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97
296화 무서운 여자들
알테마는 환희에 젖었다.
빛의 장막이 열리더니 한 여성이 그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라사, 아스테라의 창조신이시여.
라사는 대부분의 필멸자에겐 의미가 없었고 장수종도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 신이었다.
기리는 신전조차 없으니 존재감은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알테마를 포함한 오래된 자들은 알고 있었다.
아스테라 전체를 만든 것이 바로 라사라는 사실을.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아스테라를 만들었고 거기에 자연과 생명체를 이식했다.
최근에는 판테온이니 하는 신격들이 설쳐댔지만 그들은 라사의 하수인일 뿐이었다.
―진정한 신은 오직 라사, 당신뿐이십니다…….
그 신이 자신의 부름에 응해 소환되다니 정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무수한 빛이 거둬지며 마침내 드러난 존재는 라사가 아니었다.
알테마는 본적도 없는 무언가가 자신의 리빙메탈 육체로 들어오려 하는 걸 느끼고 깜짝 놀라 움츠렸다.
―무, 무어냐?
―나를 받아들여라, 작은 가능성이여.
―넌… 넌 라사가 아니구나…….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왜냐하면 나는 그의 후계자이니까.
―후계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시간이 없다.
후계자라는 존재는 그 말을 남기곤 알테마의 육체로 쑥 들어와 버렸다.
거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만 절감했을 뿐이었다.
―헉!
리빙메탈 육체에 오메가 원의 의식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알테마를 완전히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지식과 기억을 공유받을 순 있었다.
―아아… 여기가 선지자의 고향이구나.
―선지자의 고향? 그게 무슨 의미지?
―알 필요 없다. 그나저나 그 열쇠는 내 배에 잘도 칼을 꽂아 넣고 이런 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구나. 참으로 고얀 녀석이군.
알테마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라사를 소환했는데 왜 네가 나타난 거지? 내 육체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고?
―그것은 천천히 알려주마. 지금 네가 알아야 하는 건 우리의 목적이 같다는 것이다.
―빨리 말해라. 내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네 목적은 열쇠… 그러니까 레오볼드의 확보 아니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갖고 싶을 테지.
―겨우 그 정도로 내가 만족할 것 같아? 나는 아스테라와 지구 전체를 원한다.
―욕심이 많은 아이구나.
―아이라고?
알테마는 자신을 아이 취급하는 이 존재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몸을 공유하고 있어서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더 화가 나는 건 이 존재가 자신의 기억을 몽땅 흡수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기억이고 뭐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는데.
오메가 원은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그녀를 달랬다.
―나에 대한 것은 서서히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레오볼드를 처단하는 거지.
―죽이면 안 돼.
―죽인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지. 그의 육체와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네게 주마. 대신 열쇠는 내가 가지겠다.
―아까부터 계속 열쇠를 언급하는데 그게 뭐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짧게 말해주지. 열쇠는 이 세계로 들어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이 세계… 아스테라?
―아스테라를 포함한 에테르 우주 전체를 말한다. 누군가의 허락이 없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지. 내 영혼이 들어올 수 있었던 건 너의 초대 덕분이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알테마는 슬슬 불안해지는 걸 느꼈다.
어쩌면 자신은 소환해선 안 되는 무언가를 부른 게 아닐까?
레오볼드가 막지 않았다는 것도 왠지 수상쩍었다.
그의 힘이면 마법진을 파괴하는 것쯤은 쉬웠을 텐데.
―레오볼드… 그가 알고 있을 거야.
―어쩌면 여기에 온 순간 내 존재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네 육체가 멀쩡한 건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건 또 무엇이냐?
―나의 군단… 수호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겠지. 생각해 보면 녀석은 나와 꽤 오랫동안 싸웠지만 아는 게 별로 없거든.
―오랫동안 싸웠다고? 레오볼드와 너는 대체 무슨 관계냐?
―후계자로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숙적이라고 해두지. 물론 지금 상황에선 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헛소리 투성이로군. 내가 왜 너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말해봐라.
―그 이유를 직접 느끼게 해주마.
알테마의 의식이 어두운 공간으로 옮겨졌다.
그 무한한 공간 어딘가에 성녀 베로니카의 기억을 통해 본 지구가 있었다.
―지구… 레오볼드의 고향… 그런데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건 대체 무엇인가?
―우주라는 것이다. 아스테라도 지구와 거의 비슷하지. 크기는 약간 작지만.
