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83
282화 진정한 황제
갑작스럽게 분 에테르 폭풍과 게이트는 루시아와 휘하 병력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근처에 있지 않은 부대는 물러난 후 명령을 기다렸지만 적과 격렬하게 싸우다 후퇴할 틈도 없이 휘말려 아스테라로 오게 된 부대도 있었다.
이 부대와 다른 악마들은 방금 전까지 열심히 치고받았음에도 아스테라를 보게 되자 약속이나 한 듯이 전투를 중단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끼리 힘들게 싸울 필요 있나?
―인간을 죽이고 그 땅을 차지하면 되는 거 아냐?
게이트가 얼마나 유지될지 알 수 없는데도 이런 생각을 한 건 개체를 막론하고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원래 한 무리였던 것처럼 우르르 몰려가 인간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루시아의 부하들도 빠질 수가 없어 황궁으로 진격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저 하늘 어디에서 익숙한 비행선이 나타난 것이다.
―하이페리온이다…….
―뭐? 하이페리온? 그건 주인의 배잖아!
―말을 똑바로 해라, 1773호, 주인님은 백인장님과 군단장님, 친위대장님, 그리고 여왕님의 위에 군림하는 분이시다!
아스테라로 온 루시아의 부대는 탈로스 군단에 속해 있는 소규모의 분견대에 불과했다.
이들의 입장에서 레오볼드는 상관의 상관의 상관의 상관으로서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생각해 보라.
그들의 여왕인 루시아만 하더라도 마레에 둥지를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왕 서열 10위권과 맞먹을 정도의 강자가 되었다.
하물며 그녀가 충성해 마지않는 주인이라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부하들 사이에선 마레를 통일할 마신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돌았다.
그런 존재가 나타났으니 응당 납작 엎드려 배알해야겠지만 주변의 눈치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분견대장 풍뎅이 215호는 생각했다.
―주인께선 우리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계실 것이다. 그분을 돕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놈들의 뒤통수를 쳐야 한다.
―여기에서 공을 세운다면 만년 분견대장 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원래 상이란 건 높으신 분이 내려주는 것일수록 좋은 법이다.
그게 여왕보다 상위인 주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풍뎅이 215호는 결단을 내리고 부하들에게 몰래 텔레파시를 보냈다.
쑥덕쑥덕 웅성웅성.
풍뎅이 형태의 악마들 사이에서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른 악마들은 그 분위기를 감지하긴 했으나 워낙 흥분해서 그런지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에 인간의 왕이 거주하는 둥지가 있는데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장 가서 싸워 이기고 마왕에게 승전을 보고하고 싶을 뿐이었다.
한편 레오볼드는 풍뎅이들이 쑥덕거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 속으로 웃었다.
‘내 존재를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알아서 뒤통수를 쳐주겠다 이거지. 잘 선택했다.’
보고 있을 자이움 귀족들이 문제가 되겠지만 역으로 악마들마저 항복시킨 왕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흘려야 하는 피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소문을 좀 더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이번에는 그걸 시험해 봐야겠군.’
그것이란 70% 정도 완성된 에테르 오리진을 뜻한다.
이 에너지 공급원은 완성도 그렇지만 활성화하는 데에도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다.
제대로 작동할 시 에테르 태양과 맞먹는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멀쩡할 리 없다.
이에 아르마는 한 가지 방법을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가장 효율적인 것은 마스터의 에테르 하트를 시동키로 해서 에테르 오리진을 활성화시키는 겁니다. 하지만 그 경우 마스터가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죽진 않겠지?”
“제가 있는 한 마스터가 죽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이 아프겠죠.”
“나는 고통에는 익숙한 놈이야. 그 방법으로 하지.”
이건 에테르 오리진을 완전히 활성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방법이고 지금은 필요치 않았다.
미완성에서 살짝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것뿐이지만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레오볼드는 카밀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일시적으로는 당신이 신이 된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야. 발가드 같은 드래곤의 챔피언과도 거의 대등하게 싸울 수 있지.”
