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영주가 돌아왔다
아르마는 유지하가 레오볼드라는 귀족으로 살기 위해서 몇 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중 가장 실천하기 쉬운 건 뇌를 빼놓은 것처럼 행동하라는 거였다.
그간 유지하는 적임이 명백한 개인이나 세력에도 경고하고 최소한의 인내심을 갖췄다.
하지만 아스테라 대륙은 그럴 필요가 없는 장소였다.
“왕족이나 고위 귀족, 사제, 기사, 마법사 등을 제외하면 마스터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경고 후 행동하셨지만 거기에서 경고를 빼시면 아주 좋습니다.”
어째 인내심을 갖춰야 하는 대상이 많은 것 같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그 리스트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 테니까.
하여튼 레오볼드는 그녀의 조언을 충실히 이행했다.
감히 귀족에게 입 뚫린 대로 지껄인 후스의 팔을 날려 버린 것이다.
금화 주머니라도 주는 줄 알고 팔을 내밀었던 그는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이, 이게…….”
주변 용병이나 시종인들도 표정이 이상하게 된 건 마찬가지였다.
다짜고짜 용병대장에게 검을 휘둘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절단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후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을 때, 레오볼드의 팔이 다시 움직였다.
츠컥―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그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대장의 피를 뒤집어쓴 용병들의 눈과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무, 무슨…….”
“이 새끼가 대장을 죽였어!”
그제야 머리를 잃은 후스의 몸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시종인들은 물론이고 카슨 행정관조차 놀란 눈으로 레오볼드를 바라봤다.
오랜 용병 생활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이 수습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도, 도련님…….”
다들 주춤하고 있을 때 레오볼드가 피로 물든 검 끝을 까딱였다.
“너희들은 살려주지. 돌아가도 좋다.”
“이……!”
“미친놈…….”
용병들은 분노에 찬 시선을 그에게 던졌다.
대장이 죽었는데 얌전히 물러가면 용병단의 위신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설사 상대가 귀족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야아!”
약속이나 한 듯이 용병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그리로 레오볼드는 그들의 정면으로 걸어가면서 차례차례 검을 휘둘렀다.
캉! 캉! 츠컥―
카슨 행정관은 맹세코 이렇게 싸우는 사람은 처음 봤다.
레오볼드는 너무도 쉽게 상대방의 검을 부러뜨리고 팔과 목을 날려 버렸다.
검의 움직임에는 절도와 품위마저 엿보였고 상대는 어린애라도 되어 버린 것처럼 무력했다.
허공에 몇 번의 검광이 번뜩이자 용병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쓰러졌다.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
다들 눈앞의 참사에 할 말을 잃었다.
고명한 검술만큼이나 놀라운 것은 이 모든 행동에 망설임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는 걸까?
시종들은 두려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레오볼드가 카슨을 보며 말했다.
“내가 없는 사이 쓰레기들이 영지에 몰려왔군, 행정관.”
카슨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가 영지를 떠난 건 오래 전 일인데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던 것이다.
물론 레오볼드는 반다스 남작의 둘째 아들이며 이 영지의 정당한 계승자였다.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어쩌면 방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너무 늦었다. 이 영지는 끝났어.’
하피 발톱단을 박살낸 건 큰 실수였다.
속이야 시원하고 시종들도 잘 죽었다고 침을 퉤 뱉고 있지만 곧 생각이 바뀔 것이다.
용병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후스 대장과 알고 지내는 용병이 한둘이 아니며 그중에는 골리앗을 다수 보유한 용병단도 존재했다.
허약한 반다스 영지의 힘으로 막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카슨은 냉정한 말을 내뱉지 못했다.
영지의 오래된 관료임에 앞서 레오볼드가 철부지였던 시절부터 봐온 정이 남아 있어서였다.
“영지를 떠나신 사이에 성취를 이루신 모양이군요.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그렇게 말하는 카슨의 눈앞에 문서 한 장이 펼쳐졌다.
루아드 왕자의 인장이 찍힌 계승권 확인서였다.
왕궁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필체는 거칠었고 봉인 왁스엔 왕가의 문양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도련님이 아니다. 그러니 영주로 부르도록.”
영지를 정식으로 계승하겠다는 그의 말에 시종들이 웅성댔다.
하지만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다들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좋아, 이 보기 싫은 시체들을 치워 버리도록. 행정관은 나를 따라오도록 하고.”
일행이 그를 따라 어디론가 이동했다.
