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98
297화 그녀가 원하는 것
“생각해 보면 우리는 꽤 질긴 인연이었지.”
“너는 인류를 몰살시켰고, 나는 네 배에 구멍을 뚫어 줬으니까.”
“그래도 지금쯤은 이해했을 거야. 내가 네 적이 아니란 걸.”
레오볼드는 그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을 하고 싶다면 근거를 대야지.”
“근거?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우리 수호자 종족의 기원부터 설명해야겠군. 너도 짐작했겠지만, 인류가 플레이그라고 명명한 우리 종족은 수호자의 사명을 맡았다.”
“수호라고 했는데, 누굴 지킨다는 거야?”
“선지자 라사가 만든 모든 종족들. 아스테라의 생명체를 포함해서 너희 인간들까지.”
“우리까지? 선지자가 우리를 만들었다고?”
“몰랐나? 하긴 너희들은 진지하게 심우주로 진출한 적이 없으니까. 이 우주엔 너희와 아스테라만 있는 게 아니다. 선지자가 만든 온갖 종족이 우글대고 있지. 너희 인간은, 그중에서 아주 일부분만 봤을 뿐이야.”
“…….”
레오볼드는 감탄하기에 앞서 의심부터 가졌다.
플레이그 퀸이 이런 이야기를 공짜로 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 거짓이 포함되어 있겠지.’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는 것이 효과가 좋다는 건 자명하니까.
그는 의심을 드러내는 대신 얼굴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수십 년에 걸친 연기가 꽤 도움이 되었는지 오메가 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놀랐나? 하긴 누구도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선지자는 일생을 거쳐서 많은 종족을 만들었다. 그들을 수호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지.”
“무엇에게서?”
“심우주 너머의 괴물들로부터. 그쪽엔 너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괴물들이 여럿 존재한다. 너희는 우리를 괴물로 치부하지만, 그쪽을 보면 천사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깊은 우주 어딘가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괴물이 있다…….”
아주 못 믿을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플레이그 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레오볼드로 하여금 의심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어디까지 진실인가?
그녀는 라사를 만나서 무얼 하려 하는가?
“그래서 심우주의 괴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멸망시켰나?”
“너 또한 그렇지 않았나? 우리로부터 인류를 보호한다는 핑계를 대고 학살극을 벌였지. 너에게 인류는 대단한 의미를 가질지 몰라도, 우주적으로 보면 별게 아니야.”
“여태껏 내가 그런 입장이었어서 할 말이 없군 그래.”
“나는 너를 도덕적으로 몰아세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그건 인간의 방식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야. 단지 너와 나는 비슷한 류라는 거다. 더 큰 대의를 위해서 살고 있지.”
“더 큰 대의라…….”
레오볼드가 수긍하는 척하자 오메가 퀸은 한결 여유로운 표정이 되었다.
다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와 손을 잡자. 열쇠만 주면 더 이상 너를 비롯한 인류를 괴롭힐 필요가 없다. 최종적으로 평화가 오는 거지.”
과연 그럴까?
레오볼드는 라사가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호자라는 존재는 원래의 임무를 망각하고 타락했다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눈앞의 오메가 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명백했다.
그가 망설이는 듯하자 오메가 퀸의 제안이 보다 과감해졌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적이 될 이유가 없다. 열쇠만 넘겨주면 지구든 아스테라든 몽땅 네게 주마.”
“완전히 손을 뗀다는 건가?”
“말하지 않았나? 우리는 보다 더 큰 대의를 생각하고 있다고. 심우주엔 선지자가 만들어 놓은 문명이 아주 많아. 그들을 관리하는 것만 해도 벅차.”
“그렇군. 결과적으로 열쇠를 넘겨주는 게 이득이라는 말인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뭐지? 어지간한 것이라면 솔직히 말해 주겠다.”
“열쇠를 얻어서 어디를 열려는 거지? 그리고 그 목적은?”
