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정의가 실현되었다
2033년 12월의 어느 날 밤.
떠들썩하던 캠프 데이비드도 조용해진 자정 무렵 한 무리가 외곽에서 침투했다.
이 무리의 진입을 포착해야 할 임무를 가진 드론 3대는 전원이 차단되었기에 알고리즘이 컨테이너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또한 전파가 교란되었기에 이상신호를 통신위성에 보내지도 못했다.
이를 감시해야 할 경호원 두 명은 제임스 대통령이 강권하다시피 한 독한 위스키에 나가떨어진 상태였다.
“미국에 왔는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유 대통령께서도 술을 즐기시는 모양이니 한 잔씩 합시다. 모든 것은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미국이 책임진다.
청와대 경호원 입장에서는 솔깃한 발언이었다.
무엇보다 제임스 대통령이 직접 권하는 더 맥캘란 1946의 유혹을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었다.
미국의 대통령 별장에서 현직 대통령이 직접 권하는 최고급 빈티지 위스키를 거절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그래도 경호원들은 최후의 인내심을 발휘해 거절했지만 상관인 유지하 대통령이 한 잔씩이야 뭐 괜찮지 않겠느냐며 보태는 바람에 받아 마시고 말았다.
덕분에 리콘마린들은 아무 제지 없이 외부 VIP 전용 숙소에 접근할 수 있었다.
“클리어. 돌입 개시한다.”
대원들은 순식간에 문을 따고 안으로 진입했다.
전원이 차단되었기에 아무런 경보음도 울리지 않았다.
안드로이드가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복도로 나왔으나 센서와 카메라에 달라붙은 접착제 때문에 허우적거렸다.
“역시 기계는 어쩔 수 없군. 나머지도 무력화시켜.”
건장한 대원들은 테이저건으로 뒤늦게 나온 경호원들을 무력화시키고 수건으로 입을 봉인했다.
문을 따고 들어가자 영상과 사진으로 숱하게 확인한 인류연합의 대통령이 놀란 눈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당신들 뭐지?”
“유감입니다. 잠시 우리와 가주셔야겠습니다.”
유지하는 창문을 통해 밖이 어두운 것을 확인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대통령까지 한패였군.”
“미국인 모두가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전쟁이야. 그걸 감당할 수 있겠나?”
리콘마린 부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는 인류연합을 두려워하지 않소.”
“그래? 맨해튼 사태에서 도와주지 말 걸 그랬나 보군.”
대원들이 동요했고 부대장은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라는 당부도 잊고 권총을 그의 관자놀이에 갖다 댔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게 아냐. 그 사태에서 내 동생이 죽었어.”
“동생이 죽은 건 유감이지만 그 책임을 외국의 대통령에게 돌려서야 되겠나? 말해 봐. 내가 뭘 잘못했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맨해튼 사태는 전적으로 정치인들의 오판과 군인들의 실수가 빚어낸 결과였다.
부대장은 뭐라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거기로 데려가. 철저하게 감시해.”
이윽고 유지하의 입에도 마취제가 발린 손수건이 덮였다.
유지하는 다양한 시술을 받았기에 어지간한 마취제 따위는 통하지 않지만 정신을 잃은 척이라도 해야 했다.
부대장의 열을 올린 것도 혹시나 작전을 중단하고 돌아서지 않을지 걱정되어서였다.
미국은 반드시 그를 납치해야 하고 전쟁 또한 일어나야 했다.
잠시 후 타깃을 확보했다는 신호가 떨어지자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한국에서 온 관료들과 경호원들이 소음에 놀라 숙소에서 뛰쳐나왔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대통령님, 대통령님 안전부터 확보해!”
“조명탄이다!”
순간 밤하늘에 작은 태양이 여러 개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신음했다.
군용 조명탄은 대중의 인식과 달리 엄청나게 밝아서 시력은 물론이고 정신까지 멍하게 만든다.
거기에 섬광탄이 터지니 캠프 데이비드 전체가 전쟁터라도 된 듯했다.
배성민 비서실장은 그 가운데에서 차량 몇 대가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몸이 움찔했으나 대통령이 건넨 쪽지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대신 그의 머릿속을 차지한 것은 이번 일을 저지른 미국에 대한 분노였다.
