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01
200화 하라면 해야지
반다스 남작령의 영지민들은 일단의 소란으로 어릴 적 영지를 떠난 둘째 도련님이 영주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통이라면 그 일련의 과정은 영지민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영주가 누구인가에 따라 세금과 각종 부역, 공납 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왠지 영지민들이 내놓는 것만 열거하는 것 같은데 사실이 그렇다.
대륙 서부, 특히 바그란 왕국에서 영지민은 곧 영주의 소유물이었다.
왕도 근처로 가면 만신전 등 여러 신의 교단이 나름의 성세를 구가하고 있으나 시골 영지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원래 돈이 있어야 신앙도 있는 법이다.
하여튼 레오볼드 남작의 영주 계승은 영지민들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우리를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도 먼지밖에 안 나와.
―영주고 뭐고 이것저것 행사한다고 괴롭히지만 말았으면 좋겠구만…….
대부분의 영지민들은 전대 영주 내외가 사망한 후 몇 달 동안 궁핍한 삶을 이어왔다.
그나마 형편은 나은 편인 카슨 행정관이 시큼한 검은 빵에 멀건 스프로 연명하고 있으니 그 밑의 상황이야 오죽할까.
내놓을 것도 없으니 밑질 것도 없다는 게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감히 영주에게 반항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다들 암염광산을 가로막았던 골리앗에 영주가 탑승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바위만큼이나 거대한 골렘이 성큼성큼 움직이는 것을 본 영지민들이 수군댔다.
“마법진이 있어서 전속 기사가 아니면 탑승도 못한다고 하는데 이상하네…….”
“아니면 우리 영주님이 그런 것을 다 무시할 정도로 강한 거 아니야?”
사실 이는 루시아가 마법진 파훼에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평민들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암염광산 입구를 가로막던 골리앗은 치워졌고 이제 작업만 하면 되었다.
식량이 원활히 공급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레오볼드 남작은 최소한의 먹을 것을 달라는 작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며칠만 버티면 왕도에서 상단이 온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테니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하도록.”
다른 누구도 아닌 영주의 명이라서 따라야 하겠지만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암염광산에서 일하는 건 그야말로 중노동이었기 때문.
광산 안의 공기에는 어김없이 소금기가 섞여 있었고 작업을 마치고 코를 풀면 먼지가 섞인 소금이 잔뜩 묻어나왔다.
또한 암염이 깊은 곳에 있어 파고 내려가는 것도 상당한 일거리였다.
작업자들은 영주가 신선한 물과 식량 공급을 약속했음에도 쉽사리 믿지 못했다.
대체 그게 어디서 나느냐는 것이다.
“우리 영지에 오는 상단이 있어야 말이지.”
“왕궁에 연락을 한 모양이던데 그 짠돌이 왕자가 허락해 줄까?”
그런데 며칠 후 거짓말처럼 상단이 왔다.
그것도 꽤 대규모였다.
수십 대의 수레와 상인들이 식량과 장작 등 보급품을 풀어놓았고 카슨 행정관은 멍하니 그걸 보고 있다가 레오볼드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뭐하나? 대금 안 치르고. 저대로 보낼 생각인가?”
“아, 그렇죠. 옙.”
카슨 행정관은 수레 옆에 찍힌 왕가의 문장을 슬쩍 지나쳤다.
대체 무슨 수로 그 왕자를 구워삶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영주가 신경을 쓴 덕분에 당장 영지민들이 굶지 않게 되었다.
은근히 그를 경원시하던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주님 얼굴은 좀 험상궂어도 사실은 좋은 분일지도 모르겠구만…….”
“저 깡패놈만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데…….”
식량 분배는 공정하게 이루어졌지만 그게 모두의 입속까지 정확하게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거주지로 돌아가자마자 식량을 모아 가로챈 불한당이 있었던 것이다.
메이븐, 앨빈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남자로 카슨 행정관이 마을의 모든 일을 떠맡을 수 없어 권한을 위임한 바 있었다.
적당히 가로채고 말 안 나오게 처신했다면 좋았을 것을 거의 절반이나 빼앗아가는 바람에 영지민들 사이에서 울분이 쏟아졌다.
그러나 감히 영주에게 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용병들처럼 목이 날아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아무리 영주가 신경을 써준다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귀족의 신분이었다.
평민들이 직접 호소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행정관님에게 토로할 수도 없고…….”
“직접 임명하셨는데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면 어떻게 생각하시겠는가?”
다들 부정을 고발함으로써 닥쳐올지도 모를 불이익을 두려워했다.
언제나 그렇듯 권력은 평민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쉬쉬하며 지나가는가 싶었는데 레오볼드 남작이 직접 카슨 행정관을 대동하고 마을에 들어왔다.
