장이던데.
―핵실험 우리가 방해했다는 그 음모론은 진짜 질기네.
―일본 전설의 1군하고 비슷한 거임. 실체가 없지.
―레일건 쏘다가 확 폭발했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
―해자대가 진짜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다고 함. 미국에서 데이터도 얻어서 포신하고 축전지 테스트 완벽하게 끝냈음.
―미국도 너무하네. 그 데이터 우리가 줘서 쌓을 수 있었던 거잖아.
―정확하게는 지하형이 준 거지.
―요즘 민주당이 우리 밟으려고 난리임. 특사 파견해서 주한미군 제의했다가 뺀찌먹었다던데.
―미국형 고마운 건 아는데 우리도 많이 해 줬잖아. 이쯤에서 서로 갈길 가자.
어느덧 레일건 실험 날짜가 다가왔다.
규슈 근해에서 태평양을 향해 발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EU의 국방무관은 물론 미 해군의 주요 관계자들이 지켜볼 예정이었다.
신일본유신회의 간사장인 마츠다는 해자대에 끊임없이 강조했다.
“절대 한국의 방해가 있어선 안 됩니다. 미 해군의 협조를 얻어서라도 방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세요.”
설마 미 해군이 옆에 있는데 섣불리 행동하진 못할 것이다.
사실 이번만큼은 유지하도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실패할 게 뻔한데 뭐 하러 빌미를 준단 말인가.
“알파급도 못 되는 사이커 수십 명이 모여 봐야 한계가 있지.”
그렇게 모여서 레일건 포신을 만든다고 치면 두 개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포신의 크랙과 수명이다.
블랙메탈은 사이커의 감응력을 통해 작은 규모의 에테르 역장을 형성해 형태를 바꾼다.
이를 트랜스폼이라고 하는데 구현 규모는 사이커의 등급에 따라 엄격하게 나눠진다.
낮은 등급의 사이커는 애초부터 작은 스케치북인 것이다.
규모를 극복하기 위해 스케치북을 연결하는 것은 사이커를 많이 동원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그 경우 그림은 그릴 수 있겠지만 통일성이 어긋나고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레일건 포신을 예로 들면 구현 사이즈가 달라 크랙이 생길 수 있었다.
블랙메탈은 엄청나게 튼튼한 금속이지만 초고전압이 걸리면 그 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쪼개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사태를 방지하려면 사이코키네시스 연결망이나 멘탈리스트의 도움이 필요한데 전자는 인류연합에서도 연구가 되지 않았고 후자는 유지하가 데리고 있었다.
“애초에 성공을 할 수가 없는 테스트야.”
수명에서도 문제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트랜스폼 풀림 현상이다.
어지간한 등급의 사이커로는 트랜스폼 현상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저런 사이커를 모아서 블랙메탈 배터리를 제조해도 얼마 가지 못해서 트랜스폼이 풀려 배터리가 분해된다.
“벌써부터 미래가 그려지는군.”
얌전히 이쪽의 관리 하에서 생산하면 될 것을 꼭 욕심을 내다가 일을 그르친다니까.
하긴 욕심이란 향상심과도 연결되므로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블랙메탈과 에테르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인류에겐 실패할 약간의 여유조차 주어져 있지 않았다.
아르마의 보고가 들어왔다.
「마스터, 남해의 핵융합 플랜트와 매스 드라이버가 완공되었습니다. 정리 작업만 끝나면 곧장 운영할 수 있습니다.」
“곧 가지.”
* * *
마츠다 간사장은 보람찬 표정으로 개장된 아타고함을 바라봤다.
선수의 함포와 VLS 대신 길고 검은 포신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었다.
포신의 위용만큼은 한국의 레일건 순양함에 견주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일본이 레일건함을 가지게 되는 날이다.
그간 한국의 레일건 순양함을 보며 얼마나 탐을 냈던가.
그 배의 전투력은 장난이 아니어서 단신으로 호위함대를 쫓아낸 전적이 있고 심지어 미국도 꽤 골치 아프게 여기고 있었다.
물론, 배 한 척이 전세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이 가진 것은 일본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마츠다는 생각했다.
‘레일건이든 이온 추진기든 모조리 확보해 주마.’
그리고 한국에 설욕전을 벌이는 것이 유신회와 해자대의 목표였다.
마지막은 대망의 쓰시마 상륙전이 되겠지.
그날이 오면 아마 신일본유신회는 정식으로 권력을 잡을 것이며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꾀할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의 행사는 단순한 무기 테스트가 아니라 향후 일본의 길화흉복을 점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누구든 방해해선 안 돼.’
설마 미 해군이 근처에 있는데 한국이 경거망동하지는 못할 테지.
그는 옆에 서 있는 EU의 국방무관들을 슬쩍 쳐다봤다.
이번 테스트에는 EU의 다수 국가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의 관심도가 높았는데, 대외로 군사력을 투사할 기회가 많아서일 것이다.
사실 레일건은 해군을 운용하는 국가라면 누구든 보유를 갈망하는 무기였다.
마츠다는 그런 점에서 일본이 레일건의 선진국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출발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멈추지 않고 전진하면 된다. 천지신명이시여, 일본을 돌보아 주소서.’
잠시 후 함내에 방송이 울렸다.
「이제부터 레일건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포신 정렬.」
레일건은 CIC의 시스템과 통합되지 못했기에 사격을 위해선 별도의 제원을 입력해야 한다.
그 점에서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한국 해군보다는 두어 발짝 앞서 있었다.
사격제원이 나오자 포반이 달라붙어 통제컴퓨터에 입력했다.
“레일건 사격 준비 완료!”
“사격 시작!”
