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74
273화 깽판 칠 시간이다
긴 침묵 끝에 드리즈덴이 입을 열었다.
“굳이 여기서 피를 볼 필요는 없겠지. 서로 할 말은 끝난 것 같으니 이만 합시다. 단…….”
그는 레오볼드와 마르그레타를 번갈아 쳐다보며 슬쩍 웃음 지었다.
“내겐 당신들을 어찌할 의도가 없소. 하지만 밖의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군. 조심해야 할 거요. 하이페리온 때문에 다들 화가 많이 났거든.”
직접 건드리진 않겠지만 유사시엔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밖에선 시민들로 위장한 엘븐 나이트들이 날뛰겠지.
어쩌면 하이페리온을 출항시키면 정체 모를 비행선들이 달려들 수도 있었다.
레오볼드는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게 엘프들의 방식인가 보군.”
“각오하고 오지 않았소? 만약 보호를 원한다면 한 마디만 하시오. 염치불고하고 신세를 지겠다고.”
영문을 모르는 체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양새를 보면 누구나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드리즈덴은 당장 죽어선 안 되었다.
더 폭주해 엘브랑데를 파멸로 몰아넣은 다음에야 그의 임무가 완수된다.
레오볼드는 마르그레타의 어깨에 손을 얹은 다음 말했다.
“회담은 여기서 끝내지요.”
“수고 많으셨소. 마중 나가지는 않을 테니 조심하시오. 루스텔께서 그대들의 앞길을 살펴주시길.”
굳이 루스텔이라는 신을 주워섬기는 것은 마르그레타를 자극하기 위함이리라.
그녀의 어깨가 꿈틀거렸고 레오볼드는 천천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문이 닫히기 직전 드리즈덴의 입술이 달싹였고 엘나리온이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다.
‘일부러 보여 주는 거군.’
사냥감이 충분히 긴장하도록 말이다.
레오볼드는 아르마에게 엘드그라실을 경유해서 계류장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요청했다.
「마스터의 시야에 표시하겠습니다. 흥분한 엘프들이 좀 많네요.」
너무 흥분한 나머지 가차 없이 폭력을 저지르는 놈도 있을지 모른다.
호위기사들이 붙었고 일행은 관저를 빠져나가 도로에 접어들었다.
도착했을 때만 해도 침착하게 지켜보던 엘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선 주먹을 치켜올리고 있었다.
“저능한 인간에게 죽음을!”
“역시 인간과 타협은 불가능하다! 폭력만이 그들을 깨우쳐 줄 수 있다!”
“엘프를 위대하게!”
갑자기 이렇게 날뛰는 이유는 드리즈덴의 선동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애초에 레오볼드 일행을 곱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여기에 온 이유는 첫 번째가 회담이고, 두 번째가 엘드그라실의 본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이 터지면 엘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엘드그라실에 어떤 식으로든 피해가 갈 수밖에 없다.
그걸 미리 파악하고 아르마로 하여금 대책을 세워 두도록 하는 것이 레오볼드의 계획이었다.
‘마지막은 텔레포트 때문이지.’
워프게이트를 통한 통상 공간의 텔레포트는 레오볼드가 가본 적이 있는 장소만 유효하다.
그러니까 낯선 장소에는 워프게이트를 열 수 없었다.
아르마에 의하면 법칙에 가까워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분명 루시아는 가본 적이 없는 광산에 나타났었는데 희한하군.’
레오볼드는 마르그레타의 머리에 후드를 씌우며 빠르게 거리를 지나쳐 갔다.
어느새 일행을 눈치챈 엘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저기 사절단이 간다!”
“막아라! 막아라!”
당장 폭력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대단히 흉흉한 분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레오볼드는 드디어 엘드그라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크군…….”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였다.
밑동의 직경은 수 km에 가까웠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잎사귀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메데아 전체를 보호하는 듯 뻗어진 가지에서 태양빛이 뿜어져 나왔다.
확실히 태어나자마자 이런 걸 본다면 신이라고 착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레오볼드가 보기에 엘드그라실은 신이 아니었다.
‘그저 몇 가지 특수한 기능을 가진 큰 나무일 뿐…….’
에테르 오리진이 완성되면 엘드그라실쯤이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아르마도 비슷하게 보고했다.
「에테르의 흐름에서 엘드그라실의 기능이 모두 파악되었습니다. 오리진을 업데이트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네요.」
‘그거 반가운 소리군. 그나저나 여기에서 빠져나가야겠는데.’
엘프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분위기 속에서 사절단 일행은 아르마의 안내를 받아 계류장으로 향했다.
하이페리온에 탑승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마르그레타를 향해 무수한 욕설이 날아들었다.
