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122
* * *
지옥, 누렇게 마른 풀잎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황량한 사바나 지대.
지옥에서 유일한 마수 군단을 이끄는 악마 대공, 마르바스의 대전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령으로 보낸 키메라가 죽었다고? 외면의 대공이 저지른 짓이냐?”
소식을 가져온 조사관을, 마르바스의 부관이 다그쳤다.
대답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콰직!
나지막이 으르렁거리는 마르바스의 손아귀에서 의자 손잡이가 터져나갔다.
“크르르······ 외면의 대공. 그자가?”
마수 군단의 주인 마르바스. 그는 지옥의 네 ‘대공’들 가운데 하나이자, 악마왕의 치세를 옹호하는 세력의 수장.
새로이 72위의 빈자리를 꿰차고 ‘밤의 마수’까지 잠재운 타르타로스의 영주, 나락의 백작.
그에게 보낸 전령이 감감무소식이어서 조사관을 파견했더니······ 전령이 싸늘한 사체로 돌아왔다.
수하 하나를 잃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
전사(戰死)는 병가지상사.
그보다는 나락의 백작 영입이 물 건너갔다는 게 문제였다.
마르바스는 필시 악마왕에게 은밀하게 반기를 든, 비페르녹사의 수작일 거라 생각했다.
툭―
그때, 조사관이 현장에서 거둬온 키메라의 사체를 내보였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이건 외면의 대공의 흔적이 아니라 사료됩니다.”
“음······. 살펴보겠습니다.”
부관이 마르바스의 분노를 가라앉히려 애쓰며, 사체를 살폈다.
아주 예리한 칼로 단숨에 베어낸 듯, 매끄러운 단면.
이건 부관 자신이 전력을 다해 발톱을 휘두른대도 재현하기 힘들 정도로 깔끔한 흔적이었다.
아니, 솔직히 주인인 마르바스가 직접 손을 쓴다고 해도 가능할까?
차마 그리 말할 수는 없어 말을 아끼고 있는데, 마르바스의 미간이 깊이 패였다.
“······외면의 대공이 아니다. 그 잔재주꾼이 이런 흔적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이건 백작의 솜씨군.”
조사관이 고개를 깊숙이 조아렸다.
“······말씀대로입니다. 몽환 노래 숲이 이미 백작의 손아귀에 넘어간 터라 오래 살펴보지는 못하였으나, 그곳에서 외면의 대공도 죽음을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흐음.”
마르바스가 풍성한 갈기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72위회에서부터 백작······ 타르타로스의 영주는 남다른 배포로 눈길을 끌었었다.
아직 위좌의 인정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약한 고위 악마들에게 협박을 서슴지 않았고.
실제로 ‘목 없는 기사’ 콥플로스를 가지고 놀 듯이 제압했다.
“크르르······ 그렇다곤 하나, 대공 급마저 꺾을 정도라니.”
아무래도 나락백의 실력을 재평가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마르바스의 뇌리에 한 가지 의문이 스쳤다.
“분명 외면의 대공 쪽에서도 백작에게 영입 제안을 건넸을 터다. 그런데 그쪽에 칼을 들이댔다······?”
그동안 은연중에 팬더모니움의 옥좌를 탐내 온 서열 2위 ‘파괴의 대공’ 아스모데우스.
근래 위좌가 10개 넘게 비어버리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던 저울이 조금씩 저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시기에 악마왕마저 눈여겨 봐뒀을 정도의 강자가 새로 위좌에 편입되었으니······ 당연히 구체제파와 신체제파 모두 백작 섭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외면의 대공 쪽에서 먼저 움직였다 해서 전령을 급파한 것인데······.
“내 전령도 죽이고, 외면의 대공도 죽였다. 대체 무슨 의도인가.”
마르바스는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으나,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악마왕에게 붙든가, 아스모데우스에게 붙든가.
선택지는 둘 중 하나 아닌가?
