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123
* * *
랜덤 상자 안에 고이 누워있는 스킬 룬석을 확인한 이성우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상자를 오픈할 때 광채가 워낙 화려해, 스킬 트리 최상위 등급의 고급 스킬일 줄 알았건만.
“······[웜홀 생성]이라고?”
막대한 중력으로 차원을 왜곡시켜, 지정해둔 공간과 현재 위치를 직통으로 잇는 통로를 만들어내는 스킬.
물론, 이건 지옥을 정벌해야 하는 지금으로선 필수불가결한 스킬이었다.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지옥과 지구를 쉽사리 오갈 수 없으니까.
하나, 문제는······.
“젠장, 이거 이미 있는 거잖아.”
이미 진즉에 확보해서 가지고 있는 스킬이라는 것.
“하아, 차라리 하위 스킬이 나오지. 중복이면 쓸데도 없잖아? 설마 스킬 레벨이라도 오르려나?”
그런데 공격 스킬도 아니고, 고작 이동용 스킬이다.
레벨업이나 강화가 된다고 해 봐야 그 효용이 드라마틱하게 늘어날까?
이성우는 회의적이었다.
“후우······. 실망이네.”
아무래도, 이건 사용하지 않고 관리국장 정찬석이나 길드 병력을 지휘할 정소현에게 주는 편이 낫겠다.
그리 생각하며 룬석으로 손을 뻗었을 때였다.
쩌엉―!
돌연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룬석에서 다시 한번 광채가 일었다.
『[스킬 룬석(웜홀 생성)]이 당신의 특정 칭호와 반응하여 진화합니다!』
뭐······? 룬석이 진화하는 경우도 있던가?
아니, 금시초문이다.
그렇다면 이건······.
『반응 칭호 : [지옥의 영주]』
『진화 결과 : [권속 소환]』
지옥을 정복하는 ‘히든 엔딩’ 분기로 들어선 결과인 모양.
‘권속 소환이라······ 이게 웜홀 생성보다 나을 게 있나?’
이성우는 내심 기대를 갖고 스킬 정보를 자세히 열람했다.
『아이템 정보』
이름 : 스킬 룬석(권속 소환)
등급 : 전설
효과 : 사용 시, [권속 소환] 스킬을 즉시 습득합니다. 사용 후 룬석은 파괴됩니다.
―권속 소환 : 차원을 도약해 권속을 현 위치로 불러오거나, 권속의 위치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소환 가능한 권속의 수는 중력 제어 한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현재 4,308)
“잠깐만, 이건······?”
지옥의 영주는 고유한 주종 관계, ‘권속’을 형성하고 다양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하나 풀카넬리가 전수해준 기억을 살펴봐도, 권속들을 단숨에 불러내거나 하는 능력을 가진 고위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긴 그런 힘을 가진 놈이 있었다면, 이미 진즉에 적잖은 영지를 집어삼켰겠지.’
군대를 자유롭게 소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메리트.
[웜홀 생성]과 기본적인 기능 자체는 다르지 않다.하나 [웜홀 생성]은 이성우가 ‘방문해보지 않은 곳’으로는 열 수 없다는 제약이 있다.
‘내가 해당 지점의 좌표를 각인해둬야 하니 말이지.’
그런데 좌표 각인이 필요 없는 이거라면······ 이성우와 별도로 떨어져 전장에 나간 병력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
곧바로 불러들이거나 이성우가 그리로 바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기억해둔 좌표가 아니라 권속을 기준으로 공간을 극복한다.’
이성우의 시선이 회랑 벽면을 메운 스킬 트리로 옮겨갔다.
자신의 위치로 대규모의 권속을 일순간에 불러올 수 있는 능력.
이건 급습이나 갑작스러운 반격에 제격일 터.
“마침 여기에 딱 어울리는 스킬이 있었지.”
이성우는 스킬 트리를 훑다가, 한 핵심 스킬 노드를 찾아내고······.
촤르르륵!
손을 휘저어 그 노드까지 향하는 경로에 중력석 파편들을 일제히 박아넣었다.
우웅―
비로소 활성화된 핵심 스킬 노드.
『핵심 스킬 노드 정보』
이름 : 대규모 은폐장
계열 : 왜곡
효과 : 강력한 중력으로 상을 왜곡시켜, 아군 및 우군의 모습을 투명하게 만듭니다.
이성우의 단독 진입, 대규모의 [권속 소환].
[대규모 은폐장]에 의해 투명화된 아군의 활약까지.머릿속에서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전장의 흐름이 막힘없이 전개되었다.
