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99
298화 엇갈린 두 제국
오메가 퀸이 벌인 일련의 실험은 처음엔 자이움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이 제국은 워낙 덩치가 커서 소식의 전파가 느린 데다 평민들의 피해엔 무신경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수뇌부의 입장에선 마을 한두 개가 망하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마을이란 건 원래 없어지고 또 새로 형성되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척박하고 황량한 북쪽 대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 더 그런 면이 있었다.
하지만 오메가 퀸이 연달아 실험을 벌이면서 악마들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바라크 황제는 다른 건 몰라도 바그란과 악마에 대한 건은 절대 허투루 넘기지 말라는 황명을 내린 바 있었다.
그 지시가 먹혀들었는지 사건이 벌어진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어느 영지의 기사들이 파견을 갔다가 문제의 악마들을 발견했다.
“뭐, 뭐지?”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빨리 영주님께 알려서 구원을 요청하라!”
악마 출현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건이라 일개 지방 영지의 기사들이 나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 악마들은 의외로 덩치가 작아 보였다.
“이봐, 인간하고 비슷해 보이지 않아?”
“그러게. 힘도 약해 보이는데…….”
악마는 덩치가 곧 전투력이라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선에 나서는 악마들은 대개 덩치가 클수록 위협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기사들의 시야에 담긴 악마들은 덩치도 작고 무척이나 약해 보였다.
“저 정도면 대검 한 방에 썰리겠는데.”
“고작해야 2미터도 안 되는 놈들이잖아. 콱 짓밟아버리면 지들이 어쩔 거야?”
“결정됐어. 구원이 오기 전에 우리가 해결하자고.”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약간의 공명심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지만 어쨌든 악마인데 그걸 해결한다면 명성이 하늘을 찌를 것이 분명했다.
기사 세 명은 그렇게 마음먹고 골리앗을 몰았다.
하지만 낮은 출력의 골리앗으로는 악마들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놈들은 놀라운 민첩성에 대검 한 방으로는 죽지 않는 내구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육체가 리빙메탈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전투를 감지한 악마들이 주변에서 몰려들었다.
골리앗 세 대는 순식간에 악마들에게 둘러싸여 악전고투를 치러야 했다.
“윽! 이게!”
“등에 달라붙었다! 이거 좀 떼 봐!”
십여 마리의 악마들에게 공격당하다 보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균형을 잘못 잡은 골리앗 한 대가 쿵, 하고 쓰러졌고 그걸로 끝이었다.
기사 세 명이 돌아오지 않자 영주는 곧장 자신의 주인인 백작가에 연락을 넣었고 황궁에까지 소식이 전달되었다.
바라크 황제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족? 악마가 나타났다 그 말인가?”
“예. 출현한 장소는 단 한 곳입니다만 마을 주민들이 실종되고 파견된 기사가 사망하는 등 이상한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들 실종이야 흔히 있는 일 아닌가? 기사와 골리앗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상히 알아내어 보고하시오.”
얼마 후 자세한 보고서가 황제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심상치 않은 표정이 되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군. 요 근래에만 3건이나 일어났다라… 바그란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소?”
무슨 일만 일어나면 바그란만 찾아대니 관료들은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
정작 그 이름은 사라지고 레오볼드가 직접 인류제국을 선언한 지도 꽤 지났는데 말이다.
하여튼 레오볼드에 대한 열등감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서 바그란은 멀쩡하다는 보고를 할 때면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삭막해지곤 했다.
주위의 눈치를 살핀 한 장군이 보고를 올렸다.
“바그란은 조용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왕국에서도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우리만 이렇다는 말인가… 주민들의 실종도 천 단위가 넘어가는군. 더는 묵인할 수 없겠소.”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작은 도시 하나가 없어질 지경이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진상조사가 시작되었고 곧 끔찍한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쯤 되면 자이움 북부 곳곳에서 악마들의 준동이 일어났기에 목격자가 매우 많았다.
그들은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면서 급변이 일어났다고 외쳐댔다.
“뭔가 번쩍하더니 이상한 것이 떨어지지 뭡니까?”
“금속제 구체 같은 것이었는데 손을 대자마자 사람이 악마로 변하더니 완전히 이성을 잃었습죠!”
“덩치는 작아도 힘이 장난이 아닙니다요! 기사 나으리라면 모르겠으나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것 외에도 다양한 보고가 올라왔고 바라크 황제는 문제가 심각해졌음을 깨달았다.