‘돌았군. 대통령께선 가급적 미국을 도와주려고 하셨는데.’
진짜 미국이 싫었다면 어스 플릿을 동원해 도와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립은 그만두고 같이 우주괴물에 대항하자는 메시지를 수차례 보냈지만 미국은 그걸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테러까지 저질렀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순 없다.’
유지하 대통령이 짐작한 대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궁금한 건 대통령이 어떻게 이걸 사전에 알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르마 장관도 아마 알고 있었겠지.’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유지하 대통령이 사전에 계획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터무니없는 상상이었겠지만 배성민의 상관은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과 배짱을 가진 인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군.’
그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병사들에게 사납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 소동은 대체 뭡니까?”
그의 이마에 권총이 겨누어졌다.
“배 비서실장이지요? 잠시 우리와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 * *
유지하는 덜컹거리는 트럭에 실린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손발은 완전히 묶였고 입과 눈까지 막은 걸로 봐서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숨기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위치는 시비리 위성이 실시간으로 전송해 주고 있었다.
‘헤이거스타운으로 가는군.’
그 작은 도시에서 수색 및 심문을 받고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것이 분명했다.
제임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할지 들어 보고 싶었지만 일단 납치되었으니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그를 탈출시켜 줄 아르마는 같은 신세가 되어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호송병들은 지시라도 받았는지 그에게 일체 말을 걸지 않았고 덕분에 유지하는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30분간 쉬고 나니 차가 멈췄다.
그가 감금된 곳은 헤이거스타운 외각의 호젓한 주택 지하실이었다.
‘지하 3층이라… 꽤 준비를 많이 했군.’
그는 몇 개의 보안문과 쇠창살을 거친 후에야 비로고 독방에 감금될 수 있었다.
얼마 후 아르마도 옆방에 갇혔고 둘은 동시에 수색을 받았다.
유지하의 경우는 별로 나올 게 없었고 아르마도 정체를 들키진 않았다.
“답답하시죠? 안대는 벗기겠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안대가 벗겨지며 비로소 감금된 방과 몇 명의 인물이 보였다.
패치와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해병대가 분명한 병사 몇 명과 검은 수트를 입은 백인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지하는 그의 정체를 잘 몰랐지만 아르마가 바이오칩을 통해 시야에 표시해 주었다.
「국가정보장 휘하 비밀관리부대의 조셉 클리퍼입니다. 제임스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으로 이번 일을 감독했습니다.」
이번 일에 개입한 자가 한둘은 아니겠지만 클리퍼가 현장을 지휘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유지하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당신을 알지만 당신은 나를 본 적이 없을 겁니다.”
“조셉 클리퍼.”
이름을 대자 그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과연 희대의 독재자라고 해야 하나. 나 같은 말단도 알고 있군요.”
“대통령의 측근을 말단이라고 무시할 순 없지.”
“좋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의 취향대로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눠 보죠. 당신은 머리가 좋으니까 지금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유지하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슬쩍 웃음을 보였다.
“탈출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리 쉽지는 않을 겁니다. 설사 어떤 수단으로 이곳을 알아낸다 하더라도 우리는 당신을 10분 안에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지하통로까지 파놓은 모양이다.
아르마의 감시를 피해 이런 준비를 한 걸 보면 제임스의 강박관념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유지하는 약빨이 너무 좋아도 탈이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클리퍼는 그의 침묵을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턱을 괴고 말했다.
“앞서 말했지만 당신은 절대 자의로 이 방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당신의 결정에 따라 그 시간이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겁니다.”
“무슨 결정을 말하는 거지?”
“우리에게 협력한다는 결정이죠. 미국을 위해 일해 줘야겠습니다.”
너무 어이없는 말이라서 유지하는 실소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납치한 거 아닌가?”
“잘 압니다. 엄청난 에테르 능력을 지닌 사이커, 신라그룹의 실질적인 주인, 6개의 메가시티와 러시아에 이어 두 번째 넓은 영토를 지배하는 인류연합의 독재자, 유지하 대통령.”