“폐황녀가…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인간의 편에 붙은 배신자! 죽어라!”
돌을 던지진 않았지만 침을 뱉고 난리가 아니었다.
마르그레타의 녹색 눈동자가 우울감에 젖어들었다.
큰 잘못도 없이 모함을 받아 동족에게 비난당하는 심정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그때 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하죠.”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바삐 하이페리온호에 올랐다.
레오볼드는 마르그레타를 선실로 안내한 후 함교에 들렀다.
준비를 마친 함장 휘하 선원들이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절차 생략. 계류삭 끊고 발진.”
“발지인!”
함장의 힘찬 지시에 하이페리온이 부유력을 얻어 부웅 떠올랐다.
워낙 덩치가 큰 만큼 주변에 광풍이 일어났고 에테르 추진기까지 가동되자 비행선이 빠르게 도심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하이페리온호가 추진력을 얻어 메데아를 막 벗어날 때쯤, 도시 어딘가에서 작은 비행선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십 톤 규모의 작은 비행정이었다.
드리즈덴은 관저에서 느긋하게 하늘을 구경했다.
부작용을 무릅쓰고 비행정에 탑재된 추진기의 출력을 높였기에 가속도가 천천히 붙는 하이페리온호보다는 훨씬 빨랐다.
“어디, 배에 타서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나 보자고.”
* * *
“저런 걸 만들고 있었군. 대단한데.”
에테르 공학을 천시하는 듯하더니 역시 엘프라고 할까.
수십 대의 비행정이 벌떼처럼 날아들자 함교가 바빠졌다.
함장은 여러 대의 거울로 사방을 파악하곤 곧장 요격 지시를 내렸다.
“에테르 캐논 발사 준비! 보고할 필요 없다! 조준하는 대로 쏴서 떨어트려!”
50문의 포문이라면 비행정들을 요격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이페리온호는 너무 덩치가 컸고 선원들도 숙련되지 않았다.
햄튼 제독이 지휘하는 부유대륙 선단에 비하면 아무래도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에테르 캐논이 준비되기 전에 비행정들이 하이페리온호 주변에 달려들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요격했다간 파편을 뒤집어쓸 판이었다.
그리고 50문의 에테르 캐논은 대부분 현측에 마련되어 있었다.
선수포와 선미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화력은 빈약했다.
“쏴라!”
양현에서 빛줄기가 뿜어졌고 몇몇 비행정이 휩쓸렸다.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가운데 5천 톤이 넘어가는 비행선이 기울어졌다.
폭압이 배를 밀어낸 것이다.
그에 그치지 않고 비행정 몇 척이 후방에까지 접근했다.
선미포에서 빛줄기가 뿜어졌으나 최후의 한 대가 들이박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쾅!
대폭발이 일어나며 하이페리온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비행정에 에테르석 폭탄을 설치해 둔 것 같았다.
신격인 케인이 보호하고 있었지만 저런 식으로 공격해 오면 도리가 없었다.
레오볼드는 생사를 도외시한 돌진에 혀를 내둘렀다.
‘카미카제도 아니고… 그나저나 엘프가 타고 있던 건 맞아?’
「인간과 수인들로 추측됩니다. 아마 자치령에서 데려왔겠죠.」
엘프가 그럼 그렇지.
원래 그는 얌전히 떠나려 했었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더 이상 귀찮은 싸움을 할 이유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버릇을 교정해 줄 필요성이 있었다.
‘애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데 가만히 놔두는 부모는 자격 미달이야. 그렇지?’
「마스터는 부모는 아니고 인연이 있는 옆집 아저씨 정도겠네요. 세틀러호를 동원할까요?」
‘애들 타이르는데 세틀러호를 쓸 필요야 있나. 가볍게…….’
지시를 내리려 하는데 쿵, 하는 소리가 나며 갑판 위가 시끄러워졌다.
에테르 방출량을 봤을 때 누군가가 갑판 위에 올라선 것 같았다.
「파장 확인되었습니다. 회의실에 있던 엘나리온이란 엘프입니다.」
‘겁도 없이 여길 왔군. 골리앗을 꺼내서 깽판이라도 칠 셈인가?’
「지금 막 골리앗을 꺼냈습니다」
아무리 하이페리온호라도 골리앗이 갑판에서 날뛰면 도리가 없다.
레오볼드는 함장에게 직진하라는 지시를 내린 다음 갑판으로 올라갔다.
개량형 벨리알급이 선원들을 공격하려다가 멈칫했다.
“오호라. 네놈이 나섰군.”
“갑판이 제법 넓지? 보통 비행선이라면 꽉 찼을 텐데 말이야.”
