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87
286화 대리전
“미안하네만 가야겠네. 늙었지만 조국의 위기가 내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군.”
개전 직전, 바그란의 공학기술개발국장을 맡고 있던 불토른이 사표를 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으니 자신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선과 골리앗이 격돌하는 전쟁에서 드워프 한 명이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싶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개발국 내에서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쉽게 보낼 수는 없었다.
에테르 기관에서 신형 비행선 건조 설계까지 바그란의 에테르 공학에서 그가 손대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니.
레오볼드는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그를 왕궁 소유의 격납고로 데려갔다.
“이걸 가져가십시오. 쓸 만할 겁니다.”
격납고에 있던 것은 땅딸막한 골리앗 3기였다.
“드워프라서 이런 땅딸막한 것만 타라는 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골리앗을 살펴보던 불토른은 팔을 보고는 놀랐다.
팔 자체가 발사기였다.
“뭐야 이거? 에테르폭탄 발사기 아냐? 이걸 왜 골리앗이 달고 있나?”
“골리앗에 달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사실 병사들보다는 골리앗이 발사기를 운용하는 데 적합하죠. 덩치가 크니까 그만큼 많이 실을 수 있고 발사기 구경도 대형화할 수 있습니다.”
은밀성은 물 건너가지만 어차피 전면전이므로 큰 문제는 없었다.
구경을 대형화하게 되면 무거워지지만 화력은 그 이상으로 상승한다.
불토른은 관심이 생겼는지 본격적으로 골리앗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흐음… 출력은 170E에서 안정화라. 우리 드워프가 대체로 감응력이 낮은 걸 감안한 거군. 조종석은 좀 특이한데? 원래 이런 버튼이 있었나?”
“아무래도 드워프는 동작 구현화가 좀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버튼 하나로 간단하게 공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편이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하긴…….”
사실 이 골리앗은 차기 양산될 전투용 골렘의 테스트기였다.
골렘인 만큼 무인기로 설계되었지만 이미르 공화국에 지원하기 위해 급히 조종석을 집어넣은 것이다.
전고 때문에 인간이나 엘프가 탑승할 순 없었고 그나마 드워프가 가능했다.
역할은 포병으로 원거리에서 화력을 쏟아붓는 데 특화되어 있고 발사기의 구경이 워낙 커서 기존의 척탄병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화력을 자랑했다.
“계산상으로는 이 골렘 3대만 있으면 골리앗 100대의 진격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불토른은 그제야 이 기종의 진가를 알아챘다.
이건 접근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원거리에서 화력을 퍼붓는 용도였다.
“젠장, 왜 에테르폭탄 발사기를 골리앗에 달 생각을 못했지?”
발상의 전환이란 건 원래 어려운 법이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은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사실 지금까지 달지 않은 것은 귀족이 아닌 평민 병사의 승리가 필요해서였지만.
레오볼드는 불토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동안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 골렘은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작은 성의입니다. 잘 싸우고 다시 같이 일할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그는 꽤 감격한 표정으로 레오볼드를 쳐다보다가 손을 잡았다.
“국왕이 되었음에도 자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군 그래. 하여튼 고맙네. 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여기에 와서 다시 일하겠네.”
“무운을 빕니다.”
불토른은 그렇게 골렘을 아공간에 넣고 동료 드워프들과 함께 비행선에 올라탔다.
바그란에선 이미르 공하국과 오가는 비행선을 몇 척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터진 만큼 아마 이 비행선이 마지막일 것이다.
물론 그건 표면적인 대응이고 실제로는 시비리 위성을 포함한 마이크로드론이 각 전장을 24시간 감시하고 있었다.
엘프들은 자신들의 군세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을 의심치 않겠지만 그건 반만 이뤄질 예정이었다.
‘너희들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상처뿐인 승리다.’
레오볼드는 불토른이 탄 비행선이 바그란 상공을 지나치는 걸 올려다봤다.
다시 와서 일하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여기로 오게 되어 있었다.
100만에 육박하는 다른 드워프들과 함께 말이다.
* * *
바람 앞의 등불.