“두 개만 말해 주면 내게 넘겨줄 테냐?”
“일단 대답부터 해.”
오메가 퀸은 레오볼드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 넘어온 것 같았으므로 조금 더 베풀기로 했다.
“좋아. 말해주지. 현재 내 둥지는 선지자가 만든 링 월드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선지자가 있는 곳은 거기가 아니야. 링 월드 전체를 가동시키면 특별한 워프게이트가 열린다. 그 안에 선지자의 우주가 있는데 들어가려면 열쇠가 필요해.”
“링 월드라면 어떤 곳이지?”
레오볼드가 모르는 척하며 묻자 오메가 퀸은 설명을 계속했다.
“너는 잘 모르겠군. 엄청난 규모의 우주기지라고 할 수 있다. 아스테라 정도는 몇 개를 집어넣어도 남는 크기지. 심우주에 진출한 문명의 최종 목적이 바로 그거야. 태양 자체를 동력원으로 삼는 것.”
“방금 링 월드를 가동시킨다고 했지? 동력원이 아직 없다는 뜻인가?”
“태양에 버금가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선지자가 만든 그 어떤 문명에서도 그걸 만들진 못했어.”
단 하나만 제외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레오볼드는 아르마가 만들고 있는 에테르 오리진이 그 동력원이 되리라 확신했다.
만약 그게 완성된다면 링 월드를 다시 가동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선지자를 만나려는 목적은 뭐냐?”
“…이걸 말해 주는 건 네가 처음이 되겠군. 우리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서다.”
“원래대로?”
“우리가 처음부터 리빙메탈로 이뤄진 괴물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우리 역시 너처럼 탄소기반의 생명체였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
레오볼드는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막연히 우주괴물로 생각했던 플레이그가 사실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생명체였다니.
어쩌면 인간처럼 팔다리가 달리고 2족 보행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가 원하던 건 얼추 맞춰졌다.
오메가 퀸은 그동안 숨기고 있던 것을 밝힘으로써 레오볼드가 전향적으로 나오길 기대했겠지만 그건 헛된 것이었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플레이그를 증오했다.
“좋은 정보 잘 들었다. 나도 대답을 들려주도록 하지.”
열쇠를 줄 것을 기대하고 있던 오메가 퀸은 그의 전신에서 빛이 뿜어지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너 설마…….”
빛은 에테르 블레이드로 변해 오메가 퀸의 배를 뚫어버렸다.
입이 크게 벌어져 찢어지는 비명이 들리려는 찰나, 허공에 푸른 문이 열리더니 그녀를 집어삼켰다.
“아아아악!”
뒤늦게 비명이 들렸고 레오볼드가 만든 에테르 블레이드가 목표를 잃고 그대로 집무실의 벽을 뚫어 버렸다.
쿠쿵!
파편이 우수수 쏟아지며 먼지가 일었다.
아르마와 발가드가 무슨 일인가 하고 급히 들어왔다.
“마스터.”
“갑자기 이게 무슨… 어떻게 된 일이오?”
“도망갔군. 하지만 좋은 걸 알아냈어. 여기는 수리하고 아르마만 잠깐 들어와. 자네는…….”
발가드는 레오볼드가 무슨 말을 할지 긴장했다.
그의 주인을 공격했으니 나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
다행히 그를 쳐다보는 레오볼드의 시선은 그리 차갑지만은 않았다.
“궁내문관에게 말하면 적당한 거처를 알려줄 거야. 당분간은 거기서 지내.”
“다행이군. 설마 날 내쫓는 게 아닐까 했었소.”
“식비하고 숙박비는 받아낼 테니까 그리 알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지불하겠소.”
발가드는 씨익 웃고는 밖으로 나갔다.
왠지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레오볼드와 아르마는 밀실로 이동해 얘기를 나눴다.
오메가 원은 게이트를 통해 마레로 도망쳐 숨어버렸기에 찾을 길이 없었다.