스스로 패자(霸者)로 일어나, 지옥의 패권을 두고 다투겠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백작.”
부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신감이 아니겠습니까?”
“자신감?”
“예, 외면의 대공을 압살할 정도면 본인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요.”
마르바스의 뇌리에 72위회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확실히, 그때 보았던 백작의 모습은 자신만만 그 자체였다.
“저쪽에선 대공이 직접 움직였는데, 고작 전령 따위를 보내 자존심이 상했다는 뜻을 표현한 게 아니겠습니까? 백작의 힘이라면, 이 전령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없애버리는 게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일부러 반은 남겨뒀다는 건, 전하고 싶은 뜻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가.”
백작의 중요성에 비해, 이쪽의 제안을 들고 간 전령의 격이 과히 처지긴 했다.
그렇다곤 해도 감히 전령을 죽이다니.
건방진 놈이다.
영입하더라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어 문제를 일으킬 게 빤히 보였다.
그리 생각하니, 백작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꺼졌다.
“일단은 내버려 둬라. 파괴의 대공 쪽에 붙지 않았으면 그걸로 족하다.”
일개 백작 따위, 힘 좀 쓴다 해도 방해가 되면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줄곧 지옥의 세 번째 가는 실력자였던 마르바스에겐, 그걸 언제든 실현시킬 힘과 권세가 있었다.
그 말을 끝으로, 마르바스가 손을 내저었다.
모두 물러나라는 뜻. 그 명에 예외는 없었다.
정작 불안한 건, 부관과 조사관으로 다녀온 수하였다.
“부관. 그자가 이쪽에 신호를 보냈는데, 무시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럼······ 백작이 그쪽에 붙지 않도록 적당히 달래두지.”
“제가 약탈후의 영지를 지나다 들은 건데, 백작이 한동안 오리할콘을 주렁주렁 가지고 다니는 걸 본 자가 많답니다.”
크르륵, 부관이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별난 취향이군. 주제에 금속에 환장하는 필멸자들처럼 말이야. 영지 내에 있는 오리할콘을 긁어다 무저갱에 선물로 가져다줘라. 어차피 우리에겐 쓸모도 없는 물건이니.”
“그걸로 백작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요?”
부관이 대전을 흘긋 돌아보며 코웃음을 쳤다.
“마음에 안 들면? 제깟 놈이 뭘 어쩔 수 있겠느냐? 우리가 모시는 대공 전하는 외면의 뱀 따위완 격이 다르신데.”
조사관도 부관을 따라 쿡쿡 웃었다.
* * *
한편.
파괴의 대공, 아스모데우스의 대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외면의 대공을 죽였다? ······감히?”
푸화악!
일순간에 보고를 가져온 중위 악마 셋 중 둘의 몸이 터져나갔다.
그 겨를에 대전에 모여앉은 아스모데우스의 권속들이 잘게 떨었다.
후두둑, 쏟아지는 육편과 선혈에 아스모데우스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고 오직 한 곳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타르타로스가 있는 방향.
이성우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방향이었다.
“재주가 쓸만한 듯하여 위회에서 좀 싸고 돌아줬더니만, 주제도 모르고.”
백작급 우방을 얻으려 하다가 뜻을 함께하던 대공을 잃었다.
비페르녹사가 거느린 군단이 20개에 육박한다는 걸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전력 손실.
아스모데우스 자신과 더불어 단둘만 남은 지옥의 대공, 마르바스를 꺾는 데에도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을 터다.
“그놈을 어찌할까.”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아스모데우스.
홀로 살아남은 척후병이 그에게 보고를 올렸다.
“······주인님, 이상한 점이 있었답니다.”
아스모데우스 대신, 부관의 싸늘한 시선이 척후병에게 쏟아졌다.
“말해라. 이번엔 주인님을 기쁘게 해드릴 소식이어야 할 것이다.”
침을 꿀꺽 삼킨 척후병이 납작 엎드렸다.