거기에 방주선 세틀러호의 주인이자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더해 주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런데도 내가 순순히 미국에 협력할 거라 생각하나?”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금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들은 당신 같은 반응을 보이죠. 며칠, 혹은 몇 달간의 강도 높은 심문과 회유가 이어지면 대부분은 포기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군요.”
“왠지 내가 협력에 응하지 않으면 평생 가둬 놓을 것처럼 말하는데.”
“정확합니다. 당신은 미국에 협력하지 않으면 영원히 태양을 보지 못할 겁니다.”
섬뜩한 발언이었으나 유지하에게는 웃기게 들릴 뿐이었다.
“너무하는군. 내가 미국을 도와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말이야.”
“확실히 그렇습니다. 특히 이번 맨해튼 사태는 당신에게 큰 빚을 진거나 다름이 없죠. 하지만 당신은… 너무 위험합니다.”
“어떤 면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면에서요. 하룻밤이 지나면 무슨 기술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언제나 긴장해야 합니다. 얼마 전 양산하기 시작한 타란튤라의 경우는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역설계도 못하겠더군요.”
“나도 몰라. 루시아가 스마트 팩토리에서 만드는 걸 가져다 쓸 뿐이지.”
“그 인공지능까지 포함해서 당신의 능력을 미국을 위해 쓸 겁니다.”
“결국 주도권은 포기 못하겠다 이거군.”
유지하가 툴툴거리자 클리퍼는 한결 여유로운 자세를 취했다.
“유럽에서 인도와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했을 때부터…….”
“발견한 게 아니라 진출했다고 해야지. 원주민들은 뭐가 되나?”
“…아무튼 수백 년 전부터 우리는 확고한 지구의 지배자였습니다.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진 그랬죠.”
“이제 와서 백인이 주도하는 세계를 다시 만들겠다? 너무 허황된 꿈 아닌가? 내가 협조하지 않으면 우주괴물은 어쩌려고?”
“맨해튼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약간의 시간 여유는 있겠죠. 우리는 당신을 설득할 겁니다. 인공지능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봐야겠죠.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당신이 협조를 약속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인류연합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협박조로 말하자 클리퍼가 방을 둘러봤다.
“여기는 임시 감금소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불규칙적으로 여러 곳을 이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잘 훈련된 1개 대대 병력이 감금소를 호위할 거고 특수부대와 기갑전력도 대기 중입니다. 언제든지 당신을 날려 버릴 수 있도록.”
“가지지 못할 바에야 죽여 버리겠다 이건가?”
“아뇨. 인공지능조차 당신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니 포기하라는 겁니다.”
그는 유지하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은근히 말했다.
“옆방에 당신의 아내가 있습니다. 당신이 한 마디만 하면 회포를 풀게 도와줄 수 있죠. 집에 두고 온 아들이 보고 싶지 않습니까? 같이 생활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우리의 감시하에서.”
“차라리 날 고문하는 게 나을 거야.”
“당장은 그런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진 않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윗선에서 허가가 내려지겠지만요.”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스윽 어루만지는 게 은근한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온갖 고통에 저항이 있는 유지하에겐 가소롭게 보일 뿐이었지만.
“뭐 고문도 좋고 약물이나 마약으로 절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하지만 하나는 염두에 두어야 할 거야. 만약 내가 풀려나면, 당신들은 얌전히 못 죽는다는걸.”
“그럴 일 없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미국 땅에서 나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착각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유지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 대화하는 것은 시간을 끌기 위함이다.
미국이 그를 확보했다는 걸 공표해야 비로소 명분이 서지 않겠는가?
탈출은 그 다음에 해도 충분했다.
“좋습니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인류연합이 무너지는 걸 구경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마침내 방이 조용해졌다.
거의 같은 시각에 심문이 끝난 아르마가 보고했다.
「백악관에서 제임스 대통령의 발표가 있을 모양입니다.」
드디어 시작이군.
* * *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에도 불구하고 백악관 오벌 오피스는 꽤나 분주했다.
기자들은 일정상 캠프 데이비드에 있어야 할 대통령이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해했다.
손님을 혼자 둬도 되는 건가?
잠시 후 자못 상기된 얼굴의 제임스 대통령이 연단에 섰다.