“이놈들 숫자가 너무 많군.”
평소 악마의 준동이라고 하면 숫자는 수십에서 수백을 벗어나지 않는다.
게이트 유지시간이 아주 짧기 때문이다.
예전에 큰 사태가 발생했지만 그게 예외적인 거라고 보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다.
최초로 게이트가 열리고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악마로 변한 인간이 수천 명이나 되었다.
몇 주, 몇 달이 지나면 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공격당하면 감염이 된다고? 그래서 갑작스럽게 숫자가 늘어난 거군.”
“폐하,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특단의 조치라… 장군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소?”
“기사단을 동원해 악마를 토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타국과 협력하여 그 근원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바라크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장군이 언급한 타국이 어디인지 알아차렸기 때문.
“타국이 바그란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황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장군은 납작 엎드리면서도 할 말을 다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하지만 수천 놈이나 되는 악마를 상대할 방법이 없음은 명백합니다. 며칠이 지나면 숫자의 단위가 달라져 있을…….”
“닥치시오!”
분노한 목소리에 장군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저 위대한 그람 제국의 후예인 본국이 바그란의 도움을 받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장군에겐 자존심도 없소? 레오볼드 그자가 어떻게 여길지 생각해 보란 말이오!”
그간 농축되었던 열등감이 분노라는 형식으로 튀어나왔다.
바라크 황제는 그간 자이움에 스며드는 바그란의 문화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크레딧 같은 화폐야 주조차익을 못 얻게 해버리니 배척하는 게 올바르다 쳐도, 귀족사회에서 인기가 높은 바그란의 식사 문화를 황궁에서 추방한 건 열등감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그도 바그란 산 청어와 갑각류 등을 즐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황명을 내려 관료들과 시종들이 먹던 것까지 추방해 버리니 다들 황제가 열등감을 품었다고 수군대곤 했다.
그 증세는 엘브랑데가 멸망한 후로 더더욱 심해져서 최근에는 레오볼드와 바그란은 아예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있었다.
바라크 황제는 한바탕 장군에게 호통을 쏟아낸 다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러가시오. 다음에 보고할 때는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 포함되어 있어야 할 거요.”
“예, 폐하…….”
대전에서 물러나는 장군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황제는 밀실로 들어가 잠시 고민하더니 알테마에게 연락을 넣었다.
레오볼드에게 도움을 받기는 죽기보다 싫었고 그녀라면 힘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몇 차례 연락을 넣었음에도 통신구는 묵묵부답이었다.
바라크 황제는 수상함을 느끼고 친위기사단을 동원해 그람 왕국 쪽을 살피라 일렀다.
그리고 충격적인 보고가 날아들었다.
“그람 왕국이 멸망했다고? 알테마의 지배하에 놓인 게 아니라……?”
“예! 소신이 살펴본 바 왕궁 자체가 무너졌으며 도처에 시신이 즐비했습니다! 생존자들은 바, 어… 그러니까 주변 국가로 피신했으며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땅이 광범위하게 파헤쳐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엘브랑데의 멸망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 이상한 일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화가 나는 것은 대제국의 황제인 자신이 그 모든 것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설마 이번 일에도 레오볼드가 개입한 건 아니겠지?’
레오볼드에 대한 그의 열등감과 적개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이제는 거의 편집증처럼 변해 버렸다.
그리하여 악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바라크 황제는 잔혹한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친위기사단이든 군대든 뭐든 동원하여 그 영지를 봉쇄하고 모조리 죽이시오. 악마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라면 살려둘 수 없소.”
관료들은 자신이 들은 것을 의심했다.
황제가 지목한 그 영지는 하급귀족도 아니고 아인스타드 백작이 지배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인구는 20만에 가까웠고 황도에서도 제법 가까운 곳이라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재상 중 한 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폐하. 아인스타드 백작령은 인구가 20만입니다. 그 많은 인구를 다 죽이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방금 내가 뭐라고 했소? 이제는 재상까지 날 무시하는 거요?”
황제가 몸을 떨면서 화를 냈기 때문에 재상은 얼른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대전에 모인 관료들의 안색이 하나같이 창백해졌다.
아무리 악마가 위험하다고는 하나 아인스타드 백작 같은 사람을 별 생각도 없이 처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말이다.