카슨은 낯선 인물들을 곁눈질하며 재빨리 말했다.
“영주님, 이런 말씀 드리기 민망하고 죄송스럽습니다만…….”
“영지가 엉망이라는 거 말인가? 알고 있다.”
“사실은 그 외에도 여러 문제가…….”
“거액의 빚을 졌고 영지민들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내가 죽인 용병들의 뒷배가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는 것 외에 또 있나?”
행정관은 머쓱하게 입을 다물었다.
오랫동안 영지를 떠나 있었던 것치고는 사정에 꽤 밝지 않은가?
설마 왕궁에서 자세한 설명을 들은 것일까?
그가 고민을 하는 도중에도 레오볼드는 거침없이 어디론가 발걸음을 내딛었다.
목적지는 저택이 아니라 뒤에 있는 공동묘지였다.
레오볼드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이 묻혀 있는 곳.
그는 단출하지만 손이 간 흔적이 보이는 묘지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왔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짧은 묵념이 이어졌고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카슨은 비로소 둘째 도련님이 돌아온 것을 실감했다.
‘그래, 영지 사정이 조금 나쁘면 어떤가.’
영지의 계승권자는 분명히 그였고 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당분간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스런 겨울을 보내야겠지만 봄이 오면 꽃이 피듯 영지의 사정도 풀릴지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카슨은 눈을 떴다가 깜짝 놀랐다.
영주가 묵념을 끝마치고 저택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도련, 영주님, 영주니임!”
그가 다급해져 뒤를 쫓아갔고 시종들이 자기들끼리 수군댔다.
“원래 저런 성격이셨어요?”
“너무 오랜만에 봐서 모르겠는데…….”
한 가지는 확실했다.
주인 없이 비어 있던 영지에 비로소 주인이 왔다는 것.
앞으로는 상당히 시끄러워질 것 같았다.
누군가가 팔을 걷어 올렸다.
“영주님 성격이 보통이 아니신 것 같은데 시체부터 치웁시다들.”
사람들이 수레를 가져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까 영주님 검술 봤어요? 이 지독한 놈들이 꼼짝도 못하고 박살나는데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그렇게 행패를 부리더니 꼴 좋구만.”
“그나저나 영주님은 왜 돌아오셨을까요? 영지가 이… 렇게 힘든데.”
“뭔가 방법이 있으니 돌아왔겠지.”
시종들이 보기엔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저택 앞의 시체와 핏자국이 말끔하게 치워졌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 * *
“…….”
카슨 행정관은 서재의 한쪽에 서서 서류가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로운 영주가 영지의 상황을 살펴보겠다며 모든 서류를 꺼내오라고 한 것이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지만 서재엔 침묵만이 가득했다.
‘영주님이 이렇게 참을성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어릴 적 레오볼드는 그다지 참을성이 없는 아이였다.
연년생 형과 장난감을 두고 자주 다투었고 그 문제로 부모에게 자주 훈계를 듣곤 했다.
바그란의 귀족사회에서 첫째 아이의 지위는 흔들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무로 만들어진 하찮은 장난감이라 하더라도.
‘그건 그렇고 저 하녀와 요정은 대체…….’
둘은 영주와 함께 등장했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런 척박한 영지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가진 하녀에 희귀하기 그지없는 요정의 조합이라.
여러모로 풍파를 일으키기에 딱이었다.
‘영주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만…….’
행정관 되는 입장에선 두려움이 일었다.
다른 영주가 저 빛나는 외모를 탐내서 무리한 요구를 해오면 어떻게 하지?
용병들이 저 요정을 잡으러 오지는 않을까?
아니, 하피 용병단을 모조리 죽인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들의 죽음은 묵인한다 치더라도 광산 입구를 가로막은 골리앗을 그냥 둘 리가 없다…….’
요즘 세상에 골리앗은 전쟁에 필수적이었다.
주 재질인 리빙메탈부터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인 데다 각 관절부에 새겨지는 마법진과 레어메탈을 합하면 엄청난 거금이었다.
무엇보다 골리앗을 만들고 조종하는 사람들은 거의 귀족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작위와 자존심을 골리앗에 담았고 이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인이 되었다.
아무리 낡은 골리앗이라고 해도 절대 그냥 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
엘브랑데 같은 극소수의 부유한 국가를 제외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반드시 회수하러 올 텐데…….’
이 영지가 그들을 막아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히려 큰 화를 입지나 않을지.
카슨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드디어 서류 넘기기가 끝났다.