엘브랑데에 저항하는 이미르 공화국의 평가는 딱 이랬다.
양국의 국력 차이는 논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였고 전력은 그 이상 벌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드워프 중엔 에테르 감응력이 출중한 기사가 별로 없다는 게 컸다.
금속이나 기계를 잘 다룬다는 장점은 있지만 골리앗에 중요한 건 코어의 출력과 기사의 에테르 감응력이었다.
그런 평가는 척탄병 부대가 데뷔했음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 병사들이 정예이고 높은 성과를 올린 건 알겠는데 그래도 전면전에서는 안 되지.
―바그란도 막상 갈리스토 수도 공방전에서는 골리앗 부대를 투입했잖아? 외곽에서 깔짝거리는 건 척탄병으로 가능해도 점령을 하려면 골리앗이 있어야 돼.
―그나저나 이번에 엘브랑데에서 칼을 갈았네. 골리앗 숫자를 엄청나게 늘렸어.
―엘븐 나이트가 2천 명에 가까웠는데 자치령에서 새로 뽑은 기사만 3천 명이야. 진짜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와.
―뭐 그 기사들이 대단한 실력을 갖춘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쪽수는 무시 못 하지.
―이미르 공화국은 기사 한 300명은 나오나? 이거 전투가 성립이 안 되겠는데.
―바그란에서 좀 도와준다는 말이 있긴 한데…….
―그쪽도 지금 상황에서 엘브랑데와 부딪치고 싶지는 않을 거야.
―유민 받느라 전쟁에 쏟을 여력이 있나 솔직히 의심이 되긴 하지.
호사가들은 이미르 공화국의 멸망은 확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고 드워프들도 대단한 희망을 가지진 않았다.
다만 그들은 엘프에게 쓴맛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질 땐 지더라도 팔다리 하나쯤은 잘라 버리겠다는 게 각오였던 것이다.
―근데 우리 전력으로 팔다리는 자를 수 있냐는 게 문제로군.
―안 되면 자폭이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그러나 자폭할 수 있는 수단도 엘브랑데군이 훨씬 우위였다.
자치령 의용군이 탑승한 골리앗은 코어의 출력을 한계까지 뽑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에테르가 새어나가 황금빛이 비치는 등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제대로 된 전력이라곤 할 수 없었지만 코어가 폭발하면 그 자체로 거대한 폭탄이 되므로 경시할 수 없었다.
드워프들은 그런 골리앗을 타고 전선을 돌아다니는 의용군을 보고 학을 뗐다.
―귀쟁이들이 미쳤다는 건 진작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자폭병까지 동원하다니 이제 최소한의 가면조차 안 쓰겠다 이거지.
―그런 주제에 대체 누굴 비난하는지 모르겠어.
―본국에선 저런 꼴을 보고도 제지를 안 하나?
―제지는 무슨… 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신문에 나오고 난리구만.
―잘 모르는 모양인데 엘프들은 스스로를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우리는 악이니까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상관없는 거지.
―미친놈이 강하기까지 하니 답이 없구만…….
유일한 희망이라면 바그란의 지원이었다.
양국은 동맹까진 아니었지만 최근까지 상당히 깊은 교류를 해왔던지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거라고 다들 예측했다.
이에 추밀원의 특사 스카디는 레오볼드와 긴 시간 대화한 끝에 그 결과를 평의회 의원들 앞에서 발표했다.
“생존자가 얼마가 됐든 다 받아줄 수 있으니 오랍니다. 수단은 그쪽에서 준비하겠다는군요.”
“됐어!”
“후우… 최소한 젊은 애들을 죽이진 않게 됐군.”
여기저기에서 환호가 이어지는 가운데 평의회 의장 우르딘은 스카디에게 귓속말을 했다.
“어떻게 우리를 바그란에 데려갈 거라더냐?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작게 속삭였다.
“놀라지 마세요. 텔레포트를 쓸 거랍니다.”
“뭐? 텔레포트? 그게 언제적 마법이냐?”