다들 영주 왔다고 고개를 조아리는데 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여기에 메이븐, 앨빈이라는 자가 있나?”
“…….”
둘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상을 팍 쓰고 굽실거리며 걸어 나왔다.
마을에서야 제법 힘을 쓴다고 하지만 영주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였다.
그것이 허울뿐인 영주라 하더라도 말이다.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너희들이 사람들의 식량을 가로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게 사실인가?”
아니나 다를까 둘은 손을 저으며 발뺌부터 해댔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절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영주님께서 나눠주신 식량을 중간에서 가로챈다니 큰일 날 일이지요.”
재차 물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레오볼드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너희의 집을 수색하겠다. 만약 필요 이상의 식량이 나올 경우, 그 죄를 물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죄를 덜고 싶다면 지금 고하라.”
“…….”
둘은 예상외의 사태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카슨 행정관은 자신이 임명한 관리자들이 이런 꼴이 되자 면목이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분위기가 삭막해졌고 잠시 후 더미 둘이 흙투성이인 식량주머니를 가져왔다.
그것을 확인한 메이븐과 앨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영지민들의 표정이 결의로 가득 찼다.
“영주님! 바로 그 주머닙니다! 제 식량을 빼앗은 겁니다!”
“애들 먹을 것까지 가져가는 바람에 며칠을 굶었는지… 흑흑…….”
여기저기서 폭로가 날아들었고 둘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영주님!”
“모함입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레오볼드는 이미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원래라면 정당한 재판을 통해 너희들의 죄를 물어야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귀찮은 절차를 싫어한다.”
“나는 레오볼드 반다스. 이 영지의 정당한 계승권자이다. 따라서 너희들의 목숨도 나에게 달렸으니 이제 거둬들이겠다.”
“영주님!”
급해진 둘이 뭐라 외치며 일어서려 했을 때였다.
레오볼드의 검이 호선을 그리더니 순식간에 둘의 머리를 몸과 분리시켰다.
바닥에 둘의 머리가 굴러다니자 영지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 죽었어…….”
“단숨에 머리를 날려 버리다니…….”
영주의 성격이 급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얼굴들이었다.
레오볼드는 검을 집어넣고 말했다.
“들어라. 그대들이 여태껏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내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내가 모든 것을 판단한다. 내가 죄라면, 그것은 죄다. 내가 하라면, 그대들은 해야 한다.”
꿀꺽.
다들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륙 서부에서는 흔한 발언이지만 방금 두 사람의 머리를 날려 버린 영주의 입에서 나오다 보니 엄청난 무게감이 있었다.
영지민들은 그제야 레오볼드 반다스 남작이 자신들의 영주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함부로 거역했다간 머리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편 레오볼드는 이 삭막한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성을 느꼈다.
원래 채찍으로 후려쳤으면 빵이라도 하나 쥐어주어야 하는 법이다.
그는 카슨 행정관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와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방금 건으로 행정관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거다.”
카슨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송구스럽습니다, 영주님.”
“영지가 피폐하니 쓸 만한 사람이라곤 죄다 도망가 버리고 영지민들 통제하기가 힘들었겠지.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다. 행정관은 숫자만 파악하도록. 판단은 내가 할 테니.”
“예… 명심하겠습니다.”
“영지민들에겐 식량을 따로 나누어주고 다독이도록.”
영주가 칼을 들었으면 행정관은 쓰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카슨은 그의 말을 들으며 당혹감을 느꼈다.
사람 목을 그렇게 날리는 걸 보면 성격이 폭급한 것은 확실한데 은근히 자상한 면이 보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 그의 진면목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레오볼드 남작은 이 영지의 절대자이며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 * *
“암염광산의 추정매장량은 약 2억 톤입니다만 대부분의 매장량이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캐기가 어려울 겁니다.”
“당분간만 캘 수 있으면 돼. 어차피 몇 년 뒤에는 다른 방법으로 넘어갈 테니까.”
스마트팜에서 소금을 직접 합성하는 방식이 가장 편하고 빠르다.
무기물은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으니까.
아르마가 첨언했다.
“유의점이 있다면 암염에 특정 영양소, 아이오딘이 부족하다는 거겠네요. 이건 따로 첨가를 해줘야 합니다.”
해산물을 많이 먹는 나라는 자연적으로 아이오딘을 섭취하게 되지만 바그란 왕국엔 그런 문화가 없었다.
기껏해야 생선이나 조개를 섭취하는 게 전부인데 그것조차 해적 때문에 어려웠다.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염광산 앞에 소금 정제소가 있을 거야. 밤에 조금씩 첨가를 해줘.”
“네.”
“그리고 스케줄이 늦춰지고 있다고?”
“워낙 열악한 환경이라… 청어잡이 준비도 그렇게 잘 진행되고 있진 않습니다. 그물 손질이 늦춰지고 있고요.”