레오볼드는 마지막 서류를 덮고 고개를 들었다.
“개판이군.”
“영주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행정관을 탓하는 게 아니야. 누구에게 책임을 미루고 싶지도 않고. 내 영지를 내가 돌보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옳은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대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암염광산의 작업을 재개하고 웃돈을 들여 식량을 가져온다 정도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
반다스 영지가 품은 문제는 어떻게 보면 바그란 왕국 전체의 문제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근원인 엘브랑데를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런데 신임 영주는 의외로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영지가 당면한 문제가 하나둘은 아니지만 열심히 풀다 보면 상황이 호전되게 되어 있지. 행정관.”
“예, 영주님.”
“현재 영지 내에서 생선을 잡아 본 사람은 얼마쯤 되지? 어설픈 경험자 말고 그걸로 세금을 내본 사람 말이야.”
“…….”
카슨 행정관은 뜻밖의 질문을 받아 당황스러웠지만 열심히 머리를 짜낸 결과 얼추 답을 할 수 있었다.
“약 100명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평소의 레오라면 숫자를 그따위로 말할 수 없다며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영지가 처한 상황과 행정관의 고심을 이해했다.
“그들을 따로 추려서 배를 수리하고 그물을 다시 만들게 해. 필요한 자재는 대줄 테니까.”
“하오나 영주님…….”
카슨이 이건 안 된다고 말하려 했을 때였다.
날카로운 눈빛이 그의 눈에 틀어박혔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멎을 정도의 눈빛이었다.
“행정관. 한 번만 말하지. 내가 의견을 물을 때가 있을 거야. 조언은 그때 하면 돼.”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흔한 귀족의 자세였다.
카슨 행정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래서야 영지가 정상화되기는 글렀다.
아무리 서류를 뒤집는다 해도 현장에서 직접 겪은 사람만이 조언해 줄 수 있는 뭔가가 있는 법이다.
그걸 무시하는 사람은 절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레오볼드는 신하의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값싼 종이에 뭔가를 써내려갔다.
“해류의 흐름을 보니 곧 청어가 몰려오겠군. 산란철이라 많이 잡히겠어.”
“청어라고 하시면…….”
“겨울에 많이 잡히는 자그마한 등 푸른 생선 말이야. 행정관은 모르나?”
아스테라의 청어는 지구의 동명의 생선과 비슷한 구석이 거의 없지만 회유성 어종이고 엄청난 수가 몰려다닌다는 것만은 비슷했다.
개체수가 어마어마해 산란철이면 바다가 하얗게 물들 정도였다.
맛도 지구의 청어에 비하면 상당히 괜찮은 편인데 다수의 국가가 해안선을 비웠기에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바다에 나갔다 하면 섀도우 엘프들이 노를 저어 달려오는 판국이니 무슨 생선을 잡겠는가?
그리고 겨울이라고 반드시 청어가 온다는 법도 없었다.
카슨은 그런 현실을 잘 알았지만 그저 허리를 숙일 뿐이었다.
레오볼드는 그 외에도 많은 지시를 쏟아냈다.
“용병단에 지급할 돈이 남았지? 어디, 112골드로군. 이걸로는 부상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식량을 비롯한 자재를 들여오도록 해.”
“그리고 암염광산의 골리앗은 내가 치워줄 테니 작업을 재개하도록 하고. 영지와 거래하는 상단은 따로 있나?”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전대 영주께서 사망하신 다음부터는 거래가 끊겼습니다.”
이런 구석에 처박힌 몰락해 가는 영지에 순순히 와줄 상단이 있을 리 없다.
웃돈을 주고 부탁해야 겨우 올까 말까인데 레오볼드는 이상한 얘기를 꺼냈다.
“딱 한 번 권유해 보고 거절하면 완전히 거래를 끊어. 그리고 이 편지를 루아드 왕자 저하께 전달하도록 하고.”
레오볼드는 가문의 인장을 찍은 친서를 카슨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타고 온 뿔새를 써도 되니까 최대한 빨리 전달하는 게 좋을 거야. 영지민들의 생사가 거기에 달렸으니까.”
식량이 공급되지 않으면 영지민이 굶어죽는다는 사실만큼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카슨 행정관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영주로서 합격점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바꿔나가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
단지 그가 정신을 차릴 동안 영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루아드 바그란은 친서를 보고서야 반다스 영지에 새로운 영주가 부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주의 이름이 레오볼드라는 사실도.