―하늘 너머에 저런 어두운 공간이 펼쳐져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네가 지구로 가려면 열쇠를 가지고 50년 동안 항해해야 한다.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아스테라를 횡단하고도 남는 속도로 말이지.
―레오볼드가 그렇게 해서 아스테라로 온 거군…….
―그의 목적은 하나다. 선지자를 찾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가 선지자를 만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왜냐하면 진정한 후계자는 하나뿐이거든.
―선지자가 라사를 말하는 건가? 그녀의 후계자가 되면 뭐가 좋은 거지?
―거기까진 말할 필요가 없겠지. 이제 결정의 시간이 왔다. 나의 힘은 강대하고 무한에 가깝다. 하수인 몇만 동원해도 아스테라 전체가 불타오르겠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선지자의 열쇠를 삼킨 레오볼드의 영혼.
―나머지는 내게 준다는 것인가?
―전부. 아스테라든 지구든 원할 대로 가져라. 레오볼드가 가진 기술도 상관없다.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사실 알테마는 라사를 소환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엘브랑데를 불태운 그 우주선을 이길 자신도 없었고 말이다.
라사 대신 이상한 존재가 튀어나오긴 했는데 어째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일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 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지?
―이 육체를 잠시 빌리겠다. 앞으로 마레의 작은 녀석들을 내 수족으로 만들기 위한 밑거름으로는 충분할 테지.
―마족을 부하로 만들어서 뭘 할 작정이지?
―뻔하지 않느냐. 내 군단을 만들어 레오볼드를 굴복시키는 것이지. 전리품은 네게 나눠주겠다. 나는 그의 영혼만 있으면 된다.
그걸 가져서 뭘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알테마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자각했다.
―좋다. 너와 손을 잡기로 하지.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겐 많은 이름이 있지만 지금은 레오볼드가 붙여준 두 개를 쓰기로 하지. 오메가 퀸이라고 부르면 된다.
두 개의 의식이 조화되자 리빙메탈로 된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멀리에서 지켜보던 발가드는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꼈다.
알테마의 육체 안에 이질적인 것이 끼어든 것 같았다.
‘라사는 아니겠고… 소환에 실패한 것인가?’
그걸로는 저 잔잔한 미소가 설명되지 않는다.
의문이 쌓여 가는데 느닷없이 게이트가 열리며 마레의 마족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지? 바로 싸우는 건가?’
발가드가 알비온에 올라타는데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마족들이 주춤하더니 알테마에게 넙죽 엎드리는 게 아닌가.
―크고 강하시다…….
―위대한 어머니께 충성을!
수많은 마족이 자세를 낮추었고 알테마는 그들을 따스한 에테르로 감쌌다.
―잘 왔다, 나의 아이들아.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너무 연약하고 작구나. 내가 강하게 만들어주마.
따스한 빛이 악마들을 감쌌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성장하려면 재료가 있어야겠지?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살아남은 자에게 축복을 내릴 것이니.
―죽어라!
―얌전히 내 식사가 되어라!
악마들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상잔을 시작했고 발가드는 어이가 없어 그 광경을 구경하고만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마족들이 알테마를 따르는가에 대한 의문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그녀 안에 있는 존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레오볼드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플레이그 퀸이 분명했다.
‘왕은 마레의 악마들이 진화하지 못한 플레이그라고 했다. 그렇다면 저 여왕이 모든 플레이그의 군주인가.’
어떤 경위로 라사 대신 그녀가 소환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발가드가 해야 할 것은 하나.
‘왕께 알려야겠군… 배신하고 도망쳐 나온 주제에 이러는 것도 우습지만…….’
어쨌든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발가드는 상잔을 계속하고 있는 악마들을 외면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 에테르 파장은 플레이그 퀸입니다. 명왕성 주역에 나타났던 오메가 원이 확실합니다.”
“역시 라사가 아니라 오메가 원이 왔군.”
레오볼드와 아르마는 황폐화된 땅에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알테마의 육체를 지켜봤다.
처음엔 본체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오메가 원이라고 해도 열쇠 없이 이 세계에 들어오는 건 힘이 드는 모양.
“그렇다면 그녀의 목표는 내가 되나? 에테르 우주의 문을 여는 것이 목적일 테니.”
“조용히 악마들을 부른 걸로 봐서 지금은 힘이 없는 모양입니다.”
“나보다도 약하겠지.”
레오볼드는 잠깐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금이라면 오메가 원과 알테마를 동시에 죽일 수 있다.
