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그의 시대는 끝났다
황선영을 비롯한 각성자는 메가시티만의 일이 아니었다.
현재 세계는 갑자기 등장한 블랙메탈 인자를 보유한 능력자로 몸살을 앓았다.
이들은 TV 프로그램에 나가 자신의 능력을 대중 앞에서 자랑스럽게 선보였다.
이전에 몇 번 등장한 블랙메탈 능력자와 다른 게 있다면 바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능력이었다.
미국의 유명 TV쇼에 출현한 한 남자에게 진행자가 물었다.
“블랙메탈 변형은 너무 봐서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게 필요하다고요.”
“나에게 그 능력이 있습니다.”
“톰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초능력자가 되었다 그건가요? 사이킥 파워?”
“비슷합니다. 영화나 코믹스에서 많이 봤죠? 손을 들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거 말이죠.”
“어렸을 때는 내 손에서 왜 에너지가 나가지 않는지 엄마에게 물어보기도 했죠. 그래서 직접 볼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남자는 스탭이 준비해 둔 샌드백 앞에서 몇 번 숨을 고르더니 가볍게 팔을 내질렀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군요?”
진행자가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 놀랍게도 그의 손에서 황금색의 빛이 뿜어지더니 샌드백이 뒤로 튕겨나갔다.
“와우.”
“세상에.”
관객들이 놀라는 가운데 남자가 자랑스럽게 두 팔을 펼쳐 보였다.
“굉장한 위력 아닙니까? 이걸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요.”
그때 진행자가 웃으며 얘기했다.
“사실 우리 미국인들은 당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 능력을 써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게 뭐죠?”
“총이요.”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구수보다 더 많은 총이 있다는 미국에서 이정도의 능력은 별게 아니었다.
하지만 손에서 정체불명의 광선을 뿜는다는 능력은 확실히 블랙메탈보다는 신선했고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남자는 그렇게 유명인사가 되었고 미국 여기저기에서 초능력이 생겼음을 밝히는 사례가 늘어난다.
바야흐로 초능력자의 시대가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계와 재계에선 큰 기대를 걸었다.
―마침내 유지하보다 더한 능력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분해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블랙메탈만 제대로 분해할 수 있으면 이온 추진기를 만드는 것도 꿈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언옵테늄과 이온빔 핵융합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유지하의 시대가 끝난 건가?
이런 추측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본에서 블랙메탈 배터리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과 단교한 상황에서 매우 뜻 깊은 일이라 일본인들은 축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한때는 어떻게 되나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이제 한국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일본은 블랙메탈 강국으로 우뚝 설 것이다.
―다만 정확한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게 신경 쓰인다.
이번에 독자적인 배터리를 공개한 곳은 유신회의 지원을 받는 단체로 일본 내의 초능력자 다수를 끌어모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단체의 이름은 하이퍼맨 클럽.
다소 유치하지만 어쨌든 제대로 된 배터리 제작 능력을 보유했으므로 문제는 아니었다.
이들은 도요타, 파나소닉 등의 기업과 연계하여 일본에 블랙메탈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 공언했다.
“이제 일본만의 블랙메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는 한국에 머리를 숙일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발표한 하이퍼맨 클럽의 리더는 사사키란 30대 남자로, 쇼맨십이 대단했다.
자청해서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가 하면 기업들의 초청에도 마다하지 않았다.
키는 다소 작았지만 매우 열정적이었고 무엇보다 그가 보여 주는 블랙메탈 건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마침내 일본의 유지하가 생긴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이퍼맨 클럽에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초인이 많았다.
이들은 열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신일본유신회에 몸을 의탁해 정치 세력화했다.
―벌써부터 정치는 좀 그렇지 않나?
그들의 행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관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거만한 한국을 꺾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괜찮아.
―단교는 상관없어. 중요한 건 쓰시마야.
―당장은 자동차기업에 댈 블랙메탈을 공급하는 데 힘써야 한다. 미국에 부탁해 보자.
그리하여 신일본유신회와 하이퍼맨 클럽이 주축이 되어 미국에 특사를 파견했다.
미국은 의외로 순순히 블랙메탈을 공급하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어디까지나 약속이지만 일본인들은 당장 블랙메탈 배터리가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다.
갑작스럽게 많은 능력자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유지하가 잠깐 잊힐 정도였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몇 가지 가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혹시 유지하는 단지 먼저 나타났을 뿐이지 않을까? 그걸 담보하는 증거가 지금 계속 나오고 있다.
―현재 능력자들 중 일부는 해상도 면에서도 유지하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분해기는 충분히 연구되었고, 우리도 만들 수 있다.