“여유롭군. 이 빌어먹을 배가 추락하는데도 그렇게 있을 수 있나 보겠다!”
레오볼드는 흘깃 우현을 바라봤다.
거기엔 리빙메탈로 만들어진 에테르 캐논이 벨리알급을 조준하고 있었다.
엘나리온은 그걸 눈치채곤 재빨리 캐논에 접근했다.
“신격을 주입받으니 감응력도 대폭 올랐어! 난 티렌델조차 능가했단 말이다!”
골리앗의 팔이 포신과 접촉하자 철컥철컥하는 소리가 나며 대검 형태의 무기로 바뀌었다.
확실히 감응력 하나는 끝내주는군.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레오볼드는 인류가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시킨 최강의 사이커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주로 올라가서 얼마나 버티나 보자.’
에테르 하트가 가동되자 엘나리온이 만들어낸 검이 멋대로 형상을 변화시켰다.
“갑자기 왜 이래?”
그는 검을 붙잡으려 했으나 순식간에 두 갈래로 쪼개져 골리앗의 좌우에 달라붙었다.
마침내 완성된 것은 이온 추진기였다.
원거리에서 리빙메탈을 트랜스폼시키는 것도, 그리고 플레이그처럼 즉석에서 이온 추진기를 만들어 내는 것도 레오볼드의 능력이었다.
“이, 이게 뭐냐!”
“그게 뭐냐면 말이지. 직접 확인해봐.”
레오볼드의 의지에 따라 이온 추진기가 점화해 골리앗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으아아악!”
엘나리온을 태운 벨리알급은 순식간에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나아갔다.
공기가 희박해지고 숨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워졌다.
“으, 으으… 허어억!”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추, 추워…….”
희미해져가는 시야 가운데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테라 행성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마레와 두 개의 달이었다.
이온 추진기는 끝내 골리앗을 우주 너머로 밀어올리고는 천천히 분리되었다.
엘나리온은 최후의 숨결을 내뱉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후회했다.
‘저게 드워프들이 말하던… 젠장, 이렇게 죽는 건가…….’
그를 태운 골리앗은 관이 되어 관성운동에 의해 우주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장애물이 없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방해꾼을 우주로 보내 버린 레오볼드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주구경은 실컷 하겠군.”
여기서 끝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추진을 시작한 하이페리온 앞으로 수많은 비행정과 함대가 모였다.
그것은 마치 상처 입은 사자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하이에나 떼 같았다.
애석한 일이지만 하이페리온호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다.
또한 엘브랑데 함대도 하이에나가 아니라 일개 똥개 무리에 불과했다.
“지금부터 그걸 가르쳐주마. 아르마, 장갑 분리해.”
「하이페리온호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만 괜찮을까요?」
“상관없어. 싸우고 싶어 하니 적당히 어울려줘야지.”
「장갑 분리하겠습니다.」
엘드그라실의 껍질을 가공한 장갑판이 연이어 분리되었다.
하이페리온호는 마치 허물을 벗듯 장갑판을 떼어 버리고는 갑판까지 날려버렸다.
마침내 드러난 것은 우주처럼 시커먼 색을 가진 날씬한 우주선이었다.
세틀러호에 비하면 귀여운 사이즈지만 그래도 엘프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저, 저게 대체 뭐냐!”
“검은 배… 로 보입니다만.”
“그건 나도 알아! 뭐하는 배냐고!”
엘브랑데 함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하이페리온호는 거추장스러운 것을 모두 분리하고 이온 추진기를 가동시켰다.
어느새 함교로 내려온 레오볼드가 어리둥절한 함장에게 지시했다.
“이해할 필요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면 편할 거요. 우현 전타.”
“저, 전하! 지금 전타를 하면 포위망 속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세 번 지시는 안 하겠소. 우현 전타.”
“우현 전타아!”
타륜이 빙글빙글 회전하자 하이페리온호가 선수를 꺾었다.
엘브랑데 함대는 워낙 큰 덩치를 가진 배인 만큼 선회 반경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하이페리온호는 선수에서 이온을 분사해 선회 반경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리하여 엇, 하는 순간에 방향을 바꾸었다.
이제 엘브랑데 함대가 뒤를 쫓아가는 형국이 되었다.
레오볼드는 함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느새 마르그레타가 머뭇거리며 함교에 들어와 있었다.
“총통 관저로 갑시다. 선물을 좀 줘야겠소.”
설마 그 선물이란 게 에테르석 폭탄은 아니겠지?
마르그레타가 입을 크게 벌렸고 함장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렸다.
“전속 전진!”
이온 추진기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엘브랑데 함대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속도를 내기에 이르렀다.