물론 전투 경험에서 격차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와 맞먹을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카밀라는 긴장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밑을 내려다봤다.
“악마와 싸우는 건 처음인데… 잘 할 수 있을까요?”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놈들이 어디에서 공격하는지 아르마가 알려줄 테니까.”
아르마가 어떻게 아는지는 수수께끼였지만 그런 사례가 한두 개도 아니라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볼드는 함교의 통신기를 통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현 시간부로 흑기사단 출격 준비. 내가 직접 지휘하겠다.”
그는 왕이 된 후로 어지간한 싸움에는 나서지 않는다.
이 말은 그가 친정하는 전장이라면 보통 위험한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이페리온호가 고도를 낮추자 블랙 나이트 십여 기가 뛰어내렸다.
황궁 귀족들의 눈에 의혹이 어렸다.
블랙 나이트는 바그란이 제작을 했지만 제국도 다수를 보유하고 복제까지 시도하고 있는 기종이다.
겨우 십여 기로 이 절망적인 전황을 호전시킬 수 없을 텐데 뭘 어쩌자는 건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대장기에 레오볼드가 탑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몇몇 귀족들이 팔을 쳐들었다.
“바그란의 왕이다!”
“저 악마들을 죽여 버려요!”
그 뒤를 이어 척탄병 부대도 에테르폭탄 발사기를 등에 메고 줄줄이 내려왔다.
“척탄병 부대다!”
“우리 척탄병들은 별 볼 일 없었는데 저들은 좀 다를까?”
“아무래도 원조 아닙니까? 사다리 타고 내려오는 것 좀 보십쇼! 뭔가 다르지 않습니까?”
“평민치고는 대단하군!”
악마들이 황궁 앞까지 다가왔다.
* * *
확실히 뭔가 다르다.
귀족들은 우려의 시선으로 전장을 바라봤다가 바그란의 병력은 뭔가 다르다는 점을 깨달았다.
우선 우왕좌왕하는 게 없었다.
평소 대 악마전을 훈련하는 것도 아닐 텐데 기체별로 포지션을 완벽하게 선점했고 진형도 단단했다.
무엇보다 선두에 선 기체는 왕이 탑승한 것이었다.
악마가 저렇게 많이 몰려들면 두려울 법도 한데 당당히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대검을 바닥에 박아 넣고 두 손을 손잡이에 올려둔 특유의 자세는 귀족들이 감탄사를 내뱉기에 충분했다.
“블랙 나이트… 저렇게 서 있으니 정말 큰 골리앗이라는 게 실감이 나는군요.”
“반다스 왕이 타고 있어서 그런가요? 하이 나이트가 탑승한 기체와 비교해도 위압감이 장난이 아닌데…….”
“그건 머리 뒤의 헤일로 때문일 겁니다.”
레오볼드가 에테르 하트를 가동하면 떠오르는 찬란한 헤일로는 블랙 나이트 두부 뒤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있었다.
다만 모든 출력을 끌어낸 것은 아니었다.
강화된 블랙 나이트로도 레오볼드의 에테르 하트를 받아주는 건 역부족이었고 이는 아르마가 제작 중인 새로운 강철의 거인만이 가능했다.
그 거인은 워낙 크고 육중해서 골리앗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아마 타이탄이라는 명칭을 받게 될 것 같았다.
아무튼 다들 흑기사단의 자태에 넋이 가 있는 사이 악마군단의 전열이 황궁에 접근했다.
지축이 흔들리며 수백 마리의 악마들이 소란스럽게 외치는 소리가 불협화음처럼 들려왔다.
레오볼드는 바닥에서 대검을 뽑으며 카밀라와 휘하 기사들에게 지시했다.
“이곳은 비록 바그란은 아니지만 그대들은 제국의 신하다. 목숨을 잠시 거두어들이겠으니 제국을 위해 싸우고 죽어다오.”
“오오오!”
“제국을 위해! 황제를 위해!”
제국이라는 건 앞으로 탄생할 인류제국, 황제는 레오볼드를 뜻하는 것이었지만 자이움의 귀족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자이움의 신하라는 걸 잊지 않았구나…….”