―이제 진지하게 유지하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해도 될 것 같다.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배터리 소량과 디테일이 떨어지는 레일건 포신이었지만 각국은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그간 유지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었던 고해상도 블랙메탈 분해가 이뤄진 것이다.
이제 몇 년이 지나면 진짜 유지하 같은 능력자가 태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 언론에서는 여전히 디테일이 떨어진다며 의미를 낮추려 했지만 초조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유지하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국에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무슨 발표라도 해야 되지 않나?
―다른 나라에서 각성자가 계속 나타난다는데 무슨 말을 해? 축하한다?
―이거 재수 없으면 국제적으로 소외될 수도 있겠는데.
―야, 하이퍼맨이 블랙메탈 다룬다고 유지하가 어떻게 되냐? 갑자기 능력이 없어져?
―그게 아니라 지금까지 유지하가 막나갔던 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거지. 주가 쫙 빠지잖아. 외국인들이 튀는 중임.
―따지고 보면 유지하의 능력 중에서 진짜 독자적인 건 인공지능 외엔 없긴 하지.
―배터리, 레일건 포신, 축전지, 이온 추진기, 신형 발사체, 드론, 언옵테늄, 안트론… 전부 블랙메탈에서 유래된 거임.
―이거 까고 보니까 블랙메탈 원툴이네.
―그러니까 외신에서도 진지하게 몇 년이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하잖아.
―씨발 일본 지금 레일건 만든다고 난리인데 우리 좆됐어.
―병신들아 뭐 그리 호들갑 떨고 있어? 지하형 못 믿음?
―그게 아니고 워낙 상황이 심각하니까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지 않냐는 거지…….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뭐 이렇게?
―답답하다 답답해.
한편 유지하는 여전히 별도의 담화 없이 핵융합 플랜트와 매스 드라이버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 * *
2030년 초순 세계의 주요 뉴스는 블랙메탈과 능력자에 대한 내용으로 점철되었다.
하지만 유지하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아르마와 함께 세틀러호를 둘러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세틀러호에 탑재된 선지자의 유물이다.
“드디어 수리가 끝났군. 참으로 길었어.”
유지하는 선체의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긴 관을 바라봤다.
이 황금색의 관은 선지자의 유물 중에서도 가장 등급이 높은 것으로, 아크에서는 초대질량 입자가속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구에도 입자가속기는 많지만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반입자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틀러호의 전장이 700m인 것은 이 장비를 탑재하기 위함이었다.
방주선에서 가장 중요한 설비는 에테르 융합로이지만 초대질량 입자가속기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플레이그에게 먹히는 무기는 현재로선 반입자 반응탄 외엔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프늄2는 공사용이고 수소폭탄은 플레이그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아르마가 홀로그램의 데이터를 휙휙 넘기며 보고했다.
“현재 유물의 출력은 77% 정도로, 광속의 96.85%에 가깝게 에테르를 가속시킬 수 있습니다. 한 달에 300그램 정도의 반입자를 생산할 수 있겠네요.”
그 정도면 몇 개월을 모아야 반응탄 하나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
입자가속기의 출력은 오로지 에테르 융합로에 의존하는데 그건 함부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르마, 두 번째 유물이 언제 오지?”
“타임라인을 맞춰 보면 2031년 여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장소는 마스터께서도 아시다시피 화성의 매리너 계곡이겠죠.”
선지자가 보낸 첫 번째 유물은 일종의 경고장이었고 두 번째는 에테르 코어다.
플레이그 코어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에테르를 주변에 퍼트리는데 특화되어 있다.
사실 융합로와 플레이그 코어, 그리고 에테르 코어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구조는 같다고 추측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루시아가 자신 있게 말한 거니까 확실할 것이다.
“에테르 코어라… 원래 역사에선 그때를 기점으로 사이커들이 출현하기 시작했었나?”
“남은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인위적으로 스케줄을 앞당겼으니 확보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군. 에테르 코어 그건 출력이 많이 떨어지잖아.”
“아무래도 선지자가 배려를 많이 해준 모양이에요. 시작부터 강한 사이커가 출현하면 인류가 놀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선지자는 단계별로 인류를 각성시키려 했지만 정작 인류는 그 기술과 힘에 취해 흥청망청 쓰기에 바빴다.
진지하게 우주괴물의 존재에 대해서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아르마는 어쩌면 그 코어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그 코어가 대단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죠. 그러니 외계의 문물을 확보하기 위해 싸웠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요.”
역사 데이터를 확보했다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쉬웠다.
“어쨌든 그건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지구에 뿌려두는 게 좋겠어. 위치는… 모스크바 근교.”
“확보하면 운석의 형태로 뿌리겠습니다.”