시커먼 배가 순식간에 메데아 상공에 나타나자 비상이 울렸다.
“어디서 저런 배가 튀어나온 거야!”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빨리 에테르 캐논 가동해! 무슨 짓을 써서라도 엘드그라실에 접근하는 걸 막으란 말이다!”
“너, 너무 빠릅니다!”
조준을 하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니 방공망이 제대로 가동될 리가 없었다.
메데아 전체가 뒤집어졌다.
* * *
“후우…….”
드리즈덴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술을 마셨다.
새로이 개발된 비행정 부대와 엘나리온을 보냈으니 녀석은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곱게 보내주진 못하지. 비록 녀석이 죽진 않았겠지만…….’
가벼운 경고를 할 요량이었으므로 하이페리온호를 부수고 충격을 주면 그걸로 족했다.
격침시킨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신격을 가진 자라고 해도 하늘 위에서의 싸움엔 미숙한 법이지.’
그는 가장 오래된 엘프이며 대전쟁 당시의 전술에 대해서 꿰고 있었다.
대전쟁에서 얻은 교훈이라면 어지간히 전투력이 높은 존재라도 약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령 드래곤의 챔피언 같은 경우는 골리앗을 주로 애용했기에 상공에서의 공격에 취약했다.
에테르석 폭탄을 퍼부어버리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레오볼드가 그 정도로 죽진 않겠지만 하이페리온호가 부서지면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엘프를 얕보면 그렇게 되는 법이야. 알테마조차 우리를 경시하지 못했는데 네놈이 감히…….’
이제 엘나리온이 돌아오면 그 배가 어떻게 됐는지 소상이 들을 예정이었다.
드리즈덴은 즐거운 마음에 눈을 감았다가 불안한 기색을 느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끄럽게 변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그의 휴식을 방해했다.
“뭔가? 분명 부를 때까진 들어오지 말라고 일렀거늘.”
심드렁한 표정의 그에게 시종이 다급하게 외쳤다.
“가, 각하! 지금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왜? 무슨 일인데 그러나?”
“이상한 검은 배가 와서 폭탄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뭐라고?”
드리즈덴은 튕기듯이 일어나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멀리 하늘에서 검은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밑에서 피어오르는 검붉은 화염은 결코 꽃이 아닐 것이다.
그제야 땅이 흔들리며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이런 망할!”
드리즈덴은 자신이 마법사인 것도 잊은 채 창문을 부수고 튀어나갔다.
겨우 레비테이션 마법을 써서 하늘로 떠오르긴 했으나 검은 배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관저 상공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선창에서 무언가를 쏟아냈다.
‘저건 에테르석 폭탄…….’
그것도 특대형이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십여 개가 한꺼번에 쏟아지다 보니 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노쇠한 엘프는 폭탄이 터질 때의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폭발에 휩쓸려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쿠쿠쿵!
연속으로 폭발이 일어나며 관저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곳곳에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솟구쳤고 엘프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르그레타는 함교에서 자신의 고향이 박살 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표정이 안 좋은 걸 보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닌가 보다.
“이게 레오볼드 님이 이계에서 가져온 배의 힘인가요?”
“아뇨. 이 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는 저 하늘 너머에 있죠.”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봤다가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그런 힘을 가지셨으면서 왜 이런 일을… 그냥 가르쳐주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저들이 납득을 할까요? 전하를 비난하고 나를 죽이려 했던 저들이 우주선 한 척 보여 준다고 항복하겠습니까?”
레오볼드가 수십 년 동안 싸우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은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기 직전에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으면 빠른 편이고 대부분은 그런 마음조차 가지지 않는다.
내가 정의이고 내가 옳다고 단정하고 나면 외부에서 그걸 고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수십 년을 겨우 사는 인간조차 그러한데 300년 가까운 삶을 사는 엘프의 고집은 어떻겠는가?
“저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걸 바꾸려면 아주 강한 충격, 즉, 전쟁이 필요하죠. 이건 선전포고일 뿐입니다.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될 겁니다.”
“…….”
마르그레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그녀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사라졌고 레오볼드에게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울적해졌다.
레오볼드가 그녀의 뒤에 서서 어깨를 어루만져주며 위로했다.
“고향을 잃은 게 아닙니다. 단지 조금 늦게 돌아가는 것뿐이죠. 드리즈덴을 포함한 정신 나간 엘프들을 축출하고 엘브랑데를 전하의 품에 돌려놓겠습니다. 약속드리죠.”
“…고마워요…….”
그녀는 몸을 돌려 레오볼드의 넓은 품에 안겼다.
한바탕 폭탄을 쏟아 부은 하이페리온호가 천천히 선회해 메데아에서 벗어났다.
배의 진로를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