“아직도 백작 아닌가? 귀족이라면 응당 저래야지.”
“그런데 황제는 이미 도망가서 저런 충성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그런 목소리를 묻어버리기라도 하듯 악마군단의 전열과 흑기사단이 충돌했다.
자이움의 기사들이 힘겨루기를 하다 후방에서 기습을 받아 박살 난 것에 비해 흑기사단은 멈춰 있지 않았다.
레오볼드의 블랙 나이트에서 에테르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이 악마군단에 거대한 길을 만들었다.
수십 마리의 악마가 고농축된 에테르를 버티지 못하고 분해된 것이다.
“나를 따르라.”
그 길을 따라 흑기사단이 움직였다.
사방에서 악마들이 공격했지만 덩치와 출력에선 블랙 나이트가 한참 위였다.
귀족들은 마치 하나의 검이 전장을 헤집는 것 같은 착각을 받았다.
“악마들의 품에 뛰어들면서도 저런 진형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마치 골리앗들이 하나가 된 것 같군요.”
레오볼드가 내뿜는 에테르에 주변 골리앗들의 코어가 동기화되어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탑승자인 기사들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악마들을 상대하던 카밀라는 이게 자신이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뭐지? 마치 홀린 것 같아…….’
그것은 바로 에테르 역장이었다.
세틀러호나 어설트 아머 정도가 펼칠 수 있었던 물리적인 제약을 무시하는 역장을 레오볼드 혼자서 펼친 것이다.
이 역장에는 제한적인 타임 스톱과 광역 축복까지 걸려 있어 아군에겐 가공할 만한 전투력 상승을, 적에겐 끔찍한 저주를 선사한다.
실제로 측방을 맡고 있던 기사들은 저 무서운 악마들이 이렇게 느리고 허약한 줄은 몰랐던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우리가 강한 것도 아니고 악마들이 약한 탓도 아니다.’
모든 것은 왕의 힘이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졌고 전장도 바뀌었다.
상대하는 악마가 더 크고 흉포하게 바뀌었지만 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
수십 배나 되는 적을 상대로 이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특히 위쪽의 황궁에서 관전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걸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웅성거림은 어느덧 잦아졌고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크낙스시여… 저 안에 뛰어들어서 싸울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 무서운 악마들이 바보가 된 것처럼 허우적거리는데…….”
황도의 친위대와 싸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다들 레오볼드가 펼치는 마법에 홀려 있었다.
그리고 그 마법은 루시아의 분견대가 다른 악마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화끈하게 폭발했다.
풍뎅이 215호는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서 있던 하이펙스 한 마리에게 뿔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
―크아아악!
―지금이다!
하이펙스의 단말마가 들림과 동시에 분견대가 반전해 악마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수는 적었지만 흑기사단이 워낙 시선을 많이 끌었고 기습이 완벽했기에 악마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대체 어떤 놈이냐!
―아군이 우릴 공격한다!
분견대 풍뎅이들은 외형이 많이 달랐지만 워낙 많은 개체가 좁은 곳에 몰려 있어서 피아를 완벽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다 레오볼드를 비롯한 흑기사단과 척탄병 부대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자가 기동력으로 악마군단을 헤집어 놓으면 척탄병들은 원거리에서 화력으로 악마들을 차근차근 박살냈다.
버티지 못한 일부 악마가 척탄병들을 공격하기 위해 나섰지만 지형지물을 이용해 전투를 회피하는 데에야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숨바꼭질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폭탄이 날아들었고 말이다.
쿠쾅!
여기저기에서 폭발이 일었고 악마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자이움의 귀족들은 입을 헤 벌렸다.
“십여 기의 블랙 나이트로 저렇게 싸울 줄은…….”
“척탄병들의 움직임도 장난이 아닙니다. 악마들과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어요.”
상대하는 악마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진작 후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게이트가 사라진 마당에 어디로 도망간단 말인가.