축소형이 아닌 원본 반응탄을 떨어트리면 반항도 하지 못하고 즉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죽여 봐야 오메가 원의 본체까지 죽는 것은 아니므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본체, 본체를 끌어들여야 하는데… 쉽게 오려 하진 않겠지.”
다이슨 스피어를 침식하고 있는 건 확인했지만 너무 멀고 그걸 가져올 방법이 없었다.
아르마가 몇 가지를 계산하더니 말했다.
“오메가 원은 마레에 있는 플레이그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아마 자신의 둥지에 있는 부하를 불러들이려 할 거예요.”
“영혼은 몰라도 육체는 들어오기가 거의 불가능할 텐데.”
“영혼을 소환해서 마레의 플레이그에 이식시키는 방법이 있답니다. 그거면 한계를 돌파할 수 있죠.”
“그 조그마한 녀석들이 우리가 아는 플레이그처럼 거대하게 진화할 수 있다는 거군.”
현재의 레오볼드에게도 그 정도는 가능하다.
그의 에테르 감응력은 오메가 원과 맞먹으며 아르마라는 서포터까지 있기 때문이다.
단 에테르 오리진이 완성되지 않는 이상 진짜 오메가 원과 동등한 능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오메가 원이 세력을 불리고 있다는 건 확인되었다.
레오볼드는 수많은 악마들이 상잔을 벌이는 걸 지켜봤다.
“우리가 지켜본다는 걸 아마 알고 있을 거야.”
“그럼에도 조용히 있다는 건 마스터의 상황을 알고 있다는 거겠죠.”
“죽일 테면 죽여 봐라 이거겠지. 그래서 더 짜증이 나.”
플레이그라는 존재에 대해 완전히 분석이 끝나고 둥지와 플레이그 퀸의 위치까지 파악이 끝나면 이 짜증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때까진 상황을 주시할 수밖에.
아르마가 넌지시 물었다.
“오메가 원이 반갑진 않으신가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기는 무슨…….”
레오볼드는 투덜거렸지만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입장에서 약간의 미운 정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죽은 척한 것도 날 여기에 집어넣기 위해서인지 몰라. 아주 위험한 녀석이야.”
“알테마의 육체 안에 들어갔으니 마스터를 노리는 여자가 둘이 되었네요.”
“둘을 여자라고 볼 수 있나? 뭐 여성체라는 건 확실하지만.”
둘이 의기투합해서 레오볼드를 노리고 있으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육체와 영혼이 갈라지게 생겼다.
물론 그런 우려는 에테르 오리진이 완성됨과 동시에 끝날 것이다.
아르마는 그게 유출될까 봐 별도의 아공간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테르로 위장까지 하고 있기에 오메가 원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들 감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이쪽의 능력을 오판한다는 뜻이고 레오볼드에게 전략상의 이점을 가져다준다.
“계속 착각해 줬으면 하지만 얼마 못 가겠지?”
“2, 3년 안에 에테르 오리진을 눈치챌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전에 승부를 봐야겠군.”
다행히도 이쪽의 준비는 거의 갖춰져 있었다.
문명의 수준을 당초 계획한 대로 끌어올리지는 못했지만 일단 승리하고 천천히 하면 되는 문제였다.
“안심하긴 이르니까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알테마와 오메가 원을 추적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게이트를 열어 사라졌습니다.”
“마레로 갔나…….”
거기엔 루시아가 있다.
당초 우려와는 달리 오메가 원에 의해 타락하는 일은 없었지만 자칫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당분간은 몸 좀 사리라고 해. 뭣하면 군단을 접고 이쪽으로 데려오고.”
“마레 전체의 중력자를 살펴보고 있는데 특이한 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무슨 일을 벌이진 않겠다는 건가.”
레오볼드를 한 번 패배시킨 전적이 있었기에 안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왕궁의 입구가 시끄러워졌고 아르마가 슥 살펴보곤 속삭였다.
“발가드가 왔습니다. 들여보낼까요?”
“생각보다 빨리 왔군. 보나마나 알테마를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하겠지. 일단은 들여보내.”
잠시 후 발가드가 집무실에 들어오더니 레오볼드 앞에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
“도와주시오. 하라는 건 뭐든지 다 하겠소.”
“뭘 도와줘? 알테마 자신이 원한 길인데.”
“그녀가 원했다고……? 그게 무슨 뜻이오?”
“소환된 게 라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자네도 눈치챘겠지. 플레이그 퀸의 영혼이 왔어. 문제는 둘의 목적이 거의 일치한다는 거야.”
“둘의 목적이라……?”