이윽고 레일건 포신에 푸른 아크가 맺히더니 붉은 화염을 내뿜었다.
탄자가 연달아 표적함 상공을 갈랐다.
「사격 성공.」
방송이 성공을 알리자 해상자위대 간부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기세로 계속 갑시다!”
“일본은 지지 않는다!”
원래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날 예정이었으나 마츠다는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최대출력으로 테스트해 봅시다. 500km는 넘겨야 합니다.”
“간사장님 첫 시도에 그건 무리입니다.”
“현재 냉각설비의 용량이 다소 부족합니다. 그리고 포신의 온도가 높습니다.”
주변에서 말렸으나 마츠다는 팔을 저었다.
“블랙메탈은 최고의 단열재라는 것을 이미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든지 열나도 되니까 사격하세요.”
일본 내의 행사였다면 이렇게까지 무리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 해군은 물론 EU의 국방무관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마츠다로 하여금 조바심을 내게 만들었다.
‘단지 시험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과 맞먹는 성과를 얻어야 한다.’
그리하여 바지선의 발전시설이 최대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아타고급의 CIC에서 포신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다며 경고를 보냈지만 마츠다는 중지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상관없어! 태평양을 향해 사격 시작!”
포술장이 막 사격제원을 입력하고 스위치를 눌렀을 때였다.
푸른 아크가 포신에 맺히더니 곧 전체로 퍼져 나갔다.
다들 처음 있는 일이라 무슨 현상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이해했을 때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CIC에서 비명 같은 보고를 올렸다.
“전류 역류! 축전지가 버티질 못합니다!”
“포신 내부 온도 급상승! 이대로는……!”
그때였다.
뭔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포신이 사라졌다.
정비원이 숨긴 미세한 크랙이 엄청난 아크를 버티지 못하고 큰 균열로 번진 것이다.
그리고 역류한 전류가 축전지를 폭발시키더니 차단회로를 박살 내고 미처 제거하지 못한 탄약고의 대함미사일에까지 닿았다.
꽝.
순간 아타고급에서 충격파와 파도가 퍼져 나왔다.
주변의 군함들이 파도에 휩쓸리기도 전, 아타고급은 거대한 폭발에 허리가 부러져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으…….”
마츠다는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충격파에 휩쓸려 넘어지면서 난간에 머리를 부딪쳤기 때문이다.
다행히 안전모를 쓰고 있어 부상은 면했지만 몸 곳곳이 아팠다.
어떤 자위관이 그를 부축했다.
“간사장, 간사장! 큰일입니다!”
“…뭡니까?”
“아타고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급히 일어서서 전방을 쳐다보니 정말로 아타고급이 선수와 선미만 보인 채 천천히 침몰하고 있었다.
마츠다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갑판에 서 있었다.
“…….”
바다에는 아타고급이 침몰하며 일으키는 파도와 시끄럽게 경보만이 가득했다.
주변에서 뭐라고 크게 소리치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왜, 어째서?’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준비는 완벽했고 테스트도 순조로웠다.
중간에 다소 무리를 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함이 침몰하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설마, 한국이?
그는 급히 미 해군의 국방무관 오필드 중령을 찾았다.
“오필드 중령, 혹시…….”
질문을 하기도 전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 해역엔 우리 외엔 아무도 없습니다.”
“분명히 놓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갑자기 함이 폭발할 리가 없잖습니까?”
“저는 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습니다. 포신이 쪼개지며 전류가 역류해 함을 폭발시킨 겁니다. 아마 탄약고에서 유폭이 일어났겠죠.”
“…….”
덤덤히 실패를 선언한 오필드 중령은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본국에 보고를 해야 하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참, 오늘 일은 유감입니다.”
유감?
마츠다 간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오늘 테스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건이었다.
저 오만방자한 한국에 보여 주기 위해,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일본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무엇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앞당기기 위해서.
하지만 테스트는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아타고급이 침몰하기까지 했다.
이제 이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지지?
마츠다는 자신도 모르게 책임을 질 만한 해상자위대 간부의 이름을 떠올렸다.
침몰한 아타고급 주위로 해난구조선이 몰려들고 있었다.
* * *
일본이 레일건 테스트를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관심 있게 지켜보던 각국은 처음엔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신무기 테스트를 실패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레일건 같은 이전에 없었던 체계라면 더 그렇다.
단숨에 성공하고 전력화까지 빠르게 해치우는 한국이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원래 일본은 이를 은폐하려 했으나 미국은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마침내 아타고급을 인양해 샅샅이 분석했다.
그리하여 테스트에 실패한 이유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블랙메탈 포신 표면의 크랙으로 인한 불연속적인 아크 방전을 축전지와 포신이 버티지 못하고 전류 역류.」
사태의 진상을 정확히 집어낸 것이었고 일본 열도가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하이퍼맨들이 다수 동원되어 만들어진 블랙메탈 포신에 크랙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합동조사단에서는 최초의 크랙을 지적했다.
“제대로 살펴보기만 했어도 찾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 은폐했다는 소리밖에 안 됩니다.”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테스트에서는 몇 번이고 교차검증을 했어야 합니다.”
“탄약고를 깨끗이 비우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일본은 이런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재실험을 강행했다.
모든 일정이 앞당겨졌고 이번에는 마야급 이지스 구축함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에 만들어 낸 포신에도 크랙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하이퍼맨들이 수작이라도 부리지 않은 바에야 구조적인 결함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프랑스와 캐나다 등에서도 똑같은 소식을 전해왔다.
―능력자를 다수 동원해서 포신 같은 거대한 형태를 구현하는 건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최초로 만든 블랙메탈 배터리도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가 무너졌다. 이대로 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뭔가가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