이들에겐 필요가 없지만 현 인류에게 에테르 코어란 최초로 조우하는 외계 문물이다.
가급적 우호적인 세력이 얻어야 하고 이쪽을 칠 힘이 없으면 더 좋다.
아르마가 다른 자료를 살펴보다 말했다.
“그건 그렇고 마스터, 최근 국내의 민심이 심상치 않습니다.”
“우후죽순 튀어나오는 사이커 때문인가?”
“네. 마스터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하긴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지.”
유지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를 설명할 때 곁들이는 말이 하나 있다.
―결국 블랙메탈 원툴이잖아.
지금까지 선보인 기술이나 개념 대부분이 블랙메탈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 되겠다.
하지만 이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침 지구에 블랙메탈이 있고, 그걸 고해상도로 분해해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데 무슨 반박을 할 건가.
실제로 그 문제 때문에 초기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유지하를 사기꾼으로 매도하기도 했었다.
설명하지 못하는 과학은 유사과학과 다름이 없다면서.
아무튼 그런 것들 때문에 유지하는 인공지능이라는 명백한 성과가 있음에도 블랙메탈 원툴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르마가 조심스럽게 데이터를 제시했다.
“주가도 떨어지고…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습니다. 상당히 불안한가 봅니다.”
“선택지가 둘 있군. 당장 그걸 폭로하느냐, 아니면 자폭하는 걸 기다리느냐.”
“따로 성명만 발표하신다면 후자가 더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럼 안심하라는 성명만 발표하기로 하지.”
현재 알파급 이상 진짜 사이커는 메가시티와 한국에서 출현하는 중이다.
황선영이 대표적인 예다.
아르마는 사이커 스캐너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파악해 조용히 끌어들이고 있었다.
스캐너를 세틀러호에 장착해 지구를 돌면 전 세계의 사이커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양산형도 못 되는 일종의 부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블래스터라고 했나?”
“네. 현재 우리가 기다리던 초능력자가 나타났다며 난리입니다. 언론에선 이들을 띄워 주기 바쁘고요.”
“하긴 손에서 에너지를 뿜으니 신기할 법도 하겠지.”
인류연합의 사이커 분류 중 가장 쓸모없는 타입이 블래스터다.
이들은 에테르를 공격용으로 쓸 수 있는데, 당연하게도 플레이그와의 전쟁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인간이 에테르 에너지를 쏟아내 봐야 전장 수백 미터를 넘나드는 금속괴물을 간지럽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물론, 개인 레벨에선 충분히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에테르에 익숙해지면 하늘을 나는 것도 가능하니까.
“실적 없는 테마주 같은 거지. 생선 중에선 망둑어라고도 할 수 있겠군.”
엄연히 생선이지만 식재료로 의미 있는 대접을 받지는 못하는 것이 비슷하다.
그런 블래스터라고 해도 몇 명이 모이면 유지하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분해기를 제작할 수는 있다.
지금까지 각국 정부와 기업이 축적한 데이터가 있을 테니까.
다만 그렇게 만들어진 블랙메탈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모양이군. 당분간 지켜보기로 하고 탄탈럼 광산 매입 준비해.”
“네. 이미 러시아와 접촉했습니다.”
초대질량 입자가속기로 반입자와 하프늄2를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변명거리는 필요했다.
유지하는 일본이 레일건 전함을 건조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곤 혀를 찼다.
“미국이 포신하고 축전지 데이터를 넘겨줬군. 매킨리 대통령의 의향은 아닌 듯하고…….”
“민주당의 압력일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의 재무장이 필요하니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동아시아에 영향력을 다시 뿌리내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유지하가 있는 이상 불가능했다.
“알아서 자폭하게 놔두고 우린 우리 일만 하기로 하지. 핵융합 플랜트와 매스 드라이버 가동 준비해.”
“알겠습니다.”
* * *
“국민 여러분의 심려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블랙메탈 시장에서의 한국의 우세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이번 사태에 대한 유지하의 성명이 발표되었지만 부정적인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많은 국가가 사이커를 확보한 끝에 일련의 블랙메탈 제품을 제작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도움 없이 제작이 가능한 것은 블랙메탈 배터리와 레일건 포신 등 비교적 간단한 종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본과 프랑스를 들뜨게 하기엔 충분했다.
전자는 한국과 단교했고, 후자는 단교까진 아니지만 히틀러 운운하는 바람에 블랙메탈 관련해서는 거의 거래가 없었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시원한 물이 생겼으니 벌컥벌컥 마셔야지 뭘 어쩌겠는가?
일본 정부는 유신회의 압력에 못 이겨 수조 엔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레일건 순양함의 건조를 확정지었다.
―함명은 야마토로 하자. 2번 함은 나가토가 좋겠어.