레오볼드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나지. 정확하게 따지면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하여튼 둘이 원하는 건 내 몸과 영혼이야. 그러니 목적이 같다는 거지.”
“아…….”
발가드는 그제야 뭔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이 공존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드래곤이니 플레이그 퀸이니 하는 초월자라면 안 될 게 있나 싶었다.
하여튼 둘의 목적은 레오볼드라는 게 확실해졌다.
그것은 발가드의 앞길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레오볼드는 은근히 말했다.
“미쳐버린 것도 아니니 주인을 섬겨야겠지. 마레로 간 것 같은데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쉽겠군.”
“…….”
그는 한동안 레오볼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리겠소. 내 주인을 구해주시오.”
“구해주면 다시 그녀를 위해 일할 것 아닌가? 내가 왜 그런 수고를 들여야 하지?”
“왕께서 비효율을 싫어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러니 나를 걸겠소.”
“골드 드래곤의 챔피언이라… 예전이라면 가치가 높았겠지.”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다.
확실히 엘브랑데를 박살낸 그 화력이라면 개인은 아무리 강해도 별 가치가 없었다.
위급 시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모를까 지금의 레오볼드에겐 티렌델이 있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발가드가 탄식하며 일어서서 돌아서는데 레오볼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 조건이 있다. 알테마의 운명을 내게 맡긴다면 도와주도록 하지.”
“주인의 운명을 왕이 맡는다라… 죽이겠다는 뜻이군.”
“부하로 거둬들이면 쓸 만할 거야.”
“그 자존심에 왕의 밑으로 들어가려 하진 않을 거요. 지구와 아스테라의 통합 황제를 꿈꾸던데.”
레오볼드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자네가 정신을 좀 차리게 해주지 그랬나?”
“하늘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쩌겠소? 하여튼 도와준다니 다행이오.”
“장담할 순 없어. 오메가 원은 나를 이긴 적이 있거든.”
정확히 말하면 인류연합 전체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다.
어쩌면 레오볼드가 여기에 온 것 자체가 그녀의 계획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발가드의 눈빛이 깊어지는데 집무실의 공간이 유리 깨지듯 금이 갔다.
아르마의 표정이 급변했다.
“누군가가 침입을 시도했습니다.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입니다.”
“오늘따라 손님이 많군. 놔둬.”
막혔던 에테르가 다시 흐르자 푸른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볼드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 * *
“알테마라고 불러야 하나 오메가 원이라고 불러야 하나…….”
“오메가 퀸. 그게 내 이름이다. 네가 지어준 거지.”
“그래? 이거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나… 하여튼 오랜만이야. 한 55년쯤 흐른 것 같은데… 상처는 다 나았나?”
레오볼드의 눈짓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발가드와 아르마가 문을 열고 나갔다.
오메가 원은 싱긋 웃으며 소파에 앉자 창가로 들어온 빛이 리빙메탈로 만들어진 육체에 반사되어 번들거렸다.
“좋은 곳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힘을 키우고 있지. 그나저나 그 육체는 전보다는 좀 못생긴 것 같아.”
“괴물에게 미의식도 있었나?”
“인간이 가진 만큼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레오볼드는 그녀에게 성큼 다가가 목을 쥐었다.
“원한다면 리빙메탈이고 나발이고 단숨에 부러뜨릴 수 있어.”
“해.”
오메가 퀸의 얼굴이 미소로 깊어졌고 레오볼드는 에테르 하트를 가동시키려 하다가 간신히 참았다.
여기서 죽여 봐야 본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가지 않는다.
그는 목을 놓아주고 건너편 소파에 앉았다.
“여기로 온 이유는 뭐야?”
“협상. 내게 있어서 협상은 필요가 없지만 신세를 지고 있는 존재가 그걸 원하는군.”
“역시 알테마의 의식이 살아 있었군.”
“짐작하고 있지 않았나? 내가 열쇠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애초에 플레이그 군단이 지구를 박살내 놓은 이유도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엔 그걸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오메가 퀸의 목적은 선지자의 고향인 이 에테르 우주로 오는 것이었다.
여기에도 선지자는 없는 만큼 다른 목적지가 있는 것 같았지만 레오볼드는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열쇠를 원한다고? 그걸 주면 뭘 줄 거지? 선지자가 있는 곳이라도 가르쳐줄 건가?”
비웃음을 흘리는 그에게 오메가 퀸이 낮게 속삭였다.
“네가 원한다면.”
레오볼드의 얼굴이 굳어졌다.