“현장에서 야성의 대공이 거느린 마수 군단의 사자(使者)가 죽어있는 걸 보았습니다.”
아스모데우스의 미간이 구겨졌고.
푸확!
홀로 보고 온 바를 고하던 척후병의 사지가 찢어졌다.
불쾌한 소식이었다.
야성의 대공도 동맹을 제안했을 터.
그 사자를 죽여놓고, 비페르녹사까지 베어?
어느 쪽의 손도 잡지 않겠다는 건가?
이윽고, 아스모데우스의 입에서 냉소가 비어져 나왔다.
“미친놈이군.”
아스모데우스는 이성우를 한마디로 정의했다.
팬더모니움에서 악마왕에게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을 때부터 알아봤다.
“놈은 무시해라. 엮이면 죽인다. 이것이 방침이다.”
“명을 받듭니다.”
자리에 모인 부관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인간계에서 발견됐다는 ‘신격의 조각’이다.”
아스모데우스가 인간계에 숭배자를 심은 건, 단순히 영지를 넓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옥엔 전설처럼만 전해지는 ‘신격의 조각’을 확보해, 왕좌를 찬탈하기 위함.
하나 그것의 행방을 추적하던 숭배자가 이미 벨리알의 장난질에 휘말려 죽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때, 말석에서 부관 하나가 손을 들었다.
“새 수족을 찾아 타락시키려면 시일이 걸리니, 죽은 외면의 대공의 숭배자를 활용하심이······.”
아스모데우스가 기억하기로, 외면의 대공 비페르녹사는 아라비스탄이란 국가를 거의 다 집어삼킨 참이었다.
그곳의 독재자를 타락시켜 종으로 쓰고 있었으니까.
아라비스탄, 게이트 사태로 혼란한 가운데.
중동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가운데서도 각성자들이 주축이 되어 무장봉기를 일으켜 세운 국가였다.
이보다 움직이기 좋은 장기말은 없으리라.
간만에 기분좋은 소식에, 아스모데우스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뜻대로 하라.”
그러자 좋은 안을 낸 부관이 다시 손을 들었다.
“백작을······ 정말 저대로 둬도 괜찮겠습니까? 혹여나 악마왕 측에 붙을까 저어됩니다.”
아스모데우스는 부관을 당장 찢어 죽이려다 멈췄다.
그래, 놈이 예측 불가능한 미친놈이기는 해도······ 비페르녹사를 꺾은 것을 보면 적으로 돌려서 이로울 건 없는 놈이다.
“네놈이 말을 꺼냈으니, 책임지도록.”
“······예, 주인님. 알아듣게끔 조치하겠습니다.”
“명을 받았으면 이행하라.”
우르르 대전을 벗어나는 수하들을 바라보며, 아스모데우스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신격의 조각’.
그것만 확보하면 야성의 대공, 마르바스를 꺾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된다.
“그땐, 바엘······ 네놈과 당당히 정면으로 맞서주마.”
* * *
그렇게 해서 타르타로스, 최후의 성채엔 돌연 대량의 ‘선물’이 날라져 왔다.
달라이 라마의 부름이 중요하기는 하나, 손에 넣은 영지를 안정시키는 것 또한 놓쳐선 안 되기에.
한동안 최후의 성채에서 필요한 일을 처리하던 와중이었다.
“그러니까······ 여기 이만큼은 야성의 대공이란 자가 보낸 거고.”
정소현이 홀에 산더미처럼 쌓인 오리할콘 주괴와 아이템들을 가리키다, 다른 한쪽에 쌓인 가지각색의 마석 무더기로 몸을 돌렸다.
“여기 이만큼은 파괴의 대공이란 자가 보냈다는 거죠? ······왜요?”
이성우도 그게 미스테리였다.
혼란에 좀 빠져보라고 양쪽의 영입 제안을 전부 거절했는데, 어째서 이런 물건들을 보내온 건지.