텔레포트는 대전쟁 당시에는 상당히 자주 쓰였지만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춘 마법이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처럼 국가에서 관리한다면 시전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게이트 유지가 어려워서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기껏 엄청난 에테르를 써서 게이트를 연다고 해도 얼마 가지 못해 닫히면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특히 전쟁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골리앗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컸다.
주변의 에테르가 흐트러질 위험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도착지가 바뀌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의 아스테라에선 텔레포트 마법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엘브랑데나 알테마도 아니고 마법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던 바그란이 그걸 쓴다니 놀랄 수밖에.
“블루 드래곤이 있긴 하지만 듣기로 실력은 대단치 않다고 들었는데…….”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죠. 우리 인구가 작긴 하지만 그래도 수십만 명은 되는데 그걸 몽땅 통과시킬 수 있는 게이트라니요.”
“차라리 전쟁을 하지 않고 후퇴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드워프 자존심에 곱게 후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둘은 잘 알고 있었다.
공화국은 전쟁을 준비한 지 꽤 되었고 이제는 죽으나 사나 한판 붙는 길뿐이었다.
드워프들은 피해가 얼마나 되든 엘프에게 한 방만 먹여 줄 수 있으면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공화국 전체가 전쟁 분위기로 시끄러운 와중에 바그란의 정기선 한 척이 도착했다.
불토른이 드워프들과 함께 내리자 우르딘이 그를 환영했다.
“이 친구야! 여기는 뭐 하러 왔나? 죽으려고?”
“귀쟁이들 목이나 좀 따려고 왔지! 겸사겸사 내 딸 얼굴도 좀 보고!”
그가 스카디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직원들이 부랴부랴 계류장에 비행선을 고정한 뒤 골렘 3대를 비롯한 기자재를 하역했다.
호기심 하면 안 빠지는 드워프들이 이게 뭔가 하고 몰려들었다.
불토른은 레오볼드가 준 선물을 소개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이게 뭐냐면 말이야… 일종의 골렘일세. 처음엔 좀 작은 골리앗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더군.”
“팔 대신 이상한 걸 달고 있는데?”
“그게 바로 핵심이네. 이 녀석은 대검이나 메이스 같은 무기 대신 이걸 들지.”
그가 소개한 건 대구경의 에테르폭탄 발사기였다.
골렘에 장착되는 만큼 척탄병이 소지하는 발사기와는 구경에서 차원이 달랐다.
우르딘을 포함한 드워프들의 눈이 예리해지기 시작했다.
“발사기를 대형화해서 골렘에 달았다? 그렇다면 원거리 포격전이 가능하겠군?”
“화력을 집중시키면 적이 다가오지 못하게 할 수 있겠군요…….”
“화력이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인데…….”
“그걸 지금부터 시험해 보지! 마침 레오볼드 그놈이 기자재를 넉넉하게 줬거든!”
드워프하면 또 즉흥적이라서 다들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타깃은 샌드백으로 흔히 쓰이는 반쯤 박살난 구형 골리앗이었다.
불토른이 손수 골렘에 올라타곤 발사기를 조준했다.
“거기 멀리 떨어져! 이 발사기의 위력계수는 10배가 넘는다고!”
쉽게 말해 척탄병들의 그것에 비해 10배는 더 강하다는 뜻이다.
드워프들이 기겁하고 뒤로 물러나자 불토른은 그제야 버튼을 눌렀다.
펑, 하는 제법 육중한 격발음이 들리더니 골렘이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먼 거리를 날아간 에테르폭탄이 타깃에 충돌한 후 폭발했다.
쿠쿵!
대폭발과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전투훈련장을 휩쓸었다.
평소 키가 작아서 넘어질 일이 없다는 조롱조의 말을 듣던 드워프 몇 명이 우르르 넘어졌다.
완전히 박살난 골리앗의 파편이 상공으로 치솟았고 불이 붙은 채 훈련장 여기저기에 후두둑 떨어졌다.
“으아악!”
“미친! 이렇게 세다는 말은 안 했잖아!”
“난 분명히 10배라고 경고했어! 으하하!”
불토른은 해치를 열고 유쾌하게 웃었다.