중력자 레이더 출력을 최대로 올려서 마레 전체를 스캔했지만 아공간에라도 숨었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찾기로 하고… 어떻게 생각해?”
“늘 그렇듯 일부는 진실이겠죠. 제 추측으로는 선지자가 지구의 인류를 만들었다는 부분이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근거가 다소 부족하지만… 아스테라와 달리 지구인들이 선지자를 알게 된 것은 우주에 진출한 이후부터입니다. 수천 년 전부터 라사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아스테라와는 많이 다르죠.”
“자신이 만들지 않은 종족이라서 지켜보기만 했다는 거지?”
“네. 문명이 몇 개 더 있었다면 확실해지겠지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메가 퀸은 많은 말을 했지만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라사가 한 말을 가져와서 교차 검증해 보면 얼핏 생각나는 게 있었다.
“라사는 나를 보고 후계자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앞서 오메가 퀸의 발언과 연계해보면 자신이 만들지 않았기에 더 애착이 갔을 수도 있죠. 그래서 지켜만 봤고요.”
“보통은 자신의 창조물에 더 관심을 가지지 않나?”
“그 창조물이 엇나가기 시작하면 실망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를 불러 아스테라의 전면 개조를 꾀했다… 진실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 같아.”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플레이그가 원래 탄소 기반 생명체였다는 것을 듣고 보니 철사병이 생각나네요.”
“왜,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
“아시다시피 철사병은 플레이그 코어에서 뿜어지는 입자선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종의 금속 전염병입니다. 플레이그가 생명체였을 때부터 그런 질병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죠.”
“몸이 무너지는 질병이라… 그거 끔찍한데.”
“더 끔찍한 건 일반적인 생명체를 플레이그로 바꿀 수 있는 질병에 대한 가능성입니다.”
그녀의 말에 레오볼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인간을 플레이그로 바꿀 수 있다고?”
“철사병을 연구하던 도중 몇 건의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확실히 아르마가 보여 준 데이터는 그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철사병 자체는 답을 찾아낸 지 오래지만 플레이그가 원래 탄소 기반 생명체였다는 가설을 끼워 넣으니 데이터가 전혀 다르게 변화했다.
결과는 생명체를 플레이그로 바꾸는 전염병, 혹은 바이러스에 대한 예측이었다.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87%라고? 너무 높잖아.”
“통계학적으로 보면 거의 확실하다고 보는 게 맞겠죠. 문제는 영혼만 건너온 오메가 퀸이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인데…….”
“가지고 있다고 보고 대비하는 게 맞겠지.”
“현재 모델링을 구현하는 중입니다만 실물 데이터가 없어서 시뮬레이션이 어렵습니다.”
“몇 번 당해봐야 한다는 소리군.”
아르마라고 해도 없는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했다.
당장 오메가 퀸을 죽일 수도 없으니 적당히 싸우면서 분석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르마는 오메가 퀸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경우 마레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보여 주었다.
2년도 되지 않아 악마 대부분이 넘어갈 거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바이러스까지 하면 행성계 전체가 위험해지는군. 우리도 전력을 동원해야겠어.”
진짜 싸움은 아마 링 월드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 전에 플레이그에 대한 완벽한 데이터를 획득하고 아스테라에서 추방해야 한다.
“아르마, 내 육체와 타이탄, 그리고 에테르 오리진은 언제 완성될 것 같아?”
“마스터의 육체는 1달 이내로 완성됩니다. 타이탄의 구동을 위해선 에테르 오리진이 필요하므로 약 1년 정도 걸리겠네요.”
“그리 짧지는 않군.”
그나마 육체가 금방 완성되는 게 다행이었다.
이 육체는 수명이 약간 늘어나고 좀 강해지는 정도로 평가하기 쉽지만 실은 아니었다.