“어렸을 적 영지를 나갔던 탕아의 귀환이라… 괜히 이것저것 요청하면 곤란한데.”
요즘 바그란 왕국의 상황은 극히 좋지 않아서 요청한다 해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반다스 남작가엔 다소의 죄책감이 있었기에 약간의 병력을 파견하는 정도로 끝내려 했었는데 이렇게 친서를 보낼 줄이야.
그는 궁내문관에게 고갯짓을 하고는 내용을 확인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친서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상단을 보내 달라는 것과 왕가 소유의 비행선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전자는 이해가 간다.
영지가 엉망이라 최소한의 거래마저 끊긴 상황에 그걸 되살려 보겠다는 거니까.
그게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비행선은 대체 왜…….”
왕가에서도 용도를 찾지 못해 구석에 처박아 놓은 것을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걸까?
운용비가 한두 푼이 아닌데 말이다.
친서에는 그 비용까지 모조리 부담하겠다고 되어 있었다.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이런 걸 요청할 리가 있나.’
루아드 왕자는 금빛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다시금 신임 영주인 레오볼드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다.
영지를 물려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귀족과 달리 그는 용병으로 떠돌았다.
대륙 서부의 전장을 두루 겪었다고 하니 전투 경험은 충분할 것이나 그게 영주로서의 능력을 보장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용병은 거칠게 말한다면 칼밥 먹고 사는 부랑자에 불과했다.
반다스 영지에 죽치고 있는 용병단을 보면 알 수 있듯 과도한 요구는 일상이고 가끔은 고용주를 배신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나 전선이 밀리다 보니 다들 자기 몸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진 탓이다.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고용주 신경 쓸 틈이 어디 있는가?
‘그런 환경에서 지낸 자의 뭘 믿고 비행선 같은 물건을 빌려달란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그가 많은 이익을 약속했다는 점이었다.
비행선을 빌리는 비용은 물론이고 운영비까지 합쳐서 3배의 이익을 보장했는데 무슨 용기인지 모를 일이었다.
‘비행선이 움직이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닐 테고…….’
루아드 왕자는 친서를 접으려 하다가 구석의 문구를 확인했다.
만약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부유대륙에 진출할 것이란 문구였다.
그의 이마에 주름살이 그어졌다.
‘부유대륙? 일개 남작이 왜 거기에 신경을 쓰는 거지?’
반란만 아니면 영주가 뭘 하든 중앙에서 간섭할 바는 아니지만 그게 부유대륙이다 보니 신경이 쓰였다.
그곳은 엘브랑데 제국을 포함한 각국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부유석을 포함해 에테르석과 각종 레어메탈을 합하면 어마어마한 가치가 대륙 북부에서 창출되고 있었다.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매 시간마다 떨어지는 파편에 맞아죽는 병력이 상당했다.
마법으로 어떻게 방어막을 칠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엘브랑데조차 극심한 병력 손실을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군대를 주둔시킨다는 건 이익이 훨씬 크다는 소리였다.
엘브랑데나 자이움에 한해서 말이다.
‘그런 복마전에서 뭔가를 하겠다…….’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기이한 호기심이 루아드 왕자를 빨아들였다.
장담대로라면 성공했을 시 막대한 이득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암염광산의 권리를 저당 잡는 것으로 최소한의 비용은 충당할 수 있겠군.’
소금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자원이다.
반다스 남작령에 암염광산이 있다는 건 창조신 라사가 내려준 유일한 은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반다스 남작의 청을 진지하게 고려하겠소.
그는 친서를 쓰면서도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암염광산은 반다스 남작령의 유일한 자금줄이기 때문이다.
그걸 저당 잡힌다는 건 영지 전체를 넘겨준다는 말과 동일했다.
그런데 얼마 후 친서가 날아왔다.
루아드 왕자는 내용을 확인한 후 이마를 찌푸렸다.
‘진짜 비행선이 필요한 모양이군.’
대체 부유대륙에서 뭘 할 생각이기에 영지 전체를 거는 걸까?
엘브랑데나 자이옴이 모르는 뭔가 있나 해서 수소문을 했지만 대단치 않은 정보뿐이었다.
왕자는 고민 끝에 승낙해 주었다.
그가 조건을 넙죽 받아들이는 바람에 물릴 수가 없어졌다.
이제 왕가 소유의 비행선을 갓 남작위를 계승한 귀족에게 빌려주어야만 한다.
이문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저 멀쩡히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