척탄병이 쓰는 발사기가 골리앗의 프레임과 구동계 일부를 파괴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이건 완전히 박살 내고 주변에까지 치명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게 3대, 아니 30대, 그 이상 모인다면 어떨까?
엘브랑데의 그 잘난 엘븐 나이트가 접근할 수 있을까?
우르딘은 계속되는 포격을 보면서 이게 전쟁의 향방을 바꿀 것이라는 점을 확신했다.
물론 그건 이미르가 이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바그란은 더욱 강해지겠구만.’
어쩌면 그들이 선언한 아스테라 통일이라는 게 허튼 소리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바그란의 정기선은 골렘 외에도 싣고 온 기자재와 물자를 몽땅 하역하고 떠났다.
거기엔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에테르폭탄이나 신형 골렘의 부품 같은 것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통신 시스템이었다.
우르딘은 통신석을 어떻게 가공하면 이런 게 튀어나오는지 궁금했다.
“희한하게 생겼군. 이 스위치를 누르면 통신이 되는 건가?”
“어? 이거 하나가 아닌데요?”
드워프들은 한데 모여 논의한 끝에 이 통신 시스템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눈치챘다.
그러니까 이전의 통신석을 이용한 대화가 1:1만 가능했다면 이건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건가. 지시를 내릴 때 좋겠군.”
“이거면 부대의 집단행동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령 어떤 목표를 포착하면 집중 포격하라 같은 지시도 가능해지는 거죠.”
“…어쩌면 이게 진짜인지도 모르겠군.”
그 통신 시스템에는 레오볼드의 친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르딘은 골렘 조작에 여념이 없는 불토른을 불러 친서를 개봉했다.
내용은 이미르 공화국의 무운을 빈다는 것과 이 통신 시스템을 전쟁사령부에 꼭 설치하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비행선으로 획득한 정보를 주겠다 이건가? 지금도 국경선 근처에는 귀쟁이 놈들의 비행선이 날아다니는데.”
불토른은 그의 등을 팡 소리 나게 쳤다.
“이 친구야. 바그란의 비행선을 귀쟁이 놈들의 것과 같이 보면 섭섭하지. 그게 얼마나 빠른 줄 아나?”
“빨라 봐야 숫자에서 밀리지 않나?”
“예전에는 말이야, 개량한 하이페리온호를 가지고 수도 메데아에서 한바탕 분탕질을 치고 나왔다고.”
예상치도 못한 발에 우르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다른 곳도 아닌 메데아에서? 그게 가능해?”
“나도 얼핏 들었는데 대공 시스템이 무력화당하고 총통부가 폭격당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더라고. 지금 귀쟁이들이 흥분해서 날뛰는 것도 아마 거기에서 된통 당한 기억 때문일 거야.”
“이런 젠장, 그 원한을 우리가 뒤집어쓰게 생겼군.”
하지만 우르딘의 얼굴엔 원망하는 표정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우방인 레오볼드가 엘프들에게 한 방 먹여 준 것이 통쾌할 뿐이었다.
친서에 의하면 전장의 다양한 정보를 가공해서 이쪽으로 전달할 예정이었다.
즉, 이미르 공화국은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불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왜 이렇게 나서는가 하는 의문은 들었다.
그리고 답이 나왔다.
“이건 대리전이군. 바그란이 지금 나설 수 없으니 우리를 이용해서 엘브랑데와 싸우는 거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게 못마땅하면 지금이라도 후퇴하면 되네.”
우르딘은 고개를 저었다.
“못마땅하다는 게 아니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일 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이렇게 싸우는 건 처음이니까.”
“글쎄, 내가 본 레오볼드는 결코 승산 없는 패에 돈을 거는 놈은 아니야. 오히려 판 자체를 자신이 이기도록 엎어 버리는 쪽이지.”
“생각보다 더 미쳤군.”
“그런 놈이니 알테마를 부활시키고 엘브랑데와 싸우겠다고 저러고 있지. 다들 알테마를 부활시킨 게 실수였다고 욕을 해대지만 내가 보기엔 계획된 거야.”
“골드 드래곤을 부활시켜서 어디다 써먹으려는 걸까?”