전신이 에테르 하트나 다름이 없으며 특유의 중독 현상도 발생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에테르 오리진에서 무한대에 가까운 에테르를 끌어다 쓸 수 있었다.
거기에서 펼쳐지는 권능이란 아스테라의 신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에테르 오리진이 없다고 하더라도 세틀러호의 융합로가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었다.
본체가 아닌 오메가 퀸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유일한 걱정이라면 루시아인데… 아무래도 오메가 퀸에게 당할 것 같단 말이지.”
“지저세계의 마왕들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어서 당장은 데려오는 게 어렵습니다.”
레오볼드는 지저세계의 세력 판도를 살펴봤다.
서열 1위 아프록시아가 워낙 거대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오메가 퀸이나 루시아가 덤벼들 경우 금방 함락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고 나면 행성 마레의 악마 전체가 오메가 퀸의 하수인이 될 것이다.
루시아가 어느 정도까지 해줄까가 문제인데 레오볼드는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더 많은 에테르를 보내줘. 부하들까지 합치면 오메가 퀸을 상대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거야.”
당분간은 지켜볼 일이었다.
* * *
선지자가 보낸 선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식량을 생산하는 이클립스 기지 외에 또 하나가 테라 행성에 도착했다.
플레이그도 비스트급 한 마리가 아니라 나이트급 몇 마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레오볼드에겐 손쉬운 상대였기에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레오볼드는 어설트 아머에 탄 채로 기지가 우주 플랜트와 도킹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이게 의료기지라고?’
「네. 말 그대로 의료에 관련된 엄청난 기능들을 갖고 있습니다. 바이오백이 수천 개나 있다면 이해가 가시겠죠.」
‘맙소사…….’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레오볼드의 입이 벌어졌다.
바이오백은 선지자의 유물이자 구 인류연합의 기술로도 양산이 어려운 물건이었다.
세틀러호에도 딱 3대만 실려 있는 것인데 저 기지에는 수천 개나 된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기지 주위를 돌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런데 균열이 좀 많은데… 플레이그의 공격인 것 같지??’
「링 월드에서 떨어져 나올 때 공격을 받았나 봅니다. 외벽의 27%가 수리를 필요로 합니다.」
‘수리할 수 있겠어?’
「청사진이 있으므로 시간만 들이면 가능할 것으로 보이네요.」
‘다행이군. 그나저나 이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선지자의 지시를 받은 링 월드가 자신의 일부를 사출하려 하는 것을 오메가 퀸이 방해한 게 분명했다.
방해를 받아 선체의 27%가 파손될 정도이니 다음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아무튼 이 기지는 굉장히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얼핏 바이오백이 핵심 기능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진짜는 치료용 나노유닛 복제기였다.
「플레이그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노유닛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거 대단한데.’
인류연합이 괜히 나노유닛을 보급하지 않은 게 아니다.
유닛 하나하나에 플레이그가 스며들면 대처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용 자체를 금지한 것에 가깝다.
그런데 플레이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나노유닛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캡슐에 나노유닛을 넣어서 단숨에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적의 기술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바이오백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대상이 100만 단위를 넘어선다면 효율은 나노유닛 쪽이 압도적일 것으로 판단되었다.
만들어서 뿌리기만 하면 되니까.
「이로서 인류는 병마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엘프의 유전자를 이식한다면 300년 가까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겠네요.」
‘이런 걸 보내주니 고마울 뿐이지. 그나저나 그쪽에서 움직임은 없나?’
「있습니다. 자이움 쪽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에테르 폭풍이 불지 않는 것을 봤을 때 오메가 퀸이 연 것이 확실합니다.」
‘자이움이라 해봐야 허수아비일 뿐이라서 그녀가 탐낼 이유가 없을 텐데…….’
물론 자이움은 아직까지 제국이고 거대한 덩치를 가졌다.
하지만 레오볼드가 당장 군대를 동원하기만 하면 우르르 무너질 허약한 나라였다.