그들에게 남은 건 끝까지 항전하다 죽는 길뿐이었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서 죽는다! 케테르님을 위하… 켁!
뭐라고 크게 외치려 하던 타이런트 개체의 머리를 레오볼드의 대검이 박살났다.
그것을 시작으로 악마들의 저항이 점차 줄어들었다.
척탄병 부대와 흑기사단의 거리가 좁혀지더니 수십 마리의 악마들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날뛰었다.
하지만 그들은 레오볼드의 에테르 블레이드 한 방에 증발해 사라졌다.
―이렇게 강할 수가…….
―네놈… 아프록시아 님이 이곳에 강림하면 상황은 달라질…….
“시끄럽다.”
레오볼드는 마지막 타이런트 한 마리를 처리한 다음 대검을 바닥에 꽂았다.
분위기를 눈치챈 풍뎅이 215 휘하 분견대가 급히 그의 앞으로 몰려와 자세를 낮추었다.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마왕이신 루시아님께서 항복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지금부터는 당신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레오볼드는 짐짓 놀란 척하며 그들을 훑어봤다.
“너희들은 악마가 아니냐? 악마가 인간을 따른다고?”
―충성심이 있고 소통만 되면 모습이 문제겠습니까? 혹여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인간의 모습을 취하겠습니다!
“글세…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
웃기지도 않는 연극이었지만 자이움의 귀족들에겐 꽤 감명 깊은 광경이었다.
수백 년 동안 인간을 적대하고 없애지 못해 안달하던 악마들이 한낱 왕에게 무릎을 꿇는다니 말이다.
“저 악마들은 제법 강한 듯한데 인간의 왕에게 항복한다고?”
“악마들이 전향한다는 얘기는 수백 년 역사에서 한 건도 없었는데…….”
“다들 아까의 압도적인 전투를 봤잖소? 루시아라는 그 마왕도 반다스 왕에게 탄복한 거요.”
악마 자체를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항복까지 한다니 이건 정말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다들 목을 빼고 쳐다보는데 풍뎅이들이 죽은 악마의 사체에서 코어를 회수해 왔다.
태양계에 나타난 플레이그의 코어와 비교하면 크기는 훨씬 작았지만 본질은 같았다.
풍뎅이 215호는 타이런트의 코어를 레오볼드에게 바쳤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알고 제법 똑똑하군. 바라는 게 있느냐?”
녀석은 충분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저는 여왕께서 마레에 도착하신 후 열과 성을 다해 보좌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분견대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의 공적과 충성심을 의심하지 않으신다면…….
“백인대장. 너는 지금부터 백인대장이다.”
레오볼드는 루시아가 지휘하는 병력의 구조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르마의 도움으로 플레이그 퀸에 육박하는 에테르를 쓸 수도 있었다.
요는 일정 한계 내에서는 진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허락을 내리자 풍뎅이 215호의 덩치가 부쩍부쩍 커지기 시작했다.
―오오오!
―주인께서 은총을 내리셨다!
분견대 풍뎅이들이 춤을 추었고 자이움 귀족들은 이게 뭔가 혼란스러워했다.
한편 지하통로를 통해 도망갔던 바라크 황제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황궁으로 올라왔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도망갔으니 환호를 바랄 수는 없었지만 그를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나도 차가웠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인사는 단지 겉치레였고 감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아 서늘하기까지 했다.
그에 반해 레오볼드를 향한 환호의 목소리는 황궁을 떠나보낼 듯했다.
“반다스 왕! 당신이 최고요!”
“확실히 타소스 공국을 차지할 자격이 있었어!”
레오볼드는 그들의 환호에 팔을 들어 답했고 바라크 황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그는 황제를 꿈꾸고 있는 게 아닐까?
* * *
자이움의 악마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게이트가 워낙 많이 열린 덕분에 대륙 각지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어지간한 국가는 전력을 동원하고 나서야 악마들을 막을 수 있었고 이는 엄청난 피해를 야기했다.
게다가 아직까지 멀쩡한 군단도 많았다.