안 그래도 황제의 권위가 실추되어 바닥을 기고 있는 지금 그런 잔혹한 조치를 내렸다간 프로잔 후작 같은 지지파도 등을 돌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경들이 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친위기사단을 동원해서 밟아 버리겠소. 그렇게 아시오!”
잔혹한 명령이 내려졌다.
자이움의 군대가 나서서 아인스타드 백작을 포함한 식솔을 빼돌리려 했지만 이마저 황제에 의해 틀어 막혔다.
“내가 분명 다 죽이라고 했을 텐데? 지금 황명을 무시하는 건가!”
급하게 친위기사단이 동원되었고 아인스타드 백작령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귀족들은 봉쇄된 도시가 골리앗에게 파괴되는 광경을 보며 치를 떨었다.
평민은 안중에도 없었지만 그게 20만 명이나 된다면, 지배자가 백작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친 황제의 칼이 언제 자신에게 날아들지 모르는 것이다.
바닥을 기던 충성심은 완전히 사라졌고 몇몇 귀족은 저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프로잔 후작이 그중 하나였다.
그는 원래 황제 지지파였으나 레오볼드의 여러 조치에 영지의 경제가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다.
인류제국 없는 경제를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바라크 황제가 그걸 틀어막는 바람에 영지의 존속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인류제국의 협조를 얻는 길뿐이다. 그러려면 황제가 죽어야 한다.’
반역은 분명 위험천만한 발상이었지만 인류제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아인스타드 백작 사태에서 황제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귀족들에게 은밀히 접촉했고, 황제가 죽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레오볼드 황제가 그들을 어떻게 대우할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격론이 일었다.
“그는 인류제국 전체의 귀족을 평민으로 격하시키는 데 성공했소. 우리가 투항하면 같은 조치를 할 거요. 이게 맞는 거요?”
“최소한 작위는 보존해 주겠다는 확답은 받아야 합니다.”
프로잔 후작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아직도 인류제국의 힘을 얕보고 있다니…….’
엘브랑데를 멸망시킨 새로운 제국이 뭐가 부족해서 일개 귀족의 눈치를 보겠는가?
소문의 우주선들을 동원하면 자이움 전체를 불태울 수도 있는데 말이다.
레오볼드 황제가 나서지 않는 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자이움은 이미 끝났다. 황제는 통치력을 상실했고 미쳐가는 중이다. 엘브랑데는 완전히 무너졌고 이제 아스테라에 기댈 만한 곳이라곤 인류제국뿐이다.’
수십 개의 소왕국이 있긴 하지만 존재감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프로잔 후작은 일찌감치 레오볼드에게 몸을 맡기고 권력을 꿰어 찬 크로이츠 백작이 부러웠다.
정식 황비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고 황제 주변에 여자라곤 아르마 재상뿐이었으므로 거의 확정적이었다.
‘지금이라도 그에게 투항하는 게 맞는 건가? 재산만 보전해 달라고 하면?’
귀족 작위는 버려야겠지만 최소한의 명예는 지켜줄 것이다.
끝까지 대항한다면 남는 것은 몰락뿐이란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황제만 죽으면 끝난다.’
당연히 레오볼드가 아닌 바라크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 카밀라의 측근이 두고 간 통신구에 손을 얹었다.
* * *
아인스타드 백작령이 무너지자 자이움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은 기존의 어수선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귀족들 중에선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들은 사교계와 각종 모임 등에서 바라크 황제의 잘못이라고 단언하곤 했다.
―황제라곤 하나 에테르 혈통을 평민같이 취급할 수 있는가? 최소한 식솔들은 빼낼 수 있게 공격을 늦췄어야 했다.
―악마로 변한 자가 워낙 많아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래도 귀족을 몽땅 죽이는 건 너무하지 않나?
언제나 그렇듯 귀족에게 평민이란 숫자일 뿐인 무가치한 존재였다.
그들에게 20만에 달하는 평민이 죽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부의 다수 영지가 박살남으로써 발생하는 여러 사태는 귀족들조차 묵과하기 힘들었다.
두려움을 느낀 평민들이 야반도주를 택한 것이다.
숫자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모두를 잡는 것을 불가능했고 본보기로 몇 놈을 처형했지만 도주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물가가 폭등해서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악마로 변한다니 얼마나 무섭겠는가 말이다.