의욕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무서운 영주가 하라니 일단 하는 척을 하는데 대체 무슨 이득이 되는지 모르니 뭉그적거릴 수밖에.
암염광산의 경우는 일이 워낙 힘들다 보니 참작의 여지는 있었다.
“무엇보다 청어가 돌아올지 의심스러운 시선이 많아요. 아무래도 최근 몇 년 동안은 구경도 못한지라…….”
“청어의 회유 주기를 보면 이번 겨울은 확실하지?”
“그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아르마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어쨌든 레오는 제대로 된 인센티브 제도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리 평민이라도 채찍질만 해대면 의욕이 날 리가 없다.
“임금을 주어야겠는데 어느 정도가 좋을까? 주변 영지는 어때?”
“올해 작황이 극히 좋지 않아 80%의 수입을 세금으로 바쳤다고 합니다.”
“완전히 날강도 아니야?”
잉여 곡물 10%를 가지고 한 해를 날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70%부터 시작하기로 하지.”
애초에 영지민들이 내는 세금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주변 영지를 적당히 자극하고 이주민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할 뿐.
하여튼 아르마의 정보에 의하면 궁핍한 농민들은 따로 텃밭을 만들어 이런저런 작물을 재배한다고 한다.
“주로 고얌이라는 작물을 기르는데 맛은 없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다고 하네요.”
잘 먹는 게 아니라 단지 버티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농민들의 삶이었다.
“그거 대신 개량한 감자와 고구마를 투입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
“알겠습니다.”
22세기 인류가 유전자를 개량한 감자와 고구마는 엄청난 효율성을 가진다.
다만 그게 영지민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원래 인간이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 거부감을 가지기 마련이니까.
“그건 따로 방법이 있지.”
레오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여기에 온 목적은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왕 왔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를테면 세계 정복 같은 거 말이다.
“선지자가 우리를 여기로 초대한 게 이런 것을 고쳐달라고 의뢰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저야 잘 모르겠지만 마스터께서 지시하신다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아르마의 태도는 변함이 없으니 그가 결정하면 끝이다.
“지구에서는 인류연합을 세우고 플레이그를 막는 게 목표였지. 여기에서는 일단 세계정복을 기치로 잡아보자고. 정복이라기보다는 통일에 가깝겠지만.”
“대부분의 인구가 전제군주정을 경험했으므로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엘프라는 변수가 있겠네요.”
“그쪽의 신은 반응탄을 맞아도 괜찮을까?”
“정확한 건 쏴봐야 알겠지만 드래곤 전쟁 당시의 기록을 보면 버틸 것 같진 않아요.”
유일하게 걱정이 되는 것은 정신조작 같은 마법이었다.
이 분야는 아르마는 물론이고 세틀러호에도 대비책이 없었다.
하지만 영지를 키우고 마법사를 섭외해 연구를 해간다면 충분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었다.
“당장 정복… 아니, 통일을 시작하자는 건 아니니까 세부적인 로드맵을 세워두는 정도로만 하자고.”
“네.”
“일단은 확실한 임금체계를 만들어서 행정관에게 전달해. 근로시간도 제한하고 주말은 휴식도 주고.”
“신라그룹에서 했던 것처럼 스케줄을 짤까요?”
“여기 시간이 그렇게 타이트하지 않아서 10분 단위의 스케줄을 적용하는 건 어려울 거야.”
영지에 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영지민이 시계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동이 터오면 밭에 나가고 해가 지면 귀가하는 식의 삶을 유지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
모두가 같은 시간을 쓰는 것이 빠른 발전의 지름길이다.
“그러면 시계부터 복제해서 각 마을에 나눠주겠습니다.”
“루시아는 어디 갔어? 요즘에 안 보이던데.”
“자이움 제국 국경선에서 뭘 찾고 있네요. 고대 전쟁에서 쓰인 골리앗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뭔지 확인은 못했습니다.”
“그래? 고대의 골리앗이라… 왠지 좋게 들리는데.”
“마스터를 감당할 수 있는 골리앗이었으면 좋겠네요.”
루시아에 의하면 레오를 감당할 수 있는 골리앗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에테르 감응력을 최대한으로 낮추고 에테르 회로에 봉인마법진을 설치했음에도 암염광산의 골리앗에 과부하가 걸렸을 정도였다.
그녀는 레오가 모든 봉인을 해제한다면 자이움의 아크 나이트나 엘브랑데의 엘븐 나이트를 넘어설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실제 레오의 능력은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지만 아무래도 어린 개체이다 보니 측정에 한계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녀의 노력은 충분히 칭찬할 만했다.
“나중에 돌아오면 따로 일을 시켜야겠어.”
“워커 말씀이신가요?”
“이 대륙엔 골렘이란 게 있다며? 마법사들이 잘 써먹었다고 하던데.”