그들은 습지대나 황무지 같은 곳에 덩그러니 떨어졌다가 상황을 파악하곤 세력을 형성해 주변국에 쳐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레오볼드는 그들을 그냥 놔두어선 안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얻고자 하는 것은 다 얻었기 때문.
“바글바글하군… 하프늄2 탄두로는 전부 처리가 어려울 것 같은데.”
물량을 쏟아부으면 다 죽기야 하겠지만 미사일이 아까웠다.
그리고 세틀러호는 완전히 수리되어 예전보다 더 강한 출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초대질량 입자가속기 또한 반응탄을 속속들이 생산하고 있었다.
언젠가 조우할지도 모를 오메가 원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아르마가 귀띔했다.
“100메가톤급의 작은 반응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래 레오볼드는 아스테라엔 어지간하면 반응탄을 쓰지 않으려 했다.
그 전율적인 병기는 완전히 성장한 플레이그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악마들은 새끼 플레이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다른 곳은 기사단을 보내 처리할 수 있으니 저 두 곳만 어떻게 하면 되겠어.”
레오볼드가 지목한 곳은 엘브랑데 가까이의 접경지대와 데노바 인근이었다.
전자는 엘프들이 알아서 수습하겠지만 후자는 완전한 몰락이 예정되어 있었다.
“알테마가 저길 공격했지, 아마?”
“덕분에 우리의 빚까지 함께 싹 쓸려나갔죠.”
데노바가 박살남으로써 대륙 동부의 물자 공급망까지 함께 박살났지만 이는 다음에 처리할 문제다.
지금 시급한 건 저 수천 마리나 되는 악마군단이었다.
“반응탄 발사해.”
허가가 내려지자 테라 행성의 정지궤도에 정박해 있던 세틀러호에서 두 발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대출력 이온 추진기를 장착한 이 미사일은 몇 분도 되지 않아 목적지 상공에 도착했다.
그리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입자와 반입자가 쌍소멸하며 순수한 에너지를 토해냈다.
그 위력은 데노바 인근에 솟아 있던 작은 산을 완전히 증발시킬 정도였다.
근처를 공격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수천 마리의 악마들도 떼죽음을 당했다.
충격파가 대륙 동부를 뒤흔들었고 얼마 후 회색 버섯구름이 거대하게 피어났다.
폭발이 사라지자 한참 데노바를 공격하고 있던 알테마와 발가드가 흔적을 찾아냈다.
그들의 시선 끝에 말도 안 되는 크기의 크데이터가 보였고 주변에는 수천 마리에 달하는 악마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건 대체 뭘로 한 거지?”
“왕의 힘이오. 지구에서 만든 무기를 쓴 모양이군. 허나 이토록 강할 줄은…….”
“지구에서 만든 무기라…….”
“여태까지는 한 번도 쓰지 않았소. 지금 썼다는 건 악마들 상대로는 괜찮다는 거겠지. 그러니 왕을 적으로 돌리는 건 그만두는 게 좋소. 주인의 본체라고 할지라도 이 폭발에 휘말리면 무사하지 못할 거요.”
이들은 폭발을 일으킨 반응탄이 위력을 10%까지 줄인 버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테마는 에테르를 느끼려 하다가 실패하곤 말했다.
“에테르 기반 무기는 아닌 모양이구나.”
“지구엔 에테르가 없었다고 했잖소? 그들은 순수한 기술의 힘으로 이런 걸 만든 거요.”
“…….”
그녀는 크레이터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더 갖고 싶어지는구나.”
“젠장, 주인이 아무리 강해도 건드릴 상대가 아니란 말이오, 그 왕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지, 그렇지 않느냐?”
빌가드는 그녀의 태도에서 무한한 탐욕을 읽었다.
대전쟁에서 그 난리를 겪어 놓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알테마는 자신만만했다.
이 정도의 위력이 전부라면 대응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전쟁을 다시 시작하게 되겠지만 어차피 대륙의 정세는 엉망이었다.
거기에 혼란을 조금 더한다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녀는 바그란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오너라, 내가 진정한 아스테라의 황제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