악마란 평민 입장에선 대처할 방법이 없다 보니 특히 두려운 존재였다.
황제는 완전히 돌아버렸는지 악마가 한 놈이라도 출현하면 친위기사단을 동원해서 근방을 폐쇄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죽였다.
그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제국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자이움의 지배하에 있던 여러 왕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그들은 더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식량이 부족하다. 이대로는 겨울을 날 수가 없다.
―자이움에서 올 물자가 오지 않는다. 우린 어떻게 살란 말인가?
―이미르 공화국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인류제국으로 이동했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앓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스테라를 지탱하던 두 제국 중 하나는 멸망하고 하나는 골골거리니 그 영향력이 주변에까지 퍼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식량만큼은 확보해야 하는데 자이움과의 교역이 끊기는 바람에 힘들어졌다.
소왕국들은 레조트와 바노버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집중했다.
두 곳은 영토가 황폐화된 다음 멸망한 날만 기다리고 있는 신세였는데 뜻밖의 지원을 받았다.
당시 바그란에서 그랜든이라는 기사를 파견해 사람들을 수습하고 식량을 지원해 준 것이다.
이후로는 간헐적으로 이야기만 오가더니 올해 가을에 이르자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황폐화된 땅에서 살던 사람들이 유민화되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경우 주변의 치안이 불안정해야 한다.
하지만 주변 영지에선 식량 위기 외엔 유민들의 유입으로 인한 곤란을 겪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왕국의 인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견디다 못한 몇몇 왕국에서 자이움을 비롯한 인류제국에 특사를 파견했다.
얼마 후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인류제국에 아스테라의 전 인구가 집결하고 있다. 국경선에 그야말로 엄청난 유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미르 공화국의 드워프들은 이미 인류제국으로의 이주를 끝낸 상태다. 심지어 엘프들도 나름의 자치도시를 만들고 있다.
―식량은 아주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진 않은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정보를 받아든 각국의 수뇌부는 대경실색했다.
그 인구가 얼마인데 전부 먹여 살린단 말인가?
드워프만 거의 100만에 육박했고 엘프와 자이움의 유민, 그리고 다른 왕국에서 쏟아지는 인구를 합하면 수백만은 되었다.
그걸 먹여 살리는 건 신이 와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날아드는 정보는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바야흐로 인류제국이 아스테라의 중심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들은 전쟁까지 벌인 엘프들도 차별 없이 대했고 관직에 중용했다.
엘브랑데처럼 자치령을 가혹하게 대한다거나 하는 일도 전혀 없었다.
귀족들은 인류제국의 평민, 그것도 자치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자신들보다 더 잘 먹고 지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딸기에 듣도 보도 못한 과일에 흰 빵과 고기, 치즈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해산물은 그렇다 쳐도 어디서 그런 식량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바그란 동부에 평야지대가 있긴 하지만 그리 넓은 곳은 아닌데.
―또 부유대륙인가?
부유대륙에 올라갈 수가 없다 보니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었다.
어쨌거나 인류제국이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사실 대륙력 1040년 겨울쯤에서 보면 아스테라 전역에서 인류제국 외에는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가 거의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진해서 인류제국의 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왕국이 꽤 되었다.
일단 급한 불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레오볼드는 그들의 요청에 당장 화답하지는 않았다.
일거리가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배로 불어난 인구를 관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시 개척부터 난관이 산적해 있었고 유입되는 인구는 날이 갈수록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그렇게 모인 인구는 전염병에 매우 취약했다.
대륙 각지에서 워낙 많은 인구가 몰려들다 보니 최소한의 검사조차 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겨울이라 당장 터질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봄만 되어도 여러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 분명했다.
아르마는 그것을 대비해 대부분의 연산 성능을 우주 플랜트에 쏟아붓고 있었다.
나노머신으로 전염병 특효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보통이라면 항생제부터 시작했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침 선지자가 의료용 플랜트를 보내주었으니 나노유닛으로 캡슐을 제작해 먹이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레오볼드의 새로운 육체가 완성되었다.
그는 육체 앞에 섰다.
“네 번짼가?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어.”
“오메가 퀸만 족치고 선지자를 만나면 마스터의 의무도 끝납니다.”
“선지자가 나를 내버려 둘 것 같지가 않아서 불안해. 하여튼 시작해보자고.”
영혼을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