불토른은 잠시 레오볼드의 얼굴을 떠올리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스테라를 통일하겠다는 사람이 왜 장차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한 골드 드래곤을 부활시켰는지 참으로 의문이었다.
“나야 모르지. 아무튼 우리가 살 길은 이거밖에 없네. 바그란의 지원이 없으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안타깝게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네.”
받을 건 다 받았으니 이제 싸우는 것만 남았다.
우르딘은 즉각 전쟁사령부에 통신 시스템을 설치했다.
채널을 열자마자 놀랍게도 온갖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대륙력 1040년 4월 5일, 날씨는 쾌청하지만 구름이 몰려오는 걸로 봐서 일부 지역에 비가 내릴 것 같다.
―자치령 의용군이 국경선을 넘었다. 엘브랑데는 아직 전력을 투사하진 않고 있다.
―서부 상공에 전개된 비행선은 약 32척이다. 이 외에도 새로 개발된 비행정이 다수 포진한 상태다.
하나같이 전쟁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귀중한 정보였다.
흥분한 드워프들이 날뛰었다.
“지도 갖고 와! 빨리 기입해!”
“잠깐, 이쪽 방면에서 골리앗 150대가 들어오면 어떻게 막아야 하지? 옮기는 데만도 한세월인데!”
“바그란에서 지원한 골렘 그거 이름이 뭐였지? 그걸 써보자고.”
“워커, 워커라고 쓰여 있어!”
드워프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사실 골렘은 인류연합에서 즐겨 써왔던 워커와 본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아르마가 설계한 컴뱃 워커는 21세기 지구의 여러 국가를 손쉽게 항복시킬 정도로 강했지만 골렘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에테르 회로로 구현할 수 있는 명령어 세트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 한계조차 에테르 분석이 끝나면서 벗어던질 예정이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하여튼 이 정보들은 전쟁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드워프들에게 전체적인 얼개를 짜기 쉽도록 도와주었다.
심지어 바그란 왕궁의 몇몇 지휘관이 나서서 조언해주기까지 했다.
“전술단위 작전계획 수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목적의 명확함입니다. 규모가 작은 만큼 목적은 명확하고 간단해야 승리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것인가. 전통적인 군사교리에선 많은 아군을 동원해 고립된 적을 치는 것을 최고로 여겼습니다만 최근은 원거리 화력의 발달로 양상이 다소 바뀌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워커를 이용한 화력전입니다. 워커는 저희 쪽에서도 새로운 무기라 아직 제대로 된 교범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말씀을 드린다면 이렇습니다.”
이후로는 척탄병을 직접 운용해 본 그랜든의 조언이 쏟아졌다.
“중요한 것은 화력의 집중입니다. 워커는 막대한 화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통상적인 골리앗이 가진 내구력을 한참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워커 부대는 개별 목표를 노리지 말고 포격을 집중시켜서 피해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처의 지반을 노리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골리앗은 땅을 디디는 병기이고, 이게 무너지면 잠시 무력화됩니다. 전쟁에서 잠시 무력화된다는 건 곧 죽음이나 다름이 없죠.”
하나같이 피와 살이 되는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바그란이 간접적으로 지원을 하다 보니 대략적인 전쟁의 얼개가 그려졌다.
우르딘은 자치령 의용군 뒤에 엄청난 대부대가 있다는 걸 자각하곤 신음했다.
“엘븐 나이트까지 포함하면 골리앗이 5천 대가 넘는군… 이걸 외곽에서 요격하는 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무쇠평의회가 있는 수도까지 적군을 끌어들여야 했다.
반격은 그때부터 시작될 것이다.
한편 드리즈덴 총통은 의용군 부대가 이미르 공화국의 국경을 넘어서 수도로 진격하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하늘에는 수십 척의 비행선과 비행정이 떠다니고 있었고 후방에는 의용군의 몇 배나 되는 예비대가 준비된 상태였다.
거대한 군세 앞에 이미르 공화국쯤은 흔적도 없이 녹아내릴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압도적이군… 레오볼드 네놈도 이번에는 별수 없겠지.”
정말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