“오늘, 우리는 위대한 성과를 이뤘습니다. 여기에 모인 기자 분들은 아마 이 소식을 들으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우리는, 한 명의 독재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처음에 기자들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머뭇거렸다.
어디 아프리카의 주요 군벌 중 하나를 토벌하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최근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손을 뗀 걸로 아는데?
제임스 대통령은 그런 당황스러운 분위기를 즐기는지 슬쩍 웃어 보였다.
“하하, 이름을 들으면 깜짝 놀랄 겁니다. 그는 인류의 40%를 적으로 돌리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잔인무도한 독재자입니다.”
이 시점에서 기자들은 숨을 멈췄다.
혹시 그의 이름은…….
“또한 그는 민주주의의 말살자이자 자유와 인권의 적이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그의 이름을 떠올리기에 충분하겠죠. 소개하겠습니다. 인류연합의 유지하 대통령입니다. 이젠 대통령 직함은 빼야겠지만요.”
나름 익살스럽게 말했으나 기자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인류연합의 유지하 대통령을 확보, 그러니까 납치했다고?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외국의 수장을?
다들 머리가 어질어질했는지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제임스 대통령은 그런 상황을 조성한 자신의 발표가 퍽 자랑스러운지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그의 신병을 완전히 확보했습니다. 물론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죠. 현재 그는 미합중국 해병대의 보호 아래에 있으며 탈출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제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만약 그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는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겁니다.”
“…….”
너무도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일국의 지도자를 납치하는 것도 모조라 영원히 가둬 두고 협력을 요구하겠다니.
물론 유지하는 그동안 미국과 많은 마찰을 빚어왔다.
하지만 이런 짓거리를 한다는 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도를 완전히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했다.
참다못한 한 기자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미쳤습니까?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경호원들이 움직이려 했지만 제임스 대통령은 여유로운 태도로 저지했다.
“아아, 괜찮으니까 놔두게. 세계는 우리를 존경하고 우러러 볼 겁니다. 왜냐하면 정의가 실현되었으니까.”
“뭐라고요?”
“그렇잖습니까? 그는 잔인무도한 살인마이자 인권의 유린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정의를 대신해서 죄를 물을 겁니다. 그는 남은 생을 인류에 속죄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딘가에 감금되어서 기술이나 뽑히겠군요.”
“죽이기엔 아까운 인물 아닙니까? 그는 인성은 엉망인지 몰라도 머리 하나는 좋은 인물입니다. 분명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우리에게 협력할 겁니다.”
기자는 넌더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다른 기자가 발언권을 얻고 일어섰다.
“CNN의 마이크입니다. 대통령께선 인류연합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가만히 있진 않겠죠. 주인을 잃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폭주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그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깨우쳐주고 싶군요. 그 인공지능의 이름이 루시아라고 했던가요? 주인의 주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판단할 능력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연합의 군대가 움직인다면, 그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조용하군요.”
“…와우.”
이 정도면 전쟁을 각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주인을 잃은 인공지능은 물론이고 인류연합마저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미국이 유지하를 확보했다는 게 사실로 밝혀지면 당장 움직이긴 힘들 것이다.
제임스 대통령은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거드름을 피우면서 리모콘을 꺼냈다.
“저기에 티브이가 하나 있군요. 내가 이 버튼을 누르면, 히틀러 이후로 최악의 독재자의 모습이 보일 겁니다. 물론 구속되어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버튼을 누르자 정말로 유지하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어두운 방 안의 의자에 홀로 앉아 있었다.
고개는 약간 숙이고 있었는데 이목구비에서 그가 유지하라는 게 드러났다.
“조금만 고개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아, 좋습니다. 딱 좋아요.”
유지하는 방에 설치된 모니터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이 짓을 한 대가는 참혹할 겁니다.”
“그 전에 당신이 몇 년 동안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야겠죠. 아마 100년 정도는 미국과 인류에 봉사해야 할 겁니다.”
“장담하는데, 내가 자의로 이 방에서 나가면 당신들 전부를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나는 거짓말을 많이 했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유지하가 담담하게 말하자 제임스가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티브이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나를 협박하고 싶겠지만 넌 감옥에 있어! 너를 도와줄 세력은 아무도 없단 말이다!”
“나는 누구한테도 도움 받은 적 없어.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할지 기대하라고.”