“최근에는 골리앗의 부가가치가 더 높아서 자재가 몽땅 그쪽으로 투입되는 바람에 골렘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네요. 내릴 수 있는 명령도 제한적이고요.”
“골리앗의 원형이 골렘이라고 했었지…….”
레오의 기준에서 골렘과 워커는 비슷한 것이다.
작동 원리야 다르겠지만 특정한 작업을 스스로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같지 않은가?
효율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아스테라에선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메가시티를 세울 것도 아니고.
“리빙메탈로 다 깔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골렘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루시아가 말하길, 자신의 군단을 골렘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한지는 몰랐는데.”
“마스터께서 잘 돌봐주신 덕분에 힘이 커졌다고… 조만간 골렘을 만들 거라고 하네요.”
“괜찮군.”
원래 마왕이 되어 아스테라를 침략했을 플레이그 퀸은 그의 충실한 부하가 되었다.
그녀의 힘이 커짐에 따라 여러 방면, 특히 에테르 분야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이대로 잘 지내면 좋으련만, 원본이 플레이그 퀸이라 어디로 튈지 모른다.
“최소한의 저지책은 있어야겠는데…….”
레오는 그녀에게 폭탄 목걸이라도 선물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 오히려 신뢰를 깰 수도 있었다.
자기 몸에 폭탄 목걸이가 있다는 걸 알면 배신감에 치를 떨지도 모른다.
“일단은 자이움에서 돌아오면 감시를 늦추지 않는다는 정도로 타협하지.”
“사실은 지금도 감시하고 있답니다.”
참 철두철미한 인공지능이야.
그날 이후 반다스 영지의 각 마을 목재탑에 시계가 걸렸다.
영지민들은 저런 비싼 물건이 걸렸다며 좋아했지만 종이 울릴 때마다 지시된 사항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아연실색했다.
“같이 일어나고, 같이 밥을 먹으라고? 귀가도 같은 시간에 하고?”
“너무 불편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불평이 튀어나왔지만 감히 영주에게 항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계와 종이 달린 후부터 영지민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어나고, 일하고, 먹고, 자야 했다.
자연스레 불만이 쌓였지만 의외의 장점도 있다는 게 드러났다.
식사의 경우 한 번만 차리면 되었기에 아낙들의 수고가 많이 줄었다.
또한 시간을 정확하게 쓸 수 있게 됨에 따라 스케줄을 잡기가 편해졌다.
영지민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차츰 시간 나누어 쓰기에 익숙해져 갔다.
하라면 해야 하는 게 그들의 운명이었다.
* * *
반다스 영지는 대륙 서쪽의 바다와 연해 있고, 자연스레 어족자원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걸 잡아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관련 기술도 형편없었고 무엇보다 섀도우 엘프 해적이 비정기적으로 출몰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해적에 노이로제가 있으면 먼 바다에 뭔가 나타나기만 해도 대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그물을 손질하고 배를 수리할 것을 지시받은 영지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영주의 지시이니 하긴 하겠는데 해적이 쳐들어오지 않을까 무서웠던 것이다.
“사람들을 죽이고 코와 귀를 베어가고 약탈하고… 우드 엘프보다 더한 놈들입니다요.”
“노예로 쓸 만한 사람들을 잡아가기까지 하니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글쎄, 레오가 보기에 평범한 우드 엘프가 하는 짓과 별 차이가 없었다.
이들은 엘브랑데와 직접적으로 부딪칠 일이 없었기에 그 악명을 모르는 것뿐이다.
바그란 왕가나 자이움 등은 아마 뼈저리게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선역이란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은 섀도우 엘프에 대한 악명에 더불어 청어가 돌아온다는 것도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청어 그림자도 못 봤는데 과연 돌아올까?”
“온다고 하더라도 그리 대단치 않은 양일 거다. 이렇게 100명이 준비할 정도는 아니다.”
거의 100명이 꽤 오래 배를 수리하고 그물을 손질했기에 청어가 오지 않으면 상당한 타격이었다.
시간뿐만 아니라 거기에 들어간 자재며 인력, 식량 등을 따지면 반다스 영지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초조하게 청어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해안가 가까이에 세워 놓은 탑에 올라가 있던 눈 좋은 감시꾼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어이, 어어이! 왔다! 왔다고!”
“뭐가 왔다는 거야아!”
“바다 너머에 뭐가 보이나?”
사람들이 물었고 그는 목청을 돋우어 크게 소리쳤다.
“바다가 온통 새하얗다! 청어다! 청어가 돌아왔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의 말대로 바다가 새하얗게 물든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얀 것은 청어가 산란기를 맞이하여 내뿜는 알과 정소였던 것이다.
어구를 들고 있던 사람들이 환호하며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청어가 돌아왔다!”
“영주님께 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