―2만 톤도 되지 않는 배에 그 이름은 사치야. 최소 5만 톤은 넘어야 돼.
―그나저나 대체 무슨 수로 미국의 협조를 얻은 거야? 핵실험 실패를 빌미삼아 경제 제재를 발동한 게 미국이었는데.
―최근 미국은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적극 밀어주고 있어… 한국보다는 일본과 손을 잡는 것을 택한 거지.
―그런 상황에서 하이퍼맨의 출현은 날개를 단 격이야. 더는 한국에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어.
프랑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옆 나라 독일이 핵융합 플랜트를 유치하고 블랙메탈 배터리를 양산하는 등 친 한국적인 행보를 보이자 그것을 적극 비판했다.
―독재는 달콤하지만 끝맛은 쓰다는 걸 독일은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프랑스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한국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자유와 인권에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자동차 조금 못 팔아도 좋다. 여객기 효율이 조금 떨어져도 상관없다. 핵융합은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다.
요약하면 프랑스는 자존심이 너무 높아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방해를 거스르고 기어코 독자적인 핵개발을 해냈으니 그 자존심이 오죽할까.
또한 당장 프랑스인의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는 게 그들의 버팀목이 되었다.
―블랙메탈? 대단하긴 한데 그거 없을 때에도 우리는 잘 살았다. 그러니 자존심을 꺾어선 안 된다.
주식시장이 얼어붙고 경제성장률이 연이어 주저앉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프랑스인들은 기꺼이 그것을 감수했다.
독재자와 타협하느니 가난하게 살겠다는 게 그들의 마음가짐이었던 것이다.
그런 프랑스에게 이번 초능력자들의 출현은 어마어마한 힘이 되었다.
한 정치인은 언론사와 인터뷰하며 이렇게 외쳤을 정도였다.
“프랑스 만세! 이제 프랑스는 더욱 위대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독재자에게 굴복한 나라는 결코 이 기분을 알 수 없을 겁니다!”
분위기가 너무 달아올라 파리 시내에서 벌어진 축제에서 히틀러와 유지하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불태워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파리 당국은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조심성 없는 행동이라고 일축했지만 시민들은 그 행동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금수조치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랑스인들이 유지하에게 품은 감정의 골은 이렇게나 깊었던 것이다.
양국이 이렇게 불타오르는 와중에 미국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관망하는 입장이었다.
러시아는 언제나 그렇듯 침묵을 지켰고 중맹은 가장 난처해졌다.
유지하의 협조를 얻어낸다고 땅을 양도한 게 다른 파벌에 의해 들통이 나는 바람에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국명을 바꾼 왕쉬안을 숙청하자!
―더는 참을 수 없다. 중국이 다시 일어날 때다!
바야흐로 전 세계에 반유지하 열풍이 불고 있었다.
수많은 정치 경제 전문가들은 유지하가 블랙메탈의 가공을 독점해 온 반작용이라고 분석했다.
―적당히 했어야 하는데… 이제 어지간한 나라는 블랙메탈을 가공할 수 있게 되었다. 절대적인 입지가 사라졌으니 몰락도 머지않았다.
―만약 신라그룹이 공개되었다면 한국 증시는 역대 최악의 패닉셀을 경험했을 것.
―다만 유지하가 의외로 당황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를 예측이라도 한 것 같다.
―어쨌든 이제 유지하의 시대는 끝났다. 인공지능은 여전하지만 초인공지능이 아닌 이상 영향력은 크지 않다.
다들 진지하게 유지하 시대의 종말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아타고급 이지스 구축함 한 척이 도크에 계류되었다.
서류상으로는 정비로 기록되었지만 사실 이 배는 무장 시스템을 제거하고 레일건을 탑재하는 개장을 받는 중이었다.
미국에 많은 양보를 한 대가로 줌왈트급의 데이터를 얻어 레일건 포신과 대용량 축전지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이퍼맨 수십 명이 탈진 상태에 이르렀다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드디어 일본도 레일건 탑재 전투함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아타고급은 그런 기대를 안고 얌전히 개장 작업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포신을 닦던 한 정비원이 갈라진 틈을 발견했다.
‘여기에 왜 크랙이 있지?’
입고되었을 때에는 없었으므로 새로 생긴 게 분명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모른 체했다.
‘상부에 알려 봐야 나만 곤란해져. 왜 그런 걸 알렸냐고 하겠지.’
현재 해상자위대와 신일본유신회는 이 전투함에 미쳐 있어서 조금의 잡음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외부의 크랙이니까 아크 방전에는 무리가 없겠지…….
‘모르는 게 약이야.’
정비원은 그렇게 크랙을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