제임스 대통령은 그 여유로운 태도에 화가 나는지 티브이를 꺼버렸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협박하듯 말했다.
“내가 신께 맹세하는데, 저 살인마는 살아서 미국 땅을 벗어나진 못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쯤은 인류연합 당신들도 알았겠지. 유지하를 살리고 싶으면 그 빌어먹을 드론 하나 움직여선 안 돼, 알겠나?”
그렇게 말하는 제임스 대통령의 눈은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아무튼 이 기자회견은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지도자들을 깨우는 데 성공했다.
다들 눈을 비비며 뉴스를 접하곤 황당함에 말을 잃었다.
―인류연합의 유지하 대통령,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가 그대로 납치당해.
―현재 그의 신병은 제임스 대통령의 지시 하에 미국의 해병대가 확보 중.
―제임스 대통령은 마침내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발언. 향후 100년간 미국과 인류를 위해 그의 기술을 확보할 예정.
“…완전히 미쳤군.”
누군가 한 말이 각국 정상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러시아의 미하일로프 대통령은 이 소식을 접하고 곧장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한편 미국에 격렬히 항의했다.
“만약 유 대통령의 손끝 하나라도 다치게 하는 날에는, 각오하시오! 핵샤워가 뭔지 보여 줄 테니까!”
“아아, 그렇게 흥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태도가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어디까지나 유지하의 부하인데 나한테 이렇게 나와도 되는 겁니까?”
“이 빌어먹을 양키가 말을 함부로……!”
뚝.
아마 수화기가 부서진 것 같았다.
제임스 대통령은 애써 긴장감을 감추며 보좌관들에게 농담을 했다.
“인류연합에 이어 러시아까지 확보하면 나는 지구의 지배자가 되는 건가? 하하, 나름 재미있겠어.”
“…….”
보좌관들은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1년 남짓한 임기라서 조용히 지내겠거니 생각했는데 대형 사고를 쳐버렸다.
대체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지?
백악관의 모든 전화기에 불이 났고 제임스 대통령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의원들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침이 밝았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져들었다.
러시아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국민들부터 군과 정부 할 것 없이 난리를 쳐댔고 각국은 기겁하면서도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이었다.
미국이 유지하를 확보한 게 사실이라면, 굳이 대립각을 세울 필요까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유지하의 자작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민주당을 비롯한 미국 내의 반유지하 진영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들은 유지하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죽여라. 지금 바로 죽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일단 죽이고 생각해라. 재판? 그 좋아하는 인공지능에게 맡겨라. 우리도 인공지능은 있다.
그런 극단적인 의견까지 대두되는 가운데 배성민 비서실장이 수행원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그는 청와대에 몰린 수많은 기자와 관료들 앞에서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기다려 달라는 것뿐입니다.”
그대로 들어가려 하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미국이 대통령을 납치했는데 그냥 보고만 있었습니까?”
“앞으로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인류연합에서도 슬슬 불안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루시아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유지하가 납치되어 있으면 결국 문제가 생길 거라는 관측이 파다했다.
당장 미국에 그 신형 폭탄을 떨어트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미국이 우리 대통령을 납치했는데 대체 뭐하는 거냐? 모조리 죽여라!
―미국을 멸망시켜라!
그러나 대통령이 부재중이었기에 결정을 내릴 사람이 없었다.
인공지능에 접근할 권한을 가진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연합 전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가운데 일부 미국인들이 그걸 조롱하기 바빴다.
―봐라, 독재자한테 모든 권력을 위임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다.
―이제 우리는 형제니까 나눠 써야지. 빨리 메가시티 개방해.
―일단 그 전투순양함부터 받아 볼까? 대체 뭐 하는 물건인지 궁금했는데.
일부 미국인들이 낄낄대며 언급한 그 전투순양함은 현재 서울의 상공에 정박 중이었다.
많은 서울 시민이 저 배는 왜 안 움직이느냐고 탄식하고 있을 때, 화성에서 출발한 평양급 전투순양함이 지구 근처에 도착했다.
신호를 받은 아르마가 눈을 떴다.
그녀가 팔에 가볍게 힘을 주자 케블라 섬유로 만든 밧줄이 투투툭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