“······고위 악마들은 이런 물건을 보내는 걸로 원한을 표시하고 그러냐?”
이성우가 슬쩍 묻자, 레라지에는 어깨 위에서 어리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냐? 이상하네, 두 대공이 미쳤나? 이럴 놈들이 아닌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성요한이 말했다.
“화친? 조공? 뭐 그런 의미 아니겠어요? 순식간에 두 영지를 집어삼키고, 고위 악마 셋을 죽였잖아요. 솔직히 안 쫄린다면 거짓말 아니에요?”
오만방자한 고위 악마들이 고작 이 정도로 겁을 먹었을 리가.
다만, 어떤 생각인지는 알 것 같다.
‘정확히 피아 구분이 안 되니, 이렇게라도 환심을 사두려는 거겠지.’
양쪽 모두 가리지 않고 베어버린 게 이런 이득으로 돌아올 줄이야.
“놈들의 의도야 어쨌든, 이 두 물자 모두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군요.”
오리할콘은 엑스에게 맡겨, 더 많은 인원이 지옥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마기 차단 장치’를 양산케 하면 되고.
각종 마석은 마침 따로 쓸 곳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담, 이걸 받아.”
아이담이 이성우가 건네는 물건을, 기계 팔로 받아들었다.
원래는 홀로그램뿐이었지만, 지금은 엑스의 도움으로 간단한 장치들이 붙어 물리적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이건······ 설마?
“그래, 네 옛 주인이 숨겨 두었던 물건이야.”
[천상의 결정].대마법사 풀카넬리가 신격의 조각을 탐색하기 위한 핵심 재료로 썼던 마석이다.
이걸 고농도의 순수한 마력 속에 띄워놓으면, 가느다란 쪽이 나침반처럼 가까이에 있는 ‘신격’을 가리키게 된다.
‘그 정도 양과 질을 충족하려면 상당한 마석이 필요했을 텐데, 아스모데우스 덕에 일을 덜었군.’
마석의 종류가 제각각이라 정제하는 데에 고생 좀 하겠지만, 홍선희 소장과 아이담의 조합이라면 문제없겠지.
“여기 있는 마석이면 충분하겠지?”
―네, 최대한 빨리 탐지기를 만들게요. 옛 주인님의 제작을 도왔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까요.
“좋아.”
이걸 완성하면, 마찬가지로 신격의 조각을 노리고 있는 아스모데우스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영지도 얼추 정리됐고. 달라이 라마께서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는 건지 들어 보러 가면 되나.’
그전에 잠깐.
이성우는 홀로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별의 회랑으로 입장하겠다.”
화아악―!
연이은 전투로 오랜만에 돌아오는 별의 회랑.
이성우의 모든 힘이 비롯되는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이성우는 일단 회랑 중앙 공터의 [초신성]에 샤스와 암두시아스, 비페르녹사의 부산물을 던져넣었다.
『[초신성 용광로]가 고위 악마의 부산물을 용해하기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72시간』
『특성에 제공하는 보너스 : 제어 한도 350%P 증가, 제어 거리 2,500m 증가, 제어 범위 1,600m 증가』
좋아, 이걸로 특성 제공 보너스도 더 늘어날 거다.
다음은 50레벨 달성 특전으로 받은 보상을 열어볼 차례.
『중력석 꾸러미(대)를 개봉합니다!』
꾸러미에서 보랏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와르르―!
『[중력석 파편]을 173개 획득했습니다.』
『[중력석 덩어리]를 2개 획득했습니다.』
“······덩어리는 겨우 두 개인가? 아쉽군.”
하지만 보상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가장 기대되는 게 남아 있었으니까.
『[랜덤 스킬 룬석 상자(중력 지배 전용)]을 개봉합니까?』
“개봉한다.”
상자가 열리면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와 별의 회랑을 가득 메웠다.
광채가 가시고, 상자 안에 고이 모셔진 룬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아이템 정보를 확인한 이성우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