화폐를 포함한 경제는 이미 바그란에 잠식당하고 있으며 군대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 나라에 오메가 퀸이 게이트를 열었다니 특이한 일이었다.
‘이유는 아마도…….’
「네. 생명체를 플레이그로 타락시키는 바이러스의 살포가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마을을 대상으로 실험하려는 것 같네요.」
‘일단은 지켜보자고.’
재난을 지켜보는 건 찝찝한 일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더 거대한 재난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자이움 북부의 작은 마을에 갑자기 운석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놀라 달아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레이터 주위로 모여들었다.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운석은 비싸게 사주는 사람도 있었다.
흙무더기를 헤치고 나니 튀어나온 건 돌덩이가 아니라 이상한 구체였다.
플레이그 코어였지만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그걸 알 리 없었다.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사람 중 하나가 뜨거운 코어를 슬쩍 건드리자 트랜스폼이 시작되었다.
코어가 변형되며 독특한 에테르를 뿜어내었다.
「에테르 파장이 관측되었습니다. 분석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에테르인지 알아내면 대처 방법을 세울 수 있다.
그걸 기다릴 새도 없이 사람들이 목을 움켜쥐고 괴로워했다.
잠시 후 몇몇 사람들에게서 증상이 나타났다.
말단부터 뻣뻣해지더니 피부가 조금씩 리빙메탈로 바뀌어 갔다.
전신이 플레이그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해야 몇 분 정도였다.
‘보고 있는데도 안 믿기는군…….’
「저 또한 그렇습니다. 플레이그가 원래 탄소 기반 생명체였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언제 분석이 끝날 것 같아?’
「최소 샘플 50여 개가 필요합니다.」
‘저 사람들을 데려오는 건 어렵고 대규모로 실험할 때 슬쩍 끼어들어야겠군.’
한편 플레이그로 변한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마을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골리앗 정도의 파괴력은 없었지만 전신이 금속이다 보니 작은 마을에서 대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순식간에 마을이 전멸했고 근처 마을까지 공격당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감염이 어렵다는 겁니다. 공기로는 안 되고 직접적으로 접촉해야만 감염이 되는군요.」
‘테스트를 하는 걸 보니 개량할 생각인 게 분명해. 그나저나 왜 이런 방법을 쓸까? 어차피 우리에겐 소용이 없다는 걸 알 텐데.’
「본체를 소환하지 못하는 이상 병력을 모으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요? 마레의 악마들과 싸우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긴 본체가 없으니까 코쿤도 못 만드는군.’
플레이그의 번식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여왕이 코쿤을 낳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었다.
당장 마레를 점령하긴 어려우니 동지를 만들 일꾼을 모집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마레의 플레이그들을 지배한 다음에는 진화를 촉구해 군단을 만들려는 속셈이겠지.’
그 뒤엔 거대한 육체를 만들어 원래 부하들의 영혼을 소환할 것이다.
「루시아를 붙여서 데이터를 획득하다가 적당한 선에서 개입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루시아만 고생하겠군. 이번 기회에 충성심을 증명하라고 해야겠어.’
만약 그녀가 오메가 퀸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충성심을 증명한다면 레오볼드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한편 오메가 퀸에게 육체의 통제권을 내어준 알테마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목적이 같아서 손을 잡았는데 갑자기 인간들을 악마화시키는 것은 그녀의 계산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는 없었지 않나? 왜 인간들을 악마로 바꾸는 것이냐?
―실험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리고 인간이라고 해봐야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에 불과해. 네가 신경을 쓸 이유는 없을 텐데?
실제로 알테마는 대부분의 인간들을 몬스터나 다름없이 여겼다.
그나마 대접을 해주는 건 에테르 감응력을 가진 소수의 인간뿐이었다.
그녀는 일단 수긍했지만 불안감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오메가 퀸이 원하는 건 진짜 레오볼드의 영혼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