“그래도 상대가 지옥의 악마들이니······ 은폐장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지. 방어 스킬도 하나 확보하자.”
촤르르륵!
콱!
『핵심 스킬 노드 정보』
이름 : 광범위 배리어
계열 : 왜곡
효고 : 넓은 반경에 투사체를 ‘정지’시키는 방어장을 펼칩니다.
이 정도면 앞으로 대규모 인원을 전략적으로 운용하기 충분할 것이다.
이성우는 남은 [중력석 파편]들도 비어있는 성장 노드들에 전부 박아넣었다.
‘좋아, 이걸로 255%의 제어 한도를 추가로 확보했다. 여기에 드래곤하트의 2배 증폭이 적용되면······.’
『총 중력 제어 한도 : 4,818%』
‘곧 5,000%가 코앞이군.’
그 숫자 앞에, 이성우는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50레벨처럼, 일종의 반환점처럼 느껴지는 숫자이기 때문일까?
맨손을 쥐었다폈다 해보던 이성우는 돌연 피식하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남은 신격의 조각 두 개를 모아, 승천에 성공하면······. 5,000%가 아니라 10,000%도 문제가 없을 텐데. 뭘 이런 걸로 가슴 뛰고 그래?”
애써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이성우가 [별의 회랑]을 빠져나갔다.
이젠, ‘승천’을 미끼로 자신을 불러낸 달라이 라마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 * *
대한민국, 종로구의 한 호텔 스위트룸.
갈색과 금색의 법복을 두른 젊은 무승이 끓어오르는 혈기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린뽀체(지도자), 이 방에 틀어박힌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났습니다. 이런 홀대가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정작 달라이 라마, 도르제 갸초는 빙긋이 웃으며 염불이 들려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허허, 도심 한가운데의 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방이 어디 흔한가? 이런 곳을 내주고 마음껏 머물게 해주었는데, 어찌 홀대라 하는가. 뗀진.”
달라이 라마의 경호실장, 무승 뗀진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은밀하게 방문하셨다고는 하나, 린뽀체께선 엄연히 국가원수급의 국빈이십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고작 플레이어 하나 불러오는 게 이리 오래 걸릴 일이란 말입니까?”
한밤중에 돌연 ‘계시’를 받고 대한민국 정부에 연통해 방한을 추진한 달라이 라마.
그가 타국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이 호텔에 도착한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달라이 라마의 요청은 단 하나.
이성우 플레이어를 만나게 해달라는 것.
허나 한국 관리국에서는 이성우 플레이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며 행방을 함구.
이성우와 연락이 닿으면 만남을 추진하겠다는 말로만 일관해왔다.
뗀진의 입장에서 달라이 라마는 경호 대상이기 이전에, 티베트와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다.
정치적, 정신적 기둥이 일개 플레이어에게 목을 매는 모양새로 푸대접받는 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달라이 라마도 그런 뗀진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좋은 말로 그의 가슴에 붙은 업화를 달랬다.
“뗀진이여, 그대의 혈기가 그대의 마음을 흔들도록 버려두지 말게. 세존께선 그 또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라 이르지 않으셨나?”
“하지만 린뽀체! 티베트의 독립을 생각하신다면, 의전도―”
그래도 뗸진이 매달리자, 달라이 라마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나는 여기 대접받으려는 마음으로 오지 않았네. 어찌 내가 찾지 아니하는 바를 그대가 구하며 고통받는가? 분노는 화염과 같아서 그대만을 불사르지 않을 것이야. 그것을 왜 모르는가?”
꾸짖음에 가까운 내용이었으되 어조에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는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의 눈이 티베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욱 넓게 트이기를 바랐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뗀진이 합장한 채로 허릴 숙였다.
“······자중하겠습니다.”
똑― 똑― 또로록―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맑은 목탁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이성우······ 그가 이 나라에 이룩한 업적을 보게.”
“······물론, 그가 해낸 일이 많기는 하지요. 그걸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뗀진의 대꾸에 달라이 라마가 창밖 아래를 가리켰다.
“아니, 이리 와서 보게.”
뗀진이 창가로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평소와 다름없이 한가로운 한낮의 사찰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높은 빌딩 숲 가운데에 절이 자리해 있다는 건 독특하고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으나.
그마저도 이 방 안에 사흘째 틀어박혀 있자니 이젠 별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 아래를 오가는 이들의 표정을 보란 말이네.”
뗀진의 눈이 불자, 관광객, 산책자들의 얼굴에 머물렀다.
“거기에 깃든 평온이 보이지 않는 겐가? 우리의 사찰이나 힌두 사원을 찾는 인도인들의 얼굴에선 사라져버린 지 오래된 가치가?”
달라이 라마의 머릿속에 그날 밤 계시에서 보았던 지옥의 광경이 선명히 떠올랐다.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
타오르는 화염과 무너지는 성채.
그 지옥도의 한복판에 그 남자, 이성우가 있었다.
이곳의 평온은 그 남자가 처절한 아귀다툼에서 비롯된 결과물인 셈이다.
‘허나 그는 쓰러진다.’
‘신격’을 완성하지 못해,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고 스러져버리는 모습.
[미래시]가 보여준 광경이었다.동시에 달라이 라마는 깨달았다.
자신이 도와야 그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이성우를 도울 방법은, 포탈라궁에 잠들어 있는 ‘신격의 조각’을 건네는 것.
달라이 라마는 그걸 넘기기 전에 이성우를 직접 보고 어떤 인간인지를 가늠해 보고 싶었다.
정말 스스로 이뤄낸 업적 그대로의 인물이 맞는지 말이다.
“그에게 힘을 보태줘야겠지. 오랫동안 지켜온 신물이라 하더라도, 아낌없이.”
그가 기대를 충족하는 인물이라면 말이다.
한편, ‘신물’이란 소리에 뗀진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말 그 귀중한 것을 거저 넘기실 셈이십니까?’
티베트를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벌어져선 안 된다.
아니, 애당초 이성우는 신물을 감당할 그릇이 되지 않을 것이다.
뗀진은 그리 믿고 싶었다.
그때,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관리국에서 나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뗀진이 문을 열자, 한국 관리국의 요원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다.
“뭡니까?”
뗀진이 날 선 목소리로 묻자, 앞장선 요원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성우 플레이어가 돌아왔습니다. 바로 만나 뵐 수 있답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안 그래도 굳어 있던 뗀진의 표정이 한결 험악하게 구겨졌다.
겨우 진화한 분노의 불길이 다시 일어난 것이다.
“조용한 장소를 마련해뒀습니다. 이성우 플레이어도 곧 도착할 겁니다.”
“여태 어디서 뭘 하다가 기별도 없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당장 나오라는 겁니까? 달라이 라마가 무슨 사설 길드 마스터라도 되는 양 구는군요.”
날 선 반응에 관리국 요원들의 분위기도 경색되려는 찰나.
턱―
달라이 라마가 뗀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방 안에만 있기도 지겹던 참인데, 잘 됐군. 안내하시게.”
“린뽀체······.”
“이 늙은이를 위해 그리 열 낼 필요 없네. 가세. 자네가 날 지켜줘야 하지 않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룸을 나서는 달라이 라마.
덕분에 좌중에 깔리려던 팽팽한 분위기가 일거에 사라졌으나, 뗀진은 그 ‘부드러운’ 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했다.
‘린뽀체, 언제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일관해선 우리 민족이 추구해온 자주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번 일이 오히려 기회가 될 거라 여겼다.
티베트의 무승들 가운데 가장 강한 플레이어로서 이성우를 제치고 달라이 라마의 인정을 받을 기회.
홀로 그런 포부를 다지는 사이, 관리국 요원들과 티베트 사절단이 컨퍼런스 홀의 문 앞에 이르렀다.
“여깁니다. 최소한의 인원만―”
뗀진이 안내를 맡은 요원을 제치고 나섰다.
“달라이 라마의 호위로서 내부를 좀 살펴야겠습니다.”
벌컥!
뗀진과 그를 따르는 무승들이 관리국의 제지를 뚫고 안으로 들어섰다.
“······.”
홀로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한 남자.
뗸진과 무승들은 반원형으로 서서 그를 둘러쌌다.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상황, 관리국 요원들도 좌시하지만은 않았다.
우르르!
빠르게 움직여 이성우를 지키듯이 벽을 치고 무승들과 대치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일방적으로 기다려라, 와라, 가라. 아무리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해도, 이런 결례는 못 참습니다.”
“거기엔 사정이―”
“그쪽은 입 다무시지요. 저 사람과 직접 이야기하겠― ”
관리국 선임 요원의 말을 끊으며 이성우를 가리키려던 뗀진은, 이성우의 눈빛을 마주하고 숨을 멈췄다.
‘무슨 기세가······.’
저벅―
그리고 그가 걸음을 떼는 순간, 